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차로 만릿길을 누비며 수행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스유위안(石友圓)

[밍후이왕] 나는 50세가 넘은 남성 교사로, 좀 늦게 법을 얻어 2011년에 비로소 대법 수련에 들어왔다. 비록 자신의 근기와 오성이 모두 좋지 않지만, 사부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셨기에 엎어지고 넘어지면서 점화를 통해 비로소 오늘날까지 정법 노정을 따라올 수 있었다. 내가 이 몇 해 동안 운전하면서 마음을 닦은 경험을 써내어 수련생들과 교류하고 사부님께 보고하고자 한다.

나는 2010년에 운전을 배웠는데, 운전하는 것은 걸음을 대체하고 편의를 위한 것으로 생각했고, 교통 규칙을 어기지 않고 차 사고가 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운전과 수련을 연결하지 않았기에 심성을 제고할 수 있는 일부 기회를 놓쳤다. 2013년에 기이한 차 꼬리물기 사고가 발생하면서 나는 다소 명백해졌다.

1. 스님이 꼬리를 물다

그날 퇴근하고 전처럼 운전해 집으로 돌아갔다. 사거리에서 신호등을 기다릴 때 갑자기 작은 차가 한번 진동했는데 차 뒤로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차에서 내려 한번 보니 뒤의 차가 꼬리 물기를 하다가 내 차를 박은 것이었다. 나는 급히 내 차를 살펴보았는데, 페인트가 벗겨지지도 않고 단지 회색 자국만 있었다. 차의 꼬리물기를 한 SUV 차량은 앞 범퍼 플라스틱이 부서졌다. 가장 인상에 남은 것은 기사가 스님이라는 것이었다. 대머리에 가사를 입고 있던 스님의 태도는 괜찮았고, 나에게 급히 사과했다. 우리 둘은 차를 길가로 이동시켜 어떻게 해결할지 상의했다. 나중에 우리 두 사람은 사적으로 해결하기로 했고, 스님은 나에게 200위안을 배상하고 갔다.

집에 돌아온 후에 수련인으로서 무슨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단지 스님이 차를 모는 것을 나는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 수련생에게 이 일을 말했는데, 어머니는 돈을 받지 말아야 했고 자신을 연공인으로 여기지 않았다고 비평했다. 어머니는 또 나를 일깨워주셨다. “스님의 차는 범퍼가 모두 부서졌고, 네 차는 페인트도 벗겨지지 않았는데 이는 사부님께서 너를 보호하신 것이 아니냐?” 생각해 보니 어머니의 말씀이 맞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헤어졌고 이 돈도 돌려줄 수 없었다. 다음에 또 이런 일이 발생하면 나는 반드시 남에게 배상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몇 년 뒤에 이 일을 돌이켜보고 갑자기 사부님의 고달픈 마음을 알게 되었다. 수련인에게 이번 꼬리물기 극을 배치해주심은 제자에게 시시각각 자신을 연공인으로 여기라고 일깨워주신 것이 아닌가? 아이고, 제자가 아둔하여 사부님의 점화를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 후에 사부님께서는 연속 7, 8회 이런 꼬리물기 혹은 흠집 사고를 배치해주셨고, 이번 교훈이 있었기에 이후에 더 잘할 수 있었다. 내가 남의 차에 흠집을 냈으면 주동적으로 배상했고 남이 나의 차를 흠집 내면 나에게 돈을 주어도 받지 않았다. 또 상대방에게 진상을 알렸고 일부 사람들은 삼퇴(중국공산당 3대 조직인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를 했다. 아마도 그들은 진상을 들으려고 내게 온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2. 이익의 마음을 제거하다

속인 환경에서 오랫동안 머물렀기에 특히 도덕관념이 급속도로 내려간 중국에서, 많은 불량 행위에 대해 습관처럼 대했고 또 자신은 남보다 잘한다고 여겼다. 나는 회사에서 학기마다 통계 내는 일을 하는데 교재와 보조 자료를 숫자에 따라 현지 신화서점에 신고하고 배송을 요청한다. 교재 발행은 신화서점의 가장 중요한 이윤이기 때문에 각 학교에서 교재 발행에 참여하는 인원에 대해 예의를 지켜주었다. 학기마다 수고비라는 명목으로 몇백 위안의 돈을 주었고, 이것은 이미 관례가 되었다. 이날 서점 경리는 전처럼 사례비를 넣어주었는데, 500위안이 있었다. 나는 호주머니에 밀어 넣으면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대략 한 달이 넘어서 큰삼촌이 나에게 차를 몰고 시골에 와서 사람을 모셔가라고 요청했다. 주차 자리가 뒤 차량 통행을 방해하기에 옆 사람의 도움으로 나는 차를 한 폐허에 세웠다. 시야 때문에 차량 앞바퀴 가까이에 3, 40cm의 무너진 담벼락 잔해가 있던 것을 몰랐다. 그 후 인원이 다 모였고 내가 시동을 걸자, 내 작은 차는 단번에 두 바퀴가 허공에 떴다. 차에서 내려 검사하니 담 옆이 모두 긁혀서 휘어졌다. 허공에 뜬 차를 힘들게 내려놓았고, 차는 괜찮아서 달릴 수 있었다. 도시로 돌아와 수리한 후 결제하려고 보니, 520위안이 들었다.

