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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법회] 옥토에 뿌리 박은 작은 꽃

글/ 랴오닝 대법제자

[밍후이왕]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작은 부정적인 사유와 정서가 대법을 실증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출력한 자료가 어떻게 중생을 구도하는 역할을 할 수 있겠나요? 저는 원천입니다. 반드시 엄격하게 요구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발췌–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1997년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을 수련해 지금까지 25년이 됐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살핌과 수련생들의 도움으로 심성은 한 걸음 한 걸음 승화됐고 속인 관념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특히 10년 이상 자료점을 하면서 저에게 존재하는 좋지 않은 물질을 많이 닦아 버렸고 깨달음과 수확도 컸습니다.

제19회 중국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를 계기로 제 심득을 적었습니다. 법에 어긋나는 부분이 있으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1. 두려운 마음을 버리고 작은 꽃을 피우다

우리 세 식구는 모두 수련합니다.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주로 수련생이 제공한 진상자료에 의존해 배포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자료점이 적었고 우리 지역의 많은 수련생은 박해로 의지할 곳을 잃고 떠돌아다니는 수련생의 임대주택에 의존해 자료를 만들었습니다. 일손은 적었지만, 수요는 많았습니다. 매번 여러 수련생의 손을 거쳐 저에게 보내온 자료를 저는 매우 소중히 여겼습니다. 전단, 소책자, CD든 잘 읽어 보고 포장해 배포했습니다.

몇 번인가 진상 소책자에 인쇄가 잘 안 된 곳이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시간이 길어지면서 이런 소책자를 적지 않게 모았습니다. 아마 수련생이 너무 바빠서 검사할 시간이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진상자료를 만들어 수련생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은 소망이 생겼습니다. 이런 생각을 주변 수련생에게 얘기했는데 다수가 모두 찬성했고, 특히 진상자료를 만드는 수련생이 매우 지지해줬습니다. 그녀의 도움으로 저는 집에 있는 겨우 몇천 위안밖에 없는 돈을 꺼내 그녀와 저의 딸(수련생)이 기계와 소모품을 사 오게 했습니다. 이렇게 2009년 말부터 우리 집 자료점의 작은 꽃 한 송이가 피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저는 법을 깊이 배우지 못했고 정념도 강하지 않았습니다. 사악한 박해 때문에 자료점이 훼손됐다는 말을 자주 듣기에 마음속에 두려운 물질이 자꾸 밖으로 뒤집혀 나왔습니다. 어느 날 밤 꿈을 꿨습니다. ‘6.10’ 사람이 전화를 걸어와 다음 날 오후에 집에서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부터 마음이 조마조마했던 저는 수련생을 보고 그들에게 발정념을 도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정오가 되어도 마음은 여전히 고요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남편(수련생)과 상의했습니다. “이 진상자료를 그래도 만들 수 있을까요? 만약 하고 있는데 그들이 오면 어떻게 하나요?” 저보다 늦게 법을 얻은 남편의 마음도 긴장한 나머지 일단 안 하고 기계를 잠시 숨겨놓자고 했습니다. 남편이 기계를 옮기려는 순간, 마치 무언가를 잃을 것 같아 옮기지 말라고 그를 급히 막았습니다. 오늘이 금요일이라는 것을 떠올리니 수련생들이 모두 ‘밍후이주간’을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났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한 저는 앉아서 발정념을 했습니다. 오후 4시에 가까워지는 데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법공부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때 마침 사부님의 새로운 설법 ‘따지웬(大紀元)회의 설법’이 막 발표됐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당신들이 어려움을 크게 볼수록 일은 더욱 어려워지는 것으로 상유심생(相由心生)이라, 그 일은 더욱 번거롭게 될 것이다. 상유심생은 또 이런 한 층의 뜻이 있는데, 당신이 그것을 높게 놓고 자신을 작게 놓았기 때문이다. 그 일을 별것 아닌 것으로 보고 사람을 구도하는 이처럼 큰일을, 당신들이 해야 할 바를 해야 한다. 마음속으로 좀 착실히 하고 무슨 그다지 마음에 내키지 않는 것과 그다지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마주치거나 듣게 되더라도 마음에 두지 말며, 정정당당하게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도록 하라. 사악의 교란을 받지 말고 그것에 이끌리지 말라. 그런 좋지 못한 요소가 자신에게서 생기지 않으면 사악은 보잘것없어지고, 당신들 자신은 높고 크며, 정념이 족해질 것이다. 정말로 모두 이러하다.”[1]

