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明慧법회| 꾸준히 정진하는 마음을 갖고 나아가면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신다

글/ 쓰촨(四川) 대법제자

[밍후이왕] 저는 일흔여섯 살 여성 대법제자로 1998년에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온갖 고생과 마난(魔難)을 겪었지만,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아래 전반적으로 평온하게 걸어왔습니다.

1. 사부님께서 날 고해에서 구해주셨고 정념정행(正念正行)으로 법을 실증하다

수련 전 저는 선천적으로 부족한 장애인으로 심한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다리가 변형되고 근육이 위축돼 걷기가 매우 불편했습니다. 신경마비로 머리가 둔하고 근육 통증에 대한 느낌도 둔했습니다. 오장육부의 발육이 온전치 않아 기능은 쇠약했습니다. 내분비 실조로 온몸이 시큰시큰하고 더부룩해 잠을 많이 자야만 완화할 수 있었습니다. 10대 때 학교 측은 강제로 저를 성(省) 병원에 보내 암 수술을 받게 했고 다른 학생들에게 수술 후 제가 며칠밖에 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평생에 여러 차례 죽음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취직하자 또 남들의 질투로 아무리 잘해도 고발을 당해 심사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 자신이 바르게 행했기에 억울함이 풀리고 관련자들이 처벌을 받았으나 제게도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때 저는 얼마나 힘들고 어렵게 살았는지 마치 하늘도 땅도 사람도 모두 제 목숨을 앗아가려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공짜로 점을 봐주면서 “누군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기에 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먹고 입을 걱정이 없어요.”라고 말하면서 제가 살아 있으면 주변인에게 유리하다고도 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이 정도의 고통에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제 생의 전환이 올 그날을 기다렸습니다.

1997년 1년간 무소식이었던 고향 친구가 절 찾아와 대법 수련에 들어가게 했습니다. 끊임없는 법공부를 통해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는 절 지켜주시면서 제 인생을 바꿔놓으셨습니다. 저는 제가 중생을 구원하는 조사정법(助師正法)의 사명을 완성하기 위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대법 수련 후 제 몸은 거의 정상으로 회복됐고 마음이 정화되고 향상돼 이전에 없었던 행복과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가사에서 이렇게 쓰셨습니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남은 법 기다리기 위한 것 선자(善者)는 하늘의 집으로 돌아가리라 윤회 전전 천백 년 세상에 온 것은 이 한번을 위해서라네”[1].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일체 공(功), 일체 법은 모두 책 속에 있는 것이라, 대법(大法)을 통독(通讀)하면 스스로 얻을 수 있다. 배우는 자는 스스로 변하니 반복적으로 통독함이 이미 도(道) 중에 있는 것이다. 사부는 법신(法身)이 있어 조용히 보호해주니, 꾸준히 견지하면 훗날 반드시 정과(正果)를 이룰 것이다.”[2]

저는 사부님께서 주신 수련의 기연(機緣)을 매우 소중히 여기고 있습니다. 저는 대법 수련을 확고히 할 것이며 대법을 실증하며 자신의 역사적 사명을 완성할 것입니다.

20여 년간 제가 매일 한 것은 바로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세 가지 일입니다. ‘전법륜(轉法輪)’ 두세 강의를 통독했습니다. 매일 ‘전법륜’을 통독한 후 다른 설법을 배우면서 법 속에 녹아들어 법으로 자신의 더러운 것을 말끔히 씻어버리고 끊임없이 정념을 확고히 했습니다. 저는 “넌 수련할 재목이 아니다.”, “수련해 원만할 수 없다.”, “네 배후에는 망루와 누각이 없다.”는 등 남들의 단언을 배제하려 노력했고 자신의 사상 업력으로부터의 심각한 교란을 제거했습니다. 누가 말해도 소용없고 오직 사부님께서만 결정하실 수 있다고 믿고 사부님께서 요구하시는 대로 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제게 법을 얻게 해주신 것만으로도 영광이니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오직 법공부를 많이 하고 수련을 잘하면서 사람을 많이 구해야만 사부님께서 제자를 위해 치른 거대한 대가에 부끄럽지 않을 수 있습니다.

