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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사슬녀’ 사건에서 본다

글/ 중국 대법제자 피안(彼岸)

[밍후이왕] 최근 중국 쉬저우(徐州) ‘쇠사슬녀’ 사건이 인터넷에 폭로되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시나닷컴 웨이보에서만 100억여 회 접속됐고, 위챗 등도 전파 총량이 수백억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어 관심도는 동시기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열기를 훨씬 초과했다. 사건이 전 세계 각국 주류 매체에 잇따라 보도되면서 각종 인터넷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관심이 식지 않고 있다.

인터넷 동영상에서 모두 볼 수 있는데, 혹한계절에 이를 뽑고 혀끝을 잘라 약물을 주입해 성대를 훼손하는 등 비인간적 학대를 받은 인신매매 피해자가 8명의 아이를 낳아야 했던 끔찍한 사건이다. 그녀는 혹한에 쇠사슬로 목이 묶여 맨발에 얇은 옷만 걸치고 창도 문도 없는 누추한 집에 갇혀 있었는데, 온돌 위에는 낡은 솜이불과 얼어붙은 만두가 버려져 있었다.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이 끔찍한 참상은 전 세계 네티즌들의 연민과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인터넷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사건을 밝혀 의문을 풀어 규명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대응은 무엇 하나 시원하게 밝히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사슴을 말이라(指鹿爲馬)’고 하며 덮을수록 모순이 드러나고 있어 오히려 민중의 분노는 더욱 커지면서, 당국의 거짓말이 하나하나 폭로되면서 급기야 민중의 감정을 격앙시켰다.

그러나 이처럼 거세게 조사, 진상, 공정을 요구하는 강력한 여론에 직면해 있는 중공(중국공산당)은 사회 안정을 내세우며 여전히 낡은 수법을 재연하고 있다. 차단, 삭제, 칭호 수여, 입 막기, 관변 정론(官方定論), 희생양, 댓글 알바(五毛水軍), 여론 조작, 세탁, 경찰 담합, 체포, 실종 등등이다. 심지어 하룻밤 사이에 사고가 난 마을을 겹겹이 철벽으로 둘러싸고 통행을 금지시켰다.

극심한 혼란이 야기되었다. ‘쇠사슬녀’ 사건은 중공 통치 하에 인권 스캔들 중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20여 년 동안 중공은 ‘진선인(真·善·忍)’ 수련을 잔혹하게 탄압하여 중화 문명의 초석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었고 중국인들의 생존인 도덕적 본성을 파괴했다. 관청 부패에서 민간의 부패까지 중국사회는 이미 중공악마에 의해 유린당하여 만신창이가 되었다. 대법 수련자의 장기를 산채로 적출하는 등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없었던 사악함이 광범위하게 자행됐는데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 외 어떤 죄악인들 일어날 수 없겠는가?!

부녀자와 어린이를 유괴하는 범죄 행위는 사실상 이미 여러 해 동안 존재해 왔으므로 이번에 돌출된 사건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다. 중공이 태평성세를 동계올림픽으로 치장하여 국제사회에 가상을 보여주고 있을 때 갑자기 ‘쇠사슬녀’ 사건이 터져 오랜 기간 기만당하고 우롱 당하던 민심이 들끓고 있는 것이다.

수십 년간 잔혹한 중공의 세뇌로 중국인들은 자신의 뿌리와 전통문화를 잃어버려 도덕적 양심과 건전한 상식을 말살 당했다. 피비린내 나는 전제통치가 중국인의 등줄기를 휘게 하여 기본적인 인권은 사치가 되었다. 그러므로 폭정에 굴복한 사람들에게 생명에 대한 무관심은 정상적인 사회상태가 된 것이다.

국제사회에서는 중국에서 파룬궁(法輪功) 수련자들이 박해당하고, 산채로 장기를 적출당하고 있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놀라워하면서 “기본적 인권 박탈은 용납할 수 없다”며 반박해를 지지한다.

그리고 중국에서, 파룬궁은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게 하고, 병을 제거하여 몸을 건강하게 하며, 삼퇴(三退: 중공 3대 조직 탈퇴)하면 평안을 지키고, 9자 진언(九字真言) 즉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을 염하면 복을 받는다고 하면 사람들이 인정한다.

그러나 파룬궁 수련자들이 좋은 사람이 되려고 진선인을 수련했다는 이유로 중공에 박해당하고 심지어는 생체장기적출까지 당했다고 하면, 국제사회와 달리 많은 중국인은 믿지 않거나 무관심, 무덤덤해 하거나 심지어 “연공하지 못하게 하면 하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고 한다. 선과 악을 가릴 줄 모르는 혼동에 처해 있어서 인권의식은 찾아볼 수도 없다.

