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대법서적

혼란한 신화와 전통에 관한 사색 (4)

글/ 아노 H.(Arnaud H.)

[밍후이왕] (전편에 이어)

종교와 철학

고대 그리스의 종교는 신화와 서로 깊은 연관이 있지만,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었다. 종교는 흔히 신화와 문화 속의 훈계하는 내용을 채택함으로써 군중을 지도하는 작용을 일으킬 수 있었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신을 믿는 것이 이치상 당연한 일이었다. 따라서 그 시대에는 ‘종교’라는 말이 전혀 없었고 현대인의 종교에 대한 개념도 없었지만, 학술계에서 서술의 편의를 위해 줄곧 ‘종교’라는 말을, 확대 적용해 왔다.

우리는 또 어떤 때 ‘철학’이라는 용어를 볼 수 있는데, 고대 그리스의 철학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학문이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전해 내려오는 일부 수행 문파, 혹은 수련 방법과 유사했다. 이 점은 필자가 ‘예술사로 보는 인류 사상의 변천(2)’에서 밝힌 바 있다. 현대의 어떤 학자는 당시의 철학을 석가모니 부처나 노자가 전한 수련 법문에 견주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고대의 철학과 종교에는 큰 구별이 없었고, 이런 관점은 학술상에서도 성립되는 것이다.

간단한 예로 피타고라스주의가 있다. 현재 사람들이 피타고라스를 철학자로 분류하므로 많은 이들이 피타고라스주의를 학술상 일종의 철학 유파로 여기고 있다. 그런데 그의 이론에는 종교나 신학에 관련된 내용도 대량 포함돼 있어, 학술계에서 그리스 종교 이야기가 나오면 이 피타고라스주의는 또 종교의 한 문파로 분류된다.

그리스의 신화, 전설은 흔히 이야깃거리나 오락 거리로 인식된다. 이는 지혜가 부족한 평범한 사람들이 사람의 논리와 각종 집착에 따라 이야기를 멋대로 꾸미는 데 습관이 되어, 이야기 속의 많은 신에게 사람의 정과 인간미, 심지어 사악함마저 부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의 일부 지혜로운 사람, 혹은 비교적 고상한 시기에 활동한 일부 교파는 오히려 이야기를 아무렇게나 엮어내는 데 큰 흥미가 없었을 것이다. 델포이의 아폴로 신전 입구에는 유명한 잠언들이 새겨져 있다. ‘너 자신을 알라’, ‘매사에 과하지 않게’, ‘허튼 맹세는 화를 가까이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인데, 이는 곧 서로 다른 신화 이야기가 있는 종교의 특징적인 계율을 보여준다.

물론, 부정적인 작용도 적지 않았다. 예를 들어 엘레우시스 밀교에서는 음담패설을 요구했는데, 일정한 곳에서 의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큰소리로 비천한 사람들의 저속하고 불결한 이야기를 나눌 것 등등을 요구했다. 특히 후기에 이르러 사람의 전체 도덕이 붕괴한 시대가 되자 모든 산업이 난잡해졌다. 예를 들어 에로스 신전에서 제멋대로 음란한 행위를 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더는 말하지 않겠다.

圖: 法國建築師圖爾奈爾( Joseph Albert Tournaire)根據德爾斐(Delphi)的阿波羅神廟遺址所作的復原圖,繪於1894年 。(網絡圖片)
프랑스 건축사 조제프 알베르 투르네르(Joseph Albert Tournaire)가 델포이의 아폴로 신전 유적을 근거로 1894년에 그린 복원도(인터넷 이미지)

고대 그리스 종교에는 또 하나의 특징이 있는데, 바로 신탁(Oracle)의 계시를 대단히 중시했다는 것이다. 통치자든, 일반 시민이든 비교적 중대한 사건이나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모두 그에 상응하는 신성한 곳을 찾아가(일반적으로 각각 신을 모신 신전으로 감) 계시를 청했다. 상응하는 신이 알현을 받아들이면, 그에게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신탁을 얻을 수 있었다. 신탁이 전달되는 가장 흔한 방식은, 신전에 소속된 예언자나 제사장이 신탁을 어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운문으로 다시 해석해 시구의 형태로 의뢰자에게 알려주는 것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델포이 신전에서 아폴로 신의 계시를 받는 것이 가장 영험하고 정확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그곳이 기원전 8세기부터 고대 그리스에서 매우 중요한 신앙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성인 소크라테스가 살아 있을 때, 델포이의 신탁은 소크라테스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이 없음을 명확히 밝혔다. 그러나 신탁의 비범한 평가는 오히려 커다란 질투를 유발했다. 이로부터 발생한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소크라테스는 신에게 불경하고 청년을 미혹시켰다는 누명을 쓰고 투옥됐고, 배심원단 오백 명의 투표를 거쳐 사형 선고를 받았다.

圖:當代希臘國立雅典學院(Academy of Athens)前的蘇格拉底雕像,作者為十九世紀雕塑家德羅西斯(Leonidas Drosis)和皮卡雷利(Attilio Picarelli)。(網絡圖片)
그리스 아테네 학술원 앞의 소크라테스 조각상. 작가는 19세기 조각가 레오니다스 드로시스와 아틸리오 피카렐리다.(인터넷 이미지)

그때는 모든 사람이 신을 믿는 시대였고, 소크라테스를 끝없이 질투하고 증오했던 사람들과 배심원들도 모두 신의 존재를 믿었다. 하지만 그런 신앙도, 그들이 신을 공경한다는 명목으로 개인적 원한을 발산해 성인 소크라테스를 살해하는 행동을 막을 수는 없었다.

