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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86세 노교수, 삶의 격변 속에서도 사명을 잊지 않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1996년 법을 얻은 대법제자로 올해 86세이며 퇴직 전 모 대학의 학과 주임이었고 부교수였습니다. 최근 2년간의 제 수련 경험과 체득을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수련생 여러분과 교류하고자 합니다.

마난 속에서도 신사신법하며 사명을 잊지 않다

지난 2년은 제게 매우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아내의 죽음과 계속되는 전염병으로 인해 사회 상황과 가정환경에도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저의 생활과 진상 알리는 방식에도 따라서 변화가 생겼지만, 대법을 굳게 믿고 수련하며 조사정법하고 사람 구하는 마음에는 어떠한 영향도 없었습니다. 간난신고와 고독함 속에서도 ‘진선인(真·善·忍)’으로 자신의 언행을 지도하고 사부님의 보호하에 꿋꿋하게 걸어 지나왔으며 저의 심신도 한층 더 정화되고 향상됐습니다.

제 아내는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지만 ‘전법륜(轉法輪)’을 봤었고 저의 수련을 지지하며 제가 조사정법하는 일을 도왔습니다. 13년 전 아내는 유방암으로 수술했고 방사선과 약물치료를 받으며 온갖 고생을 겪었습니다. 10년 전에는 48세의 딸이 임파선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백발노인이 검은 머리 자식까지 보내야 했는데 이렇게 두 번이나 크나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2년 전에 아내는 또 식도암에 걸려 온갖 치료를 다 해봤으나 소용없었고, 1년 전 세상을 떠났습니다. 제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서로 좋아 결혼해서 62년 동안 고난을 함께 했는데 이제 따뜻한 집은 무너지고 고독함, 적막함, 슬픔과 그리움만 남았습니다. 아내의 몸짓과 웃는 모습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녀 잠시도 지워버릴 수 없었고 매일 눈물만 흘렸습니다.

마난의 슬픔 속에서도 대법은 나에게 바른 믿음과 힘을 주었고, 자신이 정법시기 대법제자이며 사명을 짊어지고 있음을 단단히 기억하게 했습니다. 아내가 위독했던 두 달간 병실에서 아내를 간호하면서도 저는 최선을 다해 법을 듣고 외우며, 연공하고 발정념하며 진상을 알렸습니다. 아내가 1인 병실에 입원해 조건이 비교적 좋았기에 수련하는 데 그다지 영향은 없었습니다. 간호사는 매일 자정에 병실을 점검하고 교대하는데 내가 발정념하고 5장 공법을 연마하는 것을 보면 항상 고개를 끄덕여 칭찬했습니다. 나는 언제나 자비하고 상화(祥和)한 심태로 환자와 환자 가족, 간병인, 청소원을 대하며 진상을 알렸고 그동안 7명에게 삼퇴를 권했습니다.

아내와 저는 의사와 간호사에게 항상 깍듯했으며 예의 바르고 상냥하게 대했습니다. 담당 의사는 우리에게 교양 있는 사람이라고 여러 번 말했습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의사는 몇 번이나 제 등을 두드리며 슬픔을 이겨내고 건강을 지켜야 한다고 위로해줬고 병동 주임은 조화를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전반 인류사회의 모든 것이 전부 이 정(情)에서 나온 것이다. 만약 이 정을 끊어버리지 못하면 당신은 수련하지 못한다.”[1] “법은 일체 집착을 타파할 수 있고, 법은 일체 사악을 타파할 수 있으며, 법은 일체 거짓말을 타파해 버릴 수 있고, 법은 정념(正念)을 확고히 할 수 있다.”[2]라고 하셨습니다.

안으로 찾아보니 아내에 대한 정이 너무 깊었고 생활도 너무나 의존하는 삶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이전엔 경조사를 포함해 크고 작은 집안일, 의식주와 교통, 생필품, 물건을 사고 재산 관리하는 등등을 모두 아내가 담당했습니다. 저는 청소하고 밥을 하며 옆에서 도와줬을 뿐 대부분 시간을 대법제자의 세 가지 일을 하는 데 할애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저에게 마난이 닥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생활환경과 수련방식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생겼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바로 대법을 수련했기 때문에 이런 마난들이 앞당겨 왔는데, 비록 받은 압력이 매우 크고 씬씽(心性)에 대한 고험도 넘기기가 매우 어려우며 때로는 넘어야 할 관이 매우 클 수도 있지만, 결국은 이런 마난들을 모두 넘어가야 하고 결산해야 하며 계산해야 한다. (뭇사람 웃음) 이것은 아주 좋은 일이 아닌가? 그러므로 당신이 부딪힌 좋은 일과 나쁜 일은 당신이 오직 대법을 수련하기만 하면 모두 좋은 일인데, 틀림없다.”[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동안 시련이 있었으나 저는 점차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마난을 타파하는 속에서 다시 한번 대법의 힘과 위대함을 깨닫게 됐습니다.

