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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그 시절을 되돌아보다

글/ 중국 허베이 신 수련생 구술

[밍후이왕] 중국공산당(이하 중공) 사당(邪黨)이 20여 년간 자행한 파룬궁 수련생 박해로 인해 행복하고 원만했던 가정들이 얼마나 많이 파괴되었는지 모른다. 박해 초기에 아내가 파룬궁을 믿는다는 이유로 중공 관계자들은 일찍이 나에게 이혼을 강요했고, 이혼하지 않으면 해고하겠다고 큰소리쳤다. 하지만 나는 엄청난 압력에도 올바른 선택을 했다. 이를 악물고 이혼을 하지 않았다. 지난 일을 돌이켜보며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가호에 감사드린다. 제가 그 간고한 세월을 지나오게 하시고 처자식이 흩어지지 않게 하시고 원만한 가정을 이루게 하셨다.

1. 화목한 가정

집에서 나는 좋은 남편이라고 할 수 없었다. 집안일도 잘하지 않고 가족에게도 관심이 별로 없고 성질도 사나워 늘 하찮은 일로 아내와 싸웠다. 특히 가정에서 나 때문에 고부간의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는 비록 이혼하지는 않았지만, 그와 다를 바 없었다. 가정의 따뜻함은 말할 것도 없고, 속마음을 말하자면, 그냥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아내가 대법을 배운 후 사람이 완전히 변해 건강해지고 성격도 좋아져 나를 원망하지 않고 나의 모든 결점을 포용했다. 고부 관계가 좋아져 가정이 화목하고 화기애애해 비로소 나는 가정의 따뜻함을 체험하게 되었다.

특히 어머니 병이 중했을 때 나는 공사장에서 일하느라 집에서 돌봐 드릴 수가 없었는데, 아내는 어머니를 집으로 모셔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정성껏 돌봤다. 내가 집에 돌아온 후, 어머니는 감동적으로 말씀하셨다. “딸이 하지 못하는 것을 며느리가 한다.” 나의 아버지가 침대에 누워 계실 때도 아내가 내 누이동생을 도와 자주 노인에게 배뇨관을 꽂고 대변을 닦아 드렸다. 며느리가 이렇게 시아버지를 모시다니 정말로 감동적이었다. 아이가 어려서 똥을 누일 때, 아내가 구역질이 나서 토하려고 했던 기억이 난다. 대법을 배우지 않았다면, 아내는 이런 일을 도저히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집에 미혼인 누이동생이 하나 남게 되자 아내는 맛있는 음식을 할 때마다 내 누이동생에게 갖다줬다. 누이동생이 몸이 아파서 병원에 데리고 가서 진찰을 받았는데 생활 중에 마난(魔難)을 만난 것이므로, 애써 선을 권하여 선해(善解)했다. 이런 일들을 모두 눈으로 본 나는 이 법이 너무 좋고, 진선인(真·善·忍)이 너무 좋다는 것을 느꼈다. 모든 사람이 다 법을 배우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대법의 아름다움이 내 마음속에 깊이 뿌리를 내렸다.

2. 마난이 닥치다

1999년 7월 20일, 중공은 파룬궁에 대해 미친 듯이 탄압과 박해를 개시했다. 텔레비전, 신문은 신랄하게 대법 사부님과 대법을 비방하여 세인들을 속였다. 아내와 아들은 공평한 말을 하려고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가 납치 수감, 벌금, 가산 몰수, 불법 노동교양 등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당시 교사였던 아내는 불법으로 공직에서 쫓겨났고, 고교 2학년에 갓 올라간 아들은 제적되어 단란했던 가정은 예전의 즐거움을 잃었다.

