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대법서적

明慧법회| 외사촌 여동생을 구출하는 과정에 심성을 닦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시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18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온라인법회를 앞두고 한동안 제 수련과정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참답게 부족한 부분을 찾고 제때 법에서 바로잡아 잘하려고 했습니다. 지금 수련생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겪은 몇 가지 일을 써내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수련생 여러분과 교류하려 합니다.

외사촌 여동생의 납치에서 정신을 차리다

우리 일가족 3명은 모두 대법을 수련하고 외사촌 여동생(수련생)도 고향에서 제가 사는 지역으로 와 잠시 거주했습니다. 처음 한동안은 우리 집에 있다가 나중에 자취방을 하나 얻었습니다. 저와 여동생은 협조해 진상을 알릴 때 손발이 척척 맞았고 생각이 같을 때가 많았습니다. 매번 진상을 알릴 때 구체적인 방법부터 시작해 의논할 필요도 없이 생각이 같았고 일으킨 효과도 좋았습니다. 그래서 여동생과 함께 협력해 일하기를 원했습니다.

시간이 길어지자 우리 둘의 관계는 친자매보다 더 좋아졌습니다. 가끔 이것 때문에 가족이 저에게 화를 내면 저는 그들에게 질투심이 있다고 나무랐지만, 저에게서 찾지 않았습니다. 어떤 수련생이 “저는 당신 둘에게 아주 깊은 정이 있다는 걸 보았습니다” 하고 알려줘도 별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여동생이 갑자기 공산당에게 납치돼서야 비로소 정신을 차렸습니다.

안으로 깊이 찾아보니 저는 외사촌 여동생에 대한 정이 너무 강했습니다. 크고 작은 일을 모두 그녀와 의논했고 무슨 말이든 다 했습니다. 시간이 길어지자 사람 마음이 더 많아져 말을 하고 일을 할 때 사람 마음이 섞이고, 법에 있지 않을 때가 있었습니다. 여동생을 너무 의지했기에 사악이 빈틈을 타게 된 것입니다. 너무 후회돼 집착을 찾은 후 제때 자신을 바로잡았습니다. 하지만 여동생은 아직도 박해받고 있기에 변호사를 청해 그녀를 구출해야 했습니다.

의지하는 마음을 버리다

수련생 구출에 참여한 적이 없었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어디에 가서 인권변호사를 찾을까 하고 걱정하고 있을 때 자비로우신 사부님의 도움으로 수련생 구출에 많이 참여했던 수련생이 곧 저를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변호사 두 명을 선임했는데 한 명은 현지 변호사로서 회견만 책임지고, 우리를 도와 사촌 여동생과 소식을 전달해주기로 했습니다. 다른 한 명은 외지 인권변호사로서 변호를 책임지기로 했습니다.

처음 왔을 때 외지 변호사는 구치소에 가서 여동생을 만나보고, 또 우리와 함께 공안국에 가서 석방을 요구했습니다. 그 후에는 거의 오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저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언제 다시 오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화를 내며 질문했습니다. “당신이 저에게 전화해 이미 알려주지 않았습니까?” “저는 전화한 적이 없는데요.” 그러자 그는 더욱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당신은 왜 거짓말을 합니까?” 당시 왜 갑자기 화를 내는지 몰라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수련자이기에 좋은 말이든 싫은 말이든 모두 들어야 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야 다른 수련생이 사전에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그가 언제 오는지 물었고 변호사는 그에게 전화한 것이 저라고 오해했던 것입니다.

한동안 지나 변호사가 또 왔고 저는 지난번에 그가 화를 낸 것에 대해 설명해줬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태도를 보면서 저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고 심성을 제고했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나중에야 우리가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오기를 바란 것 때문에 그가 화가 났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너무 변호사를 의지했고 그가 없으면 공안·검찰·법원에도 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보면 변호사가 화를 낸 것이 우리의 의지하는 마음을 버리게 도와주는 것이 아닙니까? 진심으로 그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의지하는 마음을 버린 후 저는 자발적으로 담당 기관을 찾아갔고 또 검찰원과 법원에 가서 사건 경위를 묻기도 했습니다.

구출 과정에 여동생 가족의 협조도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그녀 가족은 제가 여동생을 잘 돌봐주지 않았기에 그녀가 납치됐다고 저를 원망했습니다. 심지어 법원에서 불법 재판을 열었을 때 작은 외사촌 여동생은 변호사 앞에서 저를 원망했습니다. 당시 변호사는 감탄하며 저에게 말했습니다. “참 쉽지 않으시겠네요. 누님의 인내력에 탄복합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제가 잘하지 못하고 닦아야 할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수련하지 않기에 그들 마음을 이해합니다.” 그러자 변호사는 이해한다며 머리를 끄덕였습니다.

