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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법제자가 공항에서 진상을 알린 경험

글/ 한국 대법제자(본인 구술, 중국 제자 번역 및 정리)

[명혜망] 나는 한국 대법제자다. 최근 몇 년간 ‘한류’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는 동시에 한국 경제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중국인을 비롯해 점점 더 많은 외국인이 한국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면서 관광객은 물밀듯이 한국에 몰려왔다.

서울, 인천, 부산, 강원도, 경상도, 제주도 등 지역 공항, 항구, 관광지, 쇼핑센터에서 중국인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내가 사는 곳에서도 아주 많은 중국인, 유학생, 아르바이트생을 볼 수 있었고, 그중에서 중국인 관광객이 가장 많았다.

대법제자로서 나는 이토록 많은 중국인을 만나는 기회를 소중히 여겼다.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것도 내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책임이라고 느꼈다. 우리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공항이 있었는데 수년간 이곳으로 오는 중국인 관광객 수가 점차 늘어나 지금은 하루에 1천여 명이나 된다. 나는 이미 이곳에서 3년 넘게 진상을 알려왔으며 또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터득했던 부분을 여러분과 나누려 한다.

중국인의 좋은 변화

오랫동안 나는 우리집 주변에 거주하는 중국인에게 진상을 알렸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더 많은 중국인에게 진상을 알리고 싶어졌다. 그러자 우리집에서 한 시간 운전하면 도착하는 공항에 많은 중국인이 다닌다는 정보를 얻었다.

공항에 처음부터 중국인이 많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공항에는 중국인이 꽉 차 있을 정도로 많아졌다. 그들은 보통 착륙해서 대형 버스를 타고 떠나는 부류와, 경유로 인해 공항에 잠깐 머무는 두 부류로 나뉜다. 우리는 중국인 관광객이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그들에게 파룬궁 진상 전단지를 배포했다. 가장 큰 문제점은 가끔씩 가이드가 전단지를 받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적지 않은 가이드도 점차 변해갔다. 그들은 파룬궁에 관해 질문도 하고 우리에게 힘들지 않은지 안부도 전했으며, 천천히 진상자료를 배포할 때 가로막지 않았다.

한국에 도착한 중국인보다 한국을 떠나는 중국인에게 진상을 더 오래 말할 수 있었다. 그들은 항상 몇 시간 미리 공항에 도착해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들이 앉아서 기다리는 시간을 이용해 전단지를 배포했다. 당연히 잘 받는 사람도 있었고 받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받지 않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나는 마음이 안타까웠다. 나는 한국인이어서 중국어를 못하는데 어떻게 해야 그들에게 진상을 알릴 수 있을지 고민됐다. 나는 중국인이 탑승 수속을 할 때 긴 줄을 서는 것을 보며 기회라고 생각했다. 나는 진상 내용을 담은 전시판을 머리 위로 높이 들어 중국인들에게 보여줬다. 지금은 전시판을 책처럼 펼쳐서 다양한 진상 내용을 볼 수 있게 제작했다.

처음부터 중국인들의 반응은 매우 강렬했다. 화를 내면서 전시판을 뺏으려고 날 넘어뜨리려는 사람, 내 앞에서 큰 목소리로 항의하는 사람, 진상 전단지를 찢는 사람, 내 앞에서 진상자료를 버리는 사람, 캐리어로 날 밀치는 사람, 심지어 뜨거운 물을 내 몸에 실수로 흘리는 척하는 사람, 날 조롱하는 사람, 무리 지어 나랑 싸우려 하는 사람 등, 수년간 나는 다양한 중국인들을 만났다.

처음에는 중국인들의 매우 강렬한 반응을 마주하고 나는 몹시 두렵고 걱정됐으며, 심지어 체면을 잃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신변에는 사부님 법신(法身)의 보우와 정법 신들의 도움이 있기에 견지할 수 있었다.

점차 중국인의 태도가 변해갔다. 나는 태도가 안 좋은 사람에게도 선하게 대했고, 이후 많은 중국인이 진상자료를 보기 시작했다. 전단지를 나눠주면서 나는 선한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보았고 진상자료를 거부하는 사람은 내 눈길을 피했다. 만약 과분한 행동을 하는 중국인이 나타나도 다른 중국인들이 그 사람을 제지하면서 진상자료를 더욱 열심히 읽었다.

앉아서 기다리는 중국인에게 진상자료를 주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중국인에게는 진상 전시판을 보여줬다. 점차 많은 중국인이 진상에 관심을 가졌고 진상자료를 받아 가면 한 시간씩 읽었으며 나에게 다양한 진상자료를 요구하기도 했다. 내가 진상 전시판을 들고 있을 때도 자세히 한쪽 면을 읽은 후에 다른 쪽 면을 보여달라고 요구하는 중국인도 있었다. 중국인 관광객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 탑승구로 올라갈 때면 나는 항상 멀리서 그들을 바라보며 인사했는데, 때로는 서로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했다. 우리는 언어가 서로 통하지 않았으나 선량한 중국인들과는 마음과 서로 통하는 것 같았다.

