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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생, 수련의 기회와 인연을 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리다

글/ 허베이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바링허우(80년대 생)이다. 부모님은 1998년부터 대법수련을 시작한 노 대법제자이고, 나는 2018년 6월에 막 수련을 시작한 신 수련생이다.

1. 대법을 수련한 후 병이 사라지고 기억이 회복되며 심신이 새롭게 건강해지다

내가 법을 얻기 전, 십여 년 동안 처음에 가벼웠던 경추 병이 해를 거듭할수록 더 심해졌다. 나중에 의사를 찾아 병을 치료했지만, 완화만 됐을 뿐 뿌리를 제거하지 못했다. 머리가 어지럽고 무거웠으며, 기억력이 감퇴하는 병고에 시달렸다. 게다가 성격도 좋지 않아 명리를 위해 다투고 항상 사는 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여겼다. 남편과도 자주 다투어 사는 것이 행복하지 않았다.

2017년 3월 어느 날, 친구와 함께 물건 사러 마트에 들어섰는데 이동하는 사람들을 본 순간 갑자기 머리가 핑 돌고 사지에 힘이 빠지며 기억력이 사라졌다. 친구의 도움으로 잠시 쉬었다가 가까스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후 밥도 못 하고, 반찬을 만들 때 순서도 기억나지 않았다. 남편은 어쩔 수 없이 외지에서 돌아와 나를 데리고 의사와 약방을 찾아다녔다. 중의, 양의에게 다 보였지만 의사는 신경쇠약으로 인한 것이라고 말할 뿐 병명은 알지 못했다. 약을 먹고 링거를 맞으며 풍수 보는 사람도 찾아다니면서 2만 위안(약 370만 원) 가까이 썼는데 호전되지 않았다.

1년 동안 이런 상태에 시달리면서 나는 거의 바보가 됐다. 대뇌가 얇은 막에 싸여 있는 것 같았고, 생각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밖의 세상은 온통 암흑이었다. 가끔 남의 말뜻도 이해하지 못하고, 머리가 마치 어두운 감방에 갇힌 것 같았다. 그런 느낌은 정말 말로는 형용할 수 없었다. 내가 걸린 병은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치료할 수 없을 것 같고, 생명이 막바지에 이른 것 같아 늘 죽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치료 기간에 어머니는 나에게 대법을 배우라고 권했지만 나는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기 바빠 법공부할 시간이 없다고 했다. 솔직히 말해 의사가 내 병을 치료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막다른 골목에 이르자 어머니는 대법만이 나를 구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되자 나는 대법을 선택했다.

6개월 넘게 노력해 법공부와 연공을 하면서 내 병은 차츰 나아졌다. 비록 그동안 감당하기 어려운 소업 과정을 겪기도 했지만, 사부님께서 정념을 가지(加持) 해 주셨기에 넘어올 수 있었다. 반년 사이에 몸과 머리의 불편했던 증상들이 모두 사라지고, 기억도 회복됐다. 얼굴에 화색이 돌고 생기가 넘쳤다. 관건은 내가 환골탈태하듯 완전히 변했다는 것이다. 관념, 성격이 모두 변하고 정말 심신이 유쾌했다. 알고 보니 대법은 이토록 신기하구나! 구함이 없이 사부님의 법을 읽으니 병이 나을 뿐만 아니라 사부님께서 배치해주신 수련의 길을 걷게 됐다.

금생에 대법제자가 된 것은 얼마나 큰 영광인가! 생생세세 윤회 환생은 모두 오늘날 법을 얻어 수련하고, 조사정법하며, 사전의 서약을 지키고, 성스럽고 장엄한 사명을 완성해 사부님을 따라 원만해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다만 정법의 마지막 시각에 수련을 시작했기에 법을 늦게 얻은 것이 한스러울 뿐이었다. 하지만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제도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있다. 사부님께서는 인간 세상의 미혹에 빠진 이 제자를 버리지 않으셨다.

