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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 와서(번역문)

글/ 마슈·나이즈다

【명혜망 2005년 4월 25일】 2주 전 한 수련생이 이번 법회를 위해 심득 글을 쓰지 않겠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그럴 계획이 없다고 하였다. 여러 사람들과 나누고 싶을만큼 그렇게 깊은 체험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아주 평범해 보이는 일도 다른 동수들에게는 깊은 영향을 줄 수 있으며, 그래서 그들의 수련을 도울 수 있다고 하였다.

동수의 그 말에 나는 “아닙니다. 저는 정말로 쓸만한 것이 없습니다”라고 했더니 그는 “그럼 당신이 뉴욕에 오려고 결정하게 된 동기가 무엇이었죠? 아마 그것을 쓰면 뉴욕에 오려고 생각하고 있는 동수나 또는 오지 못하는 동수들에게 도움이 될 겁니다. 저도 심득 글을 쓸 생각이니 우리 함께 씁시다.” 수련생이 그렇게 말을 했음에도 나는 여전히 내키지 않아 했는데, 또 다른 일에 한창 바쁜 상태이기도 했다.

이때 발정념 시간을 알리는 알람이 울려 이야기를 중단하고는 정념을 내보낸 후 나는 그에게 “그럼 좋아요. 우리 언제 쓸까요?”라고 했다.

작년 여름, 나는 뉴욕에 가야만 될 것 같은 인식이 들었다. 그 당시 나는 대학 3학년에 올라가려 준비하고 있었는데, 아버지도 내가 학교를 쉬고 견습 사원을 하는 게 괜찮은 생각이라고 하셨다. 재학 중의 재직 경험이 졸업 후 일자리를 찾는데 도움이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작년 10월, 나는 이렇듯 개인적인 이유로 캘리포니아주의 집을 떠나 동쪽에 있는 뉴욕으로 날아갔다. 그곳에서 며칠 동안 쉬면서 대법 일을 도와주거나 혹은 일자리를 찾을 생각이었다. 나의 아버지는 미국의 대형은행 관계자를 잘 알고 있어 각기 다른 부서에서 3 번의 면접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 은행은 전세계적으로 네트워크가 형성된 가장 큰 금용서비스 집단으로 1902년부터 중국과 거래를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긍정코 중공 정부와의 거래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면접할 때 나는 가장 중요한 일이 진상을 알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나를 고용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진상을 들을 기회가 적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두 면접관은 나를 고용할 생각이 없었지만 나에게 진상을 들을 수는 있었다.

세 번째 면접관은 은행의 상급자였다. 나는 그와 면담할 예약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였더니 그는 사무실에 없었다. 사무실 문이 열려 있어서 안을 들여다 보니 벽에는 상장과 서양식 군관학교의 뱃지가 가득 걸려 있었다. 그가 왔을 때 그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수천 명의 사원을 거느리고 일하는 소감을 이야기 하는 것이었다. 그는 나에게 “당신은 아십니까. 사람을 관리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자신의 자만심를 내려놓는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나의 반응을 살폈는데, 나는 그의 말에 흥미를 느꼈다.

그가 매일 가부좌하여 명상을 하고 있다는 말에 나는 “정말입니까? 저도 날마다 가부좌합니다. 저는 파룬궁을 연마합니다.”라고 대답했다. 남은 반 시간 동안의 면접은 가부좌에 대한 이야기와, 집착을 제거하는 것, 고생을 하여 제고하는 것에 대해 철학적으로 토론을 하였다. 그는 내가 뉴욕으로 온 것은 돈을 벌거나, 뉴욕에서 자극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고생을 하여 자아를 단련시키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은행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일부 동수들과 교류를 하다보니, 내가 휴학하고 뉴욕에 와서 대법을 실증하는 것은 마땅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속인 상태의 수련에 부합되지 않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뉴욕에 남기로 결정하였는 데 그것은 정말이지 미래를 위해 한 갈래 탄탄대로를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후세 사람들은 또 내가 결정한 것들이 대법을 실증하기 위한 것임을 알게 될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 뒤에 나는 또,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들이 마땅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것은 어떤 사람도 나와 같은 이유로 일자리를 버리거나, 그들의 가족을 떠나서 단지 대법의 일만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뉴욕에 가지 않기로 결정 하였다.