자신을 내려놓고 다른 수련생과 협조하다

구출 과정에 몇 명의 수련생이 잇따라 참여했습니다. 사람이 많아지니 생각도 자연스레 더 많아졌고 저는 그들의 건의를 모두 귀담아들었습니다. 법에 부합되면 다 선택했지만 수련생마다 자신의 견해가 있기에 가끔 서로 배척하기도 했습니다. 저도 사람 마음이 나와 어떤 수련생은 너무 극단으로 가고 어떤 수련생은 자아가 너무 강하다고 생각하면서 수련생 사이에 갈등과 모순이 생겼습니다.

냉정해진 후 수련자에게도 사람 마음이 있고 사람 마음으로 문제를 생각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엄격히 자신을 요구해야 하고 모두 심성을 닦아야 합니다. 수련생을 구출하는 관건적 시각에 만약 우리가 모두 자신의 의견을 고수한다면 사악이 정말 기뻐할 것입니다. 그것은 파괴하려 하고 빈틈을 타서 또 무슨 일을 만들어낼 수 있기에 그러면 안 됩니다! 저는 자신부터 잘 단속해 모순이 더 커지지 않게 한 후 수련생들과 교류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사람마다 모두 각자 장점이 있기에 우리는 마땅히 서로 보충하며,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보완해 잘 협조해야 합니다.” 이 교류는 정말 작용을 일으켰고 다들 모두 그렇게 인식했습니다.

그래서 수련생들은 각자의 장점을 발휘해 역할을 분담했습니다. 사악을 폭로하는 문장을 쓴 수련생, SMS와 MMS로 진상을 알린 수련생, 여동생 고향 수련생과 협조해 진상편지를 부친 수련생, 저와 함께 멀리 떨어진 여동생 부모님 집에 찾아가 소통한 수련생이 있었습니다. 저는 여동생 가족과 함께 공안국, 검찰원에 가서 석방을 요구하고 고소 편지를 전달했으며, 판사가 회피한 문서 등을 신청했습니다. 이렇게 수련생들은 정체(整體)를 형성했습니다.

공안국 부국장에게 진상을 알리다

2015년 ‘장쩌민 고소’ 이후 저와 여동생은 이 공안국에 불법 구류된 적이 있었습니다. 돌아온 후 저는 박해에 참여했던 부국장을 찾아가 제 컴퓨터 등 물품을 가져오고 싶었지만 찾아가기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발정념을 해 두려움을 제거했습니다. 상태가 좋아지자 저는 그 부국장을 찾아가 그의 사무실에서 여러 각도로 진상을 알렸습니다. 저는 그에게 장쩌민이 왜 극력 파룬궁을 박해하는지 대법이 전 세계 100여 개 국가와 지역에 널리 전해지고 ‘톈안먼 분신자살’이 거짓이라는 걸 알려줬습니다. 그는 열심히 다 들었고 나중에 “여러분은 모두 좋은 사람입니다. 장쩌민이 죽었으면 좋겠네요. 그러면 더는 당신들을 박해하지 못할 테니까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계속해 그에게 ‘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九評共産黨)’을 알려주면서 왜 삼퇴(중공의 3대 조직인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해야 하는지 알려줬습니다. 그는 즉시 탈퇴했고 그의 아내, 아들도 탈퇴시켜줬습니다. 그리고 ‘삼퇴’ 가명을 잘 저장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직업을 바꾸어 더는 대법을 박해하는 일에 참여하지 말라고 권했습니다. 며칠 뒤 빼앗아간 컴퓨터, 하드디스크, 핸드폰과 대법 책을 돌려줬습니다.

이번에 외사촌 여동생을 납치할 때 경찰은 8만 위안(약 1500만 원)이 들어있는 통장을 빼앗아갔습니다. 제가 다시 그를 찾아가자 그는 저보고 얼른 은행에 찾아가 분실신고를 하라고 했고 저는 그대로 했습니다. 나중에 담당 기관에서 해당 안건과 관련 없는 개인물품을 되돌려줬는데 유독 그 통장만 사라졌고 아무런 설명도 없었습니다. 다행히 이 부국장의 도움으로 우리는 8만 위안의 손실을 피하고 일부 경찰의 나쁜 시도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이 국장은 본인의 선행으로 복을 받아 얼마 안 돼 공안국을 떠나 시정부기관으로 승진했습니다.

