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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둥 웨이팡 서우광시 궈위란, 박해로 세상을 떠남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산둥보도) 산둥(山東) 웨이팡(濰坊) 서우광시(壽光市)의 궈위란(郭玉蘭)은 2012년에 중공(중국공산당) 사당(邪黨) 18기 인민대표대회 기간에 악독한 경찰 5~6명에게 불법 가택수색을 당했다. 악독한 경찰이 궈위란이 경영하는 석탄공장에서 그녀의 남편을 납치한 뒤에 궈위란은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궈위란은 1998년부터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글공부를 한 적이 없는 문맹으로,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었다. 그러나 순박하고 착했다. 수련한 뒤에 집에 법공부팀을 만들었고, 단체법공부와 사부님의 점화를 통해 그녀도 ‘전법륜(轉法輪)’을 통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의 그녀는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하루의 노동이 끝난 뒤, 저녁 무렵에 집으로 돌아와서는 집을 깨끗이 치우고 방석을 폈다. 이렇게 한번에 20~30명이 앉아서 단체로 법공부를 했고 방안이 꽉 찼다. 매일 이러했다.

그러나 1999년에 중공 사당이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이용해 파룬궁을 모함하고 요언을 날조한 뒤, 궈위란 일가족은 현지 사당 인원이 박해하는 중점 대상이 되었다. 2000년 하반기, 그녀의 남편은 집에서 납치돼 노동교양처분을 받았다. 그녀는 혼자 집에서 두 아이를 데리고 있었다.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도로를 청소하는 일을 하며 힘든 나날을 보냈다. 일은 비록 힘들었으나 진상자료를 배포해 사람을 구할 수 있었고, 또 많은 수련생을 볼 수 있었다. 당시 어떤 수련생은 박해로 유랑생활을 하며 거주할 곳이 없었는데, 궈위란은 수련생을 자신의 집에서 묵게 했으며, 어떤 때에는 몇 사람이나 묵게 했다. 생활은 힘들었으나 누가 어려움을 겪기만 하면 그녀는 모두 도왔다.

궈위란의 남편은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당한 기간에 고문의 강압 하에 극한을 감당한 데다 사람의 마음이 강해 반면(反面)으로 걸어갔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 그는 서우광시 세뇌반에서 악당과 한패가 되었다. 그 후에 궈위란은 집에서 서우광 궁예구(工業區) 파출소로 납치당해 전기봉으로 전기충격을 당하고 또 혹독한 구타로 자백을 강요당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어떤 수련생에 관한 정보도 결코 발설하지 않았다. 악도들은 그녀를 더욱 더 박해하기 위해 또 세뇌반으로 납치했다. 악도는 그녀에게 공갈협박을 하고 거짓말로 속였다. 원래 배운 것이 없는 데다 또 남편의 사오(邪悟) 및 정신적인 강압, 두려운 마음, 사람 마음이 나와 그녀는 사악의 배치를 곧이 들었다. 나온 뒤에 몇 년간 몸 상태가 망가졌다.

수련생의 도움 하에 그녀는 ‘전법륜’을 또 받쳐 들었을 때, 사부님 법신상 앞에 꿇어 앉아 큰 소리로 울면서 가슴에 사무치도록 뼈저리게 뉘우쳤다! 그녀는 엄정성명을 쓰고 새롭게 수련에 들어섰다. 그 후로 몸도 좋아지고 활기가 넘쳤으며, 매일 법공부를 하고 연공을 했다. 그녀의 남편도 새롭게 수련에 들어서서 수련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2012년 중공 사당의 18기 인민대표대회 기간, 서우광 국가보안의 악독한 경찰 5~6명은 그녀의 집에서 경영하는 석탄공장에서 그녀의 남편을 납치하고 불법으로 가택수색을 감행했다. 이 악독한 경찰들은 마치 토비처럼 그녀 집 문을 부수고 사방을 뒤졌다. 동시에 그녀의 생명을 구해준 대법책을 강탈해갔다.

남편이 어디로 납치당했는지도 모른 채, 궈위란은 몸져누운 뒤에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공산 사당의 정치깡패집단은 그녀를 박해해 결국 사망케 했다.

문장발표: 2013년 2월 6일
문장분류: 대륙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2/6/26902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