저는 마음이 탁 트이며 정념이 저절로 생겨나 즉시 자료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자신에게 겁을 주고 있었습니다. 저는 법만이 모든 잘못된 요소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몇 년 전 어느 날 밤, 아주 뚜렷한 꿈을 꿨습니다. 경찰 한 무리가 우리 집에 온 것을 문밖에서 제가 가로막았습니다. 한 경찰은 “그녀의 소책자에 ‘분신자살’ 내용이 있는지 보고, 있으면 잡아들여라.”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필사적으로 문을 막고 있어 그들은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다음날 딸과 어젯밤 꿈에 관해 얘기했는데 딸도 꿈을 꿨다고 했습니다. 꿈에서 자료를 만드는 컴퓨터 앞에 카메라 네 대가 마주 보고 있어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이 두 꿈은 분명 우리에게 어떤 위험이 생길지 점화한 것입니다.

이번에는 예전처럼 당황하지 않았으며 우선, 제가 잘못한 부분이 있는지, 또 어떤 사람 마음을 찾지 못했는지 찾아봤습니다. 저와 딸은 깨닫고 발정념을 하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온종일 다른 공간의 사악한 요소를 제거하고 우리 자료를 보호하기 위해 끊임없이 발정념을 했습니다. 두려워하는 요소가 없어지고 공간도 깨끗해졌지만 진정한 시련도 뒤따랐습니다.

어느 날 오전, 산책로를 걷고 있었는데 마침 한 남자가 길을 묻기에 그에게 알려줬습니다. 그때 그에게 진상을 알리고 싶어 삼퇴(중공의 3대 조직인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조직 탈퇴)에 대해 들어봤느냐고 묻자 그의 얼굴이 변하더니 “당신 파룬궁이네, 경찰에 신고할 거야!”라고 소리쳤습니다. 저는 “이러지 마세요, 당신을 위해서예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오토바이를 타고 갔고 저도 돌아서서 갔습니다. 몇 걸음 가지 않아 뒤를 돌아보니 그 사람이 경찰차에 있는 경찰에게 손으로 저를 가리키며 신고하고 있었습니다.

경찰차가 곧 제 앞으로 다가오자 6~7명의 경찰이 한꺼번에 저를 에워싸고 제 가방을 뒤지려 했습니다. 그때 마침 채소를 한 주머니 샀는데 그들은 보지 않고 바로 배낭을 뒤졌습니다. 뒤적거려 보니 진상 소책자 하나뿐이었고 뚱뚱한 젊은 경찰관이 옆 사람에게 건네줬습니다. 그가 저를 보고 있고 저도 그를 보고 있었는데 그의 얼굴은 결코 악한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거리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그때 뚱뚱한 경찰이 저를 보면서 부하들에게 “가자, 소책자 한 권뿐이잖아?”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모두 떠났고 구경꾼들도 흩어졌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 서서 두려움도 미움도 없이 그저 경찰들에게 진상을 알리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문득 깨달은 것은 자비로운 사부님께서 그 전에 일어날 이 장면을 깨우쳐 주셨기에 우리는 즉시 사악한 요소를 제거했고 난은 작아졌습니다. 그때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상태가 법의 요구에 부합했고 사부님께서 저를 도와 이 어려움을 해결해주신 것입니다. 사부님에 대한 감사를 제자는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진상자료를 만들 때부터 저는 사부님의 각지 설법을 체계적으로 배웠습니다. 2006년부터 법 암기를 늦추지 않았는데 그것이 수련을 잘하는 전제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속에 법이 있어야만 그 어떤 교란에 봉착했을 때 정념으로 매 한 걸음을 잘 걸어갈 수 있습니다.

2015년 장쩌민을 고소할 때였습니다. 장쩌민 집단이 저지른 엄청난 범죄로 10억 명이 거짓말에 속았다는 것을 생각하고 반드시 고소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저는 주저하지 않고 남편에게 고소장을 쓰라고 했습니다. 당시 남편은 자료점의 안전을 고려해 “장쩌민 고소는 실명으로 진짜 주소를 적어야 해요. 그들이 소란을 피울까 봐 두렵지 않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장쩌민 고소와 무슨 상관이 있어요?”라며 고민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저는 많은 사람 마음, 특히 생사의 일념을 단번에 내려놨습니다.

