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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에르바하 (Erbach)에서의 심득교류 발표회 (사진들)

[명혜망] 2005년 12월 28일, 독일 파룬궁 수련생들은 매년 관례대로 에르바하에 모여 4일간의 신년휴가를 보냈다. 그들은 단체 법공부와 연공을 하고, 2005년 심득교류발표회를 가졌다.

연공

심득교류회

법회

독일어를 하는 파룬궁 수련생들을 위한 연례 심득교류회가 12월 30일 오후에 열렸다. 200여명의 수련생들이 교류회에 참석했다.

한 수련생의 어머니가 한 때 노동수용소에 갇힌 적이 있었고 그녀를 구출하기 위해 독일 수련생들이 광범위하게 청원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모든 수련생들 앞에서, 어떻게 그녀가 두려움에 대한 집착을 극복하고 진상을 폭로하러 나왔는가, 아울러 그녀와 다른 수련생들이 어떻게 중국의 노동수용소에서 박해를 받았는가에 대해 이야기했다. 수련생들은 그녀의 연설에 감동을 받고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67세인 다른 여성 수련생도 그녀의 경험을 교류했다. 그녀는 수련생들에게 그녀가 어떻게 중국에서 박해를 받아 유리걸식하게 되었었는가에 대해 말했다. 독일에 온 후, 처음으로 그녀가 중국대사관 앞에 청원하러 갔을 때 그녀는 울었다. 중국에서는 박해상황 때문에, 공개적으로 연공을 할 수 없었고 중국 사람들에게 진상하지 못했었다.

중국에서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이외에도, 다른 다섯 명의 수련생들은 그들이 비교적 편안한 국외환경에서 어떻게 수련하고 있는가를 교류했다. 일부는 노수련생들이고, 다른 사람들은 1999년 7월 20일 이후에 법을 얻은 신수련생들이다.

교류가 끝난 후, 수련생들은 여전히 그들의 느낌을 교류했다. 일부는 다른 사람들의 발표를 듣고 나서 그들의 단점들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일부는 그들이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던 문제들에 대해 분명해졌다고 말했다. 이 교류회는 그들에게 진정한 ‘배움을 비기고 수련을 비기는’ 장소가 되었다.

하나의 그림이 수천 마디의 말보다 낫다

연꽃을 접다

‘키 큰 존’의 솜씨 좋은 손

휴식시간 동안, 일부 서양수련생들은 시간을 내어 함께 종이 연꽃을 접었다. ‘키 큰 존’이라는 별명을 가진 아주 키가 큰 수련생이 그의 솜씨 좋은 손으로 그런 작은 연꽃을 접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은 상당히 감동적이었다. 그가 말했다, “이 연꽃을 접는 일이 나의 마음을 조용하게 해줍니다. 나는 수년간 파룬궁을 수련해왔습니다. 나는 각종 방법을 통해 사람들에게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박해를 알리고 싶습니다. 하나의 그림이 수천 마디의 말보다 낫습니다.” 사람들이 이 작은 연꽃을 받았을 때, 그들은 수련생들로부터 선량함을 느낄 수 있고, 그런 다음 그들에게 박해를 설명하게 되면 아주 쉽습니다.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온 돌로레스는 한 송이의 연꽃은 진흙 속에서 자라지만 진흙에 물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것이 대법과 파룬궁 수련생들의 순결과 선량함을 대표합니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파룬궁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갖도록 도와줍니다.

크리스티나는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에게 파룬궁이 중국에서 박해받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릴 수 있다. 진상을 들은 후에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그들이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를 묻는다, 일부는 청원서 용지에 서명하고 일부는 우리에게 그들의 축복을 보낸다.

신년(新年) 연출

신년을 축하하기 위해, 수련생들은 문화예술 프로그램, 노래, 악기연주, 연기, 등을 연출했다. 한 수련생은 그녀가 아주 어렸을 때 양금을 배웠었다. 그녀가 30년 넘게 이것을 만지지도 않았지만, 이 특별한 경우에 그녀가 이것을 다시 집어 들었다. 그녀가 그녀의 아버지에게 녹음된 테이프를 들려주었을 때, 그는 다만 그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놀랍고도 재치 있었던 프로그램은 “꿈과 인연” 무대극이었다. 한 수련생이 꿈에서, 많은 전생의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는 농민, 무사(武士), 승려 등등이었다. 그가 농민이었을 때, 그는 지진이 일어나서 다른 사람들을 구해주다가 죽었다. 그가 무사였을 때는, 아내와 작별하는 것을 괴로워했고, 전장에서 죽었다. 그가 승려였을 때는, 절에 가겠다고 그의 부모님에게 작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에 대한 정에 대한 집착심을 내려놓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수련에 성공하지 못한다. 지금, 그는 파룬궁 수련생이 되었고 박해를 폭로하면서 그의 전생에서의 그의 자식들, 아내, 적과 부모들을 만난다. 이 모든 선과 악의 인연관계가 용해되었다. 연출은 진정하고 감동적이었으며, 많은 관중들에게 눈물을 흘리게 했다.

