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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마음으로 자료를 배포해 사람을 구하다

글/ 헤이룽장성 대법제자 흔연(欣緣)

[명혜망] 2020년 우한 전염병이 발발한 이후, 중공 악당이 취한 극단적인 봉쇄조치로 인해 대법제자들의 활동에도 일정한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특히 2022년에는 본 지역이 한 달 넘게 전체 도시 봉쇄를 겪은 뒤 봉쇄가 풀리자마자 또다시 봉쇄됐습니다. 저는 이렇게 수동적으로 집에 갇혀 봉쇄가 풀리기만 기다릴 수는 없다고 깨달았습니다. 아직도 그렇게 많은 진상을 모르는 사람들이 위기 속에 처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파트 단지 밖으로 나갈 수 없고 이웃들끼리 만나도 대부분 급히 서로 피한다. 그냥 아파트 단지 안에서 자료를 배포해 사람을 구하자.’ 10여 년 전부터 우리집은 작은 진상자료 제작 거점이었습니다. 전에는 제가 자료를 만들면 수련생들이 가서 배포했고, 가끔 시간이 될 때 저도 나가서 배포했습니다. 작년에 제가 은퇴하면서 아파트 단지 내에서 더 많은 시간을 내어 진상자료를 인쇄해 배포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 후로 저는 매일 아래층으로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갈 때마다 주변을 자세히 관찰하며 어느 동의 문 잠금장치가 고장 나서 들어갈 기회가 있는지 기억해 두었습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는 완전 폐쇄형 단지라서 정문과 각 동 현관문을 드나들려면 모두 출입 카드가 필요했습니다. 우선 자신의 관념과 두려움부터 돌파해야 했습니다. 저는 먼저 제가 사는 동에 한 차례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배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긴장해 심장이 쿵쾅거리고 있었습니다.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는 제가 사람들을 구하려는 마음이 있음을 보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명혜망에서 한 수련생이 쓴 폐쇄된 고층 아파트 단지 내에서 진상자료를 배포해 사람을 구하는 교류 글을 보게 해주셨습니다. 그 글을 보고 엄청난 격려를 받았습니다. 수련생의 경험을 참고하고 우리 아파트의 실제 상황에 비추어 점차 가능한 방식을 모색해 나갔습니다.

그 시기는 관리사무소의 관리비 납부 기간이었는데 봉쇄로 인해 주민들은 제때 납부하지 못했고, 매일 아파트 내 모든 주민이 반드시 아래층으로 내려와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아파트 내 많은 동의 현관문 출입 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관리사무소에서는 어쩔 수 없이 현관문 잠금장치를 모두 열어 두었습니다. 그 며칠 동안 저는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역시 한 사람의 힘으로는 너무 제한적이라서 밤에 자료를 인쇄하고 낮에 배포해도 겨우 몇 개 동밖에 배포하지 못했습니다. 봉쇄가 풀리고 나서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갔을 때 저는 아파트 전체에 진상자료를 빠짐없이 배포하지 못한 것이 매우 아쉬웠습니다.

그 후에 아파트 내의 한 수련생도 함께하게 됐습니다. 그 이후로 저희는 함께 주변 고층 아파트 단지로 가서 자료를 배포해 사람을 구했습니다. 저희는 보통 청소부가 청소하는 시간, 주민들이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는 시간, 출퇴근 시간을 피해서 배포 시간을 정했습니다. 저희 둘 다 이미 은퇴했고 나이도 50대였기에 보통은 낮 시간을 택했습니다.

현재 자료를 배포하는 것과 99년 ‘7·20’ 박해 이후 자료를 배포하는 것의 가장 큰 차이점은, 도시와 농촌 곳곳에 악당이 설치한 감시카메라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부님께서 감시카메라에 대해 말씀하신 법을 생각해 보면, 1,000대 중 500대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절반은 우리가 법에서 수련해 낸 정념으로 사악이 중생 제도를 교란하려는 모든 배치를 깨끗이 제거하고 해체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래서 저희는 집을 나서기 전에 반드시 정념을 발해 감시카메라가 대법제자에게 작용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일부 필요한 조치는 취해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 단기간 내에 같은 아파트에서 반복해서 배포하지 않는다든가, 의상과 모자 등을 자주 바꾸는 등입니다. 엘리베이터 내부의 감시카메라를 피하기 위해 저희는 보통 걸어서 가장 높은 층까지 올라갔는데, 그 과정에서 줄곧 발정념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대법제자는 창세주께서 당신들을 구원하라고 파견한 것이니, 지금 모두 밖으로 나오지도, 안으로 들어오지도 말고 대법제자가 자료 배포를 끝낼 때까지 기다리라.’ 동시에 중생 제도를 교란하는 사악한 생명과 요소를 깨끗이 제거하고 해체해, 진상자료를 본 모든 중생들의 명백한 일면이 모두 선념을 일으키고 진상자료를 소중히 여기며 자세히 읽어 자신과 가족을 위해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하게 했습니다. 그런 다음 문틈으로 한 집씩 배포했습니다.

