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대법이 있고 사부님이 계시니 나는 가장 부유하다

글/ 허난성 수련생

[밍후이왕] 나는 70대이고 1997년 정월 대보름날에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했다. 20년 넘게 수련하면서 개인적으로 파룬따파가 얼마나 좋은지를 경험했다.

의사였지만 병을 달고 살았던 시절에 법을 만나다

부모님은 내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 나는 몸이 아팠고 가족들은 나를 짐으로 여겼다. 친척들에게 의존하다 보니 자존감이 낮고 내성적인 성격이 되었다. 나는 종종 하늘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하늘에 무엇이 있을까? 나는 어디에서 왔나?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나는 혼란스러운 문화대혁명 기간에 학교에 다녔다. 졸업하고 일을 시작했을 때 사회는 경쟁적이었고 앞서기 위해 모두 거짓말을 했다. 악한 세상에서 나에게 삶은 너무 힘들게 느껴졌다.

나는 의사였고 매일 환자들을 치료했지만 내 병은 고칠 수 없었다. 사기꾼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을 찾고 여러 종류의 기공을 했다. 온갖 민간요법을 시도하며 돈을 많이 쓰고 시간을 보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몸은 더욱 엉망이 되었고 나는 더욱 우울해졌다. 정신적으로 무너지기 직전이었고 자살까지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1997년 정월대보름 전날, 나는 아파서 밤을 지새웠다. 이른 아침 나는 결정을 내렸다. 가족이 아직 잠든 사이에 집을 나서기로 했다. 계속 살아야 하는 의미를 찾지 못한다면 그때부터 먹고 마시고 잠자기를 중단해 죽을 작정이었다.

어둠 속을 무작정 걸어가다가 어느 사무실 지역에 들어서니 아름다운 음악이 들렸다. 나는 음악이 흐르는 방향으로 걸었고 허공에 팔을 들고 있는(파룬따파 연공 중 제2장 공법) 한 무리 사람들을 봤다. 나도 모르게 따라서 팔을 들었다.

허공에서 허우적대다 갑자기 단단한 땅에 발을 디딘 기분이 들었다. 심장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았고 ‘물 밖에 나온 물고기’ 같은 느낌이 사라졌다. 나는 이렇게 안정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몸 전체가 편안하고 정신이 맑아져서 평생 처음 편안함을 느꼈다. 동이 텄고, 아침 햇살 속에서 나는 “파룬따파의 간단한 소개” 안내판을 봤다. 한 사람이 다가와 나에게 수련하고 싶은지 물었다. 나는 “예”나 “아니오”를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나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 사부님의 연공 비디오를 보여주고 ‘전법륜’이라는 책도 줬다.

그녀는 나에게 책을 읽고 수련하고 싶으면 다시 오라고 했다. 당시에 파룬따파가 무엇인지 몰랐지만, 보물을 안고 있는 느낌이었다.

전법륜을 읽은 후 나는 그 보도원을 다시 만나러 가서 말했다. “나는 책에 있는 모든 내용에 동의하지만, 집착을 제거할 수 없습니다.” 당시 내 직장에는 많은 일이 있었다. 사람들은 아파트를 놓고 경쟁하고 있었고 급여와 직위는 조정되고 있었다. 무엇이든 얻으려면 싸우고, 줄을 대고, 거짓말까지도 해야 했다.

그 보도원은 나에게 사부님의 강의를 담은 비디오테이프를 건네주며 시간을 다그쳐서 보라고 했다. 보고 난 후 나는 파룬따파의 진선인(真·善·忍) 원칙을 따르는 선한 사람만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수련이 뭔지도 몰랐는데 수련하고 싶었다. 파룬따파가 너무 좋고 사부님이 좋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20년 넘게 법 공부와 심성 수련을 통해 나는 삶과 세상에 대한 관점을 완전히 바꿨다. 나는 더는 혼란스럽지 않았다. 정직하게 행동하고 견실하게 수련하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대법으로 인해 병이 없는 경이로움에 잠겼다.

