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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장구이친

장구이친(張桂琴), 여, 37세, 안후이(安徽) 허페이(合肥)시 페이둥(肥東)현 대법제자.

1999년 11월말 대법제자 장구이친은 대법을 계속 수련하겠다는 의지를 밝혀, 집에서 가사일을 할 때 강제로 연행되어 15일 구류되었다. 페이둥수감소에서 다른 대법제자와 연공을 계속하는 것이 발견되어 교도관 쉬안(宣) 씨가 그들의 뺨을 돌아가며 때렸다. 별 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자 대나무 조각으로 수련생의 손바닥을 때려 붓고 멍이 들었다. 사악한 교도관은 또 수련생 3명을 족쇄로 한데 묶어 놓았다. 그 후 15일 동안 세 명의 수련생은 잠도 함께 자고, 식사도 함께 해야 했으며, 화장실도 함께 가야 했다.

2000년 3월말 장구이친은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가 다시 페이둥수감소에 불법으로 24일 구류되었다. 매일 11시간 이상 기합 받는 고문을 당했다. 한 번은 그녀가 기타 수련생 5명과 함께 법을 외우다가 발견되어 여섯 사람이 또 함께 족쇄에 묶였다. 교도관 우(吳) 씨라는 자가 수련생들을 마구 구타했고, 구타하다 힘이 들자 책을 뒤져내기 시작했다. 대법제자 치제(가명)의 대법서적을 뒤질 차례가 되자 그녀는 책을 보호하기 위해 기둥에 머리를 박아 온 얼굴에 피가 흘러내렸다. 기타 대법제자는 큰 소리로 법을 외웠다. 교도관은 화가 나서 치제의 손발을 한데 묶었다. 그녀는 서있지도 앉을 수도 없었으며 허리도 펴지 못했다. 감방으로 돌아오는 짧은 길에 반시간이란 시간이 걸렸다. 교도관은 여전히 비인간적인 박해를 멈추지 않고 또 세 사람을 마당에서 체벌시켰다. 이튿날 수감소 왕(王)소장은 그들을 위협했지만 효과를 보지 못해 그들 손발을 또 한데 묶었다. 제자들은 굽히지 않고 단식하기 시작했다. 차이(蔡)의사와 남자 교도관 7명이 콧구멍으로 음식물을 주입했다. 일주일 후 강제 음식물 주입으로 일부 수련생은 생명이 위독해졌다. 수감소의 사악은 인명사고가 두려워 차례로 그들을 석방했다.

2000년 7월말 장구이친은 수련생에게 경문을 가져다 주다가 수련생 가족의 밀고로 다시 수감소로 들어갔다. 수감소의 수련생들은 이름 부를 때 협조하지 않아 큰 족쇄에 채워졌고 또 구타를 당했다. 수련생들은 단식으로 항의했다. 교도관은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했고, 그들의 고통스러운 표정을 보고 오히려 기뻐했으며, 죄수가 반대로 수련생을 동정하고 생활하는 가운데 그들을 보살펴 주었다.

오랜 시간의 단식과 강제 음식물 주입으로 장구이친은 건강이 악화되고 고열이 났다. 교도관은 강제로 그녀를 병원에 데리고 가서 검사시켰다. 의사는 장구이친의 폐에 구멍이 났다고 했다. 수감소는 전염병을 얻었다는 이유로 8월 중순에 그녀를 집으로 보냈다. 장구이친은 집에 돌아온 후 줄곧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고, 앙상하게 여위어 말하기도 힘들어했다. 검찰원에서 소송을 제기한 뒤 법원은 사람을 파견해 보러 왔다. 그들은 장구이친을 보고 머리를 돌려서 가버렸다. 이 사건은 장구이친의 건강이 너무 나빠 줄곧 재판을 시작하지 못했다.

2001년 1월 17일 오후 2시 뼈대만 남은 장구이친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대법을 실증하기 위해 페이둥수감소의 온갖 박해를 다 당하고 또 5개월의 고통을 감당한 뒤에야 우리를 떠나갔다. 그가 사망한 날은 중국의 전통 명절 작은 설(小年. 음력 12월 23일)이다.

안후이 페이둥현 경찰은 장구이친을 박해해 사망하게 한 뒤 그녀의 남편 관쉐화이(管學懷)도 박해했다. 관쉐화이는 2001년 2월 16일 집에서 불법으로 연행된 후 현재까지 행방불명이다. 참으로 걱정된다.

원문위치: http://library.minghui.org/victim/i125.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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