2. 16년 동안 서로 왕래하지 않았던 둘째 숙모에게 진상을 전하다

그 이후, 나는 매일 법공부와 연공을 하고 스티커를 붙이고 전단도 나눠주었다. 그때 노년 수련생과 함께 밖에 나가 대면 진상을 알리고 싶었고, 대법의 신기함과 아름다움을 세인들에게 알려 그들도 구도 받게 하고 싶었다. 작년부터 나는 노년 수련생과 함께 나가 진상을 알리는 방법을 배웠다. 시간이 길어지자 나 혼자 나가서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중공의 삼대 조직인 ​공산당·공산주의 청년단·소년 선봉대 조직에서 탈퇴)를 시켜 평안을 담보하게 했다.

제자가 사람을 구하려는 소원을 품자 사부님께서는 정념을 가지 해주시고, 지혜를 주셔서 연달아 꽤 많은 사람을 탈퇴시켰다. 특히 작년 연말 ‘우한 바이러스’가 발생한 후 사람을 구하려는 정념이 더 강해졌다. 중생들이 벼랑 끝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어 반드시 가서 그들을 구해야 했다. 우리 대법제자는 그들의 희망이며, 이는 역사의 책임이자 중생들의 바람이다. 만약 소중히 여기지 않아 기회가 지나간다면 후회해도 늦었다.

2년 넘게 수련하면서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점화와 마음을 닦은 후의 아름다움이 나에게서 많이 체현됐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2020년 전염병 봉쇄가 해제된 후 우리 둘째 숙모에게 진상을 알린 것이다.

16년 전, 우리 집과 둘째 삼촌 집은 갈등으로 깊은 원한을 맺어 그 이후로 연락이 끊겼다. 두 집안은 어른에서 아이까지 만나면 원수 같았고, 종래로 서로 말하지 않았다. 수련한 후 사부님의 각지 설법을 읽으면서 나는 법에서 적을 사랑하지 않으면 원만할 수 없다는 이치를 알게 됐다. 법을 얻은 초기, 꿈에서 둘째 삼촌을 보았는데 이는 사부님께서 나에게 둘째 삼촌과 숙모에 대한 증오를 닦으라는 점화인 것을 깨달았다.

말은 이렇게 해도 워낙 서먹서먹하고 만날 기회도 적어 어떻게 해야 진정으로 이 마음을 닦아버려야 할지 몰랐다. 제자가 이러한 소원을 가지자 일체가 사부님의 절묘한 배치와 자비로우신 가지 하에 실현됐고, 심성도 승화됐다.

나는 법을 늦게 얻어 늘 자신이 법공부가 부족하고 더디게 수련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현에서 수련생들이 조직한 심득교류회에 참가하고 싶었다. 수련을 잘한 노 수련생들을 뵙고 그들의 수련심득을 들으면 분명히 제고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결국, 현에 도착해 낯선 수련생들을 만났다. 그분들은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많으셨다. 우리는 가부좌하고 앉아 돌아가며 ‘전법륜’ 제6강을 읽었다. 나는 사람이 많으면 쉽게 긴장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래서 곧 내 차례가 다가오자 나도 모르게 긴장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바로 이때 자비로운 에너지가 나를 감싸면서 긴장했던 상태가 사라졌다. 마음은 대단히 평온하고 상서로웠으며, 처음으로 대법 에너지장에 용해된 아름다움을 느꼈다.

이튿날 나의 상태는 여전히 그렇게 좋았다. 나는 친정집으로 가서 친척들을 뵈려고 진상 소책자와 카드를 챙겼다. 가는 길에 진(鎮)을 지나게 되어 거기에 사는 친구 집에 가 진상을 알리고 진상 자료도 건넸다(아쉽게 그녀는 아직도 삼퇴를 하지 않았다). 친구 집을 떠나 친정집으로 갈 때 기분이 유쾌하고 누구를 보아도 그토록 정겹게 느껴지고, 주위의 일체가 입체적인 것 같았다. 길에서 사람을 구하려는 정념이 아주 강했고, 만난 모든 사람의 생명이 그토록 소중해 마땅히 그들 모두에게 진상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삼촌 집으로 향하는 남북 도로에 들어서자 멀리서 외숙모가 보였다. 예전에 외숙모는 대법에 대해 오해하는 부분이 좀 있어 얼른 진상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외숙모를 부른 후 말했다. “지금 우한 바이러스가 맹렬하게 퍼지고 있는데 이는 우리 지역 중생들을 일깨워주는 것입니다. 말겁(末劫)에 이르러 대 도태가 왔을 때 오직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자주 염하고, 진상을 명백히 알아 삼퇴해야만, 목숨을 지킬 수 있습니다.” 가족들도 모두 이 아홉 글자 진언을 외우게 하라고 하자 외숙모는 기뻐하면서 동의했다.

