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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을 겪으면서 안으로 찾고 근본적 집착을 분명히 인식하고 법 중에 녹아들다

글/ 멕시코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가 수련을 한 지 12년이 지났는데 이 기회에 저의 수련 심득을 교류할 수 있게 돼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사부님의 법을 생각할 수 있었고, 또한 자신을 깨우치고 있음을 알고 있지만, 여러 번 저와 법 사이에 뭔가가 있고 계속 일정한 거리가 있음을 느꼈습니다.

​과거에 수련생이 세상을 떠났을 때, 저의 일부 사상에서는 약간 당혹스러운 염두가 떠올랐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들은 육신을 잃고 수련을 계속하지 못했을까? 저는 저의 누락을 찾을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없었기에 만약 찾아내지 못한다면, 저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큰 시련, 큰 어려움에 직면하지 않을까?

그리고 저는 안으로 향해 찾았는데 만약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대로 엄격히 행해야 한다면 얼마나 크게 차이가 있는지 똑똑히 보게 됐습니다. 한편으로는 보통 사람의 생각에 따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사부님께서 우리 각자를 위해 준비한 길을 가려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안을 향해 찾음에서 자기 생각으로 문자의 표면에서 법을 이해하는가, 아니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법리를 깨닫는지를 명백히 구별하는 것은 매우 차이가 크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어떤 집착이 저를 법에 동화하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계속 노력해 사부님의 요구대로 하고, 또 법 중에 용해되자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저의 근본 집착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부님께서는 자비로 제가 깨닫도록 수련에서 시련을 겪게 했습니다.

마난(魔難)과 시련

6월 15일, 저는 길에서 넘어지자, 즉시 “좋고 나쁨은 사람의 일념(一念)에서 나오며,”[1]라고 생각했습니다. 옆에 있던 행인이 병원에 가자고 권유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배치 외의 것은 모두 승인하지 않는다. 나는 사부님의 대법제자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생각했습니다.

당시 팔을 움직일 수는 없었지만, 사무실로 갈 수 있었고 또 일도 하려고 했습니다. 저는 사무실에 가면 팔을 정상으로 움직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어쩌면 어깨가 탈구됐을 것이라는 사람의 생각이 먼저 나와 버렸습니다. 이런 염두는 저의 누락이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그 마음은 이렇게 고험 당할 것이다. 이때 그건 정말 당신을 고험하고 있는데, 당신이 도대체 수련인으로서 대하는지, 아니면 속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지를 본다. 당신이 사람 마음으로 생각한다면, 그럼 당신은 병원에 가라, 당신은 병을 보러 가라.”[2]

​사무실에 도착해서 저는 탈구한 어깨를 바로잡으려고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왠지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라고 계속 묵념했지만, 수련의 누락은 계속 커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병원으로 보내졌습니다. 그 당시 저는 이전에 다른 수련생도 병원에 갔는데 검사 결과 무사했기에 저 자신을 대법제자로 생각하고 병원에 가면 의사도 괜찮다고 할 것이고 그러면 집에 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누락은 점점 더 커져만 갔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검사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기적이 나타나기를 추구했던 것입니다. 사람의 관념에 좌우되는 때는 우리는 법에 동화할 수 없습니다. 저는 다른 수련생의 경험을 본보기로 한 것은 구하는 마음임을 깨달았습니다.

​제 마음 깊은 곳에서 법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 왼팔과 오른 무릎이 부러져 깁스했습니다. 저는 끊임없이 ‘논어(論語)’를 외우고 병원 내 모든 사람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그러나 저의 누락은 이미 그곳에 있었고, 엑스레이를 보고서 저는 그들의 검사를 믿고 일반인과 다름없이 의약 치료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사부님께서 줄곧 제 옆에 계시고 있다는 걸 느꼈는데 매우 확고했습니다.

​마난을 겪으며 사부님의 자비를 느끼다

이제 저는 반드시 이런 것을 겪어야만 저의 근본 집착을 발견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집에 돌아와 보니 제 상태가 달라져 마치 다른 몸 안에 있는 것 같고 거의 자유롭게 활동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하고는 싶어도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주 편안하고 조용했습니다. 바로 그 상태에서 저는 다음의 세 가지 주요한 집착을 인식하고 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1. 통제하려는 욕망입니다. 거동이 불편해지자 세속적으로 뭔가를 통제하고 싶은 마음이 약해졌는데 이 점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고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르려고 했습니다.