나는 그 당시 머리가 “윙” 했다. 사부님, 제자가 잘못했습니다. 서점의 그 500위안은 받지 말아야 했다. 속인 중에서도 사례비를 받지 않는다는 사람이 있는데 하물며 나는 대법제자다. 사부님께서는 단지 나에게 20위안의 돈을 벌하셨고 나더러 기억하도록 하셨다.

나중에 안을 향해 찾아보니, 사부님께서 이런 방법으로 이익에 대한 마음을 제거해주신 것임을 깨달았다. 속인 중의 나는 명리(名利)를 모두 매우 중하게 보았는데, 마치 장모님이 형용하신 것처럼 “두 부부가 돈 몇 푼을 단단히 손에 잡고 있네”였다. 작은 이익을 위해 남과 다투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더욱 한심한 것은 자신이 여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은 도둑질하지 않고 빼앗지 않으며 탐오하지 않아서 남보다 낫다고 여긴 것이다. 사실 모두 미끄러져 내려온 속인의 이치로 가늠한 것이고 법으로 좋고 나쁨과 맞고 틀리고를 가늠하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연공인(煉功人)인데, 어찌 이런 것을 구할 수 있는가? 내가 이 부당한 재물을 얻음으로써 나는 그에게 얼마나 많은 德(더)를 주어야 하는가?”[1] 나는 이것이야말로 연공인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정념이라고 이해했다.

3. 생각이 바뀌니 길이 통하다

수련하기 전에 나는 성격이 급하고 쩍하면 화를 내는 사람이었다.(지금도 조금 있음) 차를 운전하면 앞으로 다투는 것을 좋아하고, 누가 만약 내 길을 막고 정상적인 운행을 교란하면 다급하게 경적을 울려 불만을 토로했다. 수련한 후 사부님께서는 속인의 입을 통해 나를 점화해주셨다. 나도 이렇게 운전하는 것은 수련인의 마땅히 있어야 할 상태가 아님을 인식했다. 그러나 개선된 것이 눈에 띄지 않았고 불편한 일이 생기면 여전히 마음이 괴롭고 급하며, 화가 나고 원망하며, 남을 탓하고 싫어하는 등 각종 불량한 정서가 모두 반영됐다.

외부환경에서 보면, 지금 중국에는 차가 많고 길이 좁아 규칙을 어기고 주차하면서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거기에 전반적인 도덕 수준의 하락으로 많은 행인과 기동차량, 비기동차량을 운전하는 사람들이 교통 규칙을 지키지 않아, 도시의 도로 교통 환경을 나쁘게 만들었다. 사고가 잦고 모순이 돌출됐으며 이에 따라 많은 운전자의 정서가 불안정하고 심지어 ‘도로 위의 분노 정서’가 생겼다.

안을 향해 찾으니 역시 자신의 심성이 제 위치에 도달하지 못해 자신을 수련인으로 여기지 못한 것이었다. 이 복잡한 환경을 이용하고 소중히 여겨서 자신을 제고하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는 노력해 개선하려고 했고 자신의 불량한 정서를 강제로 억제하려고 했다. 다소 개선이 있었지만 늘 반복됐고, 이런 불량한 정서의 뿌리를 찾아내지 못했다. 한번은 퇴근한 후 전처럼 운전해 집에 가는데 다리 입구 구간을 지나갈 때 차가 막혔다. 차가 막힌 것이 가로 세로로 뒤엉켜있었다. 얼마 안 가서 차가 막힌 줄의 끝은 보이지 않았고, 곧 불량한 정서가 올라왔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집에 가는가? 반 시간 내에 원활해지면 괜찮은 것이다. 재수 없다!’

갑자기 한 의념이 머리에 들어왔다. ‘당신은 어찌 자신만 생각하는가? 이렇게 많은 사람이 여기에 막혀서 집에 가지 못하는데 그들은 괴롭지 않은가?’ 나는 바로 일념을 내보냈다. 길에서 모든 운전하는 사람들이 제시간에 평안히 집에 돌아가기를 바란다고 기원했다. 이 일념이 나오자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막힌 핵심 구간의 차량이 치륜처럼 움직이기 시작했고, 1분도 안 되어 막힌 차량이 질서 있게 움직여 길이 열렸다!

나는 깨달았다. 전에 안을 향해 찾은 것은 단지 표면적인 것이고 깊이 파보지 않았다. 이런 불량한 정서의 뿌리는 사실 모두 ‘사(私)’라는 한 글자에 있었다. 그리고 이런 불량한 정서를 제거하기 위해 취한 노력은 여전히 나를 위한 기점이었다. 그러므로 이를 억제하는 효과는 여전히 그다지 좋지 않았다. 수련인의 관념은 ‘나를 위함’에서 ‘타인을 위함’으로 바뀔 때 환경은 잇달아 변화가 발생한다. 이는 아마도 “상유심생”[2]의 한 층의 내포일 것이다.

수련의 길은 평탄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 길은 사부님께서 매 한 명 대법제자에게 맞춰 직접 만들어주셨기 때문이다. 보기에는 평범한 한 가지 작은 일일지라도 수련의 요소가 들어있다. 오로지 시시각각 법으로 자신의 일언일행을 대조하고 정진하는 데에 게으르지 않아야, 비로소 사부님께서 배치해주신 길을 잘 걸어갈 수 있고 바르게 걸어갈 수 있다.

층차의 제한으로 법에 맞지 않는 부분은 자비롭게 시정해주시길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지설법10-따지웬(大紀元)회의 설법’

 

​원문발표: 2023년 6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3/6/21/62153.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3/6/21/6215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