대법을 실증하며 중생을 구하는 것은 제가 매일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수련 후 저는 제 건강한 몸으로 대법을 실증했습니다. 사람들은 눈으로 보는 것만 확실하다고 여기는 습관이 있습니다. 저는 대법을 수련하고 혜택을 본 사실을 사람들에게 들려줬습니다. 옛 동창, 동료를 만나게 되면 거의 다 놀란 표정으로 묻는 첫마디 말은 “어떻게 이렇게 젊고 건강해졌나요?” 저는 솔직하게 파룬궁을 연마하고 나았다고 말하면서 파룬따파는 고덕(高德)의 불법(佛法)이며 건강에 특효가 있는 것과 공산당은 왜 파룬궁을 박해하고 있는지 알려줬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불법(佛法)은 끝이 없음으로 늘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외우면 재앙이 사라지고 어려움이 해결된다고 알려줬습니다. 만일 거부하지 않으면 그들에게 호신부를 선물로 줬고 그들은 거의 다 받아들였습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지만 인연이 닿아 이야기를 나누게 된 사람, 특히 제게 돈을 달라거나 물건을 요구하는 사람에 대해 저는 자진해서 그들에게 ‘파룬따파하오’를 외우면 건강해질 수 있다고 권유했고 또 저의 사례를 들려주면서 그들이 믿게 했습니다. 그들은 저를 관찰한 뒤 다수는 즉시 저를 따라 ‘파룬따파하오’라고 읽었습니다.

2020년 새해를 앞두고 작은 가게 주인에게 대법을 소개하자 즉시 파룬궁 책을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제가 그녀에게 책을 줬을 때 그녀는 마침 학력고사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책을 받아뒀으며 또 실명으로 ‘삼퇴’(중공 3대 조직인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까지 했습니다.

몇 년 전, 경찰이 절 납치하는 과정에서 그들에게 파룬궁이 어떻게 중증 장애인이었던 저를 건강한 사람으로 바꿔놓은 신기한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박해를 부정했습니다. 그들은 조사한 후 제가 말한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서 저에 대한 박해가 어느 정도 줄어들었습니다. 어떤 소장은 그날 우리 가족들에게 사과했고 그 후 경찰은 다시는 집에 찾아와 저를 괴롭히지 않았습니다.

제 발은 그다지 힘이 없기에 걷다 보면 종종 넘어지는 일이 있었지만, 매번 조금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한 번은 저녁 7시에 어찌 된 일인지 저는 4층 계단 베란다에서 3층까지 굴러떨어졌습니다. 두 바퀴 돌아 3층 왼쪽, 몇 년째 저를 외면하고 있는 동료 집 철문까지 굴러떨어졌는데 마당에 있던 사람들까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큰소리가 났습니다. 깜짝 놀란 동료는 집에서 문을 열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보려는 엄두도 못 냈습니다. 제가 넘어진 것을 알았을 때 모두 제가 이미 넘어져 죽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루 지나 집을 나선 저는 몇몇 동료와 마주쳤는데 그들은 제게 물었습니다. “넘어져 다쳤는데 왜 집에서 쉬지 않나요?” 저는 “저는 파룬궁을 연마하므로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셔서 조금도 다치지 않았어요.”라고 말하면서 소매를 걷어 올리고 몸을 두드리며 보여줬더니 그들은 보고 신기하다고 했습니다! 특별히 내가 문을 부쉈던 그 집 동료도 저와 인사를 나누게 됐습니다. 그 동료는 요즘 가족 구역에서 이주민 단지를 철거하는 중 제게 여러 번 주의를 줬습니다. “안전에 신경 쓰면서 말을 아끼세요. 이주민 철거 사무실에서 일찍부터 당신 언행에 신경 쓰고 있어요.” 그녀가 제게 마음의 준비를 하게 했기에 이후 이주민 철거 사무실 문의에 잘 대처할 수 있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제게 건강한 몸을 주셨고 저는 이것으로 대법의 신기함을 실증하는 가운데 덕을 보았으며 잘 아는 동료들도 그녀들의 위치를 정확하게 배치할 수 있었습니다.

