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나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한다는 이유로 중국공산당(중공)에 의해 불법 구금돼 거의 3년간 구치소에 갇혀 있었다. 구치소에서 나는 나의 언행으로 대법을 실증하는 데 주의를 기울였다. 나는 내가 단순한 개인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진상을 모르는 사람들은 종종 나의 표현을 보고 대법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이곳 사람들이 모두 나와 인연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들이 대법 진상을 듣고 파룬따파의 제도를 받을 수 있도록 할 책임이 있었다.
구치소의 식사는 극도로 열악했다. 세 끼 주식은 대부분 찐빵이었고, 반찬은 항상 밑바닥이 훤히 보이는 맑은 채소국이었다. 이곳에서 한동안 지내면 많은 일반인이 영양실조를 느끼게 된다. 식사를 개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매달 한 번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었다. 이른바 구매란 구치소가 밖에서 사온 상품(주로 식품)을 재소자에게 되파는 것으로, 구치소는 이를 통해 돈을 벌었고 모든 상품에 적지 않은 금액을 추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 사람들은 모두 매달 한 번의 구매를 가장 즐거운 일로 여겼다.
기뻐하는 사람이 있으면 기뻐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집에서 영치금을 넣어주지 않아 물건을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는데,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음식을 사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럴 때마다 나는 내가 구매한 식품을 그들에게 조금씩 나눠주곤 했다. 식사 시간에도 나와 이웃한 사람이면 누구든 맛있는 것을 함께 나누었다.
구치소에서 첫해 설을 맞이했을 때, 나는 감방의 모든 사람에게 밀크티 한 병씩을 사주었다. 나는 모두에게 “비록 귀한 물건은 아니지만 제 마음을 담은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오래 지내다 보니 모두 내가 선량하고 사리를 잘 안다고 느꼈고, 속마음까지 기꺼이 나에게 털어놓았다. 이는 훗날 내가 진상을 알리고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권유하는 기초가 됐다.
구치소에서 잠자는 것은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구치소에는 사람이 끊임없이 들어왔다. 더블 침대 세 개 크기에 해당하는 큰 평상에 십여 명이 빽빽이 누웠고, 많을 때는 심지어 16~17명이나 됐다. 사람들은 서로 몸을 맞대고 갈치처럼 옆으로 누워 잤다.
매우 남자 같은 성격의 젊은 여성 A는 잠버릇이 아주 나빴다. 가로로 누워 다른 사람을 밀어내고 큰 자리를 차지해 아무도 그녀 옆에서 자려 하지 않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또 약간 정신적으로 우울하고 성격이 비교적 강한 중년 여성 B가 있었는데, 자리 다툼으로 이웃을 몇 번이나 바꾼 후 내가 그녀 옆으로 배치됐다. B는 왼쪽으로는 벽에 기대고 오른쪽으로는 나와 붙어 있었는데, 대부분 반듯이 누워 자는 것을 좋아해 옆 사람의 자리를 더 차지했다.
구치소에서는 잠자리가 구분돼 있었다. 경계를 넘는다고 다투는 일이 거의 매일 일어났다. 과거 A와 B도 이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자주 다퉜는데, 내가 B와 이웃이 된 후로는 줄곧 평온했다. 구치소에서 자리를 차지하기 좋아하는 사람 옆에서 자면서 충돌을 피하는 방법은 인내하는 것이다. 스스로 억울함과 고통을 더 많이 감수하고 다른 사람을 더 많이 포용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내가 대법제자이고 그들은 모두 철없는 아이들이라고 생각하니 모든 것이 지나갔다.
내가 진정으로 자아와 사심을 내려놓았을 때, 상대방도 나의 선함을 느낄 수 있었고 그들은 나를 더욱 존중했다. A와 B는 나중에 모두 나와 아주 잘 지냈고, 특히 B는 속마음을 모두 나에게 털어놓으며 나를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친구로 여겼다. 이렇게 진상을 알리는 일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고 그들도 아주 쉽게 삼퇴했다.