장쩌민을 고소하고 나서 경찰과 지역사회 사람들이 몇 번 왔는데 남편이 자료를 만드는 데 지장을 줄까 봐 가로막고 돌려보냈습니다. 어느 날, 막 법공부를 마치고 돌아왔는데 마침 남편이 경찰관을 배웅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웃으며 “다들 들어오세요, 무슨 일 있나요?”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그들을 빈방으로 안내했습니다. 지역 경찰은 저에게 “왜 장쩌민을 고소했나요?”라고 묻자 저는 말했습니다. “‘사건이 있으면 반드시 입건해야 하고 소송이 있으면 반드시 심리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장쩌민은 그렇게 많은 죄를 저질렀는데, 특히 대법을 수련하는 좋은 사람이 되려는 사람들을 박해하여 사회를 지금 이 정도로 어지럽혔습니다. 진작 고소했어야 합니다.”

지역 경찰은 또 고소장의 상황, 직장과 집 주소를 묻고 이어서 서명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서명할 수 없어요. 서명하면 당신들에게 좋지 않아요. 특히 정년퇴직을 앞둔 경찰관이 좋은 사람을 박해했다는 증거를 남기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경찰은 “그럼 뭐라고 써야 하나요. 서명 거부라고 적을까요?”라고 묻자 제가 말했습니다. “네, 서명 거부라고 쓰세요.” 그 후 경찰은 다시는 저를 찾지 않았습니다.

2. 수련생의 수요를 자기 책임으로 간주하다

자료점 설립 초기부터 저는 안전의 중요성을 깨닫고 수련생을 집으로 오게 할 수 없으니 제가 그들에게 자료를 보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진상자료가 필요했던 수련생이 적었고 모두 근처에 살았기에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정법노정이 추진됨에 따라 원래 나오지 않던 수련생이 다시 대법으로 돌아왔고 어떤 자료점은 수련생이 박해로 인해 자료 출처가 없어졌기에 협조인 수련생은 어쩔 수 없이 저에게 임무를 더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심성이 향상되지 않아 자료 수량이 너무 많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며 원망스러웠습니다. 급할수록 기계가 잘 작동하지 않았고 오류가 자주 발생했는데 기계를 수리하려면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때 안으로 찾아보니 분명 저에게 문제가 생긴 것이므로 계속 법공부를 잘하고 심성을 높이며 마음의 매듭을 풀어야 했습니다.

사부님의 법이 저를 일깨웠습니다. 안으로 찾아보니 무슨 일이 일어날 때마다 제 첫 번째 생각은 항상 사람의 생각이었습니다. ‘수련생이 날 찾은 건 우연일까? 내가 자료를 만들지 않으면 수련생이 무엇으로 사람을 구할까? 번거로움과 고생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버리고 모든 것을 다른 수련생의 수요에서 출발해야 해.’ 생각이 바뀌자 기계도 잘 고장 나지 않았고 출력된 진상자료 종류도 점점 더 많아졌으며 품질도 점점 더 좋아져 기본적으로 수련생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었습니다.

2007년, 저는 꿈에서 원래 직장의 한 수련생이 침대에 꼿꼿이 누워있는 것을 보았는데 마치 막 숨을 거두려는 것 같았습니다. 사부님께서 저에게 이 수련생이 매우 위험하니 찾아가라고 점화해주셨음을 깨달았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이 수련생을 만났습니다. 저는 꿈속 광경을 이야기했고 그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수년간 가정의 심성관을 겪고 있던 수련생은 법공부 팀도 없어 ‘밍후이주간’을 볼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후 그녀에게 필요한 자료를 제공해주겠다고 했습니다.

당시 그녀는 아직 아르바이트하고 있었기에 저는 매주 그녀와 역에서 만났는데 대부분은 퇴근 후 저녁이었습니다. 겨울과 여름을 넘나들면서 저는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았기에 때때로 겨울에 역에서 30분을 기다려도 수련생이 오지 않으면 차를 타고 돌아와 다음 주에 다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음에 만나면 수련생은 “지난주 약속을 잊어서 미안해요.”라며 웃어넘겼습니다. 저는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고 제때 법에서 그녀와 교류했습니다. 몇 년간 그녀는 진상 음성 전화에 참여했고 매번 전화 카드와 휴대전화가 고장 날 때마다 저와 딸이 도와 해결했고 그녀가 수련의 길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했습니다. 7~8년 후, 그녀는 딸의 아이를 돌보러 우리와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 더는 만나지 못했습니다.