​2. 명(名)에 대한 집착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사할 수 없게 돼 더는 제가 그들에게 유용하다고 인정받고 사랑받는 것을 추구하지 않게 됐습니다.

​3. 과시하는 마음입니다. 더는 남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싶지 않고 침묵을 지키고 다른 사람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런 집착을 떨쳐버리고 나니 마음이 조용해지고, 순수해지고, 단순해져 저는 더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르고 싶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제게 어떻게 하는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다행히도 그런 생각을 한 후 다른 사람의 표현에서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친구들은 너그럽고 사심 없이 저를 대해줬습니다. 그들은 각자 자기 방식대로 친절하게 저를 도와줬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제가 그들이 매우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음을 발견하게 했습니다. 오늘날 세계의 모든 사람은 아주 높은 층차에서 내려와 윤회전생한 것은 지금 법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저도 또한 수련생들이 꼭 필요하다고 느꼈고 다 같이 법공부하고, 연공하고, 발정념이 가져다주는 힘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우리가 정체를 이룰 때 법의 힘은 계속 강해지고 집착은 약해지고 제거됩니다.

​우리는 한 대법 제자에게서 일어나는 마난은 결국 정체를 향해 왔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어려움 속에 있는 수련생에 대해 우리의 마음은 더욱더 자비로워야 합니다.

안으로 향해 찾아 근본 집착의 뿌리를 인식하다

​저는 사부님께서 곁에 계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한 가지 큰 의문도 있었습니다. 저는 대법제자이고, 사부님과 법을 믿는데 왜 속인의 상황이 나타날 수 있을까? 저는 반드시 마음을 파고들어 심성을 높이고 대법에 따라 하는 것을 방해하는 근본 집착을 찾아내야 했습니다. 저는 계속 매일 법을 배우고, 자신을 닦으며 연공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누워서 한쪽 팔로 연공했습니다. 점점 저의 근본적인 집착이 드러났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으므로 당신은 이런 소원만 있으면 된다. 진정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사부가 해주는 것이지 당신은 전혀 해낼 수 없다.”[1]

​이 단락은 제가 이미 수없이 많이 너무 많이 배웠습니다. 그제야 저는 마침내 저의 집착을 깨달았습니다. 저의 사람의 관념은 바로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자신의 노력과 이해로 얻은 것이지 사부님의 법의 위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부님의 법의 위력이 제 몸에서 작용을 일으켜 저의 번티(本體)를 개변하는 것을 방해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관념에서 제가 어떻게 심성을 제고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로부터 저는 아주 냉정하게 이 관념이 어떻게 제의 심성 제고에 방해하고 있는지 찾아냈습니다.

저는 사부님이 창세주이시고 사부님과 대법이 저를 반본귀진할 수 있게 하는 것이지 그 어떤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수련 전에 저는 어릴 때부터 다른 공을 연마한 적이 있습니다. 이제는 그런 경험들이 관념을 형성하고 제가 대법에 녹아드는 것을 방해하고 막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법(이해)에 대한 부분이 단지 일부분 사상에서만 명백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제 사심이 이런 생각으로 자기를 증명할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저는 부끄러웠습니다. 한편으로, 사부님과 사부님의 무한한 자비로 제가 법에서 계속 수련할 수 있어 더없이 기쁘기도 합니다.

근본적 집착을 깨닫고 보니 시시각각 그것을 보기만 하면 제거할 좋은 기회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평범해 보이는 이런 집착이 수련을 방해함을 깨달았는데, 이 특별한 시기에 수련의 길이 좁아졌기에 이런 집착 때문에 수련의 길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게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인식했습니다.

​자신이 대법제자임을 어디까지 깨닫는다면, 사부님께서는 거기까지 제자를 가지(加持) 해 주시고 공을 이르게 해 주시고 승화하게 하신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법에 맞지 않는 곳이 있다면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사부님의 무량한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의 교류와 경청에 감사드립니다!

주:
[1]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轉法輪)’
[2]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2019년 뉴욕법회 설법’

(2021년 멕시코 파룬따파 수련심득교류회 발언고)

 

원문발표: 2021년 12월 2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1/12/28/43522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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