2. 철거 사무실 사람들이 진상을 듣다

2019년 10월, 제가 살던 가족 주민 구역에서 철거를 위한 본격적인 설득 행사가 열렸습니다. 회의가 막 끝나자 주민센터 주임은 지역사회 주임과 함께 우리 집에 와서 저를 따로 만났습니다. 그들은 내게 “요즘 몸이 어떠세요?”라고 물었습니다. 나는 “저는 매일 운동을 하기에 이 몇 년간 줄곧 아주 건강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건강하면 좋아요. 철거에 문제가 있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방금 이번 철거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고 했으니 나보고 먼저 입장을 밝히라는 뜻으로 생각했습니다. 저는 수련자이면서 또한 유일한 지폐 보상을 받아야 할 사람이기에 이익에 대한 마음을 내려놓고 다투거나 싸우지 말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우리 집은 별문제가 없어요. 제가 세대주이니 모든 것을 잘 처리해 제시간에 규정에 따라 협의문에 서명하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제 몸과 마음이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고 또 그들과 평온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는 아무런 소란도 피우지 않고 만족하며 떠났습니다.

2020년 1월 16일 오전, 제가 남편과 함께 규정된 시간대로 철거 계약을 체결하러 갔을 때 직원이 갑자기 철거사무실의 지도자와 주민센터 서기를 우리 앞에 데리고 왔습니다. 이 서기는 스무 명에 가까운 직원들 앞에서 만면에 미소를 띠며 제게 말했습니다. “홍조가 어린 얼굴에 주름 하나 없는 걸 보니 전혀 70대 같지 않네요! 제 아버지는 당신보다 연세가 조금 더 많은데 이미 병에 걸려 임종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알면서 일부러 “어떻게 이 정도로 잘 보양하셨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사람이 많았는데 주임 몇 명도 그 자리에 있었고 사복 차림의 몇 명 경찰도 옆에 앉아 있는 것을 알아챈 저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미처 생각지도 못하고 “매일 꾸준히 운동하고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운동을 어떻게 하나요?”라며 따졌습니다. 제가 현장에 있는 사람의 표정을 보고 여전히 망설이고 있을 때 수련하지 않는 남편이 저를 대신해 그 서기에게 말했습니다. “제 아내는 파룬궁을 연마하고 나았어요. 정말 파룬궁을 연마하고 나았습니다.” 이어서 제가 이전에 얼마나 심하게 앓았고 파룬궁을 배운 후 달라진 것을 대략 소개했습니다. 그 서기는 들으면서 눈길을 돌려 저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고 주변 사람들도 조용히 듣고 있었습니다. 남편 말이 끝나자 그 서기는 웃음을 지으며 마치 결과를 종합하듯 말했습니다. “몸만 좋으면 됩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은 누구도 이상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다시 계약을 체결하러 가니 그 사람들은 모두 매우 열성적으로 일을 처리해줬습니다.

3. 수련생과 호흡을 맞춰 진상을 알리며 사람을 구하다

수련생이 진상을 알리려면 진상 자료가 필요했는데 어떤 수련생은 자료를 얻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수련생에게 자료를 보내주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이것도 사부님께서 제게 배치한 사람을 구하는 사명의 일부분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무릇 수련생이 만든 것이면 어느 수련생이 어떤 자료가 필요하든 저는 먼 곳이든 가까운 곳이든, 얼마를 막론하고 최대한 자료점에서 빨리 가져다 그들에게 보내주려고 자신의 돈으로 먼저 진상지폐를 바꾸면서 수년간 꾸준히 노력해왔습니다.

전염병 사태가 확산하면서부터 자료를 보내야 할 수련생이 몇 명이나 더 많아졌습니다. 자료를 가져다 배분한 후 다시 가져다줘야 하기에 저는 더 바빠졌습니다. 그러나 이 특별한 시기에 많은 사람이 대법 진상을 알고 전염병 기간에 어떻게 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알리는 것은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아주 즐거웠고 바쁠 때면 수련하지 않은 남편의 도움으로 수련생 각자의 필요에 따라 자료를 나눠놓았습니다.