역사상 개인의 욕심 때문에 성자를 해치는 일은 흔히 발생했다. 서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성경’에 기록된 헤롯왕의 영아 학살 이야기다. 헤롯왕은 새로운 유대인의 왕이 태어난다는 예언을 듣고 위협을 느껴 사람을 파견해 찾게 했다. 그런데 파견된 사람이 천사의 계시를 듣고는 헤롯왕에게 돌아가 보고하지 않고 도망을 쳤다. 헤롯왕은 예수를 찾지 못하자, 예수의 고향 베들레헴에 있는 2세 이하의 모든 아기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런 사례는 동서고금을 통해 적지 않다. 권력자는 왕이 태어난다고 믿어지면 곧 마구 학살하거나, 예언 해석 결과 누군가 미래의 왕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면 죽여서 화근을 없앴다. 역사적으로 주교, 방장 등 성직자 중에 탐욕스럽고 타락한 자가 많았지만, 그들 중 아주 많은 사람이 신의 존재를 진정으로 믿은 이들이다. 현재 무신론의 중국에서도 많은 탐관오리가 정부가 ‘미신’으로 정한 풍수 같은 것을 굳게 믿는다. 그러나 그런 것을 ‘믿는다’라는 것이 그들이 곧 탐오 부패하지 않으리라는, 그것을 의미하는 건 결코 아니다.

이런 수많은 사례는 하나의 문제로 귀결된다. 즉 한 사람이 만약 자신의 도덕과 심성을 제고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가 신의 존재를 믿는다고 해서 반드시 도덕이 고상한 건 아니라는 것이다. 도덕은 어떤 존재, 또는 비존재를 믿는 것으로써 간단히 결정할 수 있는 그런 개념이 아니라, 그것은 바로 사람의 행위 준칙, 규범, 그리고 사람의 처세와 관련한 각 방면에 모두 연관되어 관통하는 품행, 관념, 마음의 전체 상태이다. 나아가, 만약 한 사람이 신의 존재를 믿으면서도 신이 인간에게 요구하는 도덕적 소양을 무시한다면, 그런 ‘믿음’은 그럴듯한 것일 뿐 진짜 믿음이 아니며, 심지어 변이된 것으로서, 진실하게 믿는 것으로 치지 않는다.

고대의 선현들은 모두 도덕과 심성으로 수양하는 것을 중시했다. 이는 지금 사람들이 표면적인 학문과 기술로만 사람의 가치를 가늠하는 것과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고대 그리스 일곱 현자’ 중 한 명인 탈레스(Thales of Miletus, 기원전 약 624년~548/545년)에 대해, 현대인은 단지 그가 천문 지리에 어떻게 정통했고, 밀레투스학파(Milesian school)를 어떻게 설립했는지만 중시하며, 그를 서양 역사에서 처음으로 이름을 남긴 철학자로만 다룬다. 그러나 사실 그가 한 일은 대중의 도덕을 교화하는 것이었고, 그가 장악하고 설파한 과학 지식도 ‘초능력’이라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하다.

기원전 5세기의 헤로도토스(Herodotus)가 편찬한 ‘역사(Histories)’ 책에는 현자 탈레스가 기원전 585년 5월 28일에 발생한 개기일식을 정확하게 예측한 사실이 기록돼 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의 ‘정치학(Politics)’에도 탈레스가 이듬해 올리브 풍작을 겨울에 예측했다고 적혀 있다. 현대인은 그냥 습관적으로, ‘과학’ 지식이 풍부한 탈레스가 세밀한 계산을 거쳐 이런 정확한 예측을 했을 거로 생각한다. 심지어 일부 현대인은 그를 ‘과학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그러나 당시 어떠한 현대적 측량기구의 도움도 없었고, 게다가 과학이 전혀 발달하지 않았던 2600년 전의 고대 시대였는데, 그가 어떻게 그런 구체적인 사건들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었는지 왜 생각해 보지 않는가?

이런 역사적 사실을 ‘과학’의 공로라고 억지로 꿰맞추기보다는, 그것이 선각자 예언의 특징을 명확하게 갖추고 있고, 동시에 인심을 교화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시원하게 인정하는 편이 낫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책에 묘사한 내용을 예로 들면, 현자 탈레스는 속세에서 장사했는데, 늘 진리를 찾고 철학을 연구하는 데 많은 돈과 시간을 들이느라 갈수록 가난해졌지만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그래서 적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철학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질책을 들었다.

탈레스는 사람들의 관념을 바로잡고자, 다음 해 올리브가 풍작일 것을 예견하고 겨울에 아주 적은 자본을 들여 밀레도와 키오스의 착유장을 독점으로 빌렸다. 경쟁자가 없었으므로, 그는 다음 해에 착유장 임대로 큰돈을 벌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두고, ‘철학자들은 마음만 먹으면 아주 쉽게 부자가 될 수 있지만, 그들은 전혀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탈레스가 증명해 보인 것이라고 말했다.

(계속)

 

원문발표: 2021년 6월 7일
문장분류: 문화채널
원문위치: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21/6/7/42640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