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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 5.13] 사부님의 은혜 회상 “만년에도 만나기 힘든 기회와 인연 (상)”

글/ 중국 대법제자 멍언(蒙恩)

[밍후이왕] 파룬따파(法輪大法)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 지 이미 30주년이 되었고, 제가 대법을 수련한 지 28년이 되었습니다. 28년 전 중국에서 열린 사부님의 세 차례 공을 전하는 설법반과 두 차례의 공을 전하는 보고회에 참석해 현장에서 대법 사부님의 설법을 들었으며 대법의 크나큰 은혜를 받으며 대단히 운 좋은 생명이 되었습니다.

대법이 세상에 전해짐에 따라 겪은 온갖 풍파, 특히 사악한 중공이 20여 년간 대법제자에 대한 잔혹하고 처참한 박해 속에서 저는 순탄치 않게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시간은 세상의 모든 것을 소모할 수 있으나 마음속에 뿌리내린 대법은 세월의 변화에 따라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이미 금강이 주조한 깊이 뿌리박힌 ‘진선인(真·善·忍)’이 갈수록 진리의 빛을 발하고 있는 대법의 위력이며 창세주의 은혜인바 어떤 중공의 거짓말, 살육도 파괴할 수 없는 것입니다.

1. 법을 얻기 전의 특별한 경험

저는 중공이 정권을 빼앗은 후 60년대 고난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집안 어르신들은 이른바 ‘역사문제’로 중공에 수용된 사람도 있고, 중공의 ‘문화대혁명’ 운동 중 비판에 시달리다 자살한 사람도 있고, 우리 부모님은 강요에 못 견디어 시골로 내려가셨습니다. 어른들의 정신적 억압과 생활 불안 속에서 자란 저는 몸이 약하고 성격이 내성적이었습니다.

14~15살 때, 저는 큰 병을 얻었습니다. 저는 그때 시골로 내려가신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현지 농촌 학교에 다녔습니다. 농촌 학교는 초등학교 고학년생도 농촌 일에 참여하는 이른바 ‘일하면서 배우다’를 실행하였습니다. 노동이란 때로는 풀을 베고 흙을 나르고, 때로는 물에서 사료를 만드는 수초를 건졌습니다. 당시 사춘기에 접어든 저는 생리가 와도 물속에 들어가 수초를 건져야 했습니다. 나중에는 생리를 1개월 정도 했고 더 지나서는 ‘혈붕(血崩, 자궁 출혈)’과 같이 생리가 멈추지 않았습니다. 약을 먹고 주사를 맞아도 낫지 않아 결국 휴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상태로 얼마 동안 피를 흘렸는지 결국 저는 온몸에 힘이 빠지고 얼굴이 무서울 정도로 창백해졌습니다. 어머니는 애타게 약을 구하러 다니셨고 저는 약 냄새만 나도 토하고 싶을 정도로 약을 먹으며 주사를 아무리 맞아도 낫지 않았습니다. 그날 어머니는 한 읍내 진료소의 연로한 한의사가 제 병을 고칠 수 있다는 소식을 듣자 곧 사람을 찾아 저를 수레에 태우고 갔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도착하자 한의사가 안 계셨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갑자기 걸상에 털썩 주저앉아 펑펑 울기 시작했는데 저는 어머니가 그렇게 우시는 것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끌어당기고 진료받으러 온 사람이 와서 달랬는데 어쩔 수 없는 어머니는 “어떡하지, 우리 애가 죽게 됐어요.”라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날 어머니는 진료소에서 처방받은 인삼 보약을 들고 진료소를 떠나셨습니다. 거리에서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원하는 게 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 당시 부모님은 많지 않은 수입으로 아이를 키우고 노친을 부양해야 하다 보니 넉넉한 삶이 아닌데도 어머니가 그렇게 물으시자 정말 죽을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책을 갖고 싶어요.”라고 막연하게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데리고 그 마을의 유일한 서점으로 갔습니다. 70년대 중반이라 서점에 책이 많지 않았는데 저는 한 번 훑어보고 제목이 세글자인 책을 가리키며 “저걸 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기억에 점원은 철학책인데 알아볼 수 있겠냐고 물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마음속으로는 아주 심오하고 심오한 책을 찾고 싶었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위해 그 책을 사 들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온 저는 침대에 조용히 누워, 그 책을 보았는데 찾고 싶은 것이 아니었기에 한쪽 편에 내버려 두고, 천천히 자신이 죽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두려움은 없었으나 저를 위해 고생한 어머니께 아직 보답하지 못한 섭섭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누워있다가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바람이 물건을 말리듯이 아랫도리가 깨끗해지는 느낌이 들면서 마치 누군가가 저에게 나았다고 알려주는 것 같았습니다. 미혹 속에 있던 저는 눈을 뜨고 천천히 일어나 앉았고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다시 화장실에 갔더니 정말 더 이상 출혈하지 않고 단번에 깨끗해졌습니다. 저는 삼탕을 끓이고 계시는 어머니에게 “엄마, 나 나았어!”라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근심 어린 얼굴로 “약을 안 먹었는데 나았다고?”라고 멍하니 묻자 저는 “나았어요. 출혈이 멎었어요.”라고 단호히 말했습니다. 슬픔이 어린 어머니 얼굴에 희색이 돌면서 “어떻게 나았어?”라고 계속 물었습니다. 뭐라고 할 수 없는 의문이 제 마음속에 오래 남아 있었습니다, 어떻게 나은 것인가, 누가 나를 어둠 속에서 구해주었을까?