30세 정도의 C는 경제 분쟁으로 들어왔다. 들어온 후 줄곧 가족이 면회를 오지 않아 그녀는 종종 혼자 몰래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녀에게 물질적인 도움(화장지와 간식)을 주는 것 외에도 때때로 내가 법에서 깨달은 이치로 그녀를 타일렀고, 이렇게 간접적으로 그녀에게 대법 진상도 알려주었다. 그녀는 내 말을 들으면 기분이 훨씬 좋아진다고 했다. 떠나기 전에 그녀는 일부러 나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과거에 파룬궁을 잘 몰랐고 중공 언론의 거짓말을 믿어 파룬궁에 대해 오해가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나와 접촉하면서 대법에 대해 완전히 새롭게 인식하게 됐다며 “당신에게서 저는 모두 긍정적인 에너지를 봤어요. 그래서 파룬궁이 바르다고 믿습니다”라고 말했다.
20~30세의 D는 외모, 차림새, 특징이 모두 매우 남자다웠고 동성애 경향이 있었다. 아마 의협심이 있고 시원시원한 성격 때문인지 인기가 좋고 사람들과 쉽게 소통했다. 나는 그녀와 개인적으로 몇 번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그녀의 장점인 낙관적이고 적극적이며 책임감 있는 면을 긍정했다. 이것들은 모두 비교적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였다. 하지만 거기에 여성의 부드러움과 담담한 마음가짐까지 겸비한다면 더욱 완벽할 것이다. 이어서 나는 그녀에게 전통문화의 이치를 이야기해주고, 완곡하게 현대의 관념과 행위는 변이되고 사람을 해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전통 이념을 지키는 사람은 신의 구원을 받을 수 있으니, 그녀가 아름다운 미래를 가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했다. 대화 중에 아주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삼퇴도 해주었다.
30대 초반의 E는 싸움 때문에 들어왔다. 처음 그녀와 마주했을 때 그녀의 호전적인 면을 톡톡히 경험했다. 그녀가 걸레질을 하다가 내 앞까지 와서 의미심장하게 “아줌마, 비켜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마’자를 아주 길게 늘였는데, 사실 그때 나는 이미 그녀에게 자리를 비켜준 상태였다. 나는 그 길게 늘인 소리에 비꼬는 의미가 담겨 있음을 느꼈다. 이것이 우연이 아니라 분명 내가 어디선가 잘못해서 이런 일이 생긴 것임을 알았다. 나는 문득 이전에 그녀와 비슷한 나이의 여자아이들과 대화할 때, 내가 거의 60세라는 것을 알고 모두 놀라며 한결같이 실제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중 한 명은 “도리상 ‘아주머니’라고 불러야 하는데, 그렇게 부르면 왠지 늙게 만드는 것 같아서 그냥 언니라고 부를게요”라고 했다. 당시 나는 무심코 “좋아, 뭐라고 불러도 상관없어”라고 했다.
그날 대화할 때 E도 옆에 있었는데, 그녀는 나중에 온 터라 끼어들지 않았다. 이 순간 나는 갑자기 내게 허영심, 과시심, 듣기 좋은 말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잘못을 인정하고 앞으로 이런 좋지 않은 마음들을 수련해 제거하겠다고 했다. 그 후 E와 접촉할 때도 나는 여전히 떳떳하고 대범했으며, 만나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식사 시간에 그녀가 내 자리와 가까이 있어서 맛있는 것이 있으면 그녀와 나누는 것도 생각했고, E는 나의 선의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어느 날 그녀가 먼저 내 옆에 앉아 “아주머니는 정말 좋은 분이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나도 잘못할 때가 있고 때로는 스스로 깨닫지 못할 때도 있어. 하지만 내가 어디서 잘못했는지 깨닫기만 하면 나는 스스로를 고치기 위해 노력할 거야”라고 말했다. E는 떠나기 전에 아껴둔 간식을 특별히 내게 남겨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 전에 나는 이미 그녀에게 삼퇴를 해주었다.
