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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 5.13] 주변의 진상을 깨달은 그런 사람들

파룬따파 세계 홍전 30주년 작성

글/ 장시(江西) 파룬궁 수련생

[밍후이왕] 파룬따파(法輪大法)는 1992년부터 세상에 전해져 지금 이미 30주년이 되었습니다. 온 세상이 함께 경축하는 날에 우리 파룬따파 제자들은 수없이 많은 말로도 위대하시고 자비로우신 사부님 은혜에 대한 무한한 감사를 표현할 수 없습니다!

저는 중국 대법제자이며 수련한지 이미 20여 년이 되었습니다. 중공(중국공산당)이 이렇게 여러 해 동안 파룬궁(法輪功) 수련생을 박해하여 갈수록 많은 선량한 민중이 중공의 사악한 본질을 똑똑히 알게 됐습니다. 그들은 모두 강권을 두려워하지 않고 명암을 드나들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다하며 파룬궁 수련생을 돕고 보호해주었습니다. 아울러 자신을 위해 한 갈래의 정의와 광명이 가득한 큰길을 선택했고 자신과 가족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줬습니다.

제 주변에 바로 이런 선량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면의 한계가 있어 여기서 대표성을 띤 이야기만 하려 합니다.

1. 직장 서기가 보증하여 파룬궁 수련생이 집으로 돌아오다

20년 전, 저는 아이를 낳고 막 퇴원하여 집으로 돌아온 날 오후, 남편(수련생)이 아기 필수품을 사러 나갔다가 도중에 잠복해있던 현의 국보 경찰에 의해 현 공안국으로 납치됐습니다. 저는 혼자 갓 태어난 아기를 돌보느라 집에 누워서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제가 아이를 낳으면서 작은 수술 부위의 봉합이 잘되지 않아 그때 앉을 수 없었고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날이 저물었는데 남편은 여전히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예감이 좋지 않아 얼른 가족 친척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남편의 이모와 연락이 닿아서야 현 공안국에서 남편을 세뇌센터에 가뒀고 시부모님은 현 공안국에서 있는 힘을 다해 이를 막으려 하고 있다는 소식을 알았습니다. 남편이 정말 세뇌센터에 갇혔다면, 저는 앉을 수 없이 누워있을 수밖에 없는데 혼자서 어떻게 아기를 돌볼 수 있을까요? 저는 울고 싶어도 눈물이 흐르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우리 작업장의 동료가 많은 선물을 사서 기뻐하며 저와 아기를 보러 왔습니다. 제 남편이 대법 수련 때문에 납치됐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매우 분개하며 직장 서기를 바로 찾아갔습니다. 동료는 “이렇게 하는 것은 베이징에 청원하러 가도록 강요하는 격이 아닌가요?! 천리가 있기라도 한 건가요? 사람에게 살지 말라는 건가요!?”라고 말했습니다. 서기는 얼른 상급 책임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도 말해보고 저렇게도 말해보면서 그를 풀어주도록 요구했습니다. 서기는 또 자신과 직장의 명의로 “일이 생기면 저와 직장에서 책임질게요. 하지만 우리 직장에 무슨 혼란이 생겨서 베이징으로 청원 가도록 몰아세운다면 위에서도 결과를 책임지셔야 할 거예요!”라고 보증했습니다.

서기의 끊임없는 노력 끝에 위에서 마침내 현 공안국에 전화를 걸어 사람을 풀어주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서기는 즉시 공장 보위과의 과장 두 명을 파견하여 택시로 현 공안국에 가서 제 남편을 집으로 데려다줬습니다. 또 직접 우리 집에 와서 저를 위로했습니다. 박해가 가장 광적이던 시기에 서기는 큰 압력을 무릅쓰고 파룬궁 수련생의 가족이 박해를 면하도록 자신의 힘이 닿는 데까지 도왔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서기가 정말 사람이 대단히 훌륭하다며 이 은혜를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역시 서기에게 복을 가져왔습니다. 서기는 퇴직한 후, 성의 기관부서에 채용되어 대우가 기존 직장보다 훨씬 좋아졌습니다.