간난신고 속에서 법을 실증하며 제고하다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했을 때 내 행복감은 말로 표현할 길이 없었다. 나는 내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사부님이 계시고 귀속감이 있었기에 더는 자존감이 낮지 않았다. 연공장에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사부님, 저는 끝까지 수련할 것을 맹세합니다. 어떤 고난과 위험이 닥쳐도 저는 간난신고를 넘어 당신을 따라 집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나는 아는 사람 모두에게, 특히 환자에게 파룬따파에 관해 말했다. 나는 우리 조직에서 유명해졌다. 환자에게 아무렇게나 약을 처방하지 않는 의사, 바로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의사를 모두 알고 있었다. 나는 모두에게 파룬따파에 대해 말했다.

경영진은 나의 변화를 목격하고 동료들의 파룬따파 수련을 지도하도록 지원했다. 사무실을 제공해주고, TV와 VCR을 사주고, 근무시간에 직원들에게 사부님의 강의 영상을 틀어 주도록 했다.

많은 사람, 특히 만성질환이 있는 사람들이 와서 영상을 보고 수련해서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 그들 중 많은 사람이 법 학습을 견지하고 계속 수련하며 더는 병원에 가거나 약을 먹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전후 상태를 상세히 기록해 두었다.

1998년 연말 결산총회에서 직장 관리부는 파룬따파를 소개하여 직원들의 건강을 개선하고 기관의 의료비를 절감했다고 나를 칭찬했다.

1999년 7월 중국 공산당이 파룬따파를 탄압하기 시작한 후, 직장동료 중 수련하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세상 모든 사람이 파룬따파를 그만둔다고 해도 한 사람은 남을 것입니다. 그가 바로 접니다.” 나는 사부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진정한 수련생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수련을 시작하기 전에 나는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대중을 속이고 자신의 주머니를 채웠다. 사람들은 말한다. “산에서 살면 산으로 먹고살고 물에서 살면 물로 먹고 산다. 물가의 정자가 달빛을 먼저 받는다.”

나는 내 직업을 이용하여 친구와 가족에게 약을 쉽게 구해줬다. 가족 중 누군가가 약이 필요할 때 나는 바로 처방해 줬다. 이렇게 내 능력을 과시하고 증명했다.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한 후 나는 즉시 행동을 바로잡았고 친구와 친척의 약 부탁을 모두 거절했다. 대신에 나는 그들에게 파룬따파의 원칙을 이야기했고 내 형제자매 여섯 명이 수련을 시작했다.

과거에는 의약품 조달로 내가 받은 리베이트가 급여를 넘었다.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한 후 나는 리베이트를 중단했다. 나는 담당자로서 최저가로 흥정했지만, 공급업체는 여전히 고객인 나를 잃을까 봐 리베이트를 제안했다. 일부 의사는 리베이트를 원했고 어떤 의사는 심지어 나에게 말했다. “우리는 리베이트를 원한다. 받지 않으면 우리 손해다.”

사회 전체가 이와 같아서 공급자가 리베이트를 주도록 내버려 둬야 했지만 나는 원하지 않았다.

공급자는 내 몫을 은행에 넣어두고 연말에 통장을 줬으나, 나는 거부했다. 그는 나에게 선물을 줬지만, 그 역시 나는 거절했다. 그는 나에게 그 이유를 물었고 나는 그에게 전법륜을 한 권 줬다. 그는 화상으로 고생하면서 치료비가 없는 아이들에게 내 이름으로 돈을 기부하겠다고 제안했다. 내 돈이 아니므로 내 이름은 남기지 말라고 했다.

직장에서 직원들은 매년 건강 검진을 받아야 했고, 그들이 제공한 리베이트에 따라 병원을 선택했다.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 나는 리베이트를 고려하지 않고 건강 검진료를 최소화했다. 검진센터 담당자가 나에게 이유를 물었고 나는 파룬따파에 대해 말했다.

