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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福)’의 유래

[명혜망] 봄을 맞아 만상(萬象)이 새롭게 되면 집집마다 ‘복(福)’자를 붙이고 세배를 드린다. ‘복’자는 행운, 복분, 복지, 복덕, 복혜(福慧), 복지심령(福至心靈, 복이 찾아올 때는 정신도 좋아진다는 의미) 등을 의미한다. 새해를 맞으면서 아름다운 축원과 희망을 표현하는 중국의 ‘복’ 문화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福,甲骨文字形示意图(图片来源,网络)'
‘복’, 갑골문의 문자 형상(인터넷이미지)

갑골문에서 ‘복’자의 왼쪽 ‘시(示)’는 신단을 상징하고 오른쪽의 ‘복(畐)’은 양손에 술 주전자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이를 합하면 좋은 술을 신께 제물로 바치고, 지난 한 해 동안 순조로움과 천지의 조화에 감사드리는 것을 뜻한다.

중국인들은 예부터 천인합일(天人合一), 경천신신(敬天信神)의 민족으로서 ‘머리 삼척 위에 신령이 있다’는 것과 인과응보를 믿었기에 하늘을 공경하고 신을 섬기는 것을 옛사람들은 아주 당연하게 여겼다. 신이 존재한다고 믿었기에 중국 전통문화에는 매우 중요한 풍습인 제사가 있다.

기록에 따르면 중국은 일찍이 주(周)나라 때부터 완벽한 제천의식을 형성했고, ‘주례(周禮)’를 제정해 천지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공식 의례를 형성해 2천여 년간 전승해 왔고, 황제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완벽한 경천예조(敬天禮祖) 문화체계를 형성했다.

‘납제백신(臘祭百神)’: 연말연시에 천지에 감사드리다

새봄에 복을 비는 본래 의미는 묵은해가 가고 새해가 밝을 때 신과 선조들을 모시고 한 해 동안 신들의 비호에 감사를 나타내는 것이다. 매년 음력 12월을 ‘납월(臘月, 섣달)’이라고 하는데, ‘설문해자’에서 납(臘)의 의미는 ‘동지 후 삼술(三戌), 납제백신(臘祭百神)’으로, 이는 고대 음력 12월에 신들에게 제사를 올리는 것을 뜻한다.

납월에는 ‘신성한’ 기운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사람들은 언행에 신중했고, 경외감이 가득했으며, 먼지를 털어내고 제물을 삶는 엄숙한 의식을 진행했다. 이때는 불길한 말을 해서는 안 되며 공손해야 했다.

전통문화에서 제사는 ‘화민성속(化民成俗, 민심을 교화해 좋은 풍속을 형성)’의 교화 기능을 갖고 있으며, 제사를 ‘가르침의 근본’이자 ‘지극한 가르침’으로 간주했다. ‘전국책·조책’에서는 제사를 ‘교민성례(敎民成禮)’라고 했다. 오랜 역사를 통해 춘련, 창화(窗花), 세화(歲畵), 폭죽 터뜨리기, 세배 등 신을 공경하는 내용이 지속적으로 풍부해졌다. 또 ‘납월’에는 천지를 공양하는 것부터, 조왕신을 배웅하고, 문신(門神) 그림을 바꾸며, 재물신을 초청하고, 조상을 공양하며, 신을 숭배하는 등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매년 이러한 성대한 의례를 통해 신전문화(神傳文化)의 훈도를 받았다.

천지신령을 숭배하면 사람들을 자숙하게 하고, 권선징악하며, 민심을 바르게 할 수 있다. 또 천지를 경외하고 만물을 소중히 여기면 천지의 후한 선물인 좋은 날씨, 풍성한 곡식을 얻을 수 있다.

예는 공경보다 크다

제사는 중국 신전문화의 중요한 부분이다. ‘주례’에는 “나라의 부(賦, 세금)로 제사를 지낸다”고 기록되어 있다. ‘좌전’에서도 “제사는 국가의 대사다”라고 했다. 나라에서 거둬들이는 세금은 주로 제사에 쓰이는데 천하의 대사가 바로 제사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전통문화에서는 어떻게 제사에 정성과 공경을 다 했을까? 역사적으로 천지에 감사드리지만 복을 추구하지 않는 많은 사례가 있다.

