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없을 때도 중공이고 돈이 있을 때도 중공이며, 중공은 영원히 중공이다

글/ 필도(筆道)

[명혜망] 장유샤(張又俠)에 대한 조사를 둘러싼 논의는 다시금 중국 정치 작동 논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사건을 더 긴 역사적, 제도적 맥락에서 고찰하면 그 의미는 사건 자체에 국한되지 않고 정치적 사고와 통치 방식의 연속성을 반영하는 데 있다. ‘9평 공산당’(한글판: 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이라는 책은 바로 이러한 연속성을 분석하는 이론적 시각을 제공한다. 즉 중국공산당(중공)은 시대와 함께 발전하는 현대 정당이 아니라 서구 공산주의의 시조인 마르크스와 구소련의 현대판으로서 고정된 조직적 특징, 행동 양식, 권력 논리를 시종일관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체제 개혁을 수용하고 반독점을 할 수 있으며 사상의 자유, 언론의 자유, 신앙의 자유, 민생의 자유를 포용할 수 있고, ‘끊임없는 숙청’, ‘땅에 쓰러뜨리고 다시 발로 만 번 짓밟는’ 이런 극단적인 사상과 폭력 행위를 포기할 수 있다면 중공은 중공이 아닐 것이다. 이것이 바로 누군가가 다음과 같은 말로 그것을 요약한 이유다. “돈이 없을 때도 중공이고 돈이 많아져도 중공이며, 중공은 영원히 중공이다.”

1. ‘9평 공산당’으로 본 중공의 ‘적과 나(敵我)의 구분’

‘9평’의 핵심 논점 중 하나는 중공을 정의, 법률 또는 공공의 이익에 기초한 현대 정당이 아니라 투쟁을 핵심 기제로 하는 정치 조직으로 보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정치는 이익을 조율하는 과정이 아니라 끊임없이 ‘적과 나의 구분’을 만들어냄으로써 조직의 활력과 권력의 합법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러한 조직 논리는 다음을 결정한다. 권력이 법치보다 우선하고, 개인에 대한 충성이 능력과 전문성보다 우선하며, 입장은 반드시 당을 중심으로 선택해야 하고 당의 이익은 언제나 민생보다 우선한다.

따라서 ‘조사’는 단순한 법률이나 규율 문제가 아니라 일종의 정치적 선별 기제이며, 그 목적은 개인이 어떤 문제에서든 ‘조직이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음을 확인해 당의 권력과 독점적 통제를 유지하는 데 있다.

2. 문화대혁명: 조직 논리의 극단적 발현

‘무산계급 문화대혁명’은 역사적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무산계급’을 위한 것이 아니라 ‘무산계급’을 이용해 당의 이익을 실현한 것이며, 앞서 언급한 조직 본질이 특정 조건하에서 극단적으로 표출된 것이다. ‘9평’은 문혁이 통제 불능 상태가 아니라 당의 투쟁 철학이 제도화된 실천이었다고 지적한다.

문혁 시기 ‘조사’는 정치 운동의 형태로 전개됐다. 기소는 명확한 사실적 근거가 필요 없었고, 결론이 증거보다 앞섰으며 성격 규정이 조사보다 앞섰다. 그 본질은 사법 과정이 아니라 권력 투쟁과 충성심 테스트의 도구였다. 개인의 운명은 당의 정치적 필요에 완전히 종속됐다.

3. 당대의 조사 기제: 형식은 변했으나 논리는 불변

문혁 시기에 비해 오늘날의 중국은 고도로 기술화, 이익화, 정밀화된 통제 단계에 진입했다. 공개적인 폭력과 대중 동원은 이미 대중의 시선 밖으로 옮겨졌고, 여론을 통제해 민중의 사상을 길들이고 있다. 즉 당의 선전 수법은 이미 동서양을 아우르고 있으며, 마치 소련공산당이 중공으로 토착화된 과정과 같지만 ‘9평’이 폭로한 당의 핵심 논리는 결코 변하지 않았고 단지 더 제도화되고 은밀한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을 뿐이다.