만약 중공이 역대로 정치운동을 벌여 얼마나 많은 사람을 박해하고 학살했는가를 말한다면, 좀 나이가 든 사람은 다소 공감할 수 있지만, 젊은이들은 숫자에 불과할 뿐이다. ‘세월이 고요하다’는 오도(誤導), ‘부유해졌다’는 거품, ‘대단하다’는 환상 등으로 중공이 역사와 정보를 봉쇄해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 그 안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혼돈스럽게 한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누적된 중공의 죄악을 잊게 하고, 박해의 사악이 언제든지 자신의 머리 위에 덮칠 수가 있음을 모르게 하여 타인의 불행에 관심을 갖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쇠사슬녀’의 비참함이 생생하게 드러남에 따라 그동안의 적막감이 깨져 사람들을 모두 꿈에서 깨어나게 한 것과 같다. 비로소 많은 젊은이가 자신과 관계가 있다는 것은 느낄 수 있게 된 것인데, 입술이 없어지니 이가 시린 것이다. 그들은 냉엄한 현실 앞에 나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게 된 것이다.

사실 파룬궁 수련자들이 당하는 박해는 감옥에서 중공의 가혹한 수백 가지의 형벌에 시달리는 것을 포함하는데, 참혹한 정도는 전무후무하여 쇠사슬녀가 당한 학대를 훨씬 능가한다. 그러나 사실의 진상은 지금까지 중공에 의해 엄밀히 봉쇄되어 완전히 덮여져 있는 것이다.

박해받은 ‘쇠사슬녀’는 파룬궁 수련자가 아니다. 그러나 피해자는 장쩌민이 집권한 기간에 유괴된 것이고, 그 시기는 여성과 어린이 유괴가 가장 창궐하던 시기였다. 역사적인 사실이 이미 증명하는데 바로 중공 장(江)의 깡패집단이 일으킨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자에 가한 박해로 중국 사회의 도덕적 체계가 전면적으로 급속하게 붕괴했다.

사람들이 이 사건에서 본 것은 처참하게 당한 무력한 한 여성의 모습, 깡패무리의 인간쓰레기, 비열함, 비천함, 동족의 악습과 추악함, 각급 기관과 중공사당의 후안무치, 사회제도의 혼란과 무질서, 밑바닥까지 타락한 도덕 등인데, 이 모두는 사악한 중공이 직접 손으로 만들고 방임한 것들이다.

‘쇠사슬녀’ 사건은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중국인들의 미약한 도덕적 한계를 돌파하여 측은한 마음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인터넷에서는 진상을 추궁하고 거짓말을 지양하며 죄악을 규탄하는 여론이 거세진 것이다. 소위 정치와는 관련이 없고 파룬궁과 같은 중공이 정한 민감한 이슈를 건드리지는 않았지만, 담 넘어 바깥에 또 그물을 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참여 폭은 넓어지고 인원수도 많았다.

체제 내의 많은 인사들이 포함되어있을 뿐만이 아니라, 더욱 많은 젊은이들, 시류를 이끄는 지식인 단체들이 참여했다. 인터넷의 폭로자료, 기반연구, 현장조사 등을 보면 증거가 확실하여 해석과 평론 등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중공정부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려 진퇴양난이 되자, 어쩔 수 없이 거듭 말을 바꾸어 정론을 뒤집어엎고자 되풀이해서 거짓말을 꾸며댔지만, 네티즌들은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추궁했다.

중국의 네티즌은 이미 10억여 명에 달해 노인과 어린이를 제외한 거의 모든 인구를 포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시나 웨이보의 월간 활성 사용자는 5억 명, 일일 활성 사용자는 2억 명이며 그중에서 78%의 사용자가 90년대 후와 2000년대 후의 젊은 세대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주류 사회는 온라인상 언어권이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에 집중된다고 할 수 있다. 사건 진행 과정에서 우리는 인터넷이 정보를 전파하는 거대한 힘을 똑똑히 보았고, 이를 어떻게 더 충분하게 이용해 더 많은 사람이 진상을 이해하도록 할 것인가를 고려하게 했다.

쇠사슬녀 사건은 중국인의 마음 깊은 곳에 파묻힌 연민과 선량함이 여전히 골수에 울려 퍼지는 한 가닥 혈기를 보여줬고, 사람이 각성하여 구원받는 희망을 보게 했다. 사건은 중공의 허울을 벗겨 당국의 공신력을 깊은 골짜기로 떨어뜨렸다. 만약 민중이 끈기 있게 추궁하고 반성할 수 있게 만든다면 일부 지역, 일부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죄악의 근원은 중공임을 깨닫게 할 것이다. 오직 중공이 중국인의 마음속에 채운 쇠사슬을 끊어버리고 중공의 사악한 본질을 똑똑히 인식하게 하여, 중공에 대한 모든 환상을 깨트려 중공을 버리고 마귀를 멀리하게 해야만 아름다운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

중공이 거짓 연기를 하며 아무리 속여도 그 사악한 본성이 한 꺼풀씩 벗겨져 사악이 철저히 드러나고 있는바, 중공의 극악무도한 만행은 멸망하기 직전 최후의 발악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덧칠할수록 더 어두워지고, 발버둥 칠수록 더욱 드러날 수밖에 없다. 민중의 입을 막는 것은 하천을 막는 것보다 더 어렵다. 천상(天象)의 변화 아래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하고 있다.

 

원문발표: 2022년 3월 1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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