이 항목을 하자면 힘들기도 하고 경제적으로도 더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는데 가장 큰 문제는 언제든 신변에 잠재해 있는 안전 문제가 있다는 점입니다. 식량과 식용유조차 사본 적이 없고 길을 걷기가 어려운 저로서는 상대적으로 어려움이 컸습니다. 매번 심리적 압박감이 클 때마다 사부님의 법을 외웠습니다. “만고의 간난신고 오직 이 한 차례 위해서라”[3]. ‘아무리 고통스럽고 힘들고 손해를 보더라도 해야 한다.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시기에 무엇도 나를 막을 수 없다! 나는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잘해야 한다.’

자료를 메고 다니다 지쳐서 걸을 수 없을 때는 사부님께 도움을 청하면 배낭이 가벼워지고 피곤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빈 가방을 들고 돌아갈 때 오히려 걸을 수 없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버스를 탈 때 제 발이 이상하다고 느낀 사람은 자리를 양보해주곤 했습니다. 그러면 저는 자리를 양보한 사람에게 감사의 인사를 한 후 마음속으로 사부님 보살핌에 감사드렸습니다.

“장기간 이렇게 하는 것이 힘들지 않나요? 어떻게 버텼어요?”라는 수련생의 물음에는 상술한 것이 제 대답입니다.

자료를 보내는 가운데 갑자기 특별한 상황에 부딪힐 수 있는데 전화로 연락하거나 상의할 수도 없기에 자연스럽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번은 제가 외지로 지폐에 진상을 인쇄할 사람을 찾으러 가려 했는데 잠시 갈 수 없게 됐습니다. 마침 한 수련생이 그곳에 가려고 해 저는 잘 포장한 소액 지폐를 보는 앞에서 점검하지 않고 총금액만 알려주고 수련생에게 넘겼고 그는 급히 가져갔습니다. 두 시간 후에야 저는 금액을 적게 알려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급히 돈을 보낸 수련생에게 전화를 걸어 현금을 세어본 후에 다시 인쇄하는 수련생에게 건네 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미 돈을 건네줬다며 세어보지는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곳 수련생들과 이미 몇 년간 접촉해서 저는 그들은 모두 돈을 한데 모은 후 여러 사람에게 인쇄를 나눠주고 다시 각지에서 요구하는 금액에 따라 나눠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수련생에게서 그쪽도 점검하지 않고 제가 알려준 액수대로 줬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는 이 돈은 못 받을 것이 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전날 밤에 5천 위안(약 90만 원)을 떨어뜨리던 꿈이 생각났습니다. ‘어떻게 집중하지 못하고 돈을 정확히 세지 않았을까? 내가 잘못했구나. 지금 정말 돈을 잃는 일이 생겼으니 그냥 소리 없이 여러분께 자료를 하는 데 쓰라고 기부해줬다고 생각하자.’

보름 뒤 진상지폐 인쇄를 도와준 수련생이 제게 진상지폐를 가져다줬는데 만나자마자 저는 그녀에게 “돈을 얼마 받았어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얼마를 줬으면 얼마에요. 당신이 보내온 돈주머니를 기타 돈과 섞어 인쇄하지 않고 따로따로 인쇄했어요. 돈이 얼마인지 세지 않아 저도 몰라요.”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서둘러 세어보니 바로 수련생에게 줬던 총액과 같았습니다. 이것은 틀림없이 사부님께서 배치한 것으로 이번에는 그쪽 수련생이 우리가 보내준 돈을 따로 인쇄했기에 큰 번거로움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사악한 감시가 더욱 치밀해지자 수련생이 여러 번 제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늘 큰 짐을 지고 다니는데 이렇게 하는 것이 두렵지 않아요?”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사람을 구하라고 제게 배치하신 일이므로 수련생이 자료와 진상지폐가 필요하니 반드시 해야 합니다.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시기에 아무 일도 없을 것입니다.” 이 몇 년간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보호 아래 확실히 무사히 벗어났으며 위험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가까스로 곤경에서 벗어났던 경험도 있습니다. 10년 전 두 차례 자료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제보를 당해 경찰에 납치돼 수감된 적이 있었습니다. 사부님의 보호와 수련생들의 대대적인 구조, 그리고 제 정념으로 제때 사악한 박해를 부정했기에 사악한 소굴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3년 전 어느 여름날 점심때, 저 혼자 진상지폐와 진상 자료를 담은 큰 보따리 3개를 들고 장거리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현지의 고속 요금소에 진입한 후 차는 특수경찰에 의해 겹겹이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즉시 총을 들고 전기봉을 든 특수경찰이 버스에 올라와 승객들을 에워싸고 수색했습니다. 알고 보니 테러 용의자가 있는지 수색했던 것입니다!