2. 두 공장장의 선행

한번은 제가 현 국보 경찰에 의해 가산을 몰수당했고 수색 영장에는 아무런 서명이 없었습니다(나중에 친척의 말에 의하면, 그들의 절차가 완비되지 않은 것은 위법이므로 그들을 고소할 수 있다고 함). 우리의 어떠한 위법 행위도 찾지 못하자 그들은 오히려 끊임없이 현지의 마을 위원회와 집주인을 위협하며 우리가 그곳에서 세 들어 사는 것을 허락하지 못하게 했고 제 남편이 위험인물이라고 유언비어를 퍼뜨려 우리가 이사하도록 내몰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저는 직장 책임자를 찾아가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생활 공장장은 “당신은 우리나라 합법적인 공민 아닌가요? 그가 당신을 이사하라고 하면 이사하나요? 합법적인 공민은 거주권마저 없단 말인가요?”라고 말했습니다. 공장장은 곧바로 마을 촌장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촌장은 현 공안국에서 번거롭게 할까 봐 여전히 제가 이사할 것을 고수했습니다. 공장장은 어쩔 수 없이 “나는 권력이 약해 상대방이 설득되지 않으니 생산 공장장을 찾아가 상황을 이야기해보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생산 공장장을 찾아갔습니다. 공장장은 즉시 보위과 과장을 파견하여 촌장과 대면하여 소통했으나 결국 소득 없이 돌아왔습니다. 공장장도 곧바로 촌장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촌장은 설득되지 않았습니다.

공장장은 화가 나서 제게 “우리는 지금 이 주먹처럼 치고 나가는 힘이 없어요! 나는 비록 공장장에 불과하지만, 우리 자신의 이 자그마한 영역만 관할하지 못해요. 상대방 그곳에서 하는 말에 무게가 없네요. 안 그러면 서기를 찾아가 보세요. 상대방과 소통하거나 직장 기숙사에서 세를 들만한 집이 없는지 알아봐요.”라고 말했습니다.

두 공장장은 모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들은 중공의 탄압 분위기에서 파룬궁 수련생을 도와 정의를 실현했는데 이와 같은 선행 역시 그들에게 복을 가져왔습니다. 우리 직장은 제도를 바꾼 후, 다른 직장에 의해 인수돼 많은 책임자 자리가 모두 합병됐고 기장도 매우 먼 곳으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생활 공장장은 오히려 잔류 사무소에 남아 계속 책임자 직을 맡게 됐고 생산 공장장은 스스로 가공 공장을 열었는데 사업이 매우 잘 된다고 합니다.

3. 보위과 과장이 파룬궁 수련생을 보호하다

현 공안국의 사람은 자주 우리 직장에 와서 교란했는데 보위과의 두 과장은 그들을 피할 수 있으면 피했고 피할 수 없으면 직접 그들의 무리한 요구를 거절했습니다. 과장은 평소에도 제게 진상 자료를 요구해서 보았고 우리는 모두 진선인(真·善·忍)을 수련하는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동안 저는 직장에서 원자재의 검수 입고를 담당했습니다. 한 구매 담당자가 저를 찾아와 입고 증서에 무게를 기재하게 했는데 매월 제게 2천 위안(약 38만 원)의 사례비를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저와 남편의 임금은 몇백 위안(약 몇만 원)밖에 되지 않아 집세를 내고 아이를 키우다 보니 경제적으로 매우 쪼들렸으므로 이 2천 위안은 저의 몇 개월 치의 임금에 해당했습니다.

큰 유혹에 직면하여 저는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저는 진선인(真·善·忍)을 수련하는 사람이므로 허위로 날조하여 공중의 이익을 해치고 자기 잇속만 차리는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저를 몇 번이나 찾아왔지만 저는 모두 거절했습니다. 나중에 그는 파룬따파가 도대체 무엇인지 자신도 알아보고 싶다고 말하면서 제게 자료가 있는지 자신도 보고 승화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그에게 주면서 그가 진상을 깨닫고 구도 받기를 바랐습니다.

어느 날 보위과 과장이 저를 찾아와 타인에게 함부로 진상 자료를 주지 말라며 누군가 이미 저를 신고했다고 말했습니다. 진상 자료는 또 모두 과장에게 제출됐다고 했습니다. 저는 누가 저를 신고했는지 한참 동안 생각해보았습니다. 최근에 저는 한 작업장의 주임에게만 진상 자료를 줘서 보게 했고 그는 매우 보기 좋아했으며 자기의 친구에게도 줘서 보게 했는데 저를 신고할 수 없었습니다.

