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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동적인 데서 주동적으로

‘수련생이 우리에게 자료를 만들어 주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성찰’을 본 소감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수련생이 우리에게 진상 자료를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성찰 글에서 말했다. 자료의 수요가 증가된 상태에서 수련생 B가 이 항목을 받았다. 나중에 원인을 설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료를 제공해 주지 않았다. 그리고 “어떤 수련생 집은 자료 만드는데 아주 적합하지만, 각종 이유로 안 된다고 말했다. 나의 이해는 어쩌면 수련생 B는 모든 일을 도맡아 하지 않으려 하고 관련 수련생의 가는 길을 가로막지 않으려 생각한 건 아닐까? 필경 수련은 마땅히 주동적으로 해야 하고 기다리고 의지하고 받는 것은 피동적인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 글을 쓴 수련생의 선에 대해 감동받았다. 그는 수련생 B를 오해하지 않고 선의적으로 이해했다. 또한 ‘자료를 만드는 데 아주 적합하지만, 오히려 각종 이유로 안 된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내 주변에도 많다. 아래는 내가 알고 있는 몇 가지 일과 이 일에 대한 옅은 인식을 이야기하려 하고 글로 적어 수련생과 교류하려 한다.

사례 1

몇 년 전 큰 자료점 수련생 A가 몸이 불편해 다른 수련생에게 넘겼다. 수련생 C는 말했다. “우리가 돈을 줘 당신이 자료를 만들었는데 다른 수련생에게 넘겼는데 몸이 불편한 것은 이 원인이 아닐까요?”

수련생 A가 홀로 큰 자료점을 유지하는데 자료의 종류도 많고 양도 많아 그는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외에 법공부도 못하고 거의 온종일 각종 자료를 만든다. 수련생 A의 생각은 간단하다. 산간지역 대다수 수련생은 연세가 많기에 자료를 만들면 그들에게 먼저 준다. 하지만 수련생 C의 말을 들은 수련생 A는 다시 다그쳐 또 자료를 만들었다.

사실, 수련생 A 주변 많은 수련생은 객관적인 각도에서 보면 모두 자료를 만들 조건이 구비됐지만, 오랫동안 수련생 A에게 자료를 가져갔다. 수련생 A도 두렵지만 다른 수련생이 자료를 만드는 것이 마음이 놓이지 않았고, 동시에 수련생에게 각종 자료를 제공해 주는 것을 좋아해 수련생들이 요구하면 모두 들어줬다. 이렇게 몇십 년을 만들었다.

바로 이런 원인으로 주변 수련생의 의지하는 마음과 두려운 마음이 수련생 A에게 가해져 오랫동안 덮어 감춰졌다. 나중에 수련생 A도 자신이 모든 일을 도맡아 하고 일을 하는 마음이 마음 닦는 것보다 크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는 본래 내년에는 손을 놓고 수련생이 곳곳에 꽃을 피우게 하고 각자 자신의 길을 걷게 하려 했는데, 유감스럽게 그날을 기다리지 못하고, 수련생 A는 납치되어 가산을 몰수당하고 대량의 기계와 자료는 악한 경찰이 강탈해 갔다. 나중에 수련생 A는 불법 노동교양을 받았고 몇십 년을 유지한 큰 자료점은 이렇게 사라졌다.

지금, 수련생 C가 인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그때 법에 있지 않은 이른바 수련생과 교류한 말이 사실 수련생 A가 묵묵히 일하는 이 길로 몰지 않았는가? 오랫동안 수련생 A를 의지한 그런 수련생은 무엇이 진정으로 남을 위한 것인지 생각해 보았는가? 어떻게 해야 본질에서 진정으로 수련생을 돕는 것인가? 자신의 두려운 마음을 돌파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주동적으로 해야 하고 피동적으로 수련생을 의지하면 안 된다. 수련생 A도 이 난을 경험한 후 다시 자신의 문제점을 인식했는가? 일을 많이 하고 크게 하는 일 하는 마음이 오랫동안 기타 심성 문제를 덮어 감춘 외에 혼자 모든 일을 도맡아 오래 한 것이 도대체 자신과 남에게 무엇을 가져다주었는가?