경찰이 하루가 멀다고 찾아와서 소란을 피우니 우리는 이미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다. 상사는 나를 정직시킨 후에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 가서 가족을 찾으라고 엄명했으며, 찾아서 돌아오지 못하면 출근하지 못하게 했다. 친척과 친구들은 연루될까 봐 모두 나와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나는 외로워 집에서 밥을 먹지 못하고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배고프면 라면을 끓이고 때로는 고통스러워 살고 싶지 않았다. 정말 밧줄을 찾아 목을 매고 싶었다.

이때 경찰이 그들을 수배 중에 있었는데, 밖으로 떠돌아다니는 한 대법제자가 개인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밤에 모험을 해서 우리 집으로 나를 보러 왔다. 그는 나를 위로하면서 절대 바보짓을 하지 말라고 권했다. 그러면 대법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사당이 틈을 타서 대법에 먹칠을 할 것이다. 사악은 바른 것을 이기지 못하고, 먹구름은 태양을 가리지 못하며 어둠은 곧 지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아내와 아들 모두 진선인의 기준에 따르는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들은 잘못이 없다고 나는 믿는다. 내가 가장 어려울 때 이 대법제자가 나에게 정신적 격려를 해준 것에 매우 감동하여 나는 자신감을 굳혔으며 대법이 반드시 누명을 벗을 날이 있을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나는 아무리 힘들고 압력이 높더라도 확고하게 지켜나가기로 결심했다.

나는 본래 고혈압이 있었는데 한번은 집에서 발병하여 하늘과 땅이 빙빙 돌았다. 가까스로 버티며 지도자에게 전화했더니 지도자는 내가 사고 날까 봐 바로 나를 출근하게 했다. 하지만 나더러 승용차 운전을 하지 못하게 하고 가장 힘든 일을 하게 했다. 그때는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못했고, 모두 나에게서 멀어졌으며, 심지어 어떤 사람은 나를 보기만 해도 멀리 돌아갔다.

어느 날 7~8명의 경찰이 직장에 와서 나를 찾았는데 그중 한 명이 수사과 장(張) 과장이라고 자처했다. 게다가 모두 열 몇 명의 직장 보위과 사람들이 방안을 한 바퀴 둘러앉았고 나는 중간에 앉았다. 그 자칭 장 과장이라는 사람은 내 맞은편에 앉아서 범인을 신문하는 것처럼 내 아내의 행방을 물었다. 그리고 내 아내를 잡는데 5만 위안(약 950만 원)의 현상금을 걸겠다고 했다.

내가 말했다. “이 5만 위안은 정말 벌고 싶지만, 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아내가 어디 있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는 듣자마자 화가 나서 내가 진실을 말하지 않고 협조하지도 않는다면서, 손에 들고 있는 인쇄지를 들고 말했다. “여기 증거가 있소. 당신이 말하지 않아도 압니다.” 내가 말했다. “알고 있다면, 당신이 가서 잡으세요. 이 5만 위안을 당신이 벌면 얼마나 좋습니까! 하필 나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까?”

그는 갑자기 말문이 막혀서 어색해하며 화가 나서 “팍! 팍!” 책상을 몇 번 두드리며 말했다. “나, 이 사람은 사건을 본 적이 없지만, 당신이 말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찾을 수 있소!” 나는 당시에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책상을 치면서 그에게 물었다. “내가 법을 어겼습니까?!” 그는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아닌데 당신들은 왜 나를 이렇게 대합니까? 당신들이 내게 사건 처리에 협조해 달라고 했는데, 당신들, 이 태도는 마치 범인을 신문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잠시 교착 상태에 빠졌는데 그들은 내가 협조하지 않고 그들의 올가미에 걸려들지 않는 것을 보고 결국 나를 보내 줬다.

사실 나는 원래 겁이 많아 슬슬 기고 많은 사람 앞에서 말을 잘하지는 못하지만, 직장에서는 지도자, 동료들에게 업신여김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자리를 만날 때마다 경찰 앞이든 직장 지도자 앞에서든 나는 태연자약하게 놀라지 않고 하는 말이 구구절절 이치에 맞았다. 평소에는 이런 말을 하지 못해서 지나고 나면 답답해서 속이 터졌다. 이제 대법을 배운 후 깨달았다, 이것은 모두 사부님께서 주신 용기와 지혜였구나!