법정에 들어가 방청하고 원장을 찾아가 소통하다

나중에 법원에서는 여동생에 대해 불법 재판을 하려 했습니다. 제가 방청하러 가겠다고 하자 수련생은 국내안전보위국 사람들이 법원 감시카메라로 누가 방청하는지 지켜보고 있다고 귀띔해줬습니다. 수련생은 그들이 나중에 보복할까 봐 우려했지만 저는 두렵지 않았습니다. 첫 번째 불법 재판 때 직계 친족만 법정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반드시 법정에 들어가야 하고 제가 하는 건 우주에서 가장 바른 일이고 사부님께서 지켜주시기에 그 누구도 간섭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법정에 들어가는 것은 여동생에 대한 격려이고, 또한 우리는 법정 내 진행 상황을 알아야 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하자 사부님께서는 순조롭게 법정에 들어갈 수 있게 저를 도와주셨습니다. 가족까지 합해 총 4명이 들어갔고, 처음에 이런 정념을 가졌기에 나중에 몇 번 불법 재판 때 수련생도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한번은 원장 접견일에 저는 직접 법원장을 찾아가 얘기를 나눴습니다. 그에게 여동생은 법을 어기지 않았고 판사가 범죄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억지로 시간을 연장해 기어이 ‘증거’를 보충하고 죄를 뒤집어씌우려 한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법원에서 조건 없이 여동생을 석방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원장은 법원에서 의논해 해결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성(省) 공안청의 직접적인 압박으로 여동생은 모함받아 결국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기대했던 효과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구출 과정에서 저는 많은 사람 마음, 특히 두려움을 버렸습니다. 예전에 법원 방청에 참가하지 못했고 원장을 찾아간다는 건 더욱이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지금은 수련생을 데리고 들어가 방청하고 과감히 직접 원장을 찾아가 얘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이런 일을 통해 저는 체면을 중히 여기는 마음, 급한 마음, 원망 등을 발견하고 많이 내려놓게 됐습니다.

몸에 대한 교란을 배제하다

여동생이 중급법원에 항소한 후 오랫동안 소식이 없어 저는 중급법원에서 항소장을 받았는지 조회해 보려 했습니다. 하지만 첫날 저녁에 신발장에 물건을 넣을 때 갑자기 허리를 구부릴 수 없었습니다. 조금 있다가 움직여보니 여전히 너무 아파 걷기 힘들었습니다. 꾹 참고 벽을 짚으며 조금씩 움직였고 가까스로 침실로 가서 침대에 누웠지만 몸을 뒤척이기 어려웠습니다. 속으로 ‘이러다가 내일 아침에 일어나기도 힘들겠네. 내일 중급법원에 가야 하는데 이러면 안 돼!’라고 생각하며 천천히 일어나 침대 머리맡으로 갔습니다. 일어서고 싶었지만 너무 아파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이때 남편이 일어나 제 방문이 열린 것을 보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연공하고 싶지만 허리가 너무 아파 일어나기 힘드니 잡아당겨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저를 끌어당기지 못했고 제 허리는 조금도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그는 저에게 “이렇게 됐는데 어찌 동공을 연공할 수 있겠어요? 그냥 가부좌만 해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침대에 앉아 가부좌했고 한 시간 뒤 걸을 수 있어 나머지 공법을 또 연공했습니다. 그동안 남편은 두 번 정도 찾아와 괜찮겠냐고 물었고 저는 괜찮으니 가서 쉬라고 했습니다.

연공을 마치니 이미 새벽 3시가 지났습니다. 그래서 남편 방문 앞에 서서 그보고 일어나 연공하라고 했습니다. 제가 밤새 자지 못했다는 걸 듣고 남편은 저보고 얼른 가서 자라고 했습니다. 저는 “안 돼요. 연공을 또 해야 해요”라고 말하고는 남편과 함께 5가지 공법을 또 연마했습니다. 6시 발정념을 마친 후 차를 운전해 중급법원으로 갔습니다. 이 과정에 만약 제가 일어나 연공하지 않았더라면 정말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었고 얼마나 오래 누워있어야 할지 모릅니다. 사실 이건 중급법원에 가지 못하게 한 구세력의 교란이었지만 결국 그것들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여동생 가족을 선하게 대하다

