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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혜망편: 리훙쯔 사부님께서 공을 전하며 설법하던 시절의 신기한 이야기를 회상 (전집1)

진귀한 회억(回憶)

글/ 진룡(辰龍)

[명혜망 2004년 3월 15일] 96년10월의 베이징 국제교류법회 때 우리 연공장에 싱가포르 수련생들이 와서 여러분들이 함께 파룬궁을 수련한 이후의 심득체험을 서로 나누었다. 그때 모임에서 93년에 법을 얻은 한 수련생이 리훙쯔 선생님의 설법강의를 들었을 때의 느낌을 이야기하였다. 파룬궁을 수련하기 전에 그녀는 다른 기공을 몇 해나 연마했었다. 그녀는 의학대학을 졸업하고 위생부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리 선생님의 설법강의를 들을 때 그분이 그녀가 본 기타 기공사들과 같지 않으심을 느꼈다. 리 선생님께서 방출하는 에너지가 매우 강대할 뿐만 아니라 그분이 강의한 법리는 그녀가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것이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존경하고 탄복하였다.

강의 도중 리훙쯔 선생님께서 수련생들의 신체를 조절해 주셨는데 수련생들에게 일어서서 자신의 병 있는 곳을 생각하라고 하셨다. 그녀는 당시 눈이 좋지 않아 늘 아프고 물건을 똑똑히 볼 수 없는 것을 떠올리고는 곧 자신의 눈을 생각하였다. 다만 오른쪽 눈을 잠깐 생각하였다. 그 당시 리 선생님의 요구에 따라 발을 굴렀을 때 순식간에 오른쪽 눈에서 무언가 청리되는 것을 느끼고 눈을 떠보니 오른 눈이 아주 밝아져 물건이 똑똑히 보였고 아프지도 않았다. 그러나 왼쪽 눈은 여전하고 전과 같아 변화가 없었다. 그녀는 당시 왜 왼쪽 눈은 낫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였다. 다시 생각해보니 이는 리 대사님을 탓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눈을 생각할 때 오른쪽 눈만 생각하고 왼쪽 눈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문제였던 것이다. 어쨌든 조절은 이미 끝났으니 병을 조절할 생각을 더 하지 말고 이후에 수련을 잘해야겠다고 그녀는 생각하였다.

그날 강의를 다 들은 후 그녀는 여태껏 있어 본 적이 없었던 기쁨을 느꼈다. 그녀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밤 10시가 넘었는데 가족들은 모두 자고 있었다. 수련하는 사람은 마땅히 다른 사람을 생각해야 하므로 살그머니 침대로 올라가려 하다가 또다시 생각해보니 그러면 잠든 사람을 깨울 것 같았다. 그래서 바닥에서 자려고 침대보를 살며시 펴고 누었다. 그녀가 방금 눈을 감았을 때 갑자기 왼쪽 눈에 한 덩이 밝은 빛이 있는 것을 느꼈다. 눈을 뜨고 보면 사방은 캄캄하고 조그마한 빛도 없었는데 눈을 감으니 밝은 빛이 또 왼쪽 눈에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회전하였고 왼쪽 눈이 매우 시원한 느낌이었다. 그것은 바로 法輪(파룬)이 왼쪽 눈을 조절하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금방 알게 되었으며 문득 마음속으로 벅찬 감격을 느꼈다. 이튿날 눈을 뜨고 보니 왼쪽 눈도 오른쪽 눈과 같이 밝아졌으며 아프지도 않았고 물건을 보는 것도 아주 똑똑했다.

이 노 수련생의 이야기를 들은 후 여러분들은 또다시 사부님의 자비 속에 잠기게 되었으며 法輪大法(파룬따파)의 초상(超常)함과 신비함을 감탄하였다.

[명혜망 2004년 5월 29일]

(1) 광쩌우(廣州)에서 사존님의 설법을 경청하던 나날

글/후난(湖南) 대법제자

1994년 12월에 우리 천시(辰溪)에 인연이 있는 사람들은 각종 교란을 돌파하고, 리훙쯔 사부님께서 광쩌우에서 개최한 파룬궁 제5기 학습반에 참가하였다. 이는 사존께서 중국대륙 그리고 전 세계에서 개최한, 직접 만나서 가르치신 마지막 기(期) 전공 설법(傳功講法) 반이었다. 나는 많은 장애를 극복하였고, 다행히 이 전공 설법반에 참가하여서 행복하게도 사부님을 직접 만나 뵈었고, 만년에도 만나지 못하는 우주 진리 대도를 얻었으며, 수백억 겁에도 만나기 어려운 끝없는 불법-法輪大法(파룬따파)를 얻게 되었다.

