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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스승으로 삼고 잘 수련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오래전부터 저는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일부 문제에 대해 개인적인 견해를 이야기해 자신과 타인을 일깨우고 싶었습니다. 생각이 미숙해 줄곧 펜을 들지 못했으나 반복적인 법공부를 통해 깨우치고 인식이 갈수록 명석해져 글을 완성했습니다. 층차의 한계로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 잡아주시길 바랍니다.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수련생이 가족의 학업, 사업 및 자녀에 관한 일들에 지나치게 관심을 쏟고 신경을 쓰고 있는데 하나 분명한 것은 이것은 마땅히 없애야 할 집착입니다. 많은 사람은 이 집착을 없애지 않고 오히려 사부님께 아이가 공부를 잘하고 가족의 사업이 잘되며 자녀가 아이를 잘 낳게 등을 도와달라고 합니다. 정말 잘못에 잘못이 더해졌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정법 하러 오셨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를 제도하시고 정법시기에 속인 일은 관여하지 않으시며 법정인간 시기에 비로소 속인 일에 관여하십니다. 아울러 우리 대법제자는 형식적으로 속인의 삶에 부합할 뿐이고 속인 사회에서 수련하지만, 마음과 염두는 반드시 밖에 두어야 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시시각각 사부님의 설법을 명심해야 합니다.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하는 것, 이것이 바로 당신이 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제외하고 당신이 해야 할 것은 없으며, 이 세상에서 당신이 해야 할 것은 없다.”[1]

우리가 아이들의 학업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당연하며 이것은 어른의 책임입니다. 그러나 행한 바가 지나치면 집착이고 관심을 기울인 비중이 대법을 초과하면 더욱 마땅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이렇게 집착하는 것은 그를 뛰어나도록 하기 위한 것 아닌가요? 수련의 각도에서 보면 이것은 바로 틀린 것입니다. 어떤 이는 가족이 돈을 많이 벌고 자신도 많이 벌려고 하는데 뒷걱정을 덜기 위해서입니다.

자녀의 출산 문제에 대해 저는 문제가 더 심각한 것을 보았습니다. 아들딸이 결혼 후 몇 년간 아이를 낳지 않는 것에 집착하는 것은 물론, 사부님께 자녀에게 아들을 보내달라고 청을 드리기도 하는데 이것 역시 수련인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아닙니다. 사부님께서는 설법에서 일찍이 이 방면을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부처님께서 상관하시는 것은 생명의 승화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사부님께 가족을 보호해달라고 청을 드리면 사부님께서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당신이 자녀가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청을 드리는 목적은 무엇인가요? 이렇게 하면 당신이 제고를 촉진할 수 있을까요? 당신의 자녀가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당신 수련에 영향을 줄까요? 이것이 바로 우리가 수련하려는 부분 아닌가요? 우리는 법에 서서 법을 인식했을까요?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르고”[2]라고 반복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추구 자체가 틀린 것이고 어느 방면에 대해 느끼는 집착일 뿐입니다. 제가 이 일을 말하는 것은 일을 겨냥한 것이며 사람을 겨냥한 것이 아닙니다. 보편적으로 존재하기에 제가 제기하면 우리는 법에서 깨닫고 제고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 저도 잘하지 못했다가 나중에 법공부를 하면서 ‘수련 상의 일이 아니면 사부님께 청을 드리는 것은 법에 부합하지 않는다.’라고 서서히 깨닫게 됐습니다.

세간의 일에 대해 수련인은 매사를 담담히 보고 가볍게 보며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우리는 대법제자이고 속인 사회에서 수련하지만, 우리의 수련 경지는 여기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세간의 층차를 벗어나서 문제를 보아야 합니다. 사람은 각자 운명이 있으며 있어야 할 것은 반드시 있기 마련이고 있지 말아야 할 것은 구한다고 하여 얻지 못합니다. 따라서 일체를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라야 합니다. 우리는 절대 속인과 혼동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비록 세상에서 속세의 음식을 먹고 살지만, 우리의 마음은 불문에 있습니다. 표면상 우리는 속인 단체 속에 있으나 실제로 우리는 속인보다 높습니다.