차 안에는 승객이 몇 명뿐이고 다른 사람들은 가방을 들지 않았습니다. 승객보다 특수경찰이 더 많았는데 앞뒷문을 막고 객차 안을 살피며 위아래로 검사했습니다. 이 무서운 장면을 본 저는 창가 쪽 좌석 아래에 놓은 가방 세 개가 걱정됐습니다. 심장이 다 움츠러들어서 거의 박동이 멎고 머리가 터질 것 같았으나 의식은 아직 또렷했습니다. 오늘은 생사를 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에 사부님께 이 위험한 고비를 넘도록 보호해 달라고 청을 올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사부님, 이것은 모두 사람을 구하는 물건입니다. 특수경찰이 대법제자를 박해하고 중생을 구원하는 것을 방해하게 할 수 없습니다. 사부님께서 살려주세요!” 이어서 저는 구결(口訣)을 외우며 정념을 발했습니다. 특수경찰은 차 안을 검사하면서 제 가방은 전혀 보지 못하고 제가 그에게 건네준 노인 승차카드만 보았습니다. 차 안에 테러 혐의자가 없자 버스 통행을 허가했습니다. 정말 아슬아슬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나타날지도 모르는 위태한 상황을 사부님께서 없애버리셨습니다!

수련생에게 자료를 주고받을 때 수련생은 항상 제게 많은 ‘삼퇴’ 명단을 건네줬고 저는 이 명단을 받은 뒤 바로 따지웬 탈당 사이트에 보내 확인 절차를 밟았습니다. 9년간 제가 보낸 삼퇴 성명 인원은 이미 10만여 명입니다. 모두 사부님의 보호와 도움이 있었기에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가장 잊을 수 없는 것은 몇 년 전 12월 말 있었던 일입니다. 같은 달 하순에 외지 수련생이 보내온 1천여 명의 ‘삼퇴’ 명단을 받았습니다. 저는 분류해 정리한 후 몇십조로 나누어 적고 12월 31일에 따지웬 탈당 사이트에 나눠 보내려 했습니다. 하지만 점심 12시가 되자 클릭을 여러 번 반복해도 접속되지 않았습니다. 사악의 봉쇄라고 생각한 저는 오래 끌면 사악의 미행으로 큰 번거로움을 초래할까 봐 일단 전원을 끄고 설 이후에 보내려고 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자 모니터 화면 아래에 “전원을 끄지 말고 기다렸다가 다시 시도하라”, “인터넷은 정상” 등 대화가 나타났는데 반복으로 나타났습니다. 저는 이것이 사부님의 지시라고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컴퓨터에 나타나는 대화대로 몇조를 보내고 기다렸다가 또 몇조를 보내고는 또 기다리고, 이렇게 결국 오후에 모든 삼퇴 명단을 모두 따지웬 탈당 사이트에 보낼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조회번호를 등록한 후 실내 온도는 13~14℃밖에 안 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얼굴이 후끈 달아오르는 느낌이었고 등이 좀 차서 속옷을 만져보니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아마도 다른 공간에서 일어난 치열했던 정사대전(正邪大戰)이 제 이 몸에 반영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위대한 사부님께서는 중생을 구원하기 위해, 제자의 안전을 위해 얼마나 많이 걱정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수련생을 도와 무거운 짐을 지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것이 제 수련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몸을 고달프게 하는 연마하는 속에서 고생하며 업을 없앴고, 열등감을 버리면서 정념과 자신감을 강화했으며 손해와 모욕을 참는 가운데 너그럽게 받아들이며 심성을 향상하는 것은 정말 실천 속에서 새로운 저를 만들었습니다.