40대의 F는 의사로 매우 예뻤지만 약간 고고하고 오만했다. 밤에 잠자리 다툼 때문에 여러 사람과 다퉜고, 모두들 그녀를 의도적으로 고립시켰다(주로 관리하는 사람이 그녀를 못마땅해했다). 그녀는 경제 사건으로 들어왔는데, 원래 사건의 압박도 컸는데다 모두의 적의까지 더해져 정신적 압박이 매우 커서 거의 정신 붕괴 직전까지 갔고 종종 혼자 눈물을 흘렸다. 나는 기회를 찾아 그녀를 위로하며 모든 것이 지나갈 거라고 말해주었다. 쉬는 시간이 되면 그녀는 내 곁으로 와서 “거의 견딜 수 없을 지경이었는데, 당신 곁에만 오면 온몸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껴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대법 진상을 알려주고 자주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마음속으로 외우면 몸과 마음, 처지가 모두 좋아질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나중에 그녀는 처분보류로 집에 돌아갔다.
20대 여성 G는 마약 판매로, 30대 대졸 여성 H는 ‘매춘 조직을 결성해 이익을 취한’ 이유로 들어왔다.
처음 그들의 상황을 알았을 때, 나는 속으로 젊은이들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데 왜 이런 나쁜 일에 종사하는지 의아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중공 체제의 공산당 당문화, 무신론, 진화론, 금전 지상주의, 이익 지상주의의 현대 관념 사회에서 도덕 기준이 전면적으로 무너졌고, 많은 사람이 시비와 선악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판단력을 상실했다. 특히 젊은 세대 중에 진정으로 사람됨의 참된 이치를 알고 이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오직 이익만을 추구하고 금전과 욕망을 위해 사람으로서 가장 소중한 것을 서슴없이 팔아버린다. 슬픈 것은 그들이 이렇게 할 때 이것이 얼마나 나쁜지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피해자였다. 이렇게 생각하니 나는 그들에 대한 차별심이 없어졌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더욱 선하게 대해야겠다고 느꼈다. 대법제자로서 나는 법에서 수련해 낸 지혜와 선념으로 그들을 일깨울 책임이 있었다. 나는 먼저 그들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대화를 통해 그들의 본질이 나쁘지 않고 선한 면도 있음을 느꼈다. 그래서 그들의 선념을 일깨우고 자주 전통문화의 사람됨의 이치를 이야기해주며 인과응보와 윤회를 설명했다. 사람이 좋은 일을 하면 더욱 고상한 사람이 되고 내세에 복을 받게 되지만, 나쁜 일을 하면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했다.
나는 그들이 한 일이 남을 해치고 자신도 해친다고 직언했다. 겉보기에는 금전적 이익을 얻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인 덕(德)을 잃었다고 했다. 덕은 사람이 가장 소중히 여기고 아껴야 할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덕은 건강, 재물, 행복, 평안으로 바꿀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이야기하니 그들이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그들은 모두 매우 진지하게 들었으며, 과거에는 아무도 이런 이치를 들려준 적이 없어서 매우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H는 이것이 맞다고 믿으며, 만약 일찍이 이런 이치를 알았다면 절대 그런 일들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자신의 과거 행위에 대해 부끄럽고 후회스럽다고 했다. 떠날 때 진심으로 “아주머니, 감사합니다! 아주머니의 말씀을 기억하겠습니다. 앞으로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G는 진심으로 “아주머니, 더 일찍 만났더라면 좋았을 텐데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매일 마음속으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운다고 했고, 나가서도 파룬궁을 배우고 수련하고 싶다고 했다.