정진 실수하며 심성을 제고하다

아내가 떠난 후로 저는 혼자 살았습니다. 매일 점심은 아들 집에 가서 먹었고(반찬을 준비하고 밥 해주는 보모가 있었음) 아침저녁은 혼자 해결했으며 특별히 신경 쓰지 않고 무엇으로 배를 불릴 수 있으면 그만이었습니다. 이렇게 되니 나만의 시간이 더 많아지고 더 자유로웠으며 근심도 방해도 없었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하루 시간을 대법제자의 세 가지 일을 하는 데 모두 쓸 수 있었습니다. 아침에는 법을 외우고, 동공을 연마하고 발정념을 했고, 오전에는 밖에 나가 진상을 알리고 발정념하고, 오후엔 밍후이왕을 보고 6시에 발정념하고, 밤에는 법공부하고 정공을 연마한 다음 12시 발정념 후엔 휴식했습니다.

금전과 재물에 대해선 항상 담담하게 내려놓았고 그것을 심성을 제고하는 고험으로 여겼습니다.

10여 년 동안 우리 집은 항상 개방돼 있었고 소규모 자료점 역할을 멈추지 않았는데 6∼7명 대법제자에게 사부님의 신경문과 밍후이 자료를 제공했습니다. 수련생 모두 나이가 많아 컴퓨터를 사용할 줄 모르고 밍후이왕에 접속할 줄도 모르지만 이런 자료들은 정법 형세를 따라가고 정진 실수하는 데 중요한 작용을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내와 저는 우리 집 자료점을 유지하는 데 정성을 다했습니다. 수년 동안 컴퓨터 4대와 프린터 3대를 운용하며 모든 소모품 비용까지 우리 스스로 부담했고 수련생의 도움을 받아들인 적이 없었습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로 모든 일을 저 혼자 하는 수밖에 없었지만 해야 하는 일은 제때 다 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다른 수련생도 가정 자료점을 운영했는데 그는 대법 진상자료와 호신부, 진상 USB 및 대법서적을 만들었습니다. 정교하고 실용적이고 품질이 좋았기에 수련생들도 사용하기 좋아했습니다. 비용이 비교적 많이 들었지만, 그도 수련생들의 경제적 지원을 수용한 적이 없었습니다. 3개월 전 저는 그가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했음을 알고 4천 위안을 주며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왔습니다. 그는 받으려고 하지 않았으나 제가 거듭 설명하자 받으면서 “이 돈을 대법자료 만드는 데만 쓰겠으며 장부에 기록하고 절대 사적으로 쓰지 않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의 언행에서 저는 대법제자의 고상한 인품을 보았고 매우 감동했습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지 반년이 지난 어느 날 아내의 급여카드에 여전히 임금이 지급되고 있음을 우연히 알았습니다. 저는 임금과 장례비 지급 규정을 잘 몰랐으며 착오 지급일 수 있겠다 싶어 많이 지급됐다면 돌려줘야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대법제자가 이렇게 하는 것은 아주 평범한 일로 반드시 정확하게 처리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시 양로복지 센터에 가서 문의하자 젊은 담당자가 조사해보더니 “진짜 6개월분을 더 많이 지급했으며 총 4만 위안이 넘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아내의 직장에 전화로 문의했는데 웃기게도 아내의 직장 사람은 “본인더러 오라고 하세요!”라고 했습니다. 이 담당자가 “사람이 이미 별세했는데 어떻게 거기로 갑니까. 당신들은 왜 제때 보고하지 않습니까?”라고 소리쳤습니다. 그 전화 받은 사람은 그때야 제대로 알아들었습니다.

저는 솔직하게 말하며 “오늘 온 것은 자초지종을 알아보고 돈을 돌려드리려고 왔으며, 지금 은행에서 전화하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어 4만여 위안을 그가 지정한 은행 계좌로 송금했습니다. 이런 일은 보통 그들이 처리하기 매우 어려운 일이었지만 담당자의 생각과는 달리 즉시 해결됐고 그것도 제가 스스로 나선 것이었습니다. 이야기하는 중에 그가 내 신분을 알고 놀라며 “아니, 교수님, 이렇게까지 해주시다니! 감사합니다!”하고 감격했습니다.