4. 전염병 속에서 진상을 널리 알리며 서둘러 사람을 구하다

2020년 새해에 전염병이 널리 확산했을 때 거리 곳곳에 ‘외출 금지’, ‘모임 금지’, ‘외출 시 마스크 착용’이라는 공지가 붙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크고 작은 가게들이 모두 문을 닫았고 몇 분 만에 한 대씩 오던 버스를 30분을 기다려야 했는데 버스에는 겨우 한두 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붉은 완장을 찬 사람이 확성기를 들고 밖에 오래 있지 말고 빨리 집에 가라고 권하는 등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이 광경은 제게 사람을 구하는 긴박감을 갑자기 증강하게 했습니다. 대법제자는 시간을 다그쳐 많은 세인이 진상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저는 전염병, 혹은 명절과 휴일 때문에 집에서 한가롭게 보낸 적이 하루도 없었고 더 열심히 나가서 진상을 알리며 사람을 구했습니다. 제가 있는 이곳은 거리를 봉쇄하지는 않았으나 길에서 혼자만 다닐 수 있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거리를 둬야 했습니다. 지역사회에서 아주 엄격히 관리해 출입을 등록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사는 동네는 철거 중이라 문을 지키는 사람이 없고 마당 벽에는 직장에서 설치한 카메라 7~8개만 걸려 있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나가서 진상을 알리며 사람을 구하는 데 비교적 편리한 조건을 제공했습니다. 저는 평소처럼 수련생에게 각종 진상 자료와 진상지폐를 정기적으로 보낼 수 있었습니다. 단지 진상 자료를 주려고 갔지만, 상대방을 만나지 못하면 등에 지고 되돌아와야 했는데 다음 날 다시 가는 것도 번거롭지 않았습니다. 매일 반나절씩 나가서 진상을 알리며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전염병 기간에는 모두 집에 있으며 외출하지 않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일정한 간격을 유지해야 했습니다. 상호 간에 방비하고 있어 면전에서 진상을 말하고 진상 자료를 주기가 매우 어려워졌습니다. 그동안 저는 주로 대법 진상 전단을 보냈습니다. 제게는 번호를 누르지 않아도 전화만 켜면 진상을 접수할 수 있는 핸드폰이 있고 또 일반 핸드폰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저는 매일 그것을 갖고 번갈아 ‘파룬따파하오’, ‘삼퇴하면 목숨을 지킨다’, ‘선의로 대법을 대하면 하늘이 큰 복을 내린다’ 등 대법의 기본 진상을 보냈습니다.

저는 촘촘한 카메라 감시와 경찰 차량의 추적을 피하려고 거리, 아파트 사이를 돌아다니며 정념으로 사악한 요소들을 제거하는 한편, 사방을 둘러보면서 기회를 보아 세인의 차량, 상점 문틈에 전단지를 넣었습니다. 비록 어쩌다 물건을 사러 가도 진상지폐를 사용했습니다.

전염병이 시작됐을 때 길거리에서 핸드폰을 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매일 진상용 핸드폰이 접수한 결과는 그래도 적지 않았습니다. 월초에 진상을 받아들인 사람은 몇십 명에서 100명에 불과했습니다. 저는 핸드폰 하나로만 진상을 보내면 두 대의 핸드폰으로 동시에 진상을 보낼 때보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이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핸드폰 하나로만 진상을 보냈습니다. 매일 진상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아졌는데 많을 때는 200명 가까이 됐습니다.

2020년 9월에 전염병이 완화되자 저는 매일 2~3시간에서 1시간 반 남짓하게 밖에 나갔는데 진상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모두 200~400명 정도이고 심지어는 두 배까지 됐습니다. 만약 하루에 일이 있어 두 번 나가면 500~1000명이나 됩니다. 이것은 더 많은 세인이 이번 전염병을 겪은 후 정신을 차리고 생명을 지키는 방법을 찾고 있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어느 날 오전, 수련생이 진상지폐를 달라고 했는데 상대방을 만나지 못해 다음 날 같은 동네에 사는 다른 수련생 집에 가져다주기로 했습니다. 주민 구역 문으로 들어갔을 때 경비원은 눈을 크게 뜨고 대문을 쳐다봤지만 저를 못 봤기에 등록도 안 하고 들어갔습니다. 수련생 집에 가서 상황을 설명하자 수련생은 어젯밤에 잠결에 누군가 “머리맡에 진상지폐가 있다.”고 알려줬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오늘 아침 일찍 당신이 진상지폐를 보내왔는데 경비원이 당신을 못 봤다니 정말 신기해요!”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둘은 사부님께서 데려다주셨으니 당연히 경비원이 저를 볼 수 없다고 하면서 “사부님의 도움에 감사드립니다!”라고 일제히 말했습니다.