올해 75세인 장유샤는 시진핑(習近平)을 제외하고 중국 해방군에서 실제 서열이 가장 높은 장군이다. 장유샤가 조사받는 이런 유형의 사건에서 다음과 같은 연속적인 특징을 관찰할 수 있다. 조사 기준이 모호하고 해석권이 고도로 집중돼 있으며, 절차의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이 결여돼 있다. 또한 개별 사건은 명백한 본보기와 위협 기능을 갖는다. ‘닭을 죽여 원숭이에게 보여주는 것’(殺鷄儆猴)이며 모든 것은 오직 당을 위해서다.

문혁 시기 주를 이뤘던 ‘대중 비판’과 달리 당의 현대적 조사는 행정 권력, 여론 통제, 자원 박탈에 더 많이 의존하지만, 그 목표는 여전히 불확실성을 통해 복종을 강화하는 것이다. “오늘 아침의 귀빈이 내일의 죄수가 된다.” 당신이 당에 충성하는지, 죽어야 할지 살아야 할지는 사실과 증거에 달려 있지 않으며 실적과 이력은 더더욱 중요하지 않다.

4. 경제 발전은 권력 논리를 바꾸지 못했다

중공은 가난해서 전체주의인 것이 아니며, 전 세계 공급망을 장악했기 때문에 세계 패권자가 되려는 것도 아니다. 경제 성장은 자동으로 중공의 본질 변화를 이끌지 않으며, 단지 중공이 도광양회(韜光養晦·재능을 감추고 드러내지 않음)를 멈추고 궁극적인 목적을 실현할 자원을 더 많이 갖게 할 뿐이다. 이 점은 현실에서 입증됐다. 돈이 부족했던 시기에는 생존이라는 이름으로 투쟁했고, 돈이 풍족한 시기에는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투쟁한다.

“돈이 없을 때도 중공이고 돈이 많아져도 중공”이라는 말은 실질적으로 하나의 제도적 사실을 지적한다. 부의 증가는 단지 중공의 통제와 패권 야욕에 더 많은 도구와 자원을 제공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연속성이 가져온 결과는 우발적이 아니라 구조적이다. 법률은 진정한 견제 기제가 되지 못하고 더더욱 공평과 정의를 가져오지 못한다. 민중과 사회 구성원은 공포에 기반해 장기간 자기 검열을 강요받고 시야가 좁아지며 당이 주도하는 담론의 틀 안에 갇히게 된다. 신뢰, 공중도덕, 이성적 사고 능력은 지속적으로 유실된다.

정치적 안전이 언제나 민생 발전 위에 군림할 때 개인은 타조가 머리를 박고 위험을 피하는 방식으로 안전감을 얻을 수밖에 없으며, 사회 전체는 저위험, 저신뢰, 도덕적 마지노선이 낮은 소외 상태의 수렁으로 깊이 빠져드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

결론

장유샤에 대한 조사를 문화대혁명 시기 중공 내부 투쟁과 대조해 보면 패턴이 명확하고 논리가 변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당의 제도적 행위 양식이 다른 시대, 다른 당괴(黨魁, 당 두목)의 손에서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형식은 더 법치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본질은 여전히 인치(人治)다. 표현은 더 정교하게 조정돼 문혁스럽지 않을 수 있지만 중공이 존재하는 한 투쟁 철학은 여전히 국가 권력 작동의 핵심 원칙이며, 중국은 계속해서 이 세계의 이질적인 국가로 남을 것이다.

중국인으로서 자기 집의 돈이 많든 적든 환상을 버린다면 백 번 유익하고 한 가지 해로움도 없을 것이다. 공산당이 집권하는 한 누가 무대에 오르든 중국은 ‘공산사령(共産邪靈)’의 인치라는 마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진정으로 중공을 버려야만 비로소 새로운 중국이 있다.

 

원문발표: 2026년 2월 5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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