안전 때문에, 보통은 대법제자라는 신분을 드러내지 않지만, 이때는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하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됐습니다. 그래 담당자에게 간절한 태도로 “제가 이렇게 한 것은 교수라는 신분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지금 도덕적으로 해이하고 부패하고 음란한 교수가 얼마나 많습니까. 진솔하게 말하자면 제가 파룬궁 수련자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파룬궁 이곳만이 정토이며 파룬궁 수련자는 모두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때 한 젊은 여성이 다가왔는데 담당자의 상사인 듯했습니다. 담당자가 그녀에게 잠시 귓속말을 하자 그녀가 저에게 “파룬궁 수련자는 인품이 정말 좋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생떼 쓰는 사람을 만나면 번거롭게 되고 직장을 상대로 추징하는 수밖에 없어 어려움이 아주 많지요.”라고 했습니다. 민원대 주변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이 과정을 보고는 저에게 모두 존경의 눈빛을 보냈습니다.

지혜롭게 진상을 알리고 자비의 마음으로 사람을 구하다

42년간 교직에 있으면서 대학과 중학교에서 가르친 학생이 매우 많습니다. 매년 학생모임과 학교에서 개최하는 퇴직자의 여러 활동에 저는 자주 참가하는데 모두 진상을 알릴 좋은 기회이며 제가 중생을 구하는 주된 장소이기도 합니다. 모임 때마다 보통은 10여 명에게, 적게는 3명에서 5명에게 사당 조직을 탈퇴하라고 권할 수 있는데 가장 많게 탈퇴한 경우는 42명이나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2년은 우한 바이러스로 인해 이런 모임이 모두 없어졌고 저도 진상을 알리는 주된 장소를 잃어버렸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하는 것, 이것이 바로 당신이 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제외하고 당신이 해야 할 것은 없으며, 이 세상에서 당신이 해야 할 것은 없다.”[4]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진상 방식을 바꿔야 했습니다. 자신의 상황에 맞게 공원과 호숫가에 가서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기로 했습니다. 그곳에는 퇴직자가 비교적 많고 의자도 있기에 앉아서 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대법 진상을 제대로 알릴 수 있었고 확실하게 진상을 알려 구원받게 할 수 있었습니다.

1년 남짓 동안 비바람이 불거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 매일 오전 버스를 타고 오갔습니다. 가끔은 한 사람과 한 시간이 넘도록 얘기할 수도 있었습니다.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매일 1∼2명 혹은 3∼5명에게 진상을 똑똑히 알리고 분명하게 진상을 알도록 하여 삼퇴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진상 알리는 과정이 자신의 마음을 닦는 과정이기도 함을 수련생은 모두 체득이 있을 것입니다. 진상을 알리면서 사부님께서 “이지(理智)로 법을 실증하고, 지혜로 진상(眞相)을 똑바로 알리며, 자비로 홍법(洪法)하고 세인을 구도하라.”[5]라고 하신 가르침 대로 행하자 많은 것을 깨닫게 됐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례1. 학교 상사가 탈당하다

학교의 지도자는 다들 성청(省廳)급 간부입니다. 장기간 학생들에게 당문화를 주입하는 일을 했기에 그들 자신도 불가피하게 피해를 받았는데 당문화의 관념이 형성돼 일시에 바뀌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지식인이며 대다수는 기풍이 바르고 근면 성실하며 청렴하게 봉사합니다. 교장 A가 바로 그런 사람으로서 교사와 학생으로부터 존경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건강이 아주 좋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를 꼭 구하고 싶어 ‘어떻게 해야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와 사이가 좋긴 하지만 직접 탈당을 권할 수는 없었는데 그렇게 하면 분명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이전에도 어떤 수련생이 그에게 진상을 알렸으나 “당신은 당신들의 것을 믿으세요! 우리 공산당 사람은 그런 것을 믿지 않습니다.”라고 거절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퇴직 후 집에서 하는 일 없이 컴퓨터를 통해 뉴스 보기를 좋아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프리게이트’라는 봉쇄 돌파 소프트웨어를 깔아줘 진실한 뉴스를 볼 수 있게 해줬는데 그는 매우 좋아했습니다. 2년 전 그는 중병이 재발했고 심장과 폐가 매우 쇠약해져 의사도 어찌할 수 없는 데다 딸은 모두 미국에 있고 부인은 또 70이 넘은 나이라 영양 관리가 어려웠습니다. 아내와 나는 이를 알고 하루걸러 한 번씩 닭고기탕, 비둘기탕, 어탕 등등을 보내드리는 동시에 ‘9자 진언’을 정성으로 외워 사람이 다시 살아나고 병이 나은 사례를 인쇄해 호신부 등 다른 진상 자료와 함께 보내드렸습니다. 그는 매우 기뻐하며 감사히 여겼습니다. 때가 됐다 싶어 탈당을 말하자 그는 흔쾌히 동의했고 저는 마침내 소원을 이루게 됐습니다. 그는 구원받았고 병세도 나날이 좋아져 2년을 더 살았습니다. 돌아가신 지 며칠 뒤 공능이 있는 어떤 수련생이 봤는데 그는 이미 좋은 곳에 가 있었습니다.

