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2014년 말에 대법을 얻었습니다. 1년 후, 법공부를 깊이 하면서 사부님의 일깨움을 받아 정법 수련에 투입하기로 결심하고 대법제자가 해야 할 세 가지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후 캐논 컬러 잉크젯 프린터 한 대를 구입해 진상자료를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명혜망에서 진상전단 몇 개를 다운받아 10여 장을 인쇄했습니다. 눈 내리는 어느 날 아침, 근처 길에 세워진 일부 승용차 앞유리에 전단을 놓았는데, 당시 마음이 조금 긴장됐습니다. 그 후 명혜망의 각종 진상자료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전단과 스티커를 만들다가 나중에는 소책자도 만들 수 있게 됐습니다. 제작 품질을 높이기 위해 명혜망 수련생 교류문을 참고해 아트지로 표지를 만들고 투명 비닐 지퍼백으로 포장하니 효과가 좋았습니다. 때로는 예쁜 작은 비닐봉지를 구입해 소책자를 넣어 대문에 걸기 편하게 했습니다. 얼마 후 탁상용 달력 제본기를 구입해 달력 만들기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사부님의 가지 하에 명혜망 천지행 포럼의 수련생 글을 학습해 달력 제작 기술을 빠르게 익혔고, 달력용 철고리와 달력받침대 등 각종 소모품을 구매했습니다.
당시 저는 혼자 수련하는 상태여서 진상자료 제작과 배포를 모두 혼자 했습니다. 당시 저와 아내(속인) 모두 직장인이었고 집에는 아이도 둘 있었으며, 장모님 건강이 좋지 않아 아내가 시간을 내어 돌봐야 했습니다. 당시 아내는 정념이 있어 제가 자료 만드는 일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저는 외지에서 일했기 때문에 매주 두 곳을 오가며 바쁘게 지냈습니다. 집에서 쉬는 기간에는 주로 진상자료를 제작하고 시간을 내어 현지에서 일부를 배포했습니다. 출근할 때는 자료를 외지로 가져가 배포했습니다.
자료 배포 역시 심성을 높이는 과정이었습니다. 저는 진상 말하기를 잘하지 못해 사람을 만나 대면으로 배포할 때 그냥 건네주며 “평안하기를 빕니다, 진상을 알아보세요”라고만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순조롭게 받았고, 어떤 사람은 거부했으며, 어떤 사람은 파룬궁 내용이라는 걸 보고 무서워하며 바닥에 던지고 가버렸는데, 저는 주워서 계속 배포했습니다. 한번은 어떤 수련생을 만나 몇 마디 나누었는데, 그가 제게 아직 남은 게 있는 걸 보고 모두 가져가며 도와서 배포하겠다고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제 심성은 아직 제자리에 있지 못했고, 두려운 마음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지만 갓 태어난 송아지가 호랑이를 무서워하지 않듯 하고 있었습니다.
한번은 점심시간에 진상자료가 든 배낭을 메고 자료를 배포하는데, 걷다 보니 분위기가 좀 이상했습니다. 도처에 사복경찰이 있었습니다. 저는 태연하게 한 식당에 들어가 음식을 주문해 먹었는데, 식당에서 텔레비전을 틀어놨더니 그날 중공 악당이 19차 1중전회를 열고 있었는데 회의장소가 바로 근처였습니다. 당시 저는 사악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제가 깨달은 바로는, 만약 사부님의 가지와 보호가 없었다면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제가 법공부를 탄탄히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하려는 마음이 갈수록 강해져서 자료 배포를 수련으로 여기고 심성 닦기를 소홀히 했으며, 자신의 안전도 소홀히 해서 자료를 배포할 때 모두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지니고 다녔습니다. 얼마 후 제가 진상 탁상용 달력을 배포할 때 진상을 모르는 사람의 신고를 받고 파출소 경찰이 갑자기 제 앞에 나타났습니다. 당시 제 첫 번째 생각은 ‘시험이 왔으니 잘해야겠다!’였습니다. 첫 번째 생각이 옳았기 때문에 사부님의 보호 하에 건강검진 때 가상이 나타나 이튿날 경찰이 직장 사람에게 연락해 저를 데려가게 했습니다.