10여 년간 작은 자료점은 제 수련의 길을 따라왔습니다. 사부님의 법, 수련생의 믿음과 도움으로 자료점 업무를 안정적으로 할 수 있었습니다. 내려받아 인쇄하거나, 삼퇴 명단을 전송하거나, 수련생을 도와 밍후이 라디오를 녹음하거나, 진상 편지를 인쇄하거나, 우편 주소를 쓰는 등 모든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저에게서 밍후이 라디오 교류 문장 녹음을 받아 가는 수련생이 매주 20여 명이 됩니다. 여러 수련생은 주로 ‘밍후이주간’, ‘법회교류’, ‘수련이야기’, ‘사부님 은혜’, ‘청년제자 교류’, ‘절체절명에서 살아나다’, ‘중국 백 개 가정 이야기’ 등을 내려받아 녹음을 받아 갑니다. 가끔 수련생이 가져온 메모리카드에 사부님 설법이나 연공음악이 들어있으면 쉽게 지우지 않았고 카드를 잊고 가져오지 않은 사람에게도 준비해 뒀던 빈 카드나 새 카드에 녹음을 넣어줬습니다.

중공 바이러스 발생 기간 주민 구역을 봉쇄하자 저는 어떻게든 수련생을 찾아가 그들과 시간을 약속하고 자료와 메모리카드를 수련생 손에 전해줬습니다. 버스가 통하지 않기에 저는 자전거를 탈 수밖에 없었지만, 항상 제시간에 보낼 수 있었습니다. 수련생이 필요한 자료를 전달하는 것은 거절할 수 없는 제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수련생과 저녁 7시에 자료를 보내기로 약속했던 날에 진눈깨비가 왔습니다. 길이 미끄러워 길 한쪽으로 조심스럽게 자전거를 탈 수밖에 없었습니다. 갑자기 앞에 있던 대형 화물차 기사가 차 문을 열었고 제 자전거는 멀리 밀려나 온몸에 흙탕물을 튕겼습니다. 기사가 다그쳐 물었습니다. “어때요?” 저는 괜찮다며 일어나서 자전거를 끌고 갔습니다. 시간을 다그쳐야 하기에 기사에게 진상을 알리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몸에 아픈 느낌은 전혀 없습니다. 사부님께서 제자를 대신해 감당해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지난 몇 년간, 협조인 수련생이 멀리 있는 법공부 팀 수련생에게 자료를 보내라고 했습니다. 이 팀은 모두 노년 수련생이며 사부님의 새 경문을 볼 수 없었습니다. 제가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병업이나 어떤 이유로 인해 팀 수련생들이 잇따라 오지 않았고 남은 한 명마저 병업 상태가 나타났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수련생에게 도움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매주 저는 그녀에게 자료와 녹음 카드를 보내고 서로 교류하며 그녀가 수련자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녀는 매일 6층에서 내려오기가 힘들었지만 그래도 계속 나가서 사람을 구했습니다. 그녀가 이사 갈 때까지 거의 10년간 그녀와 함께 해왔습니다.

3. 마음속에 법이 있으니 어려운 고비를 가볍게 넘기다

수련인으로서 우리는 사부님께서 새로운 길을 마련해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우연한 일이 나타날 수 없으므로 수련의 길을 반드시 바르게 가야 합니다. 빗나가면 구세력이 틈을 타 수련자의 목숨까지 잃게 됩니다.

작년 10월 초, 남편은 갑자기 심장이 아팠습니다. 지난 몇 달간 그는 온몸에 힘이 없는 모습을 보였는데 우리는 개의치 않으며 수련자는 병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에 그의 심장이 아프다고 하자 우리는 경각심을 느꼈습니다. 저는 남편을 우리와 한방에 있게 해 언제든지 발정념으로 도울 수 있고 심성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며칠 밤, 저와 딸은 잠을 이루지 못하며 그가 힘들어할 때마다 발정념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남편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당시 저는 고통도 슬픔도 없었고 그의 생명이 끝나지 않았고 다만 그가 해야 할 일을 하고 먼저 떠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은 박해가 극심했던 2003년 대법 수련에 들어왔습니다. 특히 가정 자료점을 꾸린 뒤 안전을 위해 많은 나무상자를 만들고 기계와 소모품을 넣어 도르래를 달아 이동하기 쉽게 했습니다. 집이 비록 작지만 조금도 어수선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오토바이는 소모품을 사고 기계를 고치는 바람에 여러 대 바꾸었습니다. 특히 몇 년 전에 션윈 CD를 만들 때 CD 케이스 한 상자를 사서 우리가 사용할 뿐만 아니라 다른 수련생들에게도 제공해줬습니다. 매주 그는 오토바이를 타고 가장 무거운 자료를 몇 개 팀에 보내줬습니다.