3. 직장 상사가 나에게 이혼을 강요하다

아내와 아들이 모두 간수소에서 풀려났는데, 내가 이렇게 큰 스트레스를 받는 것을 보더니, 그들도 마음이 너무 괴로워서 나를 위로하고 달래 줬다. 그러나 대법은 아직도 박해를 받고 사부님은 비방을 받고 계시며 그들은 계속 나가서 진상을 말하고 청원해야 한다고 했다. 당시에 나는 듣자마자 정말 무너져내려 노발대발하면서 소리쳤다. “이 나날은 지낼 수가 없어. 언제가 끝이야! 난 정말 참을 수가 없어!” 아내와 아들은 내가 이러는 것을 보고 어이가 없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의논했다. “다시는 이런 고통을 받지 않도록 잠시 이혼한 다음에 대법이 억울한 누명을 벗는 그날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결합해요.” 아내와 아들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몸만 빠져나갔다. 당시 사당이 파룬궁 수련생들을 미친 듯이 탄압하여 우리 집은 이미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다. 나는 내가 극한까지 감당했고 정신이 무너질 것 같아서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혼합의서에는 아내가 대법을 배워 박해를 받았기 때문에 이런 정신적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하고 이혼했다고 적혀 있었다.

아내와 아들이 갔다. 나는 이혼합의서를 들고, 나와 아내 각자의 직장에 가서 도장 날인하고 마지막으로 민정부(내무부)에 가서 처리했다. 그러나 처리할 때 반드시 혼인증이 있어야 하고, 없으면 200위안(약 3만 8000원)을 써서 보증해야 했다. 우리 혼인증은 벌써 없어졌다. 이때 나는 문득 깨달았다. 나는 아직 헤어지지 않았다. 원래 나도 헤어지고 싶지 않았는데, 이것은 사당이 강요한 것이다. 나도 목숨을 내걸고 그들이 나를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보겠다.

이 염두가 나오자 왠지 마음이 든든해졌다. 마치 돌 하나가 땅에 떨어진 것 같았다. 하지만 갈 때는 마음이 아팠었다. 진짜 이혼은 아니었지만 뭔가를 잃는 것처럼 정말로 마음이 아팠는데, 이제 기분이 달라졌고 (이혼하지 않겠다는) 내 결정이 옳은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략 2001년 여름에 우리 직장의 지도자들이 상부의 압력에 직면하여 또 나에게 이혼을 강요했고 이 일을 정치 공작으로 삼았다. 각자 맡은 책임이 있었는데, 나를 찾아 이야기하는 사람, 나에게 (지금 아내와 이혼 후 혼인 신고할) ‘대상’을 찾아주려는 사람이 있었다. 사장 비서와 노조 의장이 나를 찾아 이야기를 나누고, 노조 간사들이 나를 도와 ‘대상’을 찾아주려고 했다.

어느 날, 회사의 사장 비서와 노조 의장이 나를 찾았는데, 말하는 태도가 매우 딱딱했고, 나를 이혼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내가 뭣 때문이냐고 묻자 그들은 말했다. “당신이 이혼하면 당신 부인이 파룬궁을 연마하는 것은 우리 부서와 상관없게 돼요.” 나는 듣자마자 매우 화가 나서 강하게 말했다. “나는 헤어지지 않겠습니다! 아내는 나에게 옳지 않은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대법을 배운 후 우리 부모, 우리 가족에게 잘했는데 내가 왜 그녀와 이혼하겠습니까?! 그녀는 단지 개인 신앙의 문제일 뿐이고 ‘신앙의 자유’는 헌법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녀는 잘못이 없고 법을 어기지 않았으며, 나는 헤어지지 않겠습니다.”