그는 말했다. “파룬따파가 좋다는 말은 들었지만, 지금까지 파룬따파 수련생을 본 적이 없다. 파룬따파는 정말 명불허전이다.” 그는 내 직장에 나를 칭찬하는 패넌트를 선물하려고 했다. 나는 정중하게 거절하며 말했다. “우리는 명예나 개인 이익을 위해서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법이 좋다는 것을 당신이 아는 것, 그것이 제게 최고의 선물입니다.”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전에 나는 사무실 전화로 전국의 친구 친척들과 장거리 전화를 걸었다.

수련을 시작한 후에 사무실 전화는 업무용으로만 사용했다. 그리고 예전에 가지고 갔던 종이, 봉투, 볼펜, 각종 사무용품도 사무실에 반납했다. 사심이 없고 세상이 넓다는 것을 느낄 때 기분이 좋았다!

1996년 말, 남편의 직장은 새 아파트를 배정하기 전에 인테리어를 마무리 짓고 있었다. 남편이 기반시설(공급업체도 선정)을 담당하다 보니 많은 건설업체에서 찾아왔다. 일부는 무료 수리를 제공하러 우리 집에 왔다.

1997년 초에 대법 수련을 시작하면서 나는 그 제안을 단호히 거절했다. 대신 직접 시공업체에 연락해서 모든 자재를 직접 구매하고 모든 청구서를 증거로 보관했다. 남편은 동의하지 않았지만 내 주장에 굴복했다.

일부 건설 회사는 남편을 돈으로 매수했다. 그 당시 아들의 대학 등록금이 필요했다. 나는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다”라는 원칙을 이해했기 때문에 돈을 모두 돌려줬다.

남편과 나는 각자 고용주가 배정한 아파트를 가지고 있었다. 나중에 정책에 따라 각 가구는 한 아파트만 가질 수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두 아파트를 모두 유지하기 위해 가짜 이혼을 했다.

남편이 나에게 이 일을 언급했을 때 나는 말했다. “생각해 보세요. 당신은 나를 원하나요, 아파트를 원하나요? 나는 가짜 이혼에 협조하지 않겠어요. 나는 진선인(真·善·忍)을 믿어요. 정직해야 해요.”

결국, 우리는 아파트를 반환했다. 이렇게 한 사람은 극소수였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리석다고 비웃었다. 나는 스스로 말했다. “나는 수련생이다. 나는 오직 사부님의 말씀만 듣는다. 사부님이 좋다고 하시면 된다.”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전에 나는 남편이나 시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가족 간의 갈등이 많았고, 나는 오랫동안 시어머니와 소통을 거부했다. 남편과 나는 이혼 합의서에 서명했고 아들이 대학에 가면 이혼 절차를 시작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1997년 초에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했고 부부가 되는 것은 인연 관계임을 법을 통해 배웠다. 나는 남편을 동정심으로 대하기 시작했고 이혼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가족이 화목하게 되었고 시어머니와의 관계도 좋아졌다.

중국 공산당이 파룬따파를 비방하기 시작한 후 시어머니는 모두에게 말했다. “정부는 파룬따파가 나쁘다고 하지만, 나는 파룬따파가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 며느리는 파룬따파를 수련하고 나서 자비롭고 사려 깊은 사람이 되었다.” 내가 불법 감금되었을 때 시어머니는 가족들에게 나를 힘들게 하지도, 압박하지도 말라고 하셨다.

은퇴 후 아들이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 며느리, 안사돈과의 관계가 복잡하고 갈등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 아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는 생각했다. “나는 수련생이고, 조사정법하는 대법제자다. 이 문제를 내가 다룰 수 없다면 누가 할 수 있겠는가? 갈등이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 수련 기회다.”

나는 사부님의 법에 따라 조금씩 고쳐 나갔다. 지난 10여 년 동안 가족 갈등이 점차 가라앉았고 지금은 화목하게 지낸다. 아들과 남편은 내 일 처리 방식을 존중했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대법이 아니었으면 나는 할 수 없었다, 고마워하려면 사부님과 대법에 고마워해야 한다!”

