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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의 원인과 결과를 돌아보다

글/ 정옌(鄭岩)

[밍후이왕] 전염병 통제 이후 중국인들이 권익 보호를 위해 상급 기관에 단체로 청원하러 가는 것이 이제는 당연한 일이 됐다. 중국인들은 인과관계를 말한다. 예를 들어 당국의 통제가 ‘원인’이라면 청원이 그 ‘결과’임을 쉽게 이해한다.

그러나 24년 전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파룬궁수련자들의 ‘4·25’ 1만 명 청원은 적지 않은 중국인에게 파룬궁의 청원은 ‘원인’이고, 탄압은 ‘결과’라는 오해를 조성했고, 아직도 그러한 인식이 남아있다.

왜 이렇게 인과가 뒤바뀌었을까? 주요 원인은 세 가지다.

1. 청원은 도전: 당시 사상 개방이 제한적이었던 중국 사회에서 청원은 공산당에 대한 공개적인 반항과 도전으로 받아들여져 어떤 이유에서든 죄로 취급했다.

2. 사람이 많으면 ‘포위 공격’: 당시 중국에서는 10명 중 1명이 파룬궁을 배웠는데, 즉 10억 중 1억이 파룬궁을 배웠다. 그래서 자발적이고 임시적인 개인행동이라도 걸핏하면 수천 명이 되기 쉽다. 공산당은 인원이 많으면 ‘위협’, ‘조직적’, ‘포위 공격’이라고 한다.

3. 참으면 죄: 공산당은 사람을 괴롭히는 재주가 있고 파룬궁은 참는 데 능숙하다. 수련자들은 1996년부터 전국적이고 지속적인 정치적 박해를 받아왔다. 예를 들면 전국적으로 ‘우선 죄를 정해놓은 후 수사’, 수련서 출간 금지 등 박해를 당했지만, 그들은 묵묵히 참아왔다. 그러나 당시 중공(중국공산당) 우두머리였던 장쩌민의 눈에는 파룬궁이 ‘진선인(真·善·忍)’을 버리고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관념으로 바꾸어 그의 발밑에 엎드리지 않는 한 파룬궁의 참음은 자신을​ 경멸하는 것으로 여겼다.

다음은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장쩌민, 뤄간, 쩡칭훙 일당의 암묵적 조작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다. 이러한 작업의 목적은 파룬궁의 ‘명예’를 더럽히려는 것이다. 목록에는 전국적인 정부 기관 행위만 포함돼 있다.

(1) 1996년 6월 17일, ‘광명일보’는 파룬궁을 비방하는 논평 기사를 발표했다.

(2) 1996년 7월 24일, 신문출판국은 전국 각 성, 시 신문출판국에 ‘전법륜(轉法輪)’, ‘파룬궁(法輪功)’ 등 파룬궁 서적 출판 발행을 금지한다는 내부 문서를 하달했다.

(3) 1997년 1월과 7월, 공안부는 전국적으로 두 차례 파룬궁을 수사해 ‘사교(邪敎)’로 규정하려 했다. 하지만 전국 공안국은 충분한 조사를 거쳤지만 ‘아직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4) 1998년 7월, 뤄간 등은 공안부를 통해 파룬궁을 ‘사교’로 정한 후 전국적으로 ‘증거 수집’ 활동을 조직했다.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공안부 1국에서 발행한 국정[1998] 제555호 ‘파룬궁에 대한 조사 진행 통지’는 여전히 불법적으로 파룬궁을 ‘사교’라고 표현했다.

(5) 1998년 7월 21일, 공안부 1국은 또 전국 공안부에 ‘통지’를 내려 신장, 헤이룽장, 허베이, 푸젠성 등 하급 공안부가 강제로 연공하는 시민들을 해산시키고 불법적으로 민가에 침입해 개인 사유재산을 몰수하게 했다.

 

원문발표: 2023년 4월 4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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