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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작] 양심을 따르지 않고 권위에 복종하는 위험성

글/ 중국 산둥(山東) 대법제자

[밍후이왕] 양심을 따르지 않고 권위에 복종하는 위험성은 역사의 전개와 과거 사건에서 그 실제 사례를 볼 수 있고 또한 실험으로 입증됐다.

심리 실험으로 입증한 권위에 대한 복종

​미국의 과학자 밀그램은 일찍이 심리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실험은 세 사람으로 구성된다. 박사 지도교수(실험 지도교수 또는 권위자), 실험 참가자 선생님(실제 피실험자), 피실험자 학생(실제로는 가짜, 그는 박사 지도교수와 호흡을 맞춘다).

실험에서 ‘선생님’은 준비된 단어들을 나열하고 단어 짝짓기 조합을 통해 ‘학생’의 기억력을 평가하며, 학생은 문제를 틀릴 때마다 전압이 15볼트씩 증가하는데, 이때 ‘선생님’은 전기충격제어(45볼트 시작 450볼트까지) 버튼을 누르고 학생은 전기충격을 당한다. ‘선생님’은 지도 교수에게 질문을 던지고 지도 교수는 “계속하세요”라고 답하며, ‘선생님’은 버튼을 눌러 실험을 계속한다.

대부분 사람이 의혹을 가지면서도 기껏해야 4차례 제기할 뿐이다. 5번째의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5번째의 의혹을 제기하면 실험이 중단되기 때문이다. 실험 전 설문조사(실제 실험 내용과 일치)에서는 강한 정의감으로 답을 선택하고, 권위에 대해 강하게 의문을 제기하거나 심지어 부정하기까지 한다.

피험자가 권위의 명령에 복종할 때, 그의 양심이 작동하지 않고 아울러 책임을 포기하는 것이 실험적으로 증명됐다. 스트레스 값이 기준을 초과해 심리적 저항 능력을 넘어 스트레스가 쌓일 때, 인간의 심리는 본래 취지에 어긋나거나 양심에 어긋나 권위에 굴복하거나 추종하는 일을 할 수 있음도 실험으로 함께 입증됐다. 실험 전 설문조사와 실험 후 조사 결과는 사뭇 달랐다. 스트레스의 유무에 따른 것이다.

권위에 복종하는 위험 사례

​만약 당신이 맡은 임무 수행이 죄악이라면, 의무를 넘어선 양심은 당신이 생각해야 할 문제이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맹종한 것인데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된다. 권위에 복종하는 자가 이용될 가치를 잃으면 권력자에게 버림받아 희생양이 된다. 다음 몇 가지 예에서 한번 살펴보자.

예 1: 문화대혁명은 거짓되고 잘못된 신념으로 대중의 분노와 불만이 극에 달했다. 문화대혁명이 끝난 뒤 중국공당은 경찰 793명과 군 간부 17명을 윈난성으로 데려가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비밀리에 처형했다. 문화대혁명의 ‘붉은 반란선’에 충성했던 활동가들은 죽을 때까지 깨닫지 못하고 인민의 분노를 달래는 ‘순장품’이 되었고 ‘공무상 순직 통지서’ 한 장이 가족에게 보내졌다. 바로 ‘생명은 종이와 같이 얇다’라는 딱 그 정도였다. 당시 베이징시 공안국장이었던 류촨신(劉傳新)은 자신이 저지른 죄악의 깊이를 알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예 2: 베를린 장벽을 넘은 동독 청년을 사살한 혐의로 기소된 군인 헨리히(Henrich)는 법정에서 자신은 명령을 뿐이라고 거듭 항변했다. ​그러나 판사는 상급자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것은 유죄지만 명중하지 못한 것은 무죄라고 말했다. 당신은 총구를 1cm 들어올릴 권리가 있으며 당신이 스스로 져야 할 양심의 의무라고 말했다. 이 세상에는 법 외에 양심이 있는데 법과 양심이 충돌할 때 양심이 가장 높은 행동 규범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생명존중’이란 보편적 진리는 어디에도 다 적용되는 원칙이기 때문이다. 결국 헨리히는 죄가 인정돼 투옥됐다.

예 3: 파룬궁 박해로 민심을 크게 잃은 장쩌민은 진퇴양난이다. 2004년 중국 공산당 정치국에서는 3명이 파룬궁의 억울한 누명을 벗겨 주자고 제의했다. 법적 책임을 지는 것이 두려운 장쩌민은 제의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파룬궁 수련생을 얼마나 죽였으면, 경찰, 610, 국가 보안 등 관련자들을 얼마 총살하겠다는 비열한 ‘일대일 교환’을 면책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에 대해 파룬궁 측은 모든 박해를 중지하고 불법 구금 중인 파룬궁 수련생들을 모두 석방하고 장쩌민을 처벌해야 한다며 단호히 거부했다. 지기를 보호하려고 문화대혁명에서 경찰을 죽여 분노를 가라앉히는 추악한 광경을 재현하려던 장쩌민의 음모가 물거품이 된 것이다.