과장은 제가 도저히 떠올리지 못하는 것을 보고 제게 그 구매 담당자라고 알려줬습니다. 저는 그제야 크게 깨달았습니다. 한동안의 시간이 흘렀고 그가 진상 자료를 가지고 매우 보고 싶어 하는 모습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저는 전혀 그를 떠올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저는 진심으로 그가 진상 자료를 본 후, 진상을 깨닫고 더는 그런 부도덕한 일을 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생각 밖에도 그는 오히려 저를 신고했습니다. 저는 보위과 과장에게 그 구매 담당자가 저를 신고한 진실한 이유를 알려드렸습니다. 과장은 제게 이로운 것을 보면 도의를 잊는 이런 사람을 앞으로 주의하고 더는 그에게 자료를 주지 말라고 주의를 시켰습니다. 저는 보위과 과장에게 매우 감사했습니다.

두 보위과 과장은 직장에서 제도를 바꾼 후에도 계속 잔류 사무소에 남아 과장을 맡았습니다. 부과장은 외지 사람이었는데 여기에 집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복을 받아 외지의 사람이 살 수 없는 경제형 주택을 샀습니다. 저와 남편은 모두 기뻤습니다.

4. 주민위원회 주임의 후회

1999년 7월 20일, 중공 사당(邪黨)이 파룬따파를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직장은 그때 한 주민위원회 주임이 적극적으로 사당을 추종하며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 했습니다. 그때 저는 아직 결혼하지 않은 아가씨였고 그는 저를 더욱 만만하게 여겼습니다. 그는 수갑으로 저를 채워 주민위원회에 밤새 가두면서 ‘회개서’를 쓰도록 강요했습니다. 아울러, 파출소 구역 관할 경찰은 저의 부모님을 갈취해 자신들에게 좋은 담배와 좋은 술 등의 고급 물품을 사게 했고 또 저의 부모님이 자신들이 먹도록 보신탕을 사 오게 했습니다. 다음날, 또 저를 파출소에 불법으로 가두고 ‘보증서’를 쓰도록 강요했습니다.

그가 저를 한 구치소에서 불법으로 다른 한 구치소로 옮기는 도중에 제게 “내가 먼저 당신을 구치소로 보내자 바로 위장병으로 병원에 입원했어요. 아직 퇴원도 하지 못했는데 병을 달고 일하는 중이에요.”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업보는 이제 막 시작됐다는 사실을 전혀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는 저와 다른 한 수련생을 불법적으로 세뇌 반에 가둔 후, 딸이 결혼하는데 집을 살 돈이 없어 자기의 집을 팔아서 딸에게 집을 사주고 딸과 사위와 함께 살았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사위와 관계가 틀어지면서 이사해 나오고 싶었지만 집을 살 돈이 없는 데다가 병이 나날이 심해져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친척이 제게 “이 주임이 당신을 밤새 주민위원회에 가두고 수갑까지 채운 것은 위법이에요. 그가 법의 제재를 받을 수 있도록 내가 당신을 도와 소송할게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저는 이미 그 주임이 매우 심하게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고 게다가 그는 저와 다른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한 사실을 몹시 후회했습니다. 저는 그래도 그만두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이미 업보를 받고 있고 소송 여부는 이미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5. 선념이 있는 작업장 주임

직장 이익이 좋지 않던 무렵 저는 임신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작업장은 재편됐습니다. 현직 주임은 저를 매우 잘 돌봐줬는데 매달 공장 부서에 가서 원가 결산을 한 차례 하고 임금표를 한 번 만드는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일이 없었습니다. 저는 매일 자진해서 동료들을 도와 물을 끓였고 일부 소모품을 가져왔으며 사무실을 청소하는 등 힘이 닿는 대로 일했습니다.

작업장 주임은 제가 아이를 낳고 갓 퇴원했으며 남편이 현 공안국 경찰관에 의해 납치됐다는 소식을 듣고 동료들과 함께 곧장 우리 집으로 저를 보러 왔습니다. 그는 제게 출산휴가비는 매월 얼마 받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기본임금의 몇 퍼센트를 받아 수령액은 백여 위안(약 만여 원)이 된다고 말하자 그는 매우 놀라며 “이 돈으로 어떻게 살아요? 남편도 납치돼서 직업이 없는데 집세도 내야 하고 아이도 키워야 하잖아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곧 동료들에게 작업장에서 제게 매월 3백 위안(약 5만 원)을 보충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동시에 미안해하며 제게 “작업장도 지금 비교적 어려워서 이만큼 밖에 보충해줄 수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급한 불을 끄도록 도와준 주임에게 매우 감동했습니다. 이 선행은 역시 주임에게 복을 가져왔습니다. 작업장은 나중에 경영이 나빠졌고 또 기존 주임이 인계받았지만 지금 주임은 이로 인해 어떠한 직급 강등을 받지 않은 것은 물론 계속 공장 기술 부서에서 주임직을 맡았습니다.