진상을 알리는 환경을 개선하다

공항에서 진상을 알릴 때 어려움이 많았다. 예를 들면 중국인 관광객이 떠난 후에 쓰레기가 버려져 있었는데, 공항 미화원은 우리가 배포한 전단지도 함께 버려져서 작업량이 늘어날까 봐 우리에게 반감을 품었다. 중국인 관광객이 떠난 후에 우리는 항상 전단지를 정리하는 동시에 버려진 쓰레기도 함께 치웠다. 처음에는 쓰레기를 치울 때 싫은 마음이 많았으나 점차 마음을 돌려세웠고, 미화원들도 우리의 노력에 마음을 열었다. 우리가 정말 바쁠 때면 미화원은 심지어 전단지를 정리해 우리에게 돌려주곤 했다.

중국인 관광객을 픽업하는 버스 기사님도 처음에는 우리가 전단지를 주는 것에 반감을 품었다. 왜냐하면 관광객들이 전단지를 버스에 버리고 내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기사님에게도 진상을 알렸고 동시에 최선을 다해 기사님을 도왔다. 또 버스에서 사용할 수 있는 쓰레기봉투도 준비했다. 따라서 우리의 관계도 점차 좋아졌다.

내가 처음 진상 전시판을 들자 공항 관리자가 날 제지했다. 어디에 문제가 발생하면 바로 진상을 말할 기회라고 생각한 나는 관리자에게 말했다. “지금 공산당이 중국에서 파룬궁수련자들을 박해해요. 심지어 생체 장기적출 같은 악행도 저지르고 있어요. 하지만 중국인은 공산당의 거짓 선전에 속아서 무고한 수련자들이 받는 박해를 보고도 못 본 척하고 심지어 비방까지 해요. 우리가 진실을 모르는 이런 중국인에게 진실을 알리지 말아야 할까요?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할 때도 대부분 독일 시민은 모르고 있었어요. 소문이 해외 여러 나라에 전해져도 다들 모른 척했죠.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이 폭발하면서 유대인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 포로들은 인체실험 대상자가 됐어요. 이러한 악행 앞에서 한국이 침묵한다면 도덕적인 문제가 있는 게 아니겠어요?”

공항 관리자는 내 말에 공감했고 앞으로 내가 진상을 알릴 때 더는 간섭하지 않겠다고 했다. 또 다른 관리자는 커피를 주거나 중국인 관광객이 두고 간 전단지를 정리해 돌려주며 날 격려했다. 그러나 오래 지나지 않아 공항 관리자는 다시 엄격하게 날 제지하기 시작했고, 여러 번 제지당한 나는 낙심했다. 그러나 내 머릿속에는 중국인 관광객이 진지하게 내가 들었던 전시판을 보며 고민하던 표정, 그들이 진상을 알고는 홀가분해하던 표정, 그들이 전시판을 본 후 자리로 돌아가 전단지를 자세히 보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던 그들이 앞으로 진상을 볼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니 그 순간 나는 중생을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묵묵히 사부님께 도와달라고 청을 올렸다. 마음을 바르게 먹으니 공항 관리자의 방해도 존재하지 않았다.

진상 알리기 시작했을 때 가족에게서 오는 어려움도 있었다. 내 남편은 수련하지 않는 일반인이기에 내가 하는 일을 처음에는 반대했다. 하지만 진심으로 중생을 구하려는 마음만 있다면 사부님께서 이 모든 것을 원만하게 해주실 것이다. 현재 남편은 반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끔씩 진상을 알리는 효과가 어떤지 묻기도 한다. 어린 딸도 내가 진상을 알리는 것을 매우 지지한다. 한번은 내가 딸과 시간을 보내려고 했는데 딸이 말했다. “엄마가 나랑 노는 건 정말 좋아요. 하지만 엄마가 사람을 구하러 공항에 못 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불안해요.” 딸의 말을 들은 나는 많이 감동했다. 내가 중생을 구하는 데 더욱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후기

공항에서 진상을 알린 지 3년이 됐다. 그간 아주 많은 중국인이 이곳에서 진상을 알았고, 공항에서 일하는 많은 한국인도 진상을 알게 됐다.

3년간, 내게는 수많은 심성 시험이 있었다. 불안함, 두려움, 원망, 분노, 억울함, 체면이 깎이는 고통 앞에서 나는 단단해졌다. 사부님께서 주신 중생을 구하는 기회에 매우 감사드린다. 나는 위덕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나 자신을 제고할 수 있었다. 공항에 오는 중국인이 나날이 많아지는 가운데 내 책임도 나날이 커져간다는 것을 느꼈다. 법 속에서 견지하며 걸어가는 것만이 가장 중요하다. 사부님의 도움으로 나는 더욱 잘 걸어갈 것이다.

 

원문발표: 2014년 8월 2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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