학습반 개최시간은 12월 21일부터 28일까지였다. 개최지점은 광쩌우 웨슈(越秀) 공원 옆에 있는 체육관이었다. 리 선생님께서는 매일 두 시간씩 강의 하셨다. 리 선생님께서는 요청에 응하여 광쩌우에 오셔서 학습반을 마련하셨다. 주최 단위는 광쩌우시 기공 협회였는데 8일간 모두 인민 폐(人民幣) 80원(元) 만 받았다. 어떤 수련 생들은 외지에서 왔는데 모두 친척이나 친구들의 소개로 서둘러왔다. 또한 노수련생들도 매우 많았다. 우리 천시(辰溪) 수련 생들은 광쩌우 중의(中医)학원의 빈 학생 기숙사에 세를 얻어 투숙하였다. 그리고 중의 학원의 식당에서 학생들과 함께 싼 값으로 밥과 반찬을 사서 먹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집을 세 얻어 투숙하는 꾸이쩌우(貴州)수련 생, 헤이룽쟝(黑龍江), 치치하얼(齊齊哈爾)의 수련생들을 만났다.

웨슈 공원 체육관은 (2003년 5월 철거하고 지하철을 건설했음)단지 4900여 명 만이 수용 가능한데, 法輪功(파룬궁)을 배우러 온 수련생은 대략 5000명 하고도 몇 백 명이나 더 되었다. 그리하여 몇 백 명은 자리가 없어 학습반에 들어갈 수 없었다. 이 수련생들은 소란을 피우지도 않았고 성급해 하지도 않았으며, 그저 단체로 체육관 앞 공지에서 가부좌하는 것으로 사부님의 대법을 학습할 성의를 표하였다. 약 한 시간쯤 지나 사존께서 이 정황을 아시고 곧 기공 협회 주최측 사람들과,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부님의 설법을 듣게 하겠는가를 의논하셨다. 후에 주최단위에서는 부근에서 빈집을 찾아 텔레비전을 설치하여 생중계하여, 밖에 있는 수련생들도 사부님을 볼 수 있고 설법을 들을 수 있게끔 결정하였다. 이때 광쩌우의 노수련생들도 대법진수(眞修) 제자들의 선타후아(先他後我)의 고상한 풍격을 발휘하여, 주동적으로 자신들이 체육관 안에 예약해 놓은 좌석을 들어오지 못한 신(新)수련생들에게 양보하고 그들 자신은 사부님의 설법 텔레비전 생중계를 보러 갔다. 사부님께서 “스승은 수련생에게 어떤 것들을 주었는가?”를 강의하실 때 특별히 “밖의 수련생들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는다.”라고 한마디 하셨다.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사부님의 대 자비를 진실하게 감수하도록 하였다.

나는 꼬마승려 스더파(釋德法)와 함께 제일 마지막 줄에 앉았다. 우리 등 뒤에 벽에는 “광쩌우 파룬궁 제5기 학습반” 중의 “法輪功(파룬궁)” 세 글자가 걸려 있었다. 온 회장은 인산인해여서 빈 좌석이란 없었다. 남녀노소 여러 사람들은 모두 진실로 믿는 마음을 품고 대법수련으로 모여왔다. 온 설법장에는 하나의 거대한 자비, 상서로운 에너지 마당 중에 휩쌓여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사부님께서는 늘 볼 수 있는 검은색 양복을 입으셨고 신으신 구두도 깨끗하였다. 옷차림은 간소하고도 몸에 딱 맞았다. 사부님께서는 신태(神態)가 상서롭고 붙임성이 좋았다. 홍대한 자비 속에 또 신성한 위엄이 있었다. 체육관 농구장 중앙에 보통 쓰는 긴 책상 하나와 의자 하나를 놓았다. 의자 뒷면에 장방형 금황색 천을 걸어놓았다.

이것이 곧 사부님께서 설법하시는 강단(法壇)의 전부인데 간소하고도 장엄했다. 사면에는 경건하게 설법을 들으려는 중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사부님께서 제일 처음 사람들과 만나기 시작하는 때, 회의장에 들어서시자마자 우렁찬 목소리로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라고 말씀하셨다. 말씀하시는 사이에 사존께서는 두 팔을 높이 높이 들고, 매우 빨리 한 바퀴 돌면서 모든 수련생들에게 안녕하신가 고 인사를 보내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몸을 돌리고 손을 휘저으면서 인사를 보낼 때, 많고도 많은 좋은 것들이 우리를 향해 날아오는 것을 보았다.

사존께서 설법하실 때 그 어떤 원고도 사용하지 않았고, 오직 접어서 구겨진 종이 한 장을 가지고 계실 뿐이었다. 거기에는 아마 설법의 제목을 써놓았을 것이다. 사부님의 말씀은 내용은 심오하지만 표현은 알기 쉬었고, 간단명료하고 통속적이고 이해하기 쉬우며 겸허하고도 해학적이었다. 고금 중외의 여러 가지 일들, 중생백상(衆生百相)의 본질에 대해 강의하셨는데 견해가 날카롭고 법리는 직지인심(直指人心)이었다. 사람들은 종종 유쾌한 웃음을 터트리곤 했다. 홀가분하였고 상서로운 기분 속에서, 진정으로 법을 학습하러 온 병이 있던 많은 사람들의 신체는, 동시에 조절을 받아 건강을 회복하였다.