40대의 Y는 석사 학위를 갖고 있었고 많은 나라를 다녀왔다. 그녀는 말재주가 뛰어났는데, 들어온 첫날 휴식 시간에 세계 각지의 풍토와 인정, 자신의 견문을 이야기하자 주변 사람들이 모두 귀 기울여 들었다. 그녀의 말은 재치 있고 유머러스하며 생생했다. 나는 그녀와 대화를 나누며 “당신 이야기를 듣는 것이 TV를 보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네요. 요즘 언론 보도는 거품이 너무 많거든요”라고 칭찬했다.
그때는 마침 중공 바이러스(우한 폐렴) 유행 기간이었고, TV에서는 매일 미국을 조롱하는 내용이 나왔다. 그녀는 막 미국에서 돌아온 터라 나는 “미국의 현 상황이 CCTV에서 선전하는 것과 같나요?”라고 물었다. 그녀는 웃으며 “미국의 현 상황은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쇼핑하고 외출하며, 전혀 불경기나 공황감을 찾아볼 수 없어요”라고 말했다. 그녀의 말은 주변 사람들을 매우 놀라게 했다. 나는 그녀의 솔직하고 직설적인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분명히 그녀는 중공의 허위 선전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미국의 치안 상황, 국민 자질, 의료 상황 등 몇 가지 질문을 더 했고, 그녀는 모두 하나하나 객관적으로 대답했다. 잠시 대화를 나눈 후 나는 “해외에서 파룬궁을 본 적 있죠?”라고 물었다. 그녀는 “봤어요”라고 답했다. “파룬궁에 대해 알고 있나요?”라고 묻자 그녀는 “이 화제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요”라고 했다. 나는 그녀가 방금 전의 편안함과 열정을 잃고 내 시선을 피하는 것을 분명히 느꼈다. 이런 전후의 차이가 나를 약간 의외로 느끼게 했다.
그 후 며칠 동안 그녀는 의도적으로 나를 피했다. 나는 그녀가 해외에 나갈 기회가 있어 중공의 해외에 대한 허위 선전은 꿰뚫어봤지만, 파룬따파에 대해서는 분명 잘 모르고 심지어 약간 거부감까지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녀가 진상을 알도록 할 책임이 있었지만 성급해서는 안 됐다. 조급하게 굴면 오히려 그녀의 반감만 일으킬 뿐이니 적절한 기회를 기다려야 했다.
며칠이 더 지난 어느 날 저녁 휴식 시간에 그녀가 내 맞은편에 앉았다. 우리 시선이 마주쳤을 때 내가 웃었고 그녀도 웃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몇 마디 인사를 나눈 후, 나는 그녀 옆에 앉아 완곡하게 물었다. “그날 제가 말을 잘못했나요? 아니면 다른 어떤 이유로 불편하셨나요?” 그녀는 회피하지 않고 솔직하게 “저는 파룬궁에 대한 인식이 줄곧 부정적이었어요. 해외에서 파룬궁을 봐도 늘 피하고 멀리했죠”라고 말했다.
이 며칠 동안 관찰을 통해 그녀는 내가 비이성적인 사람 같지 않다고 느꼈다. 나는 그녀에게 파룬궁이 무엇인지,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중공이 왜 파룬궁을 박해하는지 설명해주었고, 그녀는 매우 진지하게 들었다. 며칠 연속 휴식 시간에 그녀는 먼저 와서 내가 들려주는 파룬궁 진상을 들었고, 완전히 이해한 후 삼퇴를 했다.
한 수련생이 재소자들에게 모욕을 당했을 때, 내가 나서서 제지하고 경찰에 신고하자 Y는 몰래 나를 격려하고 지지해주었다. 그녀는 나와 수련생이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조용히 우리를 위해 그녀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주었다. 나는 이 생명을 위해 기뻤다. 그녀 생명의 명백한 일면이 자신을 주도하게 됐고, 어둠 속에서 광명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원문발표: 2025년 8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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