또 한번은 중학교에 다닐 때였습니다. 저는 혼자 버스를 타고 할머니 댁으로 가는 도중에 베이징 첸먼(前門)역에서 차를 갈아타야 했습니다. 당시 70년대 말이었는데 첸먼에는 외지 관광객은 많으나 버스는 적었고 사람들도 질서정연하게 줄을 서지 않아 차가 오면 벌떼같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날은 마침 무더운 여름이었습니다. 가까스로 차에 올라탄 저는 물 샐 틈 없이 붐비는 사람들 속에서 매우 힘들게 차창 가로 밀려갔습니다. 때마침 차에서 내리는 사람이 있어 저는 무거운 짐을 벗어놓듯이 바로 빈 자리에 앉았습니다. 자리에 잠시 앉았던 저는 갑자기 옆에 깡마른 전족의 할머니가 서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자리를 권하려고 했으나, 물 샘 틈이 없는 버스 안에서 어쩔 수 없이 일부러 차창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이때 할머니가 “절이 무너져도 신이 무너지면 안 돼.”라며 또 몇 마디를 하셨는데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저는 불안한 마음에 한참을 망설이다가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일어서려는데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차가 달리던 중이라 아직 역에 도착하지 않았는데, 할머니는 어디로 가셨을까? 너무 이상해? 당시 저는 “절이 무너져도 신이 무너지면 안 돼.”라는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으나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어른이 되어 삶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저는 인간 세상의 다투고 사랑과 욕망의 거센 흐름에 휩쓸려 마음이 힘들고 괴로웠습니다. 늘 뭐라고 할 수 없이 하늘을 바라보며 삶은 도대체 무엇인가? 높고 아득한 하늘에 누가 있을까? 책을 찾아보았지만, 고서는 알아볼 수 없고 ‘십만 개의 무엇 때문에’는 저의 의문을 풀 수 없었습니다.

2. 파룬궁을 처음 알다

1993년 어느 날, 기공으로 건강을 챙기기를 즐기시던 어머니가 파룬궁(法輪功)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파룬궁’ 책을 저에게 주면서 보라고 하셨습니다. 다 보고 나니 두꺼운 편도 아닌 그 책이 저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당시 사회는 이미 물욕이 범람해 사람마다 오로지 돈만 추구하는 뻔뻔스러움과 계략을 연구함이 유행하고 있었는데, 이 책은 의외로 어떻게 마음을 닦고 훌륭한 사람이 되는지를 말하였습니다!