리 선생님께서는 또 지적하셨다. 대법은 사람들이 수련하게끔 하는 것이지 속인에게 병을 치료해 주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진정으로 수련하는 사람에게만 신체를 정화시켜준다. 불치의 병 위독한 병에 걸린 사람들은 지금도 사무요원들을 속이고 학습반에 들어왔는데, 병을 치료하러 온 것이지 법을 학습 하러 온 것이 아니다. 사부님께서는 지적하셨다. 이런 사람들, 그들에게 똑똑히 지적하셨다. 이런 사람들은 만약 몸이 좋지 않으면 빨리 병원에 가라, 당신이 보건대 그가 지금 이처럼 고통스럽지만, 그의 역사를 펼쳐보면 그가 이전에 다른 사람에게 더욱 고통스럽게 굴었을 것이다. 중국의 독재 장(江)씨 정부의 매체들은 사실을 고려하지 않고 도처에서 대법은 사람들이 병을 치료하지 못하게 한다고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또 사부님의 설법책은 사람을 시켜서 쓴 것이라고 날조했다. 사부님께서 강의하신 법은 역력히 귓전에서 울렸는데, 후에 보니 바로 곧 《전법륜이었다. 정말로 고괴가《/span>古怪歌-괴상한 이야기에서 “종이로 메워 놓은 황당한 거짓말은 찌르기만 하면 바로 구멍 뚫려 찢어진다.” 라고 노래한 것과 같았다. 후에 한 수련생이 사부님의 전생은 누구였는가 고 물었다. 이때 나는 생각했다. 사부님은 석가모니 부처가 환생했을 거야….. 곧바로 사부님께서 대답하시는 말씀이 들렸다. “나는 바로리훙쯔이다. 나는 석가모니 부처가 아니다.” 뒤이어 사부님께서 나를 보셨다. 나는 온몸에 두루 한 가닥 난류로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햇빛에 오랫동안 쪼인 후의 그런 일종 뜨거운 느낌, 마음속의 무한한 기쁨 같은 것이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공(功)으로 나에게 가지(加持)하여 주시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앞에는 헌팅 캡을 쓴 중년 분이 앉아있었고, 오른쪽에는 모녀 두 분, 즉 50여 세 되는 아주머니와 20여세 되는 그녀의 딸이 앉아있었는데, 지서우(吉首)에서 왔다고 한다. 나는 그들과의 몇 마디 말을 통해 그들이 연공하여 이익을 얻게 되어 온 것임을 알았다. 매번 연공 동작을 가르칠 때면 모두 사부님께서 동작의 요령을 해설하시고 수련생이 시범을 보였다. 어떤 동수들은 금 목거리, 손목시계, 돈을 주워 모두 사부님께 건네 드렸다. 사부님은 휴식할 때에, 즉시 잃은 물건의 주인은 앞에 와서 찾아가라고 알려주셨다. 설법 학습반이 결속되게 되자, 또 몇몇 수련생들은 사부님 앞으로 달려가서 사부님의 서명을 청했다. 사부님께서는 세심하게 일일이 그들에게 서명하고 말씀을 남겨 주셨다.

광쩌우에서 사존님의 설법을 경청하던 나날에 있었던 두 가지 일이, 나는 특별히 깊이 각인되어 기억된다.

한 가지 일은 이러하다. 한 수련 생이 사진기 한 대를 샀다. 어느 날, 강의를 들으려고 대문을 지나 회의장에 들어갈 때, 마침 사부님께서 들어오고 계셨다. 그는 급히 사진기를 추켜들고 사부님을 향해 사진을 찍었다. 사부님께서는 그가 자신의 사진을 찍으려는 것을 보고, 곧바로 자상하게 그를 보셨다. 그런데 옆에 있던 광쩌우 기공협회 또 체육관 직원들이 찍지 못하게 했다. 그들은 “대사님의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라고 외치면서 돌진하여오더니 돌연히 그를 밀어놓았다. 그는 밀려서 비틀거리면서 하마터면 넘어질뻔했다. 그는 화가 잔뜩 나서 자신을 밀어놓은 사람들과 대판 싸우려고 했다. 이때 사존께서 그의 옆까지 걸어오셔서 그의 어깨를 다독이면서 “심성을 지켜야지요.” 라고 하셨다. 그는 자신을 밀어놓은 사람들에게 보복하려던 생각이 삽시간에 사라졌다. 후에 그는 “이 대사님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심성을 지키지 못하고 벌써 그들과 싸웠을 것이오”라고 말했다.