그들은 듣자마자 화를 냈다. 어떤 비서는 큰 소리로 나를 위협했다. “나라가 연공하지 못하게 하면 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이혼하지 않으면 해고하겠소.” 내가 말했다. “그래, 당신이 나를 해고해. 나도 천안문에 가겠소!” 어떤 비서가 눈을 크게 뜨고 황급히 물었다. “뭣 하러 갑니까?” “청원하러 갑니다! 내 앞가슴에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가 쓰여 있고, 머리에 ‘00회사’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는 듣자마자 놀란 얼굴빛이 바뀌어 용서를 구하는 말투로 말했다. “아이고, 당신은 할아버지야, 할아버지, 당신은 절대로 가면 안 돼요! 당신을 자르지 않겠습니다! 자르지 않아요!” 말을 끝내고 쏜살같이 달아났다.

다음날 오피스텔 1층에서 5층까지 다 뒤진 노조 간사 2명이 나를 찾아서 말했다. “00 선생이 ‘대상’을 물색했어요. 00 병원의 간호장인데, 34살짜리 아가씨입니다. 오후에 만나러 가기로 했습니다.” 나는 듣자마자 화가 나고 우습기도 했다. 내가 이혼하지 않았는데 그들은 ’대상‘을 다 찾았다. 이 부서의 지도자는 대놓고 법을 어기는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나더러 중혼죄를 저지르라는 것인가!

그들 둘은 직원이고 지도자가 맡긴 임무를 완수하고 있었다. 평소에 잘 알고 있었다. 나도 그녀들에게 무슨 말을 하기가 쉽지 않다. 단지 웃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안 됩니다. 나는 그들 두 모자를 놓칠 수 없습니다.” 그중 한 사람이 말했다. “당신이 그녀로 인해 이렇게 큰 고통을 당한 것은 이야기하지 않고, 또한 회사에 이렇게 큰 영향과 번거로움을 가져왔는데, 무엇을 놓칠 수 없다는 말씀이세요?” 내가 듣자니, 그들이 어디 나를 위해서인가! 다 자기들 명(名)과 이(利) 때문이지 않은가?! 나야말로 그들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겠다. 이혼하면, 아내와 자식은 (파룬궁을 수련했다는 이유로) 방 한 칸 없고 땅 한 평도 없는데 어떻게 살겠는가?! 나는 그런 부도덕한 일을 하지 않겠다.

지나간 후 동료들이 이 일을 듣고 어떤 사람은 나에게 탄복했고, 어떤 사람은 나를 바보라고 말하고 또 어떤 사람은 “모두 기회를 찾아서 마누라를 바꾸는데, 00 선생이 그에게 기회를 줬건만, 그는 바꾸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4. 미력한 힘이나마 서로 도우다

그 어두운 날에 나는 아내와 이혼하지 않고 큰 압력을 무릅쓰고 걸어왔다. 내가 감당을 많이 했지만, 대법제자의 감당에 비하면 보잘것없다. 천안문 광장에서 남녀노소 대법제자들이 강포(強暴)를 두려워하지 않고 생사를 내려놓고 용감하게 나서서 “파룬따파하오! 사부님의 결백을 돌려달라!”라고 외치는 것을 보고서, 나는 비할 바 없이 큰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 대법제자의 위대함을 보았다. 나는 드디어 아내와 아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그들을 지지하고 그들과 함께 미력한 힘으로나마 서로 돕겠다고 마음속으로 결심했다.

훗날에 아내, 아들, 처제가 납치되고, 처남이 박해 받아 죽었을 때 나는 나서서 그들을 위해 정의를 펼쳤다. 경찰의 소란과 위협에 직면하면 언제나 나는 대법의 편에 서서 대법의 아름다움을 말하고 아내가 대법을 배운 후 시부모에게 어떻게 효도했는지를 말해 그들 말문을 막았고 아내에 대한 나의 불만을 부추기려는 악의를 무산시켰다.