중공의 무신론 교육을 받은 저는 처음 책에서 사람이 신불의 경지까지 닦을 수 있다고 말한 것을 보고 정말 의외였습니다. 마치 한 줄기 빛이 어둠을 뚫고 마음속까지 다가온 것 같았습니다. 원래 사람은 그렇게 고귀한 생명이 될 수 있었구나! 그날 어머니께서 파룬궁의 동작을 연마하시는 것을 보았는데 뜻밖에도 매우 아름다웠고 친절한 즐거움이 마음속에서 우러나왔습니다. 제가 따라서 연공을 배울 때, 진짜로 무엇이 빙빙 돌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 후 제 마음은 무엇에 끌리듯이 파룬궁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파룬궁의 창시자인 리(李) 선생님께서 전국 각지에서 직접 공을 전하는 학습반을 베이징에서는 이미 13기까지 전수했고 많은 사람이 리 선생님께서 다시 베이징에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1993년 말, 마침내 베이징에 오신 리 선생님께서, 동방 건강박람회에서 제자를 데리고 병을 치료하는 효과가 매우 신기하다며, 휠체어에 앉은 사람도 그 자리에서 일어나게 하셨고, 허리가 90도로 굽혀진 사람마저 허리를 곧게 치료해주셨다는 등등의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어머니는 우여곡절 끝에 건강박람회에서 임시로 추가한 리 선생님의 3차 보고회 표를 샀습니다. 당시 93년 동방 건강박람회에서 파룬궁은 특별 초대 공파(功派)였다고 합니다. 사부님께서 박람회에서 한 기공 보고회는 사람들에게 한차례로 모두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없을 정도로 보고 듣는 것이 모두 새로웠습니다. 박람회 조직위원회는 폐막식 당일 3차 보고회를 추가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베이징 사람들이 입소문으로 전하던 매우 신비한 리 대사님을 이 3차 보고 회의에서 처음 뵈었습니다.

그날 오전 우리가 직접 보고회 강당에 갔을 때 늦지는 않았지만, 회의장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끌고 바로 앞으로 나갔는데, 마침 앞 4, 5열의 문 옆쪽에 누가 옷으로 자리를 몇 개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고, 나는 가는 김에 남의 옷을 걷어내고 어머니를 끌어당기면서 앉았습니다. 마음속으로는 스태프들이 자기 친척에게 남겨준 뒷거래 입장권일 텐데 일단 앉고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잠시 후 옷 주인 두 여성이 자리를 찾아왔는데, 제가 옷으로 자리를 차지하면 안 된다고 버젓이 말하자 “다른 데로 가자.”라며 가버렸습니다. 파룬궁 수련에 들어가서야 그 두 여성이 일찍 도착한 보고회 파룬궁 수련생 자원봉사자였음을 알았습니다. 저는 그때 속인들 속에서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대법을 수련하지 않고는 자신의 이기적인 행동을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떠들썩하던 강당에 울려 퍼지는 박수 소리에 고개를 들었을 때, 저는 사부님께서 이미 강당 입구에 서서 우리를 보고 계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잠깐 멍해졌습니다. 이분은 정말 바르시다! 사부님은 책 속의 사진보다 젊으시고 우뚝 솟은 큰 키에 옷차림이 검소하지만, 보통 사람들의 깨끗한 모습과는 달리 자애롭고 위엄이 있었는데 보는 이로 하여금 머리를 숙이게 하였습니다. 제 주위의 많은 사람이 손을 뻗어 사부님과 악수하였는데, 저는 그 자리에 서서 마치 제압된 것처럼, 감히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며 여러 사람과 악수하면서 연단으로 향했습니다.

사부님께서 강의를 시작하시자 조금 전까지 소란스러웠던 강당은 순식간에 조용해졌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 대부분은 치료 목적으로 왔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론을 듣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사부님께서는 우리 쪽을 보시면서 이론을 들어보고 싶은 사람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계셨습니다!