나는 이전에 여러 가지 기공을 배웠다. 많은 기공 대사들은 문만 나서면 승용차에 보디가드까지 대동하여 오만한 기세로 거들먹거리고 학습반만 꾸리면 몇백 원씩 받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일찍이 아주 얇은 기공책을 한 권 산 적이 있다. 단지 《/span>전법륜책의 1/6 정도 두께인 데다 아무 문제도 설명하지 못한 책인데 38위안(元)이란 돈을 냈다. 그러나 이처럼 큰 법인 《/span>전법륜은 도리어 12원 밖에 받지 않는다. 리 선생님께서는 근본 무슨 돈과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가 자비롭게 중생을 구도한 사실은 그 어떤 못난이도 말살할 수 없다. 사부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것은 “”쩐, 싼, 런(眞, 善, 忍)이며 좋은 사람으로 되는 것이다.

두 번째 일은 광쩌우 중의(中醫) 학원에서 방을 세내어 법을 듣던 8일 중의 어느 하루의 일이다. 아마 6일째 되던 날이 아니면 7일 째 되던 날인 듯 싶은데. 그날 저녁 식사 후이다. 내가 마침 투숙하던 학생 기숙사의 베란다에서 광쩌우시의 야경을 감상하고 있을 바로 그 때, 갑자기 거대한 백색의 둥근 환 하나가 광쩌우 상공에서 날아들었다. 오가면서 회전하는데 주위의 구름은 채색이 되어 매우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매우 많은 法輪功(파룬궁)수련생들과 중의 학원의 학생들이 소식을 듣고 달려와 구경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사진기로 그 광경을 찍었다. 천목이 열린 동수들은 그 회전하는 것이 바로 파룬(法輪)의 형상임을 보게 되었다. 이 기이한 현상을 목격한 대법 수련생들은 잇달아 허스(合十)하면서 사부님께 경의를 드렸다. 전수반에서 문제를 제기할 때, 어떤 수련생이 광쩌우 상공에서 파룬을 보았다고 말하자 사부님께서는 “보았으면 곧 본 것이지요.” 라고 하셨다. 사부님께서는 전체 광쩌우가 모두 이 에너지 마당에 휩싸여 있어 전 광쩌우성의 사람들이 모두 이익을 얻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나와 함께 법 학습하러 간 수련생 중에 노간부 한 분이 계셨는데 성이 장씨 였다. 광쩌우에 와서 병원에 가 검진할 때, 심장병과 고혈압이 여전히 있었다. 그런데 8일간 참답게 법을 듣고 공을 배운 후, 다시 병원에 가서 검진하니 완전히 건강이 회복되어 있었다. 그의 아내인 오우양(欧阳)부인은 말하기를 “법을 다 듣고 난 후, 전체 세계관이 모두 변화를 가져와서 더욱 선량하고 아름다워졌습니다. 나는 자신이 진정한 수련대법을 찾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부터 시작해 나는 이 한 생 견정하게 수련하여 나갈 것을 다짐했지요, 원만에 이를 때까지 말입니다.”

2004년 5월26일

甲申年四月初八

(2) 광쩌우에서 사부님의 설법 학습반에 참가하던 나날을 회억한다.