또 당위원회 부서기 B라는 분이 있는데 ‘7·20’ 이후 그는 파룬궁 박해 업무를 맡았습니다. 이 사람 역시 정직 성실하고, 청렴 근면하며 선량하고 사심 없는 분이었습니다. 그해 학교는 시내에서 유명한 파룬궁 연공 장소였는데 많을 땐 100명도 넘는 사람이 참가했고 학생과 교직원도 20여 명이 수련했습니다. 서기 B의 보호로 교내의 대법제자가 여러 번 박해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예로 들면 저는 시 파룬궁 보도소 부소장을 맡은 적이 있어 시 ‘610’의 중점 박해 대상이었는데 그가 여러 번 박해를 피하도록 보호해줬습니다.

또 우리 시의 파룬궁 박해가 가혹하던 2001년 저는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입원하게 됐습니다. (실제로는 사부님께서 저를 보호해 주신 것이었음). 입원 중인데도 ‘610’ 직원은 저를 박해하려고 심문하려 했습니다. B는 이를 거세게 거절하며 “그는 지금 입원 중입니다. 그의 사람됨을 우리가 다 알고 있으니 당신들은 늘 치근대며 끝장 보려 하지 말고 무슨 일이 있으면 퇴원 후 다시 얘기하시오.”라고 했습니다. B는 또 직접 문병하며 저를 위로해 주기도 했습니다. 더군다나 시 기공과학연구회는 공을 세우려고 시 각 기관에 일부러 공문을 보내 제가 파룬궁 수련자라고 하면서 면직시키라고 했습니다. (저는 당해 시의 과학연구회 상무이사였음). 그러자 B는 학교 당위원회 명의로 전화 추궁하며 시 기공과학연구회에 다시 문서를 보내 원 문건을 취소하라고 압박했습니다.

이처럼 파룬궁 수련자를 보호하는 정직하고 선량한 서기에 대해 저는 항상 진상을 알려 구원받게 할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그의 부인과 제 처와는 사이가 좋은데 이전에 제 처에게 그의 부인의 일을 돕게 하며 그들에게 탈당을 권유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부인은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절했습니다. 그 후 저는 여러 번 공산당의 부패와 사악한 사례를 직접 말하며 그가 사당의 본질을 깨닫도록 일깨워줬습니다.

최근 B 부부도 참가한 식사 모임에서 한 수련생이 자신에게 갑자기 심각한 뇌경색이 생겨 움직일 수 없었지만, 이틀이 다 되기 전에 정념으로 건강을 회복한 과정을 말하자 모두 매우 감동했습니다. 저는 기회를 틈타 서기 B가 학교의 대법제자를 어떻게 보호했는지를 말하며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습니다.

모임이 끝나고 B를 배웅하면서 선량하고 진심 어린 마음으로 그에게 “당신께선 지극히 잔혹한 파룬궁 박해 시기에 저를 보호해 주시고 박해를 면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저는 아마 박해로 죽었을지도 모르고 제가 당신께 은혜를 갚을 방법도 없겠지요. 오늘 저는 진심으로 당신께 탈당을 권합니다. 어떠한 절차도 필요하지 않으며 오로지 당신이 승낙하기만 하면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사람을 구하고자 하는 자비의 마음으로 이렇게 말하면서 저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습니다. 그는 정말 감동했고 얼른 두 손으로 제 한 손을 꽉 붙잡고는 “저는 승낙합니다! 승낙합니다!”하고 말했습니다. 한 분의 서기가 이렇게 구원받았는데 마침내 저의 숙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사례2. 혁명에 참가한 퇴직 간부를 탈당시키다

밖에 나갈 때마다 저는 인연 있는 사람을 만나게 해달라고 사부님께 부탁드렸습니다.