어느 날 오전 저는 월급을 받으러 은행에 가면서 핸드폰으로 진상을 보냈습니다. 아는 사람 둘을 만나 또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사이에 은행 앞에 와 있었습니다. 은행 입구 맞은편에 시 공안국 경찰차가 서 있었는데 그제야 핸드폰을 끄지 않은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럼 경찰도 제가 보낸 진상을 받을 수 있어 제게 번거로움을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핸드폰을 끄면서 저는 다시 생각했습니다. ‘사악은 날 알아볼 수 없으며 경찰도 진상을 알고 구원받아야 하기에 그들이 봤으면 더 좋다!’

은행 현관에 들어서자 경비원이 제 체온을 체크했는데 머리부터 손끝까지 몇 군데를 바꿔도 체온을 잴 수 없다며 “왜 체온이 나타나지 않나요? 당신은 체온이 없나요? 됐어요, 들어가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월급을 받고 입구에 도착했을 때 경비원이 등록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내가 “뭘 등록하나요?”라고 묻자 그는 다시 한번 저를 쳐다보더니 “됐어요, 등록할 필요 없으니 가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거리에까지 갔을 때야 사부님께서 저를 보호해주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 신분증을 검사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사부님 보호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연거푸 말했습니다.

2020년 전염병 봉쇄를 없애 버린 후 저는 모든 기회와 시간을 다그쳐 세인들에게 진상 자료를 배포하며 사람을 구했습니다. 장을 보며 쇼핑할 때나 차를 탈 때면 핸드폰으로 진상 정보를 보냈습니다.

진상을 분명히 한 동료가 제게 말했습니다. “남편이 예전에 파룬궁을 믿지 않아 그에게 파룬궁 진상을 말해줬지만, 그는 삼퇴를 거절했어요. 작년에 폐암에 걸려 연말 죽기 전의 10여 일간 아파서 비명을 질렀어요. 이때 제가 다시 그에게 ‘파룬따파하오’를 외우라고 했어요. 그가 외우자 점차 아프지 않았는데 며칠 후 조용히 별세했어요. 죽은 후 얼굴은 붉고 윤기가 났는데 살아 있을 때와는 전혀 달랐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그의 원신(元神)이 구원받은 것입니다.”라고 제가 말했습니다.

저는 또 사부님께서 많은 사람이 아직 파룬궁에 대해 의사 표시를 하지 않았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럼 남길지 판단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할 때 저는 제 핸드폰으로 진상을 알리는 효율을 높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대법 진상을 알고 구원의 기회를 가질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무엇을 하러 나가도 핸드폰을 갖고 ‘파룬따파하오’, ‘선의로 대법을 대하면 하늘이 복을 내린다’,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에서 탈퇴하면 목숨을 지킨다’ 등의 진상을 세인에게 보냈습니다. 법공부와 발정념을 확보하고 다섯 가지 공법을 연마한 후 하루에 두 번 나가면 보통 700~900명이 그들의 핸드폰에서 진상을 받아볼 수 있는데 며칠 동안엔 천 명이 넘는 사람이 받아봤습니다. 물론 진상 메시지를 받았다고 해서 진상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상대방에게 진상을 알고 구원을 선택할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제자를 성취시키기 위해 사부님께서 심혈을 기울여 배치해주시고 수련의 길에서 지극한 보살핌으로 부축해주시고 일깨워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제자는 사부님의 크나큰 은혜에 영원히 감사드립니다!

개인의 수련 체득이니 법에 부합하지 않은 곳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바로잡아주시길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詩詞): ‘홍음4-세상에 온 것은 이 한번을 위하여’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사부를 모시다’
[3]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3-오직 이 한차례를 위해’

(밍후이왕 제18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원문발표: 2021년 11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1/11/10/433253.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11/10/43325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