그런데 그 뒤에 또 생각해 보니, 내가 마땅히 가야만 한다는 수많은 점화가 있었다. 아버지가 견습사원을 제의한 것도 우연이 이니며, 지난 몇 달 동안 다른 사람들의 암시를 생각해 보면 우연이 아니었다.

내게 확실한 일자리가 있으면 나 자신을 먹여 살릴 수 있다. 그리고 속인의 층에 부합하여 사업 경험을 쌓는 것이다. 학교와 부모 모두 이 사실을 크게 지지하고 있고, 집에서는 내가 없어도 크게 부담이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부모님의 격려와 축복을 받으면서 학교에는 1년간의 휴학계를 내고 뉴욕으로 날아갔다.

처음에 나는 큰 회사에서 일하는 것은 보류하였다. 왜냐하면 수많은 은행처럼 그들 또한 과거에는 의심스런 일을 하였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만약 그들이 매 년마다 중국과 수백만 달러의 장사를 한다면 나 역시 그곳에 가지 않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려야 할뿐만 아니라, 거기에 월급이 나와야 뉴욕에 거주할 수 있는데, 이는 대법 일에 간접적으로 공헌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독특한 견습생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나를 다른 부문에 배치하여 일하게 하였다. 그래서 나는 차이나 거리의 분점으로 지원하여 그 곳에서 한 달간 일하였는데, 동료직원들 모두 중국인이었다.

나는 한동안 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들에게 내가 파룬궁 수련자 임을 알려주려고 하였다. 만약 내가 처음부터 모든 사람들에게 수련자라는 사실을 알린다면 부정적 선입견이 먼저 가로막아 그들이 나를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우호적인 방식으로 그들과 접촉하였다. 동료직원들은 내가 중국말을 사용하며, 또 중국문화에 깊은 호감이 있는 것을 보고는 나와 이야기 하기를 좋아했다.

입사한 지 3주가 지난 어느 날, 한 동료직원이 나에게 자신은 중공의 고관이 될 것이라고 큰소리 치는 것이었다. 나는 그를 구도해야 할 기회임을 직감했다. 예전에 내가 진상을 알릴 때는 그들이 귀를 씻고 진상이 무엇인지 듣기를 공손히 요구하곤 하였다. 그런데 최근 동수와의 교류를 통해 상대에게 문제를 제기한 후, 상대방이 말하는 것을 끝까지 경청하여 그들의 관념이 무엇인지를 찾은 후, 그 관념을 타파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는 저녁에 나는 >을 보았는데 지혜가 열리는 것 같았다.

“당신은 톈안먼 광장의 사건을 알고 있습니까?”라는 문제를 제기하며 동료직원에게 물었다.
“압니다. 학생이 관병을 공격하여 불태워 죽였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서방 매스컴에서 방송하기로는 손에 무기가 없는 학생 수백명을 관병이 죽였다고 보도했는데 그 뉴스를 보았는지 물었더니 그는 보지 않았다고 하면서 아무튼 중국 사회는 안정을 유지해야 한다고 하였다. 동료의 그 말에 나는 당이 없으면 중국은 없는 것인지 물으면서 “사회 안정은 실제로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정부 아니면 인민입니까? 인민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닙니까?”라고 했더니 그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중국 공산당은 나타난 지 50년 밖에 안 되지만, 중국인은 오히려 5천년의 휘황한 역사가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말하면 중국문화는 세계적으로 가장 선진적인 문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공이 없어도 중국인은 아주 좋은 것이 아닙니까?” 그가 내 말을 이해하는 것 같아 나는 계속해서 “그러나 중공 정부는 그렇게나 많이 자기네 인민을 죽였습니다. 대약진, 문화대혁명… …”

나의 설명에 그는 중국은 현재 진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내 친구가 뉴욕시보를 통해 현재 중국에서는 수백만에 달하는 천주교도들이 잔혹한 박해를 받고 있고, 파룬궁도 똑같이 박해를 받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는 “오, 파룬궁은 다릅니다.” 라고 했기에 나는 그가 어떻게 독해된 것인지 찾아내야 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은 파룬궁을 압니까?” 질문했더니 그는, “당신은 파룬궁이 사람들에게 밥도 먹지 못하게 하고, 일도 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압니까?”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당신은 어디에서 들었습니까?”라고 되물었더니 그는 정말이라고 하였고, 나는”이는 진짜가 아님을 나는 보증할 수 있습니다.”고 하였다. 그는”당신이 어떻게 압니까? 당신은 또 파룬궁 수련자도 아닌데.”라고 하였다. “사실 저는 이미 몇 년 동안 파룬궁을 연마하고 있습니다” 내 말에 그는 아주 호기심을 가졌다. 이렇게 되어 나는 그에게 수많은 것들을 설명할 수 있었고, 또 그가 질문하는 것을 전부 답해줄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나의 업무 실적이 괜찮고, 내가 또 중국 역사를 알면서 중국문화를 존경하고 있음을 알고있기 때문에 내 말을 듣기 좋아했다.