한번은 진상을 마치고 집에 가려고 하는데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 한 분이 와서 인사를 건네며 벤치를 가리키면서 “앉아서 얘기 좀 할까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진상을 듣도록 사부님께서 보낸 사람이라 생각돼 흔쾌히 함께 앉아 얘기했습니다.

그분은 군 의무병으로 혁명에 가담했던 퇴직 간부였으며 나이가 이미 90세였습니다. 저 자신을 소개하자 서로 의기투합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사당과 군대의 부패, 사회 도덕의 급격한 타락, 왜 부패하는지 또 장쩌민의 매국 행위와 파룬궁 탄압의 하늘에 사무치는 죄악에 이르기까지 이야기했습니다. 마지막에 제가 그에게 가명을 지어주며 사당 조직에서 탈퇴하게 했습니다. 헤어질 때 그분은 “우리는 뜻이 잘 맞네요”라고 하며 감탄했습니다.

또 한번은 공원에서 노인 한 분이 큰길을 통하지 않고 풀밭을 지나 지름길로 나에게 오는 것을 봤습니다. 진상을 들으려고 오는 사람이라 생각돼 그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가 먼저 인사하고 옆의 벤치에 앉아 이야기했습니다. 그분은 모 현의 기율위원회 서기로 퇴직한 혁명 간부였으며 92세의 고령이었고 아들이 시의 국장이라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처음엔 그분이 사당의 죄악과 진상을 받아들이지 않을까 봐 걱정돼 좀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제가 사당의 부패를 말하자 그분은 “나는 퇴직 후에도 몇 년간 기율 업무를 맡았었지요. 공산당은 썩을 대로 썩어 치료할 방법도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되자 저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장쩌민의 매국 행위와 파룬궁 탄압의 죄악상, 톈안먼(天安門) 분신자살 사건의 진상, 구이저우(貴州) 장자석(藏字石) 등을 말했습니다. 그분은 이해하고 받아들였으며 마지막엔 통쾌하게 사당에서 탈퇴했습니다.

사례3. 경비원과 청소원에게 진상을 말하다

공원마다 몇십 명의 경비와 청소원이 있는데 대부분 농민 출신이거나 공장, 기업에서 퇴직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진상을 말하기는 비교적 쉽습니다. 저는 보통 농민과 노동자의 생활고, 기업 퇴직자의 대우가 매우 낮은 것과 사회상의 각종 불공평을 말하며 그들을 깨우쳐주고 이후 더 깊이 들어가 진상을 말하는데 일반적으로 효과가 좋았습니다.

한번은 호숫가에서 두 명의 청소원(농민공)에게 진상을 말하는데 부근의 경비원 한 사람이 다가왔습니다. 안전을 고려해 저는 말하기를 멈췄습니다. 그 사람은 내게 먼저 인사하며 친절했고 악의가 조금도 없었으며 자신도 농촌 출신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이는 사부님께서 구원받도록 배치하신 것임을 알고 저는 계속해서 많은 대법 진상을 말하며 마지막엔 그들 세 사람에게 평안과 건강을 위해 항상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의외로 그들은 이런 일을 들어본 적이 없었으며 몇 번을 말해도 분명하게 알지 못했고 기억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러자 그 경비원은 달려가서 큼직한 펜을 가져와 기억할 수 있게끔 다섯 글자를 써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의 열정에 감동했는데 뭇사람들이 구원받으려고 간절히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펜을 받아들고 막 쓰려고 하는데 갑자기 순경 둘이 오더니 옆에서 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놀랐고 쓸까 말까? 멈칫거리며 좀 긴장됐습니다. 그들 세 사람을 다시 보니 아주 평온했으며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는데 마치 기다리고 있는 듯했습니다.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오늘 저는 단단히 맘먹고 쓰자고 생각했습니다. 즉시 ‘파룬따파하오’ 다섯 글자를 크게 똑똑히 썼습니다. 한 순경이 말하기를 “오, 파룬궁이군요!”라고 했고 다른 한 순경도 같이 저를 향해 웃어 보이며 갔습니다. 저는 계속 그 세 사람에게 많은 대법 진상을 말했습니다. 그 경비원은 실명으로 삼퇴했고 청소원 둘은 어떤 조직에도 가입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 뒤로도 그 경비원과 여러 번 부딪혔는데 그는 매우 친절하고 예의 발랐습니다. 저도 그에게 더 많은 진상을 말했는데 그는 또 그의 아버지, 아들과 며느리에게 줄 호신부를 달라고 했으며 사당 조직에서 탈퇴했습니다.