그 후 저는 사부님께서 강의하신 내용에 단번에 매료되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인생의 많은 의문점을 하나하나 명시하셨습니다. 사전문화가 이런 일이었구나! 사람은 원래 참 아름다웠구나! 사람은 확실히 원숭이가 변하는 게 아니구나! 예전에 어떤 기공반에도 참가한 적이 없던 저는 모든 기공이 이런 것을 말하는 줄 알고 속으로 원래 기공이 이렇게 박대정심(博大精深)한 것이니 다음에 무슨 기공 보고가 있으면 또 듣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사부님께서는 바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말하는데 당신은 절대로 가지 말라. 좋지 않은 것을 들으면 귀에서 안으로 부어 넣게 된다. 한 사람을 제도하기란 아주 어려운데, 당신의 사상을 개변하기가 아주 어려우며, 당신의 신체를 조정(調整)하기도 아주 어렵다. 가짜 기공사는 아주 많다. 설령 진정한 정전(正傳) 기공사라 할지라도 그 기공사가 정말로 깨끗한가? 어떤 동물은 아주 흉악한데, 그런 것이 그의 몸에 오르지는 못하지만, 그 또한 밀어내지 못한다. 그는 광범위하게 이런 것을 건드릴 능력이 없으며, 더군다나 그의 강습생, 그가 거기에서 내보내는 공에는 혼잡한 것이 무엇이든 다 있다. 그 자신은 그런대로 꽤 바르지만, 그의 강습생은 바르지 못하고 각종 부체를 가지고 있으며, 무엇이든 다 있다.”[1]

​단번에 저는 분명히 깨달았고 즉시 리 선생님의 이 공을 배우기로 다짐했습니다,

보고회 마지막에 사부님께서는 장내의 모든 사람을 일으켜 세워 왼발을 구르라고 하면 왼발을, 오른발을 구르라고 하면 오른발을 구르라고 하시며 병을 치료해주셨습니다. 거대한 모습으로 연단에 서 계시는 사부님께서 “구르세요.”라고 말씀하실 때 사부님의 큰 손이 온 장내를 휘두르셨는데 저는 사부님의 매우 길어 보이는 듯한 팔을 휘두르는 순간 그 동작이 날쌔고 사납게 보였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손을 휘두른 후 무언가를 움켜쥐고 무대 뒤로 가셨는데 연단 뒤쪽까지 가시더니 허리를 굽혀 또 마치 무언가를 내려놓듯이 움켜쥔 손을 풀고는 당신 팔을 쓸어내리셨습니다.

그날 두 시간의 보고회가 금방 끝난 것 같았는데, 더 듣고 싶은 저는 사부님께서 언제 또 강의하실지 모르는 아쉬움에 회의장을 떠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주춤거리고 있을 때, 강의를 마친 사부님께서 다시 마이크 앞으로 돌아오시더니 톈진에서 학습반을 할 테니 베이징에서도 갈 수 있고, 어디에서 표를 판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저는 곧 아무리 멀어도 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날 저는 아주 순조롭게 톈진 제1기 전공설법(傳功講法) 학습반 표를 샀습니다.

​그날 강당을 나올 때 온몸이 홀가분했는데 그것은 제가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날아오를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나중에서야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가지였음을 알았습니다!

3. 톈진 제1기 전공설법 학습반에 참가한 경험

1) 뛰어난 공법

저와 같이 기공을 연마한 적이 없고 중공 무신론 통치 아래 중국 전통문화 사상을 잃은 사람이 처음 리 선생님의 전공설법 학습반에 참가한 것은 정말 환골탈태한 심신 변화 과정이었습니다. 설법 첫날 사부님께서 제 몸을 조정해 주셔서 몸이 정말 홀가분해졌습니다. 다음날 사부님께서 천목을 말씀하실 때 저는 천목 부위에 회전하는 터빈 같은 것이 매일 안으로 돌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며칠째 수업인지는 잊었는데 저는 갑자기 강의하시는 사부님의 몸에서 끝없는 빛을 발하고, 특히 머리에 빛이 지붕을 뚫고 있는…, 저는 아직 감히 믿지 못하며 속으로 ‘이분은 ‘부처님’이 아니신가?‘ 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다음날 또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부터 시작하여 어떤 사람은 전신에 오한이 나서, 마치 독감에 걸린 것처럼 뼈마저 모두 아픈 것을 느낄 것이다. 대다수 사람이 국부적으로 불편함을 느낄 것인데, 다리가 아프거나 머리가 어지러울 것이다. 당신이 이전에 병이 있던 곳은 아마 기공을 연마(練)하여 나았고, 또는 어느 기공사가 봐주어 나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또 새로 들춰 나온다. 그것은 그가 당신에게 낫게 치료해 준 것이 아니라, 다만 당신에게서 뒤로 미루어 놓았을 뿐, 아직도 그 위치에 있으며, 당신에게서 현재 재발하지 않아도 장래에 재발하게 한다. 우리는 그것을 모두 들춰내야 하고, 당신에게서 모두 쳐서 내보내야 하며, 뿌리부터 전부 없애버린다.”[1]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이런 증상들은 다리가 아프고 머리가 아팠으며 독감처럼 몸이 오한이 났고, 또 그 해에 ‘혈붕’이 묘하게 나았지만, 월경이 줄곧 비정상적이어서 2~3개월에 한 번씩 오던 것 역시 학습반에서 사부님께서 조정해 주셨는데, 지금 60세에 가까운 나이에도 월경이 오고 있습니다.