항상 나의 업무 태도가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차이나 거리 분점을 떠난 후에 나는 신용카드 영업부에 들어갔다. 분점과 달리 그곳은 내 책상과 컴퓨터, 전화가 있어 아주 편리하였다.

첫 1주일 동안 출근했을 때 나는 날마다 졸았고 심지어 회의를 할 때도 졸았다. 나는 대법 일에 너무 바빠서 매일 밤잠을 몇 시간 밖에 자지 못한 탓으로 여겼다. 회사가 나에게 연구하라는 분야가 어려워 재미가 없었기에 느릿느릿 일하였다. 가장 잘못된 것은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상사가 내 월급을 결정하지 않아 내가 무엇을 하든지 실적에 대해 상관하는 사람이 없을 뿐더러 장려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

상사가 나에게 돌발성 수면증에 걸린게 아니냐고 물었을 때 나는 몸둘 바를 몰랐다. 나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는 핑게를 대었더니 그는 나에게 좀 더 자라고 하였다. 즉, 집에 돌아가 잠이나 자라는 뜻이었다.

첫 1주일은 온통 그 모양으로 대법제자의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는 데, 나는 내가 왜 그렇게 피로한지 몰랐다.

사부님께서 1998년 >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기억났다. “여러분들은 고생해야 함을 다 알고 있다. 그렇다면 당신의 혼침(昏寢) 그것은 역시 당신을 괴롭히고, 당신더러 수련하지 못하게 함을 생각하지 못했는가! 이것 역시 당신의 의지가 마땅히 역할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당신이 눈을 뜨고서도 자야만 한다는 것을 나는 믿지 않는다! 안 되면 눈을 뜨고 연공하라. 이 관을 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부님께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법을 배울 때 자고, 책을 읽을 때 자고, 연공할 때에도 당신은 자는데 어쨌든 이런 가장 초기의 것조차도 모두 돌파하지 못했다. 그것은 의지에 달렸다! 여러분 알다시피 당신이 수련 중에서 인간으로 구성된 어떠한 요소도 모두 당신으로 하여금 인간을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 구성된 어떠한 환경의 것도 모두 당신으로 하여금 떠나지 못하게 하지만, 당신은 무엇이든지 모두 돌파해야 하고 어떠한 마난도 모두 넘겨야 한다.”

나 자신을 속인으로 여겼기에 자제력이 모자랐으며 게으름의 마(魔)가 나의 빈틈을 타게 하였다. 내가 피로를 느낄 때 나는 다만 그것을 따라 계속하였던 것이다. 나는 또 일이 재미없다고 여기는 속인 마음에도 영향을 받았다. 그러므로 나는 그것을 돌파해야 했다.

이튿 날 나는 상사에게 사과했다. 내가 그렇게 졸았던 것은 이유가 없으며 사업을 잘하지 못한 책임도 질 것이며, 앞으로는 더욱 열심히 일할 것을 보증하였다. 그 후 일은 많이 나아져 예전처럼 잠자지 않았고 또 출근하여도 더 이상 졸지 않았다.

아주 빠른 시간내에 회사에서 진상을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사장은 나에게 회사의 제 1기 이익 생중계 방송에 참가할 생각이 없는지 물었다. 나는 물론 참가할 생각이라고 하였다. 왜 이 기회를 한 번 시험해 보지 않겠는가?

나를 대신하여 그가 참가 신청을 하였는데, 나는 마지막 부분에서는 관중이 집행총재에 대해 질문을 해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자리에서 무슨 질문을 던질지 생각하니 긴장되어 몸이 부들부들 떨릴 지경이었다.

처음에는 그에게 몇 백만의 무고한 국민을 박해하고 있는 중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질문 하려고 했다. 그러나 저녁에 한 동수와 교류를 했더니 나의 질문 내용이 극단적이라고 평가했다. 수련생은 나에게 집행 총재에게 질문할 때는 회사 매출 이익의 각도에서 고려해야 한다고 일깨워 주었다. 내가 만약 그를 비판하게 된다면 그는 화가 나서 나의 의견을 들은 척도 하지 않을 것임이 분명했다. 그래서 우리는 아래와 같이 상의했다.