법으로부터 우리는 모두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며 우리의 경지는 모두 사람보다 높습니다. 사람 이 층차는 사부님의 우주 정법의 수요이고, 또 대법제자가 여기서 수련해 승화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 주변의 일체 표현 형식은 모두 우리의 수련을 돕는 것으로 최종적으로 우리는 모두 마땅히 마음을 움직이지 않음에 도달해야 합니다.

우리 수련생들은 한 가지 개념이 분명해야 합니다. 사부님께서 대법제자에게 다시 새롭게 수련의 길을 안배해 주셨습니다. 속인은 여전히 속인의 길이 있습니다. 다만 속인이 대법을 지지하거나 가족이 대법을 반대하지 않거나 성심껏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성심껏 존경하는 마음으로 염하면 복을 받는 것은 무량하신 바른 신들께서, 또는 사부님께서 그를 도와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수련인이 추구할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일은 당신이 생각하기에 사부님께 청을 드려서 얻은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렇게 안배된 것이고 그때가 되면 마땅히 무엇이 나타나야 해서 나타난 것입니다. 속인의 일생은 바로 그렇게 안배된 것입니다. 대법제자에게 어려움이 있어 사부님께 청을 드리는 것은 정상적입니다. 우리가 수련 과정에서 각종 시련을 만났을 때 정념이 아주 강하면 넘을 수 있습니다. 만약 스스로 해결하지 못해 사부님께 가지(加持)나 점화를 청하며 심지어 직접 도와달라고 청하면 넘을 수 있습니다. 사부님께서 당신을 도와주신 이유는 당신이 수련인이기 때문이며 당신이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문제는 바로 우리가 대법을 잘 실증하기 위해 어떤 수련생은 자신이 대법을 수련해 아들과 딸이 어떻게 잘 됐다고 말합니다. 저는 자신의 현 층차에서 대법의 훌륭함을 실증하려면 스스로 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바꾸는 것과 자신의 체득, 또는 수련생이 대법 수련으로 어떻게 혜택을 얻고 좋아졌는지 등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이야기할까요? 왜냐하면 수련환경이 너무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일부 인연 관계를 우리는 모두 분명히 알 수 없으며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의 친척과 친구가 모두 잘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한 여성 수련생은 자신이 대법을 수련하자 아들의 회사가 매우 순조로워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당신의 막내아들이 여전히 치매인 것은 어떻게 된 건가요?”라고 물었습니다. 당신이 대법을 수련하면 가족이 혜택을 받는다고 말하면 다른 사람은 누구는 대법을 수련했는데 아들이 세상을 떠났고, 누구는 대법을 수련했는데 남편이 세상을 떠났으며, 매우 많은 대법 수련자들도 세상을 떠났다고 말할 것입니다. 우리가 대법을 수련하면 주변 사람들은 분명히 혜택을 받지만, 속인은 배후의 원인을 상관하지 않고 표면적인 현상만 봅니다. 우리는 자신이 혜택을 받고 수련생이 혜택을 받으며 속인이 대법을 인정해 복을 받은 사례를 이야기하면 됩니다. 수련생 친척의 재난과 시련은 그들에게 정해진 것으로 마땅히 발생해야 하면 발생하게 됩니다.

우리는 사부님을 따라 층층이 아래로 걸어 내려와 윤회하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천만년이 지났습니다. 사부님의 설법은 우리에게 인생의 진정한 의의를 깨닫게 해주셨고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게 해주셨으며 자신에게 신성한 사명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우리는 역사의 후광을 버리고 십악독세(十惡毒世)에서 조사정법(助師正法)하고 중생을 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속인 사회의 난상(亂象)에 미혹될 수 없고 속인을 따라 인간 세상의 진흙탕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시간이 오늘날에 이르러 우리는 더는 사부님께 우리의 어려움의 정도를 더해드려서는 안 되며 일사일념이 법의 요구에 부합되어야 합니다. 즉, 우리는 법을 스승으로 삼아 잘 수련해야 비로소 진정으로 조사정법하고 세 가지 일을 잘해서 서약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2015년 뉴욕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현재 인식에 따라 작성된 것이므로, 수련생들이 서로 교류하고 ‘비학비수(比學比修)’ 하는 데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2년 4월 2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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