여기까지 본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드는가? 명령을 집행한 공안, 검찰, 사법 관계자들이 아직도 파룬궁 단체에 대한 박해에 가담하고 있다. 명령을 내린 자들이 당신들의 목숨으로 사건을 무마하려 할 때, 파룬궁은 그런 파렴치한 제안을 거절했다. 이 속의 일과 관계에서 누가 선을 베풀고 있는지? 누가 당신을 돕고 있는지? 스스로 깨닫고 사리에 맞게 결정하고 행동해야 한다.

압력 앞에서 방법이 없을까? 있다

우리 실험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그렇다면 권위에 복종하는 실험 참여자들이 과연 도덕적 약자인가? 답은 분명 아니다. 의심할 여지 없는 박사의 눈빛과 “계속하라”라고 강력히 말할 때, 압력의 앞에서 그는 복종을, 양심 앞에서는 권위를 택한다. 이것은 압력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심리적인 변화다. 그러나 실험에는 긍정적인 요소가 없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실험 중에 즉석에서 의문을 제기하고, 심지어 실험에서 물러나 권위와 결별을 선택하기도 한다. 매우 정의감이 있는 이 부류는 10% 이상이다.

뜻밖인가? 뜻밖이 아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확고한 종교 신앙이 있으며, 도덕적인 선을 가지고 양심에 따라 행동한다. 당신은 믿음이 있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고, 장래에도 믿음이 있는 사람이 안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믿음의 유무는 당신이 좋은 사람이 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인(人)자의 두 획은 서로 받쳐줘야 사람이라 할 수 있다고 여긴다. 무엇으로 받쳐주는가? 바로 양심과 도덕인바 그것이 바로 사람이라는 ‘인’ 자를 만들 때 부여한 진정한 의미이다.

파룬궁에 대한 박해처럼, 처음에는 많은 경찰이 당신이 좋은 사람인지, 당신이 한 일이 옳은지 아닌지에 대해 더 생각하지 않고, 지역 사회 간부들도 실정을 알지 못해 남이 하는 대로 덩달아 한다. 주변 사람들은 당신을 더 이해하지 않고, 가족의 생명을 박해하는 것에 대해 더욱이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신이 우선 그의 압력을 분담해야 한다. 겹겹이 쌓인, 위에서 아래로 내려온 화를 남에게 전가해 아랫사람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간사한 행태는 결국 산 같은 모든 압력을 수련자에게 전가한다.

심지어 중공은 이 행성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범죄인 ‘살아있는’ 사람의 장기를 적출해 밀매하고 있고 그 고통은 고스란히 수련자가 감당하고 있다.

수련자는 제일 밑층에서 압력을 감당하는 사람으로서 설령 중압 속에서도 포용하는 넓은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왜냐하면 대법제자는 적이 없고 대중을 구하려는 염원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불굴의 뜻을 견지하며,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마음으로 이 세상의 가장 큰 악을 녹이는 동시에 이 압력을 경찰과 대중, 가족에게 진상을 알리는 동력으로 삼고, 압력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모범을 보였다. 원망도 원한도 없이 평화적으로 이성적으로 23년을 버텨왔다. 하지만 이 20여 년 동안 묵묵히 감당해 온 그 의미를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알고 있을까?

맺음말

사실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는 실험 속의 ‘선생님’ 그림자가 있다. 피실험자는 게임 속에 들어가 다른 사람들과 실험하는 역할을 열심히 했지만, 게임의 궁극적인 감독이 ‘양심’임을 알지 못한다. 자신이 그 피실험자임을 진정으로 깨달았을 때, 기회가 오면 주체적으로 권위자에게 노(No)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중공은 모든 사회적 압력의 근원과 사회 갈등의 원천이자 총음모자이다. 한편, 모든 사회의 갈등과 압력, 문제는 모두 중공의 폭정, 독재, 부패에서 생겨났다. 다른 한편 사회적 갈등이 쌓일 때, 또 비장의 수법—— 폭력적인 방법으로 자신에게 ‘고통’과 ‘압박’을 만들었다고 여기는 국민을 탄압한다. 이것이 바로 이 기형적인 사회의 무한 반복 중 풀리지 않는 매듭이고, 급증하는 압력 용기는 이미 폭발지점에 도달해 언제든 터질 수 있다.

그렇다면, 중공이 2021년 호랑이와 파리에 맞서 싸운 기록을 한번 보자. 전국적으로 성부급 간부 36명, 청국급 간부 3024명, 현처급 간부 2만5000명, 향과급 간부 8만8000명, 일반 간부 9만7000명, 농촌·기업 등 기타 41만4000명이다. 한 해 63만 명 가까이 낙마했다. 당신이 업보를 믿지 않아도 되지만, 반드시 업보가 당신을 찾지 않는 것은 아니다.

2022년은 업보가 폭발하는 해일 가능성이 크며 천상에 이미 큰 변화가 생겼다. 하늘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덕이 있으므로 살길을 찾을 수 있지 않겠는가! 바로 발밑에 있으니, 당신의 양심으로 찾아라!

 

원문발표: 2022년 7월 18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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