“당신께서는 몇 달 전 1백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중공에서 탈출한 것을 아십니까? 저는 이런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은, 중국인이 갈수록 그들 정부의 탐오 부패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고, 또 천주교, 파룬궁 및 민주인사를 탄압하는 행동에 불만을 느낀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중국에 정치 위기가 발생한다면 우리는 이런 사건을 처리할 수 있는 방안이(機制) 있는지, 아니면 수시로 중국에서 철수할 수 있는지요?”

나는 나의 질문이 아주 좋다고 생각했는데, 왜냐하면 정법 노정 중 중공이 곧 붕괴됨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또한 박해를 당하고 있는 파룬궁에 대해 언급했을 뿐만 아니라, 직원이 회사의 앞날을 걱정하는 마음을 전달함으로써 자비한 것이기도 했다.

이튿 날 아침 나는 녹화실 첫 줄에 앉았는 바, 총재와 아주 가까운 자리였다. 전반에 생중계 된 내용은 금융에 관한 것이었는데, 그동안 내 마음은 끊임없이 두근거렸다. 나는 나 자신이 긴장하여 질문을 잘 할 수 있을 지 걱정되었다. 내가 왜 이렇게 긴장하지? 나는 마땅히 평온해야 하고 부처와 같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중요한 질문을 할 것인데 이렇게 긴장되어 떨리는 것은 반드시 교란이었기에 발정념을 하였다. 그리고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좋다. 신체야 너는 떨고 싶으면 떨어라. 하지만 내 마음은 완전히 조용해 져야만 한다.” 그 뒤 질문에 들어갔을 때의 나는 아주 평온하였고 일은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원래 녹화 테이프는 전세계에 있는 3천 명의 고급 이사들을 향해 방송하는 것이라 중국에 있는 몇 십만 명의 직원도 포함하고 있었다. 때문에 사악은 나를 긴장하게 한 것이었다. 비록 집행총재가 중국에는 정치적 붕괴가 없을 것이라고 대답하였지만, 그가 감히 할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은 사람들이 이 질문에 대해 사고하길 바란다는 것이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내가 뉴욕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임을 알았다.

그 외에도 뉴욕은 나 자신이 수련을 잘 할 수 있도록 아주 좋은 기회를 주었다.

“석가모니는 이러한 말을 한 적이 있으며 달마도 중국 동토(東土) 이곳은 대덕지사(大德之士)가 나오는 곳이다 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사부님께서는 >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오직 가장 복잡한 사람들 속에서, 가장 복잡한 환경에서야 만이 높은 공을 수련해 낼 수 있다는 이 뜻이다.”

가끔 나는 뉴욕이 아주 좋지 않은 곳이라고 생각하는데, 시끄럽고 더럽고 또 악취가 코를 찌르며 무척 덥거나 춥다.길가의 사람들은 당신과 눈빛을 마주치지 않고 당신을 피하기만 한다. 거리 중심에는 누드 사진이 걸려 있어 당신이 고개를 들면 그것들을 볼 수 있다. 얼마나 좋은 수련환경인가! 이곳은 길을 잃은 생명들에게 대법제자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다.

시 한수로 나의 체험 글을 마치고자 한다. 원래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뉴욕으로 오려는 하는 동수들을 격려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이 심득 글을 썼을 때는 그녀만을 위하여 쓴 것이 아니라, 수많은 동수들을 위해 쓴 것임을 깨달았다. 나는 이 시의 제목을 ‘약진(躍進)’이라 지었다.

암벽 아래의 도시를 응시하니
먼지와 오물, 더러운 눈 속에 뭍혀 있네.
비록 사람마다 조심하지만
또 미지에 의해 놀라서 경황이 없고 불안해 하네.
원래의 그가 진짜 나였음을 갖 알았다네.

마음을 다 잡고 다음 한 단락을 돌파하자
법이 있어 당신은 안개를 꿰뚫어 똑똑히 볼 수 있었네
지구 상의 열량과 압력은
금강을 만들어내네.
미혹 속의 고귀한 영혼을 구도하네.

사부님과 여러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문장완성:2005년 04월 24일

문장발표:2005년 04월 25일
문장갱신:2005년 04월 25일 11:51:08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5/4/25/100427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