사례4. 평범한 사람에게 진상을 말하다

한번은 호숫가에서 멀지 않은 곳 벤치에 앉아 있는 노인을 보고 ‘나를 기다리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가가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자 그분도 인사하며 옆으로 비켜 앉으면서 나더러 앉으라고 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분은 젊은 시절 생산대(인민공사의 말단 소유단위로 25∼30호로 조직됨)의 회계 담당이었고 입당했으며 지금은 손자, 손녀를 돌보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저는 “지금은 농민들이 제일 고생이지요. 1년 내내 고생해봤자 수입이 2000위안도 안 되는데 무얼 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이 불공평하며 국민이 낸 세금은 관리들이 다 횡령하는데 공산당은 정말 악랄합니다. 지금 국민은 거의 사람마다 공산당을 욕하지요. 인심을 잃으면 천하를 잃게 됩니다. 하늘이 공산당을 멸하려 하는데 하루빨리 탈당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공산당의 순장품이 될 것입니다. 마음속으로만 탈퇴하면 되고 어떤 절차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많은 사람은 하늘이 중공을 멸하려 하니 탈당해야 평안을 지킬 수 있음을 다 알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두말없이 승낙하며 “나는 지금껏 그 당원 모임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모임 때마다 10위안을 주는데 그렇지 않으면 어떤 당원도 참가하지 않지요. 현재 농촌의 말단 당 조직은 모두 이렇습니다. 나는 그 돈을 받고 싶지도 않으며 모임에 나가기도 싫습니다. 위든 아래든 횡령하지 않는 관리가 어디 있겠습니까? 나는 정말 그들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분에게 ‘파룬따파하오’가 새겨진 대법 진상 호신부를 주면서 이 몇 글자를 자주 외우면 겁난을 피하고 건강하고 평안하실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분은 매우 감격하며 제 손을 꽉 잡고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헤어질 때 제가 집에 가는 버스를 타려는 것을 알고 그분은 제가 차에 오를 때까지 배웅하며 손을 흔들고는 자리를 떴습니다.

어느 날 오후 공원에 가서 진상을 알렸습니다. 막 공원에 도착하니 노인 한 분이 느릿느릿 나오길래 반갑게 인사하고는 그분과 함께 얘기하며 걷다가 숲속 벤치에 앉았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분은 83세이고 이전에 공장 기술자였으며 어제 외지에서 이곳 딸네 집에 놀러 왔고 내일 돌아가야 하는데 이 공원이 좋다는 말을 듣고 아침에 택시 타고 와서 둘러보는 중임을 알게 됐습니다. 그분은 말하기를 “한참을 둘러보고 밖으로 나가려는 참입니다. 이 공원이 매우 크다고 하던데 아직 여러 곳을 가보지 못했습니다. 딸네 집에 한 번 오기가 쉽지 않은데 오랜만에 와서 우연히 당신을 만났네요.”라고 했습니다. 듣고 저는 감동했습니다. 저 역시 5일 동안 이곳 공원에 오지 못했기에 오늘은 집을 나서면서 이 공원에 가고 싶었고 사부님께 인연 있는 사람이 진상을 듣게끔 배치해주십시오, 하고 부탁드렸는데 과연 그렇게 됐습니다.

그분께 이 공원의 역사와 개황을 소개한 다음 유사 이래로 없었던 중공의 사악한 죄악과 역대의 운동 중에 8천만 명도 넘는 동포를 살해한 것을 말했고 장쩌민의 죄악과 장자석 등도 말했습니다. 그분도 자신이 겪은 여러 가지 사례를 말하며 제가 말한 많은 진상을 실증했으며 아울러 두말없이 삼퇴를 승낙하고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를 외우겠다고 했습니다. 모르는 새 우리는 1시간 반 동안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헤어질 때 그분을 공원 다른 문으로 안내해 택시를 타게 하고 손을 흔들며 작별했습니다.