옛사람들은 ‘예(禮)는 공경[敬]보다 크다’고 했다. 한나라 문제는 종묘사직의 큰 제사를 지낼 때마다 사례관에게 ‘경이불기(敬而不祈)’, 즉 제사로 신명을 공경하고 경건한 경의를 표하면서도 신의 축복이나 가호를 빌지 말도록 하는 명령을 내렸다. 문제는 천지를 공경하고 자연을 순화시켜 ‘문경의 치’의 태평성대를 열었다.

당나라 문종은 가뭄이 오래 지속되자 각 지방 관리들에게 궁중에 와서 제사를 지내라고 했다. 신하들은 문종의 얼굴에 걱정이 가득함을 보았다. 한 신하가 문종에게 천문성관(天文星官: 천문을 보는 관리)이 상주한 내용을 아뢰었다. “이번 오랜 가뭄은 천상의 반영이니 성상께서는 너무 노심치 마시옵소서.” 그러자 문종은 엄숙하게 말했다. “짐이 천하의 군주로서 백성을 보호할 덕이 없어서 이번 가뭄을 초래한 것이오. 지금 또 하늘의 질책을 받고 있는바, 만약 3일 안에 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짐은 물러나 현명한 군주로 하여금 천하를 이끌게 할 것이오.” 신하들은 듣고 눈물을 흘리며 제각기 사죄하며 자신들도 관직에 물러나길 청했다. 그러자 바로 그날 밤, 단비가 내려서 메마른 땅을 촉촉이 적셨다.

한나라 문제와 당나라 문종 모두 신을 공경하고 경건하게 반성하며 복을 바라지 않자 복이 자연히 찾아왔다.

역사는 종종 양면으로 펼쳐진다. 예를 들어, 남북조 시대에 주나라 무제는 각종 제사를 금지하고, 절을 헐고, 경전을 불태우고, 많은 산신묘를 철거했다. 당시 많은 곳에서 큰 가뭄이 발생했는데, 안주(安州)의 총관(總管)이 된 우익(于翼)은 옛 풍습에 따라 비를 빌러 백조산으로 갔다. 가다가 철거된 신전터를 찾아 제사를 지내며 백성을 위해 비를 내려주시길 빌었다. 그러자 이날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으나 다른 지역은 여전히 가뭄으로 초토화 상태였다. 우익이 제사를 지내 비를 내리게 하자 백성들은 그에게 매우 감사해했다. 무제는 옛 성인들이 제정한 제사 규범과 예의를 폐지하고 신을 공경하지 않음으로써 백성을 해쳤을 뿐만 아니라, 자신도 응보를 받아 35세에 급사했다.

전통으로 회귀하고 인심을 바로잡다

역사는 후세에 남겨진 지혜다. 옛날에는 천자와 백성은 모두 ‘하늘’을 존경하고 이를 관찰해 행동의 기초로 삼았다. 그래서 ‘천인합일’이라는 완전한 이론이 등장했고, 하늘에 경의를 표하는 일련의 의식이 생겼다.

전통 축제는 특별한 사회 문화적 의미를 부여하고 일상생활에 삽입됐는데, 제사, 신화 또는 불교 및 도교 신앙과 관련된 일련의 신앙과 관습이 형성됐다. 한 사물이 전통적인 의미를 잃으면 뿌리가 없는 나무, 원천이 없는 물과 같이 표면 형태만 남는다. ‘복’ 문화는 깊은 문화적 연원을 갖고 있지만 지금은 중국공산당의 수십 년간의 무신론 사상 주입으로 전통문화의 신성하고 장엄한 면을 잃고 ‘일체를 돈으로 본다’, ‘이익이 최고’라는 말과 함께 사람들 사이를 냉담해지게 했다. ‘복’의 의미도 변질돼 ‘복’자의 부수를 용두장(龍頭杖, 장수를 뜻함), 금호로(金葫蘆, 재운을 뜻함)으로 대체해 그렸는데, ‘복’자에 재물을 추구하고 행운을 바라는 뜻을 담았다.

그러나 ‘복’의 본래 의미는 하늘에 대한 공경과 감사이며, 제사 문화를 통해 경외심을 느끼고 선악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복은 어디서 오는가? 옛사람이 이르기를 복은 문이 없으나 사람은 스스로 자초한다고 했다. 전통문화로 회귀하고 신전문화의 맥락을 진정으로 이해해야만 중국문화의 넓고 심오함과 그 진의를 이해할 수 있다.

 

원문발표: 2024년 2월 2일
문장분류: 천인(天人)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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