글/ 대륙 대법제자

1994년 12월, 나는 마침내 각종 저애를 돌파하고 꼬박 2박 3일간 기차에 앉아서 광쩌우에 도착하여, 사부님의 국내에서 마지막기 학습반에 참가하였다. 우리가 역에서 나와 투숙하는 곳까지 가는 도중 젊은 동수 손씨가 갑자기 여러 사람에게 말했다. “나의 아랫배 부위가 휙휙 하고 돌아친다!” 아직 학습 반에 들어가지도 않은 길 위에서 사부님께서는 그녀에게 파룬(法輪)을 넣어 주셨다. 사부님께서는 “왔다면 곧 연분이지요”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아마 12월 20일쯤의 일이다. 나는 마침내 그토록 오랫동안 그리던 사부님을 만났다. 사부님께서 그토록 높고 크며 자상하고 친절하시다니… 나는 마치 오랫동안 부모를 잃었던 아이가 끝내 집에 돌아와서 부모님을 만난 것처럼 차분하고 안전한 감을 느꼈다. 나는 행복의 눈물을 흘렸고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외침소리가 울려 나왔다. “나는 마침내 진정한 사부님을 만났다네!” 법을 들으러 온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전체 광쩌우시 체육관에 빼곡하게 차 있어서 지나다니는 통로까지 앉아있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광쩌우 수련생들과 학습반에 이미 참가한 적이 있는 수련생들은 주회의장 좌석을 외지에서 온 수련생과 신수련생들에게 양보하고, 분회의장에 가서 녹음 중계를 보라고 하셨다. 첫날 강의를 시작 하신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사무요원이 밖에서 많은 사람들이 연공하고 있다고 사부님께 알렸다. 그들은 모두 사부님께서 광쩌우에서 설법하신다는 소식을 들었으나, 입장권을 얻을 방법이 없어, 직접 몇천 리 밖에서 비행기를 타고 급히 오신 분들이었고, 그들 중 어떤 분들은 경제 상황이 몹시 곤란하여 여관에도 투숙할 수 없고 라면만 먹는다고 알렸다. 사부님께서는 이 소식을 듣고 즉시 그들을 들어오게 하고는, 땅바닥에 자리를 깔고 강단 앞에 앉게 하셨다. 그들은 깊이 사부님께 허스하였다. 온 회장에는 열렬한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부님께서 설법하시던 전반 3, 4일간, 회의 장소에서는 늘 이상한 소리가 나곤 하였다. 나의 뒤에 있는 사람은 늘 일종의 괴상한 기침 소리를 내곤 했는데, 마치 전체 폐부가 기침할 때마다 튀어나오는 것처럼 괴로워했다. 내가 머리를 들어보니 지붕 위는 하나의 혼탁한 기 덩어리가 보였는데, 마치 먼지와 연기가 뒤덮여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사부님께서 설법하시면서 늘 몸 위에서부터 아래로 무엇을 털어 버리는 것을 주의해 보게 되었다. 후에야 나는 비로소 명백히 알았는데, 알고 보니 바로 《/span>전법륜에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이었다. “그가 좋지 않은 것을 보내면 나는 곧 청리(淸理)해 버렸고 청리가 끝나면나는 바로 나의 법을 전했다.” 나흘째 되던 날 사부님께서는 여러 사람에게 수련생들의 신체를 청리해 주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일어나서 사부님의 구령에 따라 자신 혹은 친인의 병을 생각하면서, 사부님의 지휘하에 발을 구르는데, 오른발을 구르라고 하셨다. 당시 사부님이 들었던 손을 아래로 내려 누르는 것을 따라서, 나는 한 갈래의 음침하고 싸늘한 것이 위로부터 아래로 나가고, 다리를 한번 힘내어 구름에 따라 체외로 말끔히 내보내지는 것을 똑똑히 느꼈다. 이때부터 나는 신체적 허약과 많은 병치레의 역사와 철저히 고별하고, 한 갈래 건강한 수련의 길을 걷게 되었다. 사부님께서 우리들을 위하여 다 제거하신 후, 나의 몸 뒤에서는 더 이상 그 괴상한 기침소리가 나지 않았다. 우리가 다시 머리를 들어 지붕 위를 보니, 정말 하늘은 맑고 투명한 것이 마치 금방 깨끗이 씻어낸 것처럼 참으로 새롭고, 사리는 밝고 확실해졌고, 기분은 상쾌해졌다. 그때 우리는 운동장에 앉았는데 사부님 등 뒤 위치였다. 사부님께서 항상 머리를 돌려 우리를 보시면서 “나의 뒤편에 있는 수련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늘 머리를 돌려 당신들을 봅니다. 한 사람도 빠뜨려 놓을 수 없습니다.”라고 알려주셨다. 사부님께서 여러 사람들의 신체를 청리하기 시작하면서 반응이 있을 거라 알려 주셨을 때, 숙소로 돌아온 후, 매 개인은 정도가 다르게 춥고 열이 나고 종기가 나고 설사하는 등 여러 가지 증상이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온몸이 아프고 머리가 아파서 침대에서 일어날 수 조차 없었으며 밥도 먹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튿날 여전히 일어나 강의를 들으러 갔다. 이렇게 2~3일이 지나자 여러 사람들은 병이 없어 온몸이 가볍고, 길을 걸을 때면 그 누가 밀어주는 것 같음을 느낄 수 있었다.

며칠째 되던 날 저녁인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그날 저녁 층집 전체가 환희로 들끓었다. 광쩌우의 하늘에 특히 수련생들이 투숙하고 있는 층집 상공에 많고 많은 크고 작은 회전하는 파룬(法輪)이 나타났는데 대단한 장관이었다. 많은 수련생들과 투숙하고 있던 여행객들도 모두 보았다. 모두 육안으로 볼 수 있었다. 카메라를 가진 많은 수련생들은 모두 이 진귀한 장면을 찍어 대법의 신비로움을 증명하였다. 우리가 투숙하고 있는 것은 철도 초대소였는데 체육관과 그리 가까운 곳이 아니었다. 금방 기차에서 내리니 기차역에서 안내하는 매표원이 우리에게 소개하기를 광쩌우에는 세가지가 많은데 차가 많고 사람이 많으며 붉은 신호등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우리들 더러 붉은 신호등을 기다리고 차가 막힐 것에 대한 사상준비를 하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숙소에서 체육관까지 가서 법을 듣는 8일 간, 경과해야 할 횡단보도의 신호등은 그냥 모두가 푸른 불이어서 막힘 없이 잘 통과되었다. 이것은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임을 우리는 알았다. 우리가 법을 듣는 며칠간에, 광쩌우 신문보도에는 최근 며칠간 광쩌우는 날씨가 맑고, 사회치안도 뚜렷하게 호전되었다고 했다. 이것은 사부님의 불광이 널리 비쳐 광쩌우 인민들에게 안녕과 상서로움을 가져다주신 것임을 우리는 알았다. 여러 사람들의 지출을 줄이기 위해 사부님께서는 원래 10강의를 8일로 앞당겨 완성하셨다.