전생에 농민이었다

중이 되기 위해 그의 부모에게 작별한다

무사와 싸우고 있다

많은 파룬궁 신수련생

단체 법공부에 참석했던 상당히 많은 수련생들이 신수련생이었고 그들 중 서양인들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수련생들이 여러 곳에서 열었던 행사를 통해 파룬궁을 알게 되었다. 시작에는 단순히 박해에 대해 들었고, 다음 >을 읽었으며, 수련을 시작하게 되었다.

바로 일 년 전, 쾰른의 수련생 스티븐과 함부르크의 위웨이가 쾰른성당을 방문했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그들은 수련생들이 배부하는 전단을 보았다. 그들은 파룬궁에 깊은 매력을 느꼈다. 그들은 그들이 사는 도시로 돌아가서 지역에 있는 연공장을 찾기 시작했다. 후회되는 일은 스티븐이 쾰른 연공장에 처음 갔을 때, 중국에서 온 일부 스파이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는 매우 불편함을 느껴 혼자 집에서 연공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다섯 달의 시간을 허비했다. 그러나 그는 마침내 다른 수련생들을 만났다. 위웨이는 좀 더 운이 좋았다. 집에 돌아가서, 그는 바로 수련을 시작했다. 그는 중국 사람들에게 그의 신년인사를 하고자 했고, 그들이 중공의 독해에 기만당하지 말 것을 희망했다. 다른 선택을 받아들여, 사악한 중공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그런 다음 자신들을 위해 더 좋은 미래를 가져라.

울라가 쾰른성당 앞에서 파룬궁 수련생들을 처음 만난 것은 단지 그가 14세 때였다. 당시, 그는 러시아로부터 방금 독일에 왔고 그는 독일어를 잘하지 못했다. 그러나 우연하게도 그곳에는 러시아에서 온 수련생 한 명이 있었다. 그들은 그 이후로 서로 연락을 해왔다. 지금, 울라는 17세이고 그가 파룬궁을 수련할 수 있어서 아주 행복하다. 그는 항상 중국 사람들에게 배부해줄 진상자료들을 많이 가지고 다닌다. 이번 신년 연출에서, 그는 현생에서 수련생을 연기했다. 그는 전생의 많은 삶 중에서 그가 중국에서 살았다고 믿었다. 그는 앞으로 더욱 많이 더 잘하겠다는 포부를 나타냈다. 그는 러시아가 한 것처럼 중국 사람들이 중공을 빨리 제거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아주 어린 제자

에르바하를 떠나기 전, 나는 창문 밖을 흘깃 내다보았는데 정원에 혼자 있는 꼬마 제자 마리오를 보았다, 그는 전날 남은 불꽃놀이의 흔적을 치우고 있었다. 그의 바쁜 실루엣을 보면서, 나는 정(情)에서 나오는 한 숨을 쉬었다. 그가 아직은 아주 어리지만, 그는 노제자에 꼽힐 수 있다. 제5장 공법을 하는 그의 사진 하나가 독일 전단에 나와 있다. 중공에 의한 이 박해 기간동안, 그는 그의 엄마와 할머니를 따라 곳곳을 여행했다. 그들은 중공이 파룬궁 박해를 중지할 것을 희망하면서 전 세계의 각종 행사에 참석했다. 지금, 그가 그렇게 크게 자랐지만, 중공의 박해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므로 중공이 완전히 청리될 때에만 전세계 사람들이 다시 평화를 얻게 될 것이다.

2001년 그의 엄마와 제네바 유엔에서 청원하다

지금 그는 훨씬 컸다

원본위치: http://clearharmony.net/articles/200601/30856.html

발표일자: 2006년 1월 10일
원문일자: 2006년 1월 10일
문장분류: [해외소식]

중문위치: http://yuanming.net/articles/200601/48290.html
영문위치: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6/1/10/6885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