내 직장은 혜택이 많고 급여가 높다. 의사가 된다는 것은 더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사람이 내 직업을 부러워했다.

1999년 7월 20일, 중국 공산당이 파룬따파를 박해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수백만 파룬따파 수련생들과 마찬가지로 시 정부와 지방 정부에 갔고, 그다음에는 베이징으로 가서 파룬따파를 위해 호소했다. 사부님의 명예를 회복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대중에게 진실을 알리고 싶었다.

나는 공원에서 단체 연공을 하다가 불법 납치당해 주거 감시를 받았다. 참가자가 많았기 때문에 주요 사건으로 지정되어 많은 사람이 납치당했다. 나는 중심인물로 이름이 올랐고 기소되어 선고를 기다렸다.

사실 나는 그냥 평범한 수련생이었고 단체 연공을 관장하지 않았는데, 어쩐 일인지 중심인물이 되었다. 당황했지만 논쟁하지 않았고 오히려 상당히 기뻤다. 주거 감시 기간에 사부님은 꿈에서 여러 번 점화해 주시고 격려해 주셨다.

직장 상사가 여러 번 나를 찾아와 파룬따파를 그만두라고 압박했다. 나 때문에 직장이 상을 받지 못하고 직원들의 급여가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파룬따파 수련을 중단하지 않으면 나는 해고되고 당원 자격이 박탈될 터였다.

결코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사부님 말씀 “대법 확고히 수련하며 마음 움직이지 않나니”[1]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고용주는 나를 구출하기 위해 온갖 종류의 줄을 댔다. 사건은 기각되었고 나는 가장 먼저 석방되었다. 사건을 처리하는 경찰이 말했다. “당신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이 당신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석방되어 사건은 성립되지 않아 다른 사람들도 모두 당신 덕을 봤습니다.” 나는 나를 보호해주신 분이 사부님이심을 알았다.

석방된 후 나는 원래 부서에서 전출되어 강등되고 당원 자격이 박탈되었다. 동료들은 나를 불쌍하게 여겼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한 나는 괜찮다. 사부님이 계시고 대법이 있기 때문이다. 새 부서의 근무 환경은 편안했다. 급여는 훨씬 적었지만, 법 공부하고 대법 일을 할 시간이 더 많았다.

나는 나중에 진상 자료를 배포한 혐의로 불법적으로 납치당했다. 누군가가 나를 신고했다. 나는 가까스로 전법륜을 구치소에 가지고 갔다. 나는 범죄자가 아니므로 먹거나 마시기를 거부했다. 나는 법 공부에 집중했다.

단식 투쟁 7일 후, 경비원들은 강제 음식물 투입을 결정했다. 그러나 의사가 없어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날 밤 풀려났고 곧 일터로 돌아갔다.

2000년 말과 춘절 전날, 나는 강제 노동 2년을 선고받았다. 노교소에 들어가 건강검진을 하던 중 의사가 내게 고혈압이 있다고 했다.

나는 생각했다. “사부님께서 우리 몸을 정화해주셨다. 그 병은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 수련은 우리를 건강하게 하는데, 내가 아프다고 생각하면 노교소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 경찰은 파룬따파가 건강에 좋다는 것을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나는 대법을 실증하고 싶어서 말했다. “나는 의사다.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한 후 모든 병이 나았다. 내 혈압이 높은 것이 아니라 당신들의 혈압계가 고장 났다.” 의사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노교소에 수용되었다.

노동수용소에서 보낸 거의 2년 동안 교도관은 악명 높은 마싼자 강제 노동수용소의 경험 많은 사람들을 불러와서 나를 전향시키려고 했다.

나는 교도관에게 말했다. “나를 어디로 전향시키려고 하는가? 나는 진선인(真·善·忍) 원칙을 따르는 좋은 사람이다. 진선인(真·善·忍)보다 더 나은 것이 있는가? 날 나쁜 사람으로 전향하려는 것이 아닌가?” 그때부터 교도관들은 나를 전향시킨다는 말을 그만뒀다.