매번 그 한 단락 사부님과 함께 있었던 그 행복했던 시절을 회억할 때마다, 나는 사부님께서 《/span>전법륜에서 하신 한 단락 말씀을 상기한다. “내 생각에, 내가 공을 전하고 설법하는 것을 직접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정말로……, 장래에 당신은 알게 될 텐데, 당신은 이시간이매우 보람찼다고 여길것이다.” 사부님의 설법은 나로 하여금 생명의 진정한 의의(意義)인 반본귀진(返本归眞)을 알게 했다. 또 세세생생 바라고 기다렸던 고덕대법(高德大法) 쩐, 싼, 런(眞, 善, 忍)을 찾게 되었다. 이때부터 나는 사부님을 따라 반본귀진하는 수련의 길을 걷게 되었다.

글/ 우한(武漢) 대법제자

[명혜망 2004년 8월 31일] 1993년 봄, 사부님께서 우한에 오시어 법(法)을 전하셨다. 당시 학습반은 중앙부서 장관급 과학연구단위의 강당에서 진행되었다. 우한에서 처음으로 법을 전하시는 것이었기에 사부님께서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파룬궁을 알게 하기 위하여 북경에서 온 제자들을 거느리고 사흘 동안 사람들의 병을 봐주셨다. 사흘 동안 병을 보러 오는 사람들은 갈수록 많아졌다.

특히 마지막인 사흘째 되는 날은 병을 보러 오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고 밤이 깊도록 많은 사람들이 떠나려 하지 않았다. 각종 질병을 지닌 사람들이 다 모였는데 특히 여러 경로를 통해 오랫동안 치료를 했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던 난치병 환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사부님의 치료를 받고 현장에서 기적처럼 병이 나았으며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대법의 신기(神奇)와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를 체험할 수 있게 했다.

그 중 내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한 실화가 있다.

한 할머니가 있었는데 중풍으로 반신이 마비되어 5, 6년간 침대에 누워 지냈으며 혼자서는 생활할 수 없었다. 이번에 기공으로 병을 치료한다는 소식을 듣고 남편과 며느리의 부축을 받아 치료하러 왔다. 그녀를 사부님께서 앉아 계신 의자 앞까지 부축했는데 똑바로 서지도 못했다. 사부님께서는 그녀를 바라보기만 하실 뿐 손을 대지도 않으셨다. 잠시 후 사부님께서 그녀더러 똑바로 서라고 하자 처음에는 감히 일어나지 못했다. 사부님께서 그녀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해주자 그녀는 곧 똑바로 설 수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또 그녀에게 앞으로 몇 걸음 걸어보라고 하셨다. 그녀는 조금 망설이다가 여러 사람의 격려 하에 끝내 첫발자국을 내디뎠고 뒤이어 아주 자신 있게 앞으로 걸었다.

나중에 그녀더러 층계를 올라가 보라고 하자 그녀는 감히 걸음을 내딛지 못했다. 사부님께서는 “올라가보세요. 괜찮습니다.”라고 하셨다. 여러 사람들의 고무 하에 그녀는 정말로 층계를 올라갔다. 나중에 그녀는 혼자 걸어서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잠시 후 내가 강당 밖에 나가보니 그녀 혼자 마당을 걷고 있었다. 내가 왜 집에 돌아가서 쉬지 않는가 묻자 그녀는 대답했다. “나도 모르게 자꾸만 걷고 싶어요. 집에 돌아가서도 걷고 싶어서 집안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 여기까지 왔어요. 지난 수 년 동안 이렇게 걸어보지 못했는데 정말 통쾌합니다!”

내가 평생 잊을 수 없는 일이 또 한 가지 있다.

당시 학습반은 매 기수마다 열흘간 여셨는데 사부님께서는 날마다 한 시간 반 이상 설법하신 후 연공동작을 가르치셨다.

학습반을 시작한 첫날, 40대 가량의 마르고 큰 남자가 학습반 수강증도 없이 기어이 들어오려다 사업일꾼의 제지를 받았다. 사람들이 그에게 수강증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다고 설명했으나 그는 권고를 듣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큰 소리로 떠들어댔다.