기존 작업장 주임은 제가 결혼하지 않았을 때 저의 책임자였다가 나중에 다른 부서로 전근돼서 근무했습니다. ‘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이 발표된 후 삼퇴(중공의 당·단·대 조직 탈퇴) 큰 흐름도 이로써 서막을 열었습니다. 저는 ‘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과 ‘장쩌민 그 사람’ 등 책을 모두 그에게 보도록 가져다주었는데 그는 특별히 보기 좋아했고 또 자기의 친구에게도 줘서 보게 했습니다.

그는 앞으로 새로운 자료가 있으면 반드시 자기에게 보여줘야 한다며 거듭 당부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공산당 탈퇴를 권유했고 그는 매우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이로써 그 역시 복을 받아 승진돼 공장 부서의 생산부장이 됐습니다. 그의 아내는 1999년 후에 암에 걸렸지만 지금 20여 년이 지나도 건강이 여전히 좋습니다.

저는 출산휴가 후, 다른 한 작업장으로 전근됐고 주임은 공장에서 가장 젊은 중간 계층 간부였습니다. 게다가 나이가 많은 미혼 젊은이였고 업무나 인맥이 미숙했습니다. 작업장은 하도급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제게 “작업장이 이제 막 시작됐으니 아직 많은 어려움이 있어요. 당신은 회계만 할 수 없고 또 생산직도 해야 하고 작업장 원자재·소모품 등 물자도 구매해야 해요. 보관, 물류 발송, 현장 관리, 후방근무 보장 등 모든 업무를 다 겸해야 해요.”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업무가 더해졌지만, 임금은 몇백 위안(약 몇만 원)에 불과했으나 저는 승낙했습니다.

저는 작업장 원자재 구매 시, 자진해서 제게 많은 영수증을 발행하는 경우를 만나게 됩니다. 저는 매번 모두 그들에게 자신은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사람이어서 거짓을 조작하지 않고 자신에게 속하지 않은 돈은 더 받지 않는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제가 체면 차리는 말을 한다고 생각해 직접적으로 영수증을 많이 발행해주었습니다. 매번 돌아와 저는 모두 작업장 주임에게 알려주었고 재무 보고 후, 여분의 돈을 또 재무팀에 제출했습니다. 그래서 재무·물자 심사과, 공장장, 작업장 동료들은 모두 제가 탐하지 않고 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주임은 제가 지나치게 바보라며 “당신은 소득이 높지도 않은데 이렇게 많이 청구된 돈을 자신을 위해 가정에 보태면 안 돼요? 또 재무팀에 제출해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자신은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이며 이 불의의 재물은 가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느 날, 보위과 과장이 저와 작업장 주임을 불러서 상급에서 저를 세뇌센터로 보내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작업장 주임은 잠깐 생각하더니 “저는 동의하지 않아요. 이 사람은 우리 작업장의 핵심이에요. 이 사람이 가면 우리 작업장은 어떻게 해요? 누가 와서 일해요?”라고 말했습니다. 과장은 윗선에는 임무가 있다고 말하자 주임은 “저는 상관 안 해요. 제게 물어보시니까 저는 절대 동의하지 않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주임이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는 박해를 면하게 됐고 주임에게도 행운이 잇따랐습니다. 이 젊은 주임은 나중에 아내를 맞이하게 된 것은 물론 아들을 낳았고 게다가 공장 연말 결산 후, 다른 모든 작업장은 전부 손해를 봤지만, 우리 작업장은 이윤을 남기게 됐습니다. 공장 간부는 대 회의에서 다른 사람들은 모두 심한 비평을 받았지만 주임만 공장장의 큰 칭찬을 받았고 많은 장려를 받았습니다.

6. 마음씨 착한 이웃과 집주인

더 많은 세상 사람들에게 파룬따파 진상을 알게 하려고 저는 제가 세 들어 사는 마을에 몇 번이나 진상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많은 선량한 이웃들이 진상을 깨닫고 정의와 선을 선택했습니다.