저희의 마음이 바를 때에는 엘리베이터가 정말로 거기에 고정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가끔 마음이 불안정할 때는 두 대의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리며 교차하기도 했습니다. 보통 저는 즉시 자신의 마음가짐을 조정하고 사부님의 《홍음 6》 중의 시구를 암송하며, 중생을 구원하러 왔음을 자신에게 상기시켰습니다. 고층에서 자료를 배포할 때는 엘리베이터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그래야만 최대한 사람들과 정면으로 마주치는 것을 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엘리베이터를 사용하지 않으면 왜 굳이 계단으로 오르냐며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기고 저희를 유심히 살필 수 있습니다. 저희도 실제로 그런 적이 있었지만 사부님의 보호 덕분에 무사히 넘어갔습니다. 보통 저희가 자료 배포를 끝내고 떠난 후에는 진상을 모르는 중생들이 죄업을 짓지 않도록 정념으로 진상자료를 가지(加持)해 인연 있는 사람은 보이게 하고 사악한 사람은 보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저는 수련생과 함께 겨울부터 봄과 여름을 지나 가을을 맞이했습니다. 그 기간 주변의 많은 아파트에 저희의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저희 자신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지만 10층, 20층도 훌쩍 넘는 계단을 오를 수 있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피곤한 기분이 들지 않고 오히려 매우 가벼웠습니다. 사부님께서 항상 저희 곁에 계시며 저희를 보호하고 가지해주고 계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또한 대면하고 진상을 알리며 삼퇴(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권유해보기도 했지만 안타깝게도 효과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계속 자신을 돌파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는 반드시 노력해 다양한 방식을 융통성 있게 활용해 사람을 구할 것입니다. 몇 년 전 택시를 탔을 때 기사에게 진상을 알렸더니 그 기사가 이렇게 말했던 게 기억납니다. “당신은 제게 이 일을 말해준 세 번째 사람입니다. 그럼 탈퇴하겠습니다!” 여기에서 수련생들이 기초를 다지는 것도 매우 중요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저희가 하는 이런 일들은 바로 기초를 다지는 것일 수 있습니다!