“내가 이곳에 온 것은 바로 그(사부님을 가리킴)와 법술을 겨루기 위해서이다. 우리 사부님은 백세가 넘었는데 그는 이렇게 젊은가?” 그리고는 또 듣기 거북한 말들을 많이 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되신 사부님께서 사업일꾼더러 그 사람을 들여보내게 하셨다. 사부님의 강의가 끝나자 그는 아주 조용히 물러갔다. 그는 또 특별히 사업일꾼을 찾아와 말했다. “다시는 시끄럽게 굴지 않겠습니다. 이분이야말로 진정한 사부님이십니다.”

나는 행운스럽게 사부님의 설법을 들을 수 있었던 그 행복한 나날을 회상할 때마다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대한 깊은 숭경(崇敬)과 감격을 금할 수 없다. 자신이 직접 겪은 하나하나의 기적같은 사실들은 나로 하여금 사부님의 위대함과 자비하신 구도를 깊이 느끼게 하며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신념을 더욱 견정하게 한다.

사부님의 우한 학습반에서 직접 겪은 신기한 이야기

글/ 우한 대법제자

[명혜망 2004년 9월 1일] 나는 오랫동안 건강이 좋지 않아 각종 질병에 시달려왔고 몇 번의 수술을 하면서 그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병원에서 치료할 수 없어 많은 기공을 연마했으나 돈만 날리고 호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1993년 3월 파룬궁이 우한으로 전해져 나는 연분으로 시 기공협회에서 파룬궁 학습반 입장권을 구매했다. 입장권은 10일에 신 수련생은 50위안(한화 약 8천원), 노 수련생은 25위안(약 4천원)이었다. 내가 전에 기공사들의 강연회에 참석해보면 반나절에 100위안(약 1만7천원)이 넘었다. 시정부 강당에서 첫 강의를 들은 나는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고심대법에 깊이 빨려들어 완전히 ‘병’을 잊어버렸고 마치 천만년 찾고 기다려왔던 것이 바로 이 고심대법인 듯 했다. 신기한 점은 사부님께서 나에게 병치료를 해주시지 않았는데 살아갈 수 없게 나를 시달리게 하던 각종 질병이 전부 없어졌고 나를 꽁꽁 묶어왔던 쇠사슬이 단번에 전부 풀렸다. 그날 강의가 끝나 자전거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 마치 누군가 밀어주는 것 같아 뒤돌아봤으나 누구도 없었다. 사부님께서 법신이 우리를 보호한다고 하신 말씀이 진짜였다.

병이 없는 홀가분함과 즐거움으로 나는 자발적으로 대법의 아름다움을 더욱 많은 연분 있는 사람에게 전했다.

학습반에서 신기한 일이 발생했다. 우리들은 대법이 너무나 좋음을 느끼고 처음 듣는 내용이라 함께 참가한 수련생과 합심하여 새로 녹음기와 테이프를 구매해 사부님의 설법을 녹음하려 했다. 이튿날 강의가 시작되면서 녹음 버튼을 눌렀다. 이때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당신들에게 녹음을 허락하지 않으면 당신들은 녹음할 수 없다.” 하지만 사부님께서 우리의 녹음을 중지하는 어떠한 동작도 하시지 않고 계속하여 설법하셨다. 그때 우리들의 오성이 정말 차해 여전히 녹음에 신경 썼다. 집에 돌아와 녹음한 테이프를 꺼내보니 전부 한 토막씩 끊어졌다. 그 자리에 있던 수련생들은 전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후에 사부님께서 장강 경제 라디오 방송 중에 많은 사람들의 질문에 답해주는 강연이 있었는데 우리는 사부님께 녹음할 수 있는지 여쭤봤다. 사부님께서 웃으시면서 “녹음해도 됩니다.” 라고 말씀하셔서 우리는 녹음했다.

지인이 있었는데 중병으로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으며 가족이 모두 출근한 후 라디오를 들었다. 바로 사부님께서 한 환자의 질문에 답해주는 대목에서부터 듣게 됐다. 사부님께서는 그 환자에게 책상을 짚고 전신을 느슨히 하라고 하셨다. 이 지인도 따라서 침대 옆에 있는 궤를 붙잡고 전신을 느슨히 했는데 그때부터 침대에서 내려와 생활을 자립할 수 있었다. 가족이 퇴근하여 그녀의 모습을 보고 모두들 너무나 기뻐했다. 그래서 그들 가족 중에 많은 사람이 대법 수련에 들어섰다.