사례5. 재력가 상인에게 진상을 말하다

한번은 호숫가에서 건축업 사장을 만났습니다. 이야기하면서 그가 20여 년 크고 작은 각종 공사를 도급받아 많은 돈을 벌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에게 진상을 말하자 흔쾌히 받아들였는데 왜냐하면 관리들의 부패를 너무 잘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돈을 쓰지 않거나 선물을 보내지 않으면 일을 따낼 생각도 말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몇십만 위안이 든 금고를 담당자의 집 앞에 갖다 놓기도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가입했던 공청단과 소선대를 탈퇴하겠다고 시원하게 승낙했습니다. 그 후로도 여러 번 그를 만났는데 반갑게 서로 인사하고 자리를 찾아 이야기를 나눴으며 저는 더 많은 진상을 들려줄 수 있었습니다.

또 공원에서 재력가 상인을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의 부친이 저처럼 교사였기에 우리는 공통 화제가 있었고 한 시간 넘게 이야기했습니다. 그의 부친은 이전에 고등학교 교사였는데 우파로 몰려 농촌으로 ‘노동교화(勞動改造)’를 갔다가 3년 기근 때 굶어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원망할 곳도 없었습니다. 그는 농촌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싶지 않아 밖으로 나와 장사하며 돌아다녔습니다. 그는 하늘에 도와주는 눈이 있다고 말했는데 그는 성공했고 부자가 됐습니다. 산아제한 시절에도 아들을 낳아 가계를 잇겠다고 여러 도시를 떠돌며 연달아 딸 여섯을 낳았고 일곱 번째에 마침내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는 온갖 고생을 겪으며 일곱 자녀를 모두 대학에 보냈고 지금은 다 취업했습니다.

이렇게 온갖 고생을 다 겪으며 중공 사당에 대해 원한을 품고 용감하게 싸운 전설적 인물을 만나 저는 아무 거리낌 없이 진상을 말했고 그도 자연히 찬성하며 받아들였습니다. 그에게 진상 호신부를 주자 매우 기뻐했습니다. 그는 어떠한 조직에도 가입하지 않았기에 삼퇴할 필요는 없었지만, 진상을 이해하고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를 외우고 싶어 했는데 분명 이미 구원받았을 것입니다.

사례6. 현지 상황을 이용해 진상을 말하다

진상을 말할 때 현지의 구체적인 상황과 결합해 그곳 사정과 정황에 맞춰 임기응변해도 효과가 좋았습니다.

한 공원 경치 좋은 곳에는 하도(河圖)와 낙서(洛書)의 모형이 세워져 있습니다. 언젠가 청소원이 거기서 청소하는 것을 보고, 저는 다가가서 “아주머니, 수고 많으십니다! 여기 커다란 석구(石球: 둥근 돌)가 무슨 의미인지 아십니까?”하고 묻자 그녀는 모른다고 했습니다. 이때 그녀의 친구가 오길래 저는 진상을 들으려고 오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저를 소개하며 “이 하도와 낙서는 화하문명(華夏文明)의 근원입니다. 복희씨(伏羲氏)는 그것을 토대로 ‘선천 복희팔괘(先天伏羲八卦)’를 만들었는데 그것은 사전문명입니다. 어디서 비롯했고 무슨 의미와 작용을 하는지, 지금도 모릅니다.”라고 했습니다.

이때 간부처럼 보이는 노인 한 분이 오길래 서로 인사한 후 저는 이어서 말하기를 “석구들이 놓인 방진(方陣)을 보니 마치 1에서 9까지 숫자를 나타내는 것 같은데 그 오묘함은 알 수 없습니다. 아홉 개의 숫자가 크기가 서로 다른 수많은 숫자 조합을 만들 수 있음을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옛사람은 천인합일(天人合一)을 말했는데 이 석구의 방진은 어쩌면 천지와 연결돼 인류에게 상서로운 행운을 가져다줄지도 모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노인은 매우 재미있어하며 우리 이야기에 끼어들었습니다.

물론 제가 주인공이었기에 자연히 사당의 부패와 신전문화(神傳文化)의 파괴, 전통 훼멸 등등의 사실로 이끌어 갔습니다. 그리고 이 석구에서 시작해 구이저우(貴州) 핑탕(平塘)현 장부(掌布)향에 나타난 ‘중국공산당망(中國共産党亡)’이라고 새겨진 장자석까지 말하고 가명을 지어주어 순조롭게 삼퇴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 청소원과 그녀의 친구는 사당의 어떤 조직에도 가입하지 않았기에 헤어지기 전 그들에게 ‘파룬따파하오’ 호신부를 줬는데 모두 매우 기뻐하며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이후에도 이곳 관광지구의 하도와 낙서의 모형 그리고 주변의 신주로(神州路), 화화로(華夏路), 반고로(盤古路), 건곤로(乾坤路) 등의 명칭을 이용해 여러 번 진상을 말해봤는데 효과가 매우 좋았습니다.