사례 2

세상을 떠난 기술수련생 D는 전에 수련생 사이에 입소문이 좋고 열정적이고 주동적이며 수련생의 일에 최선을 다했다. 그러므로 수련생은 그에게 도움을 많이 청했다. 때로 수련생이 자발적으로 운전해 수련생 D를 데리고 곳곳으로 다니며 기타 수련생을 도와주었다. 식사 시간 때도 수련생이 일이 있다고 하면 간다. 수련생 집에서 일하고 식사하자고 해도 남아 밥을 먹지 않았다. 현지 기계 수리는 모두 수련생 D에 의지했다. 수련생 D가 병업이 엄중한 시기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보면 만약 그때 기타 수련생이 처음부터 각자 스스로 방법을 생각해 기계 수리 문제를 해결해 수련생 D의 압력을 감소해주고 그에게 법공부 시간을 충분히 줬다면 아마 수련생 D가 일을 하는데 바빠, 일하는 것을 수련으로 잘못 생각하고 법공부와 마음 닦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유감스럽게도 세상을 떠났다.

사례 3

한 F 자료점 수련생은 오랫동안 G 자료점 수련생에서 소모품을 가져갔다. 처음 G 자료점 수련생이 자발적으로 도와 소모품을 구매해 준다고 했다. 게다가 오랫동안 G가 부담하고 비용을 받지 않았다. 사실 F 자료점이 있는 지역은 젊은 수련생이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그동안의 습관이 지금의 의지심이 생겼다. 그리하여 지금 어떤 수련생은 스스로는 인쇄 소모품을 구매하지 못한다. 이유는 보기에 합리적이다. G 자료점 수련생은 차가 있고 어쨌든 그도 구매해야 하기 때문에.

하지만 이런 이유는 모두 객관적인 외부의 이유가 아닌가? 수련은 주동적으로 안으로 찾아야 하지 않는가? 주관적인 원인은 스스로 마음속의 두려움을 닦아버리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닌가? G 자료점 수련생은 처음 시작의 그렇게 좋은 마음도 수련 과정 중 우리의 부동한 심성의 요구에 다른 깨달음이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사례 4

수련생 E는 오랫동안 진상을 알리는 제1선에서 많은 사람을 삼퇴 시켰다. 그는 열정적이고 활달하고 일하는 것이 재빠르다. 나중에 E가 자료인쇄 항목을 맡았다. 하지만 기계가 자주 고장 나서 기계 수리를 여러 번 했지만, 철저히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수리하는 사람이 E에게 기계도 자신의 속성이 있어 인쇄를 한동안 한 후 충분한 휴식 시간을 준 후 인쇄해야 한다고 했다. 새 기계도 마찬가지로 이렇게 사용해야 한다고 말해도 수련생 E는 계속 묻는다. “도대체 수리할 수 있는가? 라며 재촉한다. 만약 이러면 나는 하지 못한다.”

수련생 E는 일을 빨리하는 것을 구하는 성격이라 시간을 집중해 일하기 좋아한다. 기계의 특성에 따라 시간을 나눠 배치해 인쇄할 수 없다고 한다. 수련생 E 주변의 기타 수련생은 두려운 마음에 시간이 있어도 자료 인쇄를 감히 맡기지 못했다. 단지 수련생 E의 처분만 기다리며 의지하고 자료를 가져가려 한다. 누구도 근본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

이렇게 기계가 자주 고장 나서 자료가 제대로 제공되지 못해 기술수련생을 수시로 불렀다. 피동적으로 시간과 정력만 소모될 뿐 소통이 되지 않아 전혀 방법이 없었다. 나중에 수련생 E가 이런 급히 성공하려는 성격으로 인해 그의 경제 방면에 큰 마난을 초래했다. 수련생이 자료점 수련생을 의지하면 결국 자신과 기술수련생이 아주 피동적으로 변하게 된다.

자신의 수련의 길을 걷고 함께 조사정법

우리는 법에서 수련의 길에 우연한 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수련인이 문제가 생기면 모두 스스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위에 열거한 사례에서 수련생에게 나타난 각종 박해는 기타 수련생이 초래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수련생이 일하는 마음에 감춰진, 자신도 모르는 상황에 법에 서서 그를 돕지 않고 반대로 그가 일하는 길에서 줄곧 앞으로 가게 재촉했다면 그때 우리는 어떤 역할을 했는가? 마난의 길로 수련생을 민 것이 아닌가? 우리 수련생들은 마음을 조용히 하고 자신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법에서 다른 수련생을 위해 생각했는가? 자신이 일하는 마음에 덮어 감춰진 두려운 마음이 있어 수련생을 재촉해 일하라고 하고 수련생을 의지하는 것이 아닌가?

여기에서 나는 수련생이 자발적으로 일을 한 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예컨대 이 글에서 언급한 수련생 A, 수련생 D, G 자료점의 수련생이다. 그들은 법리의 위대함, 아름다움으로 인해 자발적으로 일부 좋은 일을 담당했다. 그 정신은 우리가 배우고 찬양해야 할 가치가 있다. 하지만 법은 무한한 지혜와 내포가 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부동(不同)한 층차(層次)에는 부동한 층차의 법이 있다.”[1] 그러므로 한 가지 일에 대해 검지 않으면 희고 이것 아니면 저것이 아니다.

