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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착실히 수련해 대법의 위력을 실증하다

글/ 중국 랴오닝(遼寧) 대법제자 차오란(超然)

[밍후이왕] 1997년 정월 대보름날은 평생 잊지 못할 날입니다. 저는 이날 기쁘게 대법을 얻어 그때부터 삶은 기쁨으로 가득 찼고 인생의 귀로를 찾았으며 진정한 자신의 본원으로 돌아가는 길을 걷게 됐습니다.

법을 얻기 전 저는 삼차신경통을 앓았는데 유전이었습니다. 사흘이 멀다고 머리가 아팠는데 지치고 화가 나거나 말을 많이 해도 머리가 아팠으며, 어쨌든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머리가 아팠습니다. 머리가 아플 때 눈, 눈두덩이, 관자놀이 전체가 아파 눈을 감히 뜨지 못했고 두 귀는 늘 뭔가 막힌 것 같았으며 머리도 늘 답답해서 매우 괴로웠습니다. 치질도 매우 심해 자주 재발했고 매번 재발할 때마다 잘 서지 못했고 앉지 못해 정말 고생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법을 얻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증상들은 제가 확고하게 대법을 착실히 수련하는 과정에서 부지불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이익심을 없애다

시어머니는 여섯 자녀가 있는데 그중 아들이 셋이고 남편은 둘째입니다. 우리는 외지에서 근무했고 다른 두 아들은 고향에서 근무했습니다. 제 시부모님은 나이가 많아서 한집에서 살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때 시부모님은 시골에 집 여덟 채가 있어서 시부모님과 다섯 자녀가 회의를 열었습니다(그때 우리에게 알리지 않음). 결국 셋째 아들과 함께 지내기로 했고 집을 판 돈은 2만 위안(약 400만 원) 가까이 됐는데 큰아들과 둘째 아들에게 각각 1300위안(약 26만 원)을 주고 나머지는 모두 셋째 아들에게 주기로 했습니다.

1992년 우리가 고향에 돌아가 설을 쇨 때 시아버지는 이 일을 우리 부부에게 말씀하셨고 우리는 “어떻게 결정하시든 동의해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어서 시아버지는 또 “네 형에게 주려던 1300위안을 이미 형에게 줬어. 그런데 네게 줄 1300위안은 새집을 사는데 돈이 부족하다고 해서 먼저 네 남동생에게 빌려줬단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동생은 그때 나중에 돈이 생기면 다시 우리에게 돌려주겠다고 했고 우리는 그렇게 하자고 했습니다.

1994년,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시동생은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형, 나 돈 없어. 그래서 갚을 수 없게 됐어.” 그때 우리도 집을 사느라 돈이 부족했는데 또 다른 사람에게 3000위안(약 60만 원)을 빌려주기까지 했습니다!

이 일은 저를 몹시 화나게 했습니다. 화가 난 것은 먼저 시아버지가 우리에게 말하지 않고 시동생에게 돈을 빌려주신 것이고, 또 시동생이 신용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후부터 저는 시도 때도 없이 이 일을 끄집어내 남편에게 잔소리했고 남편도 몹시 짜증이 났습니다.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면서부터 이기적인 관념을 완전히 바꾸어 시동생의 어려움도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이익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자 짜증이 나지 않았고 이 일이 마치 일어나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1996년, 시동생은 다른 도시로 이사했고 큰형과 논의해 시어머니와 함께 살라고 했습니다. 큰동서는 시동생에게 1만 위안(약 200만 원)을 요구했으나 작은동서가 동의하지 않아 두 집안 분위기가 불편해졌습니다. 우리는 고향에 돌아간 후 자발적으로 시어머니를 모시겠다고 했고 다른 사람의 돈은 한 푼도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시어머니가 고향을 떠나기 서운해하셔서 결국 우리는 시동생을 대신해 돈 절반(5천 위안)을 큰동서에게 주고 나서야 이번 풍파를 가라앉힐 수 있었습니다. 그때 현장에 있던 시댁 식구들은 크게 감동했습니다. 동시에 대법제자가 수련 가운데서 수련해낸 이타심과 관용, 고상한 경지를 목격했습니다.

남편을 돌보면서 자신을 수련하다

2008년 저는 수련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악한 공산당에 납치돼 감옥에서 박해받아 심신이 극도로 손상됐습니다. 이후에 박해를 반대하자 감옥 경찰은 가족을 만날 권리를 박탈했습니다.