외숙모가 떠나가는 방향을 바라보다가 멀리서 두 사람이 다가오는 것을 보았는데 일남일녀였다. 좀 더 가까이 왔을 때 그 여성이 16년 동안 말을 하지 않은 둘째 숙모라는 걸 발견했다. 그때는 둘째 숙모도 그토록 가깝고, 그 생명이 너무나 소중했다. 그도 미혹 속에 빠진 중생이기에 꼭 숙모에게 진상을 알려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당시 내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 둘째 숙모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옆으로 스쳐 지나갔다. 다리가 아파 절뚝거리며 걷는데 오늘은 전기 오토바이를 타고 빨리 이동해 나는 그 뒤에 한참 뒤처졌다. 그래서 속도를 내어 그 뒤를 쫓았고 친정집 마을 입구에 거의 도착해서야 겨우 따라잡았다. 나는 숙모와 오토바이를 나란히 타면서 거리낌 없이 먼저 인사했다. 그때 마음속에 아무런 느낌도, 간격도 없었다. 오직 우리 둘이 한 집 식구가 된 것은 숙모에게 대법 진상을 알려 그녀가 구도 되기 위해서라는 생각만 있었다. 나는 과감히 숙모의 앞길을 막으면서 몇 마디 할 얘기가 있으니 잠깐 길옆에 세워달라고 했다. 숙모는 나를 알아보고 내가 그녀에게 말을 건넨 것이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그래서 나에게 “누군지 모르겠으니 마스크를 벗어보세요.”라고 했다. 내가 마스크를 아래로 내리자 둘째 숙모는 말했다. “둘째 조카네. 우리 오랫동안 서로 말도 하지 않았는데 어찌 된 일이야? 오늘 왜 이렇게 하얗고 예쁘니?” 나는 말했다. “파룬따파를 배웠기 때문이며, 1년 전에 저도 병이 있었습니다. 숙모 다리가 안 좋다고 들었는데 집에 가셔서 자주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염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호전될 겁니다.” 그리고는 계속해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시켰다.

이 일이 지난 후 집으로 돌아와 생각해보니 그때 발생한 모든 것들이 꿈만 같았다. 나에게 무슨 용기가 있어 줄곧 적으로 여기던 둘째 숙모에게 진상을 알렸을까? 나도 믿기지 않았다. 이건 평소 정념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절대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이튿날, 제자가 서둘러 사람을 구하려 하고 정념이 족하다면 일체는 사부님의 절묘한 배치와 자비로우신 가지 하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몇 달 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를 안장(安葬)하는 그 며칠 동안, 어머니는 사부님의 말씀에 따라 원망과 증오를 내려놓고 둘째 삼촌과 숙모에게 말을 건넸다. 이렇게 우리 가족은 화해했다. 어머니의 행동은 우리 마을 이웃들에게 좋은 평판을 남겼다. 예전에 어머니는 성격이 아주 강직해서 종래로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파룬궁을 배우지 않았다면 절대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부님을 따라 여태껏 걸어오면서 나는 마치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 같았다. 맨 처음에는 비틀거리면서 시시각각 사부님의 점화와 부축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스스로 성스럽고 장엄한 수련의 길을 걸을 수 있다. 그 어떤 말로도 사존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할 수 없다.

수련생 여러분, 역사의 최후 관건적 시각에 우리 함께 노력해 사부님께서 연장해주신 얼마 남지 않은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으로 수련해내고, 시간을 다그쳐 세 가지 일을 잘하자.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만족스러운 답변을 드리고 후회 없는 수련 과정을 완성하자!

개인의 얕은 인식으로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1년 10월 3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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