외사촌 여동생이 납치될 때 제가 곁에 있었지만, 경찰은 저를 납치하지 않았습니다. 이것 때문에 여동생 가족들은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고 심지어 저를 증오하면서 귀에 거슬리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한번은 제가 여동생을 구출하려는 그들의 방법과 요구에 동의하지 않자 저를 협박하기도 했습니다. 이걸 보면서 제 마음도 괴로웠지만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고 처지를 바꾸어 그들 입장에 서서 문제를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속인이기에 저는 자신에게서 찾고 저를 닦아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그들과 따지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외사촌 여동생을 만나러 구치소로 갈 때 그녀의 여동생은 언니에게 할 말이 있다고 했습니다. 제 딸이 이 문제에 대해 다른 의견을 제기하자 작은 여동생은 언짢아하며 듣기 거북한 말로 우리를 자극했습니다.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딸은 참지 못하고 둘이 언쟁을 벌였습니다. 저는 즉시 딸에게 말하지 말라면서 작은 여동생을 어르고 달랬습니다. “얘 말을 신경 쓰지 마. 네 언니를 보러 가는데 영향 주면 안 되니까.” 그래서야 작은 여동생은 겨우 화가 풀렸습니다. 저는 딸에게 “작은이모에게 이렇게 예의가 없어서 되겠어? 얼른 사과해”라고 말했습니다. 딸은 내키지 않아 하면서도 작은 여동생에게 사과했고 그녀에게 밥도 사줬습니다.

돌아온 후 저는 딸과 이 일을 교류했습니다. “우리는 수련하는 사람이야. 수련자가 속인과 싸워서야 되겠어?” 그러자 딸은 수긍하지 않으며 억울하다고 했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이 일을 위해 돈을 쓰고 뛰어다니면서 많은 걸 바치고, 그 집 식구가 구치소로 갈 때도 차로 데려다주고 숙식을 다 제공해줬어요. 이렇게 돈을 쓰고 고생을 했으면 할 도리를 충분히 한 게 아닌가요? 하지만 그들은 고마워하기는커녕 말속에 가시가 있으니 너무 불공평하지 않나요?” 딸이 잠시 납득이 되지 않았기에 더는 급히 교류하지 않고 날마다 딸과 함께 법공부만 했습니다. 법공부를 마치면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며칠 뒤 다시 이 일을 교류하자 딸은 자기가 틀렸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나중에 작은 여동생이 언니를 보러 우리 지역으로 왔을 때 딸은 여전히 차로 데려다주고 식사를 대접해주니 작은 여동생도 멋쩍어했습니다. 이렇게 대법은 저와 딸을 도량이 넓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는데 참으로 감개무량합니다!

외사촌 여동생이 구치소에 있을 때 그녀의 딸은 두 번이나 저보고 돈을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 아이가 어릴 적부터 반항적이고 지금 집에 이렇게 큰일이 생겼을 때 저보고 돈을 달라고 하는 것은 일부러 저를 향한 것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녀 어머니는 제 눈앞에서 납치됐고 지금 저는 무사하니 그녀 마음이 평형을 잡지 못한다는 걸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혼자 잘 살지 못하기에 동정하는 각도에서 저는 잘 대해줬습니다. 맛있는 걸 해주고 돈을 줬으며 한번은 2000위안(한화 37만 원)을 주기도 했습니다. 차츰 그녀도 변해 더는 저를 적대시하지 않았고 존중했습니다. 이건 대법제자의 선량함이 그녀를 감화시킨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이익에 대한 마음을 내려놓고 마음의 용량을 넓혔으며 착실한 심성수련이 수련자에게 승화와 제고를 가져다준다는 걸 절실히 느꼈습니다.

억울한 옥살이가 끝나 여동생이 집으로 돌아온 후 나중에 가족에게서 내가 딸에게 돈을 줬다는 일을 알게 된 여동생은 매우 감동했습니다. 여동생은 말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언니가 정말 착하다고 하고 여동생은 언니처럼 좋은 사람이 이 세상에 없다고 했어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좋은 사람은 오직 파룬궁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알려줬어요.”

이에 대해 저도 크게 느끼는 바가 있습니다. 대법제자로서 평소 자신의 일언일행을 진정으로 엄격히 요구해야만 대법의 순정함과 아름다움을 실증할 수 있습니다!

제 수련과정을 정리해보니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어떤 것은 깨닫지 못한 것이고 어떤 것은 내려놓기 싫어하는 것이거나 정말 내려놓고 싶지만 반복해 나타나는 것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어떠하든 사부님의 정법은 곧 종결되기에 계속해 집착심을 방임하면 안 됩니다. 이토록 촉박한 시간에 저는 정말 다그쳐 자신을 잘 닦아 사부님의 합격된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다시 한번 자비롭게 구해주신 사존께 감사드리고 함께 비바람을 무릅쓰며 법을 실증하는 수련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밍후이왕 제18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원문발표: 2021년 11월 2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1/11/20/433264.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11/20/43326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