가족은 저를 만날 수 없어서 제 생사를 몰랐고 지나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은 남편은 뇌출혈을 일으켰습니다. 응급처치를 통해 목숨은 건졌지만, 그때부터 스스로 몸을 가누지 못했습니다. 그때 아들은 대학에 다니고 있었고 학교에 허가받고 학교와 병원 양쪽을 뛰어다니며 아버지를 돌보면서 공부했습니다. 그로 인해 아들은 몸과 마음이 매우 지쳐있었고 아버지를 돌볼 수 없을 때는 친척과 친구가 도와줬습니다.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한 부자는 온종일 눈물로 지새우며 이루 말할 수 없이 고생스러웠습니다. 거대한 시련으로 이들의 감당 능력은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제가 감옥에서 나왔을 때 우리 가정에는 마침내 약간의 생기를 띠게 됐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또 한 번 심한 타격을 받았습니다. 남편의 뇌출혈이 재발해 또다시 병원에 입원해 응급처치받게 됐고 그는 머리에 두 차례의 큰 수술을 받아 의식이 전혀 없는 폐인처럼 됐습니다. 가혹한 현실 앞에서 저는 사람 마음을 버리지 못해 거의 무너지다시피 했고 정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시련을 돌파하는 과정에서 ‘진선인(真·善·忍)’이 저를 지탱해줬고 저는 서서히 가족의 정에 집착하는 고통 속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후 저는 식사와 배설, 이발 등 모든 크고 작은 일을 포함해 혼자서 남편을 정성껏 돌봤습니다. 남편을 돌보는 7년여 동안 밤에는(식사 때 음식을 흘리고 소변을 많이 보았으며 남편 몸을 뒤척여줘야 했기 때문) 거의 옷을 벗고 잔 적이 없었고, 세 시간 이상 잔 적도 거의 없었습니다. 이런 일을 겪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이런 “몸을 고달프게 하고(勞其筋骨), 마음을 괴롭게 하는(苦其心志)”[1] 괴로움을 알기 어려울 것입니다.

남편은 정상적으로 식사할 수 없어서 밥과 반찬, 그리고 과일을 믹서기로 갈아 다시 주사기로 주입해야 했습니다. 남편이 일 년 내내 누워서 지내다 보니 일 년 내내 변비가 있어 저는 일회용 장갑을 끼고 파내며 매일 깨끗이 씻겨주었습니다. 우리 집에 오는 사람마다 “당신 집에는 이상한 냄새가 전혀 안 나요. 환자가 누워있는 집 같지 않아요.”라고 말합니다.

남편이 누워서 지낸 지 7년이 넘어 세상을 떠나던 그 날까지 몸에 욕창이 없었습니다. 상식대로라면 일 년 내내 누워서 지내면 폐 감염이 불가피하지만, 남편은 여러 해나 누워지냈지만, 링거를 맞은 적이 없어 일반인들도 신기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신비로움은 대법에서 비롯됐음을 알고 있습니다.

누워있는 남편을 마음을 다해 돌보면서 표현된 저의 모습에 시댁 식구들은 매우 감동했습니다. 셋째 시누이는 외지에서 우리 집에 남동생을 보러 왔다가 며칠 지내면서 “아, 하루 동안 이런 과정을 제가 한다면 사흘이어도 다 하지 못하고 기절했을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둘째 시누이는 언니 집 친척도 같은 병에 걸렸는데 남편과 딸 두 사람이 전문적으로 간호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일 년 동안 여자 두 명은 버틸 수 없었고 정신적으로 붕괴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둘째 시누이는 그들에게 “우리 올케를 보세요. 낮부터 밤까지 혼자 남편을 돌보는데, 마음 상태가 매우 좋아요. 건강도 좋고요.”라고 말했습니다.

대법제자의 표현은 바로 진상입니다! 동시에 시련 중에서 표현해낸 굳건한 의지, 이타심과 선량함은 사실 앞에서 충분히 검증받았고 중공의 사악한 거짓말도 자멸하게 했습니다.

법을 실증하는 과정에서 신비로운 일

제가 감옥에서 나온 후 우리 지역에서 CD, 탁상용 달력 제작을 하는 사람이 없던 이 공백을 메웠습니다. 한번은 연말에 탁상용 달력을 만들었는데 제가 집중해서 모든 수량의 인쇄를 마친 후, 다른 두 수련생이 다른 자료 거점에서 달력 제작용 절단기, 천공기 등을 빌려왔습니다. 연말 이 무렵이면 각 자료점에서 모두 이런 도구를 사용하기 때문에 다음날이면 다른 자료점에서도 사용해야 하므로 우리 세 사람은 시간을 다그쳐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일손이 부족하고 수량이 많아서 우리 세 사람은 종이를 자르고 구멍을 내면서 제품을 제작했습니다. 오후부터 날이 저물 때까지 7시 반 동안 계속했습니다. 그동안 남편은 7시간 반 동안 잠을 잤고 중간에 기저귀를 한 번밖에 갈아 주지 않았습니다. 이어서 또 잠들었고 조금도 제가 일하는 것을 지체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일을 막 마쳤을 때 남편이 깨어나 남편을 돌보는 일이 조금도 지체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은 예전에 있었던 적이 없어서 그때 우리 세 사람은 모두 매우 감동했는데 이것은 대법의 위력입니다.

이상은 제가 수련에서의 몇 가지 에피소드입니다. 자신이 사부님 요구에 따르면 얼마나 더 부족한지, 수련을 잘한 수련생들에 비해 차이가 얼마나 많이 나는지 잘 압니다. 그러나 저는 사부님 말씀을 잘 듣고 얼마 남지 않은 최후 시간 동안 용맹정진하고 세 가지 일을 잘해서 사부님의 자비한 고도(苦度)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22년 6월 3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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