어느 날 퇴근길에 저는 누군가 운전하며 저를 미행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마당 안에 돌아와 자전거를 세우자마자 1층에 세 들어 사는 아주머니가 얼른 저를 한쪽으로 잡아당기며 “오늘 누군가 당신들을 찾으러 왔어요. 기다리면 또 올 거예요. 그들은 이미 여기서 일주일이나 잠복했어요. 당신 집안에 무슨 물건이 있으면, 그들에게 발견되지 않도록 얼른 잘 치워요. 그들은 또 당신 남편이 위험한 사람이라고 했는데 당신들은 안전에 주의해야 해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선량한 아주머니가 위험을 무릅쓰고 적시에 제게 알려준 것에 대단히 감사했습니다.

제가 올라와 집 문을 열자마자 집주인 아내가 급히 계단을 내려와 다급하게 제게 “오늘 누군가 당신들을 찾으러 왔어요. 기다리면 와서 가산을 몰수할 수 있어요. 당신은 얼른 집안의 대법의 물건을 전부 내게 줘요. 내가 도와서 잘 보관해줄게요. 일이 끝나면 다시 당신에게 돌려줄게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집안에 혼자 보는 대법 책이 좀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집주인 아내는 “그래도 제게 얼른 줘요. 아무도 모르게 하겠다고 약속할게요. 때가 되면 한 권도 부족하지 않게 당신에게 돌려줄게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날 밤에, 현 국보 경찰이 와서 가산을 몰수했는데 저와 남편은 파출소로 납치돼 밤새 불법 심문을 받았고 결국 그들은 아무런 소득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다음 날 아침 일찍 우리를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우리를 놓아주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겨 자주 마을 위원회와 집주인에게 압력을 가해 우리가 이사하도록 몰아세웠습니다. 나중에 이사할 때, 저는 많은 어린이용 물건을 모두 1층의 그 아주머니에게 줬습니다. 왜냐하면 아주머니는 최근에 통통한 손주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집주인 아내는 중년에 아들을 얻어서 아이 돌보미를 고용했습니다. 어느 날, 돌보미는 유모차를 끌고 아기를 데리고 나가서 놀러 가다가 아래 계단을 내려갈 때 잘 부축하지 않아 아기가 유모차와 함께 계단에 굴러떨어졌습니다. 저는 기척을 듣고 문을 열고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천만다행히도 아기는 아무런 일도 없었고 어디도 다치지 않았으며 놀라서 울기만 했습니다. 정말 대법 사부님의 보호 덕분입니다!

저의 새로운 집주인은 퇴직하기 전에 직장의 책임자였습니다. 저는 ‘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 책을 그에게 보도록 줬고 그는 매우 보기 좋아하여 특별히 저를 찾아와 자신이 천천히 보도록 빌려줄 수 없는지 물어보았습니다. 남편은 그에게 줘도 된다고 말하자 그는 유난히 기뻐하며 이 책이 매우 귀하다며 친구들에게도 보도록 빌려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집주인 아내도 매우 선량했습니다. 저와 남편이 출근하느라 매일 일찍 나갔다가 늦게 돌아왔는데 자발적으로 우리를 도와 보수 없이 밥을 짓고 요리를 만들어 우리가 퇴근하면 맛있는 밥과 요리를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우리는 정말 어떻게 두 분께 감사드려야 할지 몰랐습니다. 우리는 집주인과 한 가족처럼 지냅니다.

어느 날 퇴근 후, 집주인 아내는 제게 오늘 한 젊은이가 와서 우리가 이곳에 살지 못하도록 거절하라고 했다고 알려줬습니다. 집주인 아내는 그에게 “여기는 그들의 직장 기숙사에요. 여기에 살지 않으면 어디에 살아요? 당신이 그분들에게 살 집을 줄 건가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것은 분명 국보 경찰이 와서 일을 벌인 거예요. 예전에도 집주인에게 강요해서 우리가 이사하도록 내몰았어요. 이번에 또 왔네요.”라고 말했습니다. 집주인 아내는 “우리는 그들이 두렵지 않아요. 그들을 욕해서 쫓아버렸어요. 누구를 살게 하든지 내 맘이니, 그들은 상관하지 못해요!”라고 말했습니다.

파룬따파 세계 홍전 30주년이 되었고 갈수록 많은 사람이 파룬따파의 훌륭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중국의 선량한 민중, 그들이 사악의 지속적인 파룬궁 박해 탄압하에서 자발적으로 파룬궁 수련생을 도와 이미 자신과 가족을 위해 큰 복을 가져왔습니다. 저는 더 많은 세인이 나서서 중공의 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박해를 반대하고 파룬따파를 지지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원문발표: 2022년 5월 3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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