아내가 이로 인해 매우 큰 압박을 받아 집에 있던 프린터 등 자료 제작 설비를 모두 밖으로 옮겨 한 수련생에게 맡겼습니다. 저희 집 이 작은 꽃은 개화를 멈췄습니다. 이렇게 멈춘 것이 2년이었습니다.
이후 역병이 발생했습니다. 제가 깨달은 바로는 중생을 구원하는 것이 대법제자의 책임이므로 의기소침해서는 안 되고 시간을 아껴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근무하는 곳에서 다시 작은 꽃을 피웠는데, 주로 전단과 《평안을 빕니다》, 《역병 주보》 등을 인쇄했습니다. 역병 때문에 두 곳이 번갈아 봉쇄되어 오랫동안 집에 돌아갈 수 없었는데, 저는 낮 한가한 시간을 이용해 자료를 인쇄하고 밤에 나가서 집집마다 배포했습니다. 한번은 몸에 소업 상태가 나타나 걸을 때도 절뚝거렸는데, 저는 이를 향상의 기회로 여기고 계속 나가서 배포했으며 이를 악물고 한 층 한 층 계단을 올라갔습니다. 며칠이 지났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언제인지 모르게 병업 가상이 사라졌습니다.
1년 후 비바람이 다시 닥쳤습니다. 진상을 모르는 사람의 신고로 중공 인터넷 경찰이 비디오와 빅데이터를 통해 저를 찾아내 제가 진상을 배포하는 영상을 찍어 직장에서 저를 납치해갔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한 가지 생각을 유지했습니다. ‘사부님이 배치하신 길만 걷겠다.’ 계속 발정념을 했습니다. 자비하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다시 한번 이 못난 제자를 보호해주셨습니다. 건강검진 때 다시 가상이 나타나 구치소에서 받아주지 않아 그날 밤 직장에서 사람이 와서 저를 데려갔습니다. 하지만 진상자료를 제작하던 프린터를 경찰이 압수해가서 이 작은 꽃은 다시 일을 멈췄습니다.
현지 중공 경찰이 제 직장에 압력을 가해 저를 집 근처로 근무지를 옮기도록 했습니다. 얼마 후 저는 집 근처의 다른 직장에서 일하게 됐는데, 이전보다 업무환경이 상대적으로 편안했고 두 곳을 오가는 실제 어려움이 끝났으며 대우도 좋았습니다. 제가 깨달은 바로는 이것이 사부님의 자비로운 안배라는 것이며, 제자는 오직 감사할 뿐입니다.
아내가 두 번이나 놀란 나머지 비록 제가 집에서 법공부하고 연공하는 것은 간섭하지는 않았지만, 제가 진상자료를 제작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었고 저는 이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멈춘 것이 3년이었는데, 기간 중에 아내가 집에 없을 때 일부 자료를 만들기는 했지만 항상 길을 바르게 걷지 못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정법 형세가 추진되면서 사악이 갈수록 깨끗이 제거되고 있습니다. 제가 깨달은 바로는 진상자료의 작용을 절대 소홀히 해서는 안 되고, 사람마다 구원받기를 기다리고 있으므로 제 이 작은 꽃이 반드시 다시 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때 제 머릿속에 ‘안정’이라는 글자가 나타났습니다. 저는 반드시 이 길을 바르고 안정적으로 걸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설비를 구입하고 새로운 환경을 충분히 이용해 계속해서 한 부 한 부 정교한 자료를 제작해 안정적으로 배포했습니다. 동시에 정념을 강화해 가능한 한 임무를 완성하려는 속인의 마음을 갖지 않고 순정하고 장엄하며 자비로운 상태를 유지하면서 매 자료와 매 소모품을 정성스럽게 대했습니다. 자료를 배포할 때 정념을 유지하고 되도록 전자설비를 휴대하지 않으며 지혜롭고 안정적으로 대법제자가 해야 할 바른 일을 했습니다.
사부님의 가지 하에, 수련생 교류문장의 격려 하에 이것이 제 첫 번째 투고입니다. 수련생 여러분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5년 5월 2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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