작년 4, 5월경 집에 있던 남편이 갑자기 사장의 부름을 받고 출근하게 됐습니다. 그것도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였습니다. 남편이 집에 있을 때는 빨래만 하고 방 정리만 하면 그 외의 시간은 제가 알아서 배치했습니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서는 집안일을 모두 저 혼자 해야 했습니다. 바닥 닦기, 밥하기, 특히 밥하기는 저의 약점이었습니다. 매주 밖에 나가 배포할 자료도 만들어야 했습니다. 조금만 방심하면 인쇄 시 불량품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 시기에는 매일 프린터 옆을 지키며 마음속으로는 씁쓸했고 불평불만도 생겼지만, 그 후 자료 배포 일에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한번은 이주민들이 사는 5가구씩 배치된 고층 아파트였고, 또 한번은 20층이 넘는 고층 아파트였습니다. 저희가 계단을 올라갔을 때 가져온 자료가 모자라는 것을 보고, 저는 제가 잘못했고 해이해져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즉시 자신의 상태를 조정했습니다. 수련생의 어머니(역시 수련생)는 줄곧 자료를 만들어 주변의 수련생들에게 공급해줬는데, 이때 갑자기 그쪽에서 더는 자료가 필요하지 않아 저희 쪽의 자료 부족 문제가 해결됐습니다. 그리고 저는 더 이상 집에 있는 남편과 딸에게 저처럼 식사를 간단한 채식으로 때우게 하지 않고, 매일 되도록 정성껏 식사를 준비하려고 합니다. 수련인은 어디에 있든 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소모품을 구매할 때는 보통 좋은 종이를 선택하고 거기에 좋은 아트지로 표지를 만들어 인쇄하면 아주 정갈한 자료가 나옵니다. 인쇄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흠집이나 얼룩이 발견되면 절대 대충 넘어가지 않고 반드시 다시 만듭니다. 제본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본이 반듯하지 않으면 뜯어내 다시 묶습니다. 그런 다음 자료를 크기에 맞는 지퍼백에 넣고 공기를 빼내 밀봉한 후, 깔끔하게 잘라낸 마스킹 테이프로 붙여 비치해 둡니다. 붙일 때는 최대한 책자 제목을 가리지 않도록 하는데, 그래야 보기에 좋고 사람들도 더욱 소중히 여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배포 시에는 가능한 한 자료를 세인들의 춘련(春聯)이나 복(福) 글자에 붙이지 않도록 해서 세인들의 반감을 사지 않도록 합니다. 과정 전체가 그렇게 복잡하지는 않지만, 각 공정마다 정성을 다해 꼼꼼히 완성합니다. 우리에게는 사부님의 션윈(神韻)이 모범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전에 진상자료를 제작할 때는 만물에 모두 영(靈)이 있다는 이치는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최대한 빨리 수련생들의 수요를 채워주는 데 초점을 맞추곤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특히 인쇄 시간을 제가 매일 법을 암기하는 시간과 맞추고 있는데, 어느 날 놀랍게도 프린터가 오랫동안 전혀 고장 나지 않았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심지어 잉크를 몇 번 추가했는데도 프린트헤드를 청소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가끔 제가 법을 암기해야 할 시간에 다른 일로 바빴던 적이 있는데, 프린터가 멈추며 저에게 알려주었고, 저는 그제야 깨닫고 즉시 자신을 바로잡았더니 프린터는 다시 신나게 작동했습니다.

수련생과의 협력 과정에서 심성 면에서의 마찰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저는 성격이 외향적이라 할 말이 있으면 바로 내뱉는 반면, 수련생은 성격이 내성적이라 쉽게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제가 컴퓨터를 수리하러 가야 했고 수련생은 소모품을 사려 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택시를 타는 게 좋을 것 같았는데 수련생은 버스를 타자고 했습니다. 결국 저희는 택시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수련생은 다른 일 때문에 가겠다며 먼저 가버렸습니다. 저는 컴퓨터 본체를 안고 있었는데 수련생이 왜 삐친 얼굴로 갔는지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내가 택시비를 내줘서 내 덕을 본 셈인데 뭘 그렇게 화를 내는 거야? 고맙다고 할 것까진 없어도 이러는 건 아니지 않나?’ 주말에 팀 수련생들과 함께 법공부를 하면서 이 일을 꺼냈습니다. 어떤 수련생은 제가 돈을 너무 펑펑 쓴다고 했고, 또 어떤 수련생은 제게 화를 낸 수련생이 역지사지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제 손에 컴퓨터를 들고 있으니 택시를 탄 것도 잘못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저는 제게 틀림없이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지만 근원은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어느 날 《전법륜(轉法輪)》을 암기하다가 홀연히 깨달았습니다. 알고 보니 이 일에서 저는 계속 사람의 이치만 따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부님께서는 모든 기회를 이용해 제가 법에서 하루빨리 제고하고 집착심을 없애도록 하셨는데, 저는 도리어 여기에서 제고하지 못하고 계속 사람의 이치만 따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팀 수련생들은 작년 8월부터 법을 암기하기 시작한 후 착실한 수련[實修]에서 정도는 다르지만 모두 제고했습니다. 저는 법을 외울수록 자신이 수련의 길에서 그저 초등학생일 뿐이라는 걸 느낍니다. 특히 우리 이 세대는 공산당 문화의 주입 속에서 성장해 거만하고 교만하며 겸손함을 모르고 남을 얕잡아 보는 등 문제가 있는데, 진정으로 공을 들이지 않고서야 어떻게 서약을 이행하고 사명을 완수해 진정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진심으로 수련생들이 모두 앞으로 나와 각자 최선을 다해 더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를 희망합니다.

 

원문발표: 2024년 4월 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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