진상을 말하면서 성공하지 못하는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한번은 노년 부부와 함께 걸으며 진상을 말했는데 할아버지가 제가 파룬궁 수련자임을 알아채고 즉시 “나는 공산당을 믿습니다. 당신은 대법을 믿으세요!”하고 소리치며 떠났고 저를 상대하지도 않았습니다.

또 한번은 저와 동향으로 부대에서 국토국으로 전직해 퇴직한 간부를 만났습니다. 진상을 말하자 그는 절대 탈당하지 않을 것이라 했습니다. 저는 좀 실망했으나 이 사람은 그래도 고집불통은 아니니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전염병으로 화제를 바꿔 우한의 어떤 의사 부부가 전염병을 이겨낸 사실을 말하자 그는 믿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호신부를 꺼내자 보고는 “파룬궁이네요. 나는 직장에서 파룬궁을 탄압하는 일을 합니다. 필요 없습니다.”라고 하며 호신부를 되돌려주고 저에게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저는 낙담하지 말자고 자신을 격려하며 마두(魔頭) 장쩌민이 파룬궁을 박해한 이유와 당시 7명의 상무위원 중 6명이 모두 박해에 반대했다는 사실, 톈안먼(天安門) 분신자살 사건의 진상 등등 파룬궁의 전후 관계를 계속 말했습니다. 이후 저는 또 “우린 고향도 같은데 진심으로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당신은 관념을 바꿔야 합니다. 더는 속지 마십시오. 우주가 이렇게나 크며 별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사람보다 훨씬 뛰어난 고급 생명이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두 신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머리 석 자 위에 신령이 있습니다! 전염병 등 재난을 만나면 신에게 보호를 구해야 하겠지요!”라고 말했습니다. 이때 그는 좀 알아듣는 듯했는데 저에게 그 호신부를 다시 달라고 하며 자신의 아내는 신을 믿으니 가져다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번 진상 알림은 비록 장애가 있긴 했지만, 헛수고는 아닐 것이며 그에게 이후 구원받을 수 있는 기초를 다졌다고 믿습니다.

용맹정진하며 서약을 실현하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현재 인간세상은 이미 끝 중의 끝에 왔고, 난세(亂世) 중의 난상(亂象)은 더욱 강렬하게 사회를 교란한다. 비록 정사(正邪)의 다툼이지만, 당신들은 자신을 잘 지켜 교란 받지 말아야 하는 동시에 진상을 더욱 잘 알려 세인을 구해야 한다.”[6]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최근 2년을 되돌아보니 곳곳마다 사부님의 배려와 자비하신 안배의 체현이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특히 그런 노(老) 대법제자들은 태만(懈怠)하지 말라. 당신들은 그처럼 어려운 세월 속에서 걸어 지나와 오늘까지 걸어왔는데, 얼마나 어려웠는가! 당신은 소중히 해야 함을 모른단 말인가? 나마저 당신을 소중히 여긴다! 신마저 당신을 소중히 여긴다! (뭇 제자 열렬한 박수) 그러므로 응당 스스로 더욱 자기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7]라고 말씀하신 가르침을 결코 헛되이 하지 않겠습니다.

벌써 86세가 됐습니다. 대법을 수련하기에 사부님께서 거듭 제 생명을 연장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기회를 더욱 소중히 여기고 복잡하고 난상(亂象)이 끝없는 이 사회 환경 속에서도 법을 잘 배우고 자신을 잘 닦아 교란받지 않겠습니다. 용맹정진하며 진상을 알려 세상 사람 구하는 일을 더욱 잘하고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겠습니다. 세상에 올 때의 서약을 실현하고 원만하여 사부님 따라 돌아가겠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교란을 배제하자’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2005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
[4] 리훙쯔 사부님 경문: ‘2015년 뉴욕법회 설법’
[5]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이성’
[6] 리훙쯔 사부님 경문: ‘대만법회에 보냄’
[7] 리훙쯔 사부님 경문: ‘2018년 워싱턴DC 설법’

(밍후이왕 제18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원문발표: 2021년 11월 1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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