저는 진상자료를 만들기 전에 계속 나가서 대면해 진상을 알렸습니다. 자료를 만든 후 남편과 몇몇 수련생들은 제 안전을 위해 나가서 진상을 알리지 말라고 권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항상 진상을 알리는 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 법공부를 하지 않거나 자료를 만들지 않는 한 여전히 나가서 진상을 알렸습니다. 이렇게 하다 보니 남편이 장보기, 요리하기 등 거의 모든 집안일을 책임지게 됐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저는 다시 집안일을 책임져야 했습니다.

비록 부담은 크지만 저는 늘 사부님 법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연공인으로서, 남이 아주 대단하게 여기는 것을 당신은, 아주 작고도 아주 작게, 아주아주 작게 본다. 왜냐하면 당신의 그 목표는 참으로 장원(長遠)하고 원대(遠大)한 것으로서, 당신은 장차 우주와 같은 나이가 되려 하기 때문이다.”[2]

‘그래, 사부님이 계시고 법도 있으니 넘지 못할 난관이 뭐가 있겠는가!’ 저와 딸은 즉시 배치를 잘해놓았습니다. 무거운 소모품은 두 달에 한 번씩 수련생 가족이 갖고 오게 하고 나머지는 저와 딸이 따로 사러 가기로 했습니다. 매주 자료는 제가 보냈습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품질이 비교적 좋은 자전거를 한 대 샀는데 마침 제가 쓰기에 적합했습니다. 이제 딸과 저는 아무것도 지체하지 않았고 저도 여전히 나가서 진상을 알리는 김에 장도 봅니다.

한 수련생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왜 전혀 변하지 않았나요? 예전과 똑같아요.”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작은 부정적인 사유와 정서가 대법을 실증하는 데 영향을 미치면 출력한 자료가 어떻게 중생을 구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자료의 원천이니 반드시 스스로에게 엄격히 요구해야 합니다.

아버지에 대한 정이 많은 딸은 늘 아빠를 그리워하며 몸과 마음을 지치게 했습니다. 점점 야위어가는 딸을 보면서 하루빨리 그 집착을 떨쳐버리는 유일한 방법은 법공부를 많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법에서 남편이 돌아간 원인을 함께 찾고 교훈을 얻으며 앞으로의 수련의 길을 똑바로 걷자고 교류했습니다.

저는 딸과 함께 법을 외우기 시작했고 특히 전염병 통제 기간 우리는 모든 시간을 다 법을 외우는 데 전념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한 단락 외운 다음 딸이 외우고, 나중에는 우리 둘이 동시에 외우면서 반년을 꾸준히 해왔습니다. 우리의 수확은 매우 컸고 특히 딸은 심성에서 실질적인 돌파를 이뤘습니다. 딸은 원래 수련할 줄 모르던 데로부터 지금은 일이 생기면 사부님 말씀을 먼저 떠올리면서 수련할 줄 알게 됐습니다. 최근 법회 교류 투고에도 참여했습니다.

맺는말

지난 10년간 걸어온 길을 돌이켜보면 평온한 가운데 사부님의 보살핌이 스며 있었고 어려움 속에 대법의 가르침이 있었고 모든 것이 사부님의 배치 속에 있었습니다. 사부님 말씀을 듣고 신사신법(信師信法)을 확고히 하면 수련의 모든 단계를 잘 밟을 수 있습니다. 속인의 모든 집착을 최대한 버려야 사전 서약을 이행할 수 있고 자신의 천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수련의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제 작은 꽃은 아직도 인간 세상에 피어 있습니다. 저는 더욱 정진해 우리의 작은 꽃과 함께 법정인간의 찬란한 순간을 맞이할 것입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지설법10-따지웬(大紀元)회의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파룬궁-제3장 씬씽(心性) 수련’

(밍후이왕 제19회 중국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원문발표: 2022년 11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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