교도관들은 나에게 파룬따파를 비판하는 내용의 글을 쓰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 기회를 이용해 내가 어떻게 수련을 시작하고 수련이 얼마나 좋은지를 썼다.

두 번째로 교도관들이 글을 쓰라고 했을 때, 나는 자신의 부족함을 들여다보기 위해 ‘자기 성찰’을 썼다. 그러나 교도관들은 잘 썼다며 모두 볼 수 있도록 게시판에 올렸다. 어떤 사람들은 노동수용소에서의 하루를 몇 년처럼 느끼지만, 나는 어디에서나 수련할 수 있다고 느꼈다.

2008년에 경찰 8명이 우리 집을 수색하여 진상 자료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장비와 용품, 대법 책을 빼앗아 갔다. 그들은 나를 다시 가뒀다.

심문 중에 경찰은 수련생들을 여걸이라고 부르며, 감독자는 우리 집에서 샅샅이 뒤져 찾아낸 필사본 전법륜 아홉 권을 젊은 경찰들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너희들이 파룬따파 수련생들처럼 성실하게 일을 할 수 있다면, 잘할 수 있지 않을까?”

나를 심문한 경찰관은 나에게 유리한 질문에 답하고 필요할 때는 침묵하라고 했다. 처음에 당국은 나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지만 나는 서명을 거부했다. 그들은 바꿔서 나에게 2년의 노동수용소를 선고하겠다고 했고 나는 다시 서명을 거부했다.

이때, 심장에 문제가 생겨 밤새도록 괴로웠다. 아무 때라도 심장이 멈출 것만 같았다. 나는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죽음으로 대법에 먹칠할 수는 없습니다!” 기적은 일념 속에 있다. 다음날 나는 무조건 풀려났다. 나는 자유를 되찾았고 법을 실증하고 진상을 알리는 일을 다시 시작했다.

나는 20년 넘게 파룬따파를 수련해 왔지만 한 번도 아픈 적이 없다. 전법륜을 읽은 첫날 이후 병원에 가거나 약 한 알 먹은 적이 없다. 매년 연말에 각 직원에게 부여된 약값 4000위안(약 77만 원) 한도액에서 한 푼도 청구할 필요가 없었다.

20년이 넘었다. 전 직장동료를 만나면 그들은 늘 건강이 좋지 않다거나 가족 간의 갈등이 얼마나 복잡한지를 이야기한다. 나에게 그런 장밋빛 안색의 비결이 뭐냐고 묻는다. 나는 항상 그들에게 대법에 관해 이야기하고 그들에게 진상을 알린다.

이제 나는 모든 동창회, 직원 모임, 친구들 모임에 참석하려고 한다. 나는 진상규명 USB 드라이브를 준비하고 그 기회를 이용하여 진상을 알리고 파룬따파를 소개한다. 예전 동창, 직장동료, 친구들에게 연락해서 그들이 어디에 살든 찾아가서 진상을 알리고 있다.

예전 동료들은 내가 파룬따파 수련을 위해 좋은 직장을 포기한 것이 어리석다고 말했다. “전 직장에서 은퇴했다면 지금보다 두 배나 많은 연금과 수백만 위안에 달하는 주택 등 많은 혜택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물질재부(物質財富)란 태어날 때 가지고 오지 못하며, 죽을 때 가지고 가지 못하는 것[2]이라는 사부님의 말씀을 새겼다. 집에 돈을 많이 가져간다 해도 오늘은 약을 먹고 내일 입원하여 결국은 병원에 돈을 다 낸다. 나는 사부님이 계시고 대법이 있어 가장 부유한 사람이다. 마음에 대법(大法)이 있으면 넘지 못할 난관이 없다.’

우리는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조사정법(助師正法) 구도중생(救度眾生)의 특별한 사명이 있다. 우리의 일언일행으로 대법의 아름다움을 증명하고 중생을 구하자.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詩詞): ‘홍음2-진성이 보이노라’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2022년 6월 1일
문장분류 :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2/6/1/441764.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2/6/1/441764.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22/6/15/20181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