그 가장 어두운 시기에 나는 처자와 한 번씩 생사를 알 수 없는 이별을 했다. 그들이 갈 때 생사를 예측할 수 없어서 나는 눈물을 머금고 이별했다. 그들이 마굴을 뚫고 돌아와서 나는 기뻐하며 그들을 위해 먼지를 씻어 주었다. 나는 한밤중에 차를 몰고 베이징 파출소에 가서 단식하는 아내를 맞이했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숨이 곧 넘어가려는 아들을 노교소에서 업고 나왔다. 나는 박해로 죽은 처남의 장례식에 가족을 대표하여 비통하게 참석했다. 나는 새벽이 밝기도 전에 차를 몰아 수련생들을 데리고 감옥에 가서 10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한 처제를 우리 집으로 데려왔다. 그들에게서 나는 신앙의 힘을 보았고 대법의 위덕을 보았다. 그들을 보며 나는 감탄하고 존경했으며 그 속에서 나의 심령을 씻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다른 성(省) 소재 노동교양소에서 앞당겨서 석방된 아내를 집으로 데려왔고, 일주일도 안 되어 이번에는 아들을 노동교양소에서 집으로 데려왔다. 모처럼 세 식구가 한자리에 모였는데 나는 설날처럼 기뻤다. 그들이 노동교양소에서 자신들이 겪은 놀라운 일들, 그리고 다른 대법제자들의 눈물겨운 장거를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나는 항상 눈물을 흘렸다. 가족이 모두 살아 돌아올 수 있어서 다행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이 모두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보호와 대법의 위력이 그들을 돌아오게 했다고 했다.

나의 이 적은 노력은 양심 있는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대법 사부님께서 오히려 무한한 보답을 해주실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만약 내가 아내와 이혼했고, 대법 사부님께서 보호하지 않으셨다면, 아마 오늘 나는 이미 세상을 하직했을 것이다. 한번은 심각한 교통사고에서 약간의 경상만 입었다. 또 한번은 여행 중에 하마터면 차가 사람을 칠 뻔했다. 또 아내가 세뇌반에 있을 때, 나는 매일 수련생과 함께 사람을 구하러 갔는데, 그때 혈압을 재면 200이 넘었다. 의사가 놀라서 빨리 입원하라고 했지만 나는 아무 느낌이 없었다. 그러나 나와 같은 몸 상태의 주변 사람은 어떤 이는 마비되거나 세상을 떠났다.

아들이 결혼할 때 나는 한 푼도 쓰지 않았다. 신부 측에서 집을 샀고, 인테리어도 했고, 집안 모든 살림, 혼례식까지 포함하여 모두 신부 측에서 처리했다. 후에 어린 손자가 태어나서도 외갓집에 있었고 우리가 돌볼 필요가 없었으며, 한 푼도 쓰지를 않았다. 그리고 어린 손자는 똑똑하고 예쁘게 생겨서 사랑을 독차지한다. 친지, 동료들은 모두 부러워하며 나에게 복이 있다고 말한다. 나는 자랑스럽게 그들에게 말했다. “이것은 모두 대법이 준 것입니다.”

지금 나는 아내와 이혼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친구는 나에게 참고 참아서 원만한 집이라며 칭찬을 했다. 현재 나는 이미 대법제자 중의 신 수련생이다. 비록 아직 잘 수련하지 못하지만, 내가 이 단체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비할 바 없는 행운과 자부심을 느낀다.

나는 잊을 수 없는 이 경험을 썼다. 첫째,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보호에 감사드리고, 둘째는, 파룬따파의 아름다움과 중공 악당의 사악함을 알리고 싶다. 세인들이 선악을 분명히 분별하며, 사당의 거짓말을 믿지 말고, 어서 삼퇴(三退, 중공 3대 조직인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 하여 평안을 보전하고, 자신을 위해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하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2년 4월 1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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