나의 진선인(真.善.忍)에 대한 인식은, 일하는 측면에서 자연스럽게 지혜롭게 선택해야 한다. 적당히 들었다 놓았다 하는, 도맡음이 아니다. 반대로 억지로 도맡으면 자연스럽게 되어감을 위배하고 더욱 좋은 배치를 교란하며 이로 인해 남의 길을 가로막는다. 진정으로 수련생을 위하려면 수련생의 최종 원만을 위해 책임져야 하고, 눈앞의 구체적인 일을 독점적으로 수련생을 도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며, 법리에서 수련생을 도와 자신의 길을 걷게 해야 한다. 그들 속에 아름답고 신성한 꽃을 피우게 해야 한다.

자료점이 곳곳에 꽃피게 하는 것은 사부님께서 인정하셨다. 진정으로 자료점이 곳곳에 꽃피게 하려면 자료를 만드는 기계를 많이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수련생이 분산해 제공하고 자료를 가져가야 하고 또 소모품의 구매와 기계 수리도 포함된다. 그렇지 않고 한 수련생만 바라고 의지하면 진정으로 곳곳에 꽃을 피우지 않은 것이다. 자료 제공, 소모품 구매, 기계 수리, 이런 구체적인 일을 모두 도맡아 하는 것은 잠시다. 도맡아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많은 사람 마음, 집착이 일하는 마음에 덮어 감춰져 발견하기 어렵다. 곳곳에 꽃을 피우는 모습은 분명하게 보인다. 자신에 대해 각자 마음속의 집착심, 고려심을 내려놓고 자신의 길을 걷고 남인 특정 수련생에게 의지하지 말고, 어려움을 더하지 않아야 정체가 유연하고 편리하고 안전해질 수 있다.

“사부가 문으로 이끌어 들이나 수행은 자신에게 달렸다.”[1] 수련은 매 사람 자신의 일이다. 대법 일을 하는 것은 수련의 일부분인데 수련은 또 자신 외에 어느 수련생에 기대하고 의지할 수 있는가? 사람마다 수련은 모두 쉽지 않고 다른 수련생도 그의 어려운 점이 있다. 각자 무엇을 하고 얼마나 해야 하는 것은 스스로 결정해야 하고 남에게 배치해 줄 수 없다. 법에서 교류하고 조율할 수 있지만, 수련생에게 재촉할 수 없다. 주동적으로 자신을 닦아야 하고 무의식중에 압력을 가해 다른 수련생이 피동적으로 감당하게 하면 안 된다.

‘수련생이 우리에게 진상 자료를 만들어 주지 않는다’에 것에 대한 성찰”이 글에서 글은 짧지만, 수련생의 구구절절한 소박한 언어에 나는 감동했다. 수련생은 자료를 제공해 주지 않는 수련생 B를 선의적인 이해를 했다. 이것은 일종 좋은 수련 행위가 아닌가? 최근 몇 년 나도 여러 번 주변 수련생에게 곳곳에 꽃을 피우는 것을 제기했지만 만나는 대다수 수련생은 이해하지 못하고 두려운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나도 안으로 자신을 찾았다. 마음속으로 완전히 100% ‘두렵지 않다’는 아직 해내지 못했다. 나는 아직 완전히 ‘두려움’이 없는 경지는 어떤지 경험하지 못했다. 하지만, ‘두려움’과 ‘두렵지 않음’은 ‘곳곳에 꽃을 피우다’와 충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두려움’은 자신이 닦아야 할 문제다. 일을 모두 도맡아 하거나, 곳곳에 꽃을 피우는 것은 정체 미래의 큰 방향과 관계된다. 전체적인 형세를 총괄해 고려하고 남을 생각하는 수련인의 심성의 진실한 체현이며, 곧 신이 될 생명에 대한 진정한 책임이다.

모두 대법제자는 정체라고 말한다. 만약 우리 수련생이 선의적으로 이해하고 기타 수련생을 너그럽게 대하고 주동적으로 각자의 일부분을 감당하고 어떤 수련생도 의지하지 않는다면 기타 수련생이 피동적인 감당을 피하게 할 수 있다. 이것은 진정으로 정체 협력, 조사 정법으로 크게 한 걸음 나아간 것이 아닌가?

이는 현재의 인식으로 적절하지 않은 점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시정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21년 9월 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9/1/43029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