처음 전수반에 참가한 저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은 처음 듣는 이야기지만, 수업 시간에 이해하지 못할 때 아주 작은 일까지 포괄해 사부님의 응답을 바로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사부님께서 ‘법신(法身)’을 강의하시자 저는 유치하게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면 화장실 가기가 얼마나 불편할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사부님께서 그는 그렇게 따라다니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부님께서 연공 동작을 강의하실 때, 당시 멋을 부리던 저는 ‘연공할 때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으면 안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나중에 사부님께서 우리는 연공할 때 될 수 있는 대로 헐렁하게 입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는 그때 사부님을 리 선생님이라 즐겨 불렀는데, ‘사부님’이라는 존칭이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어떤 수련생이 사부님이라고 부르면 저는 공장이나 식당에서 부르는 그 ‘사부(師傅)’인 줄 알고 ‘리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게 더 점잖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수업 시작 전 수련생들은 미리 강당 밖의 휴게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저는 신 수련생이라는 생각으로 홀로 강당 입구에 있는 식물 옆에서 수업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문득 밖으로부터 대기실을 지나시는 사부님을 발견한 저는 “리 선생님!”이라고 외쳤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멈춰 서서 천천히 저를 돌아보시고 아무 말씀 없이 단수입장(單手立掌)을 하셨는데 표정은 장엄했습니다. 당시 저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답례를 하려 했으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사부님의 모습을 따라 한 손을 세워 들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아무 말씀 없이 강당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수업 시간에 사부님께서는 합장은 불가의 예절이며 사부가 한 손으로 하는 것이지 당신이 사부에게 한 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두의 웃음소리에 얼굴이 달아오른 저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그 당시 아무런 수련의 기초도 없는 저와 같은 수련생을 마주하신 사부님께서 얼마나 마음을 쓰셨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어 사부님께서는 도가의 수련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수업을 시작하셨는데, 그때 저는 부끄러움만 생각하다 보니 사부님께서 하신 이야기의 함의를 몰랐습니다. 이십여 년 후 어느 날, 제가 잘하지 못해서 낙담하고 있을 때, 사부님께서 그 당시에 하셨던 수련 이야기가 마음속에 떠올랐습니다. 아, 문득 이야기의 뜻을 깨달은 저는 신심이 증강됐습니다.

법 전수반에서, 저는 또 특히 울음이 많아졌는데 몇 번이나 수업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면 어쩔 수 없는 감격에 울음을 터뜨렸고 또 한번은 마치 가슴이 터질 듯이 울면서 ‘얼마나 힘들게 당신을 찾아 헤매었던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도 왠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평소에 쉽게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라 부모님도 저를 마음이 강하다고 하셨으나 사부님을 만나면 저절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가끔 수업 시간에 저는 사부님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머릿속 기억을 찾아 어디서 사부님을 만났었는지 알고 싶어도 답안이 없었으나 마음속으로 오랫동안 찾던 분을 드디어 오늘에야 만났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때 막 법을 얻었으니 자연히 상상이 안 되지만, 이 세상에서의 기이한 만남은 대법이 벌써 저를 지켜주고 있었고, 더구나 어린 시절 자신이 죽으려고 하면서도 찾고 있던 심오하고 심오한 책이 바로 그때 들고 있던 파룬따파이며, 즉 훗날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轉法輪)’이라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2) 정토에 들어서다

사부님께서 당시 9일 학습반의 수업료는 신 수련생은 겨우 50위안(약 9천 원)이었으나 베이징에서 당시 가수 콘서트의 입장료는 몇백 위안에 달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부님께서 여러분에게 준 것은 모두 최고의 말로 묘사하기 어려운 위대한 것입니다.