우한 대법제자, 사부님의 법을 전하신 사적을 회상

[명혜망 2004년 9월 2일]

1. 1993년 3월 사부님께서 우한 제2회 설법 학습반을 개최했다. 나는 대법이 너무나 좋아 잘 지내는 많은 친구를 불러 함께 설법을 들었다. 그들은 4일 늦게 시작했는데 사부님께서 제자들에게 알려주시길 하나도 빠뜨리지 않는다고 하셨다. 슈롄(가명)이라는 퇴역군인이 군인시절에 흡혈충에 감염돼 치료 도중에 손상을 입어 간경화, 간복수 말기에 이르렀다. 며칠 강의를 듣고 부종이 심한 다리가 나았으며 지금까지 아무런 병이 없다.

2. 1993년 9월 사부님께서 우한 제3회 설법 학습반을 개최했다. 어느 날 자칭 매우 높은 공이 있다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어떤 기공사든 우한에서 학습반을 꾸리면 걸어놓은 현수막(모모 기공사 강연회라고 적음)의 글자를 공능으로 없앨 수 있습니다. 오직 당신들 사부님의 매번 10일 강의에 현수막 글자만은 조금도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이 사부님은 절대적으로 높으신 분입니다.”

3. 1994년 사부님께서 지난에서 학습반을 개최했다. 날씨가 매우 더워 함께 갔던 수련생이 부채를 건네줬다. 부채를 받아서 부채질하려는데 사부님께서 “여러분이 부채를 모두 내려놓아보세요.”라고 말씀하셔서 나는 서둘러 부채를 내려놓았다. 그러자 서서히 시원한 바람이 우리에게 불어왔다.

4. 1994년 12월 사부님께서 광저우에서 대륙 마지막 학습반을 개최했다. 각 지역에서 많은 사람이 갔는데 많은 사람이 입장권이 없어서 밖에서 기다렸다. 사부님은 자비로우셔서 멀리서 수련생들이 찾아왔는데 입장하여 법을 들을 수 없어서는 안 된다고 하시면서 매번 강의를 하시기 전에 꼭 한마디 하셨다. “밖에 들어오지 못한 제자도 마찬가지로 무엇도 빠뜨리는 것이 없습니다.” 나중에 사부님의 노력으로 주최 측과의 교섭을 거쳐 회의장을 하나 추가해 주회장과 동시에 중계를 해서 사부님의 설법을 들을 수 있었다.

5. 룽롄(가명)의 남편은 심한 심장병을 앓고 있었는데 밤에 누워서 잘 수 없었다. 대법의 신기함을 전해들은 후 그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귀한 입장권 2장을 확보해 광저우 마지막 한 차례 설법반에 참가했다. 남편을 대동해갔으나 강의 중에 사부님께서 자신의 빠진 머리카락을 다시 나게 해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돌아온 후 남편의 심장병도 나아졌고 그녀의 머리카락도 풍성하게 자라났다.

6. 사부님의 지난, 광저우 설법에 참가한 몇 명의 수련생이 우산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법을 들으러 출발하면 비가 멎었고 설법하는 사이에 비가 다시 내렸으며 설법을 들은 후 돌아가는 길이 멀든 가깝던 비를 맞지 않고 집에 들어섰고 집에 들어서면 비가 다시 내렸다. 다만 한번은 우리가 강의를 들은 후 쇼핑하러 갔는데 그때는 비가 내렸다.

사부님께서 나에게 두 번째 생명을 주셨다

글/ 광저우 대법제자

[명혜망 2004년 9월 2일] 1994년 7월 19일부터 25일까지 사부님께서 재차 광저우로 남하하셔서 제4회 파룬궁(法輪功) 학습반을 개최하셨다.

나는 운 좋게 직접 사부님의 전공(傳功) 설법을 들을 수 있었다. 보기에 사부님께서는 매우 젊었고 키가 크며 준수하셨다. 천목이 열린 수련생에게 들었는데 사부님의 정수리에 연속으로 광환이 있고 반짝반짝 빛난다고 했다. 사부님께서는 설법하시고 시범도 보이셨으며 또 수련생의 병을 치료해주셨다. 매번 사부님께서 수련생의 병을 치료하는 정경이 떠오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앞을 가리며 사부님께서 나에게도 두 번째 생명을 주신 것에 감격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병이 많았고 특히 간과 심장에 병이 깊어 법을 얻을 무렵에는 간이 붓고 아팠으며 협심증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1994년 7월 21일 설법이 곧 끝날 무렵 사부님께서 단상에서 말씀하셨다. “수련생 여러분 잘 들으세요, 오늘 여러분의 심장병을 치료할 겁니다. 앉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말며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세요.” 삽시간에 광저우 군구 후근부 강당 몇천 명 수련생이 물 뿌린 듯이 조용했고 위아래 층 모두 바늘이 떨어져도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짧은 한순간이 지나고 사부님께서 됐다고 말씀하셨다. 바로 그때 내 심장 부위, 앞가슴과 등이 정말로 전혀 통증이 없었고 마