사부님께서 직접 하신 전공설법반에 참가한 것은 마치 하나의 정토(淨土)에 들어간 듯이 속세의 모든 난장판을 차단하고 듣는 사부님의 강의는 감로를 마시듯 마음이 맑고 깨끗해졌습니다. 만약 속세에 원한이 있다면, 사부님의 법을 듣고, 다시는 원한을 품지 않을 것이며, 삶과 사회의 불공평함을 느끼며 화가 난다면, 사부님의 설법을 듣고, 당신은 더 이상 화를 내지 않을 것입니다.

무릇 이런 여러 가지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인간사 어지러움 그 얼마이든가 쌓이고 쌓인 은혜와 원한 수없이 거쳐왔구나 마음은 악하고 업은 커 희망이 없으나 대법은 연원(淵源)을 모조리 풀어 가누나”[2]

사부님께서는 정말 사람을 책임지고 사회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법 전수반에서 좋은 사람과 좋은 일이 자주 일어났습니다. 물건을 주워서 원주인에게 돌려주는, 화장실 청소를 묵묵히 도우며 환경 위생을 유지하는, 어려움에 부닥친 신 수련생을 자발적으로 돕는 등 온 전수반은 상서로운 화목함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사람 마음은 쇠가 철 같으나 철이 아니고, 불법(佛法)은 용광로와 같은 진짜 용광로이다.”라는 말이 가슴에 자꾸 떠올랐습니다. 그때부터 떠돌던 제 마음은 돌아갈 곳이 생기고 막막한 인생도 방향이 잡혔습니다.

학습반 마지막 날은 수련생의 제기한 문제를 해답해 주는 날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무엇을 물을지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집착입니까? 누군가 제가 묻고 싶던 물음을 물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머니에 대한 정이 깊다 보니 어머니가 저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 같아 모든 것을 다 해드리고 싶어 하는 것도 너무 집착하는 것이 아닌지 궁금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수련자로서 우리의 사랑이 더 넓어야 하고, 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천하를 사랑해야 한다고 사부님께서 해답하셨습니다. 그때 사부님의 말씀을 듣자 눈물이 얼굴을 적셨고 사부님의 말씀이 마음속에서 오래도록 맴돌았습니다, 저는 어쩌면 이렇게 운이 좋게도 좋은 사부님을 만났을까요.

학습반이 끝나고, 대법이 정화해 준 생명이 된 저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알았습니다. 직장에서 저를 암암리에 궁지에 몰아넣었던 사람을 용서하고, 더는 옥신각신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사회에서 저를 해친 사람을 복수하려던 마음을 내려놓고, 더 이상 개인의 이익을 위해 뒤죽박죽인 인간관계를 유지하지 않았습니다. 가정에서 선한 마음으로 부녀관계를 처리함과 아울러 대법의 아름다움을 친지들에게 전했습니다. 갈등과 오해 속에서, 이익을 빼앗길 때, 상대방이 자기 엄마라면 어떻겠느냐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수련이 서툴렀던 저는 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을 그 당시의 가장 순수한 마음으로 이해하였기에 반드시 가장 순수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고, 사심 없이 모든 생명에 잘 대하려 했습니다.

옛사람이 쓴 글을 보면 “천하의 근심에 앞서 걱정하고 천하의 기쁨은 나중에 기뻐한다.” “우리 집 노인을 존경함으로써 남의 집 노인에게까지 미치게 하고, 우리 집 아이를 보살핌으로써 남의 집 아이에게까지 미치도록 한다.”라는 이름다운 정신 경지의 글들은 문인들의 좋은 소망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행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부님의 설법 학습반에 참가하고 나서 저는 옛 글자에 담겨 있는 모든 고상한 덕행들은 모두 생생한 현실로 되살아날 수 있는, 하지만 오직 파룬따파를 수련해야만 해낼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보다 훨씬 잘할 수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 파룬따파가 기적을 창조하고 있습니다.​

주:
[1]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轉法輪)’
[2]리훙쯔 사부님의 시사: ‘홍음2-대겁(大劫)을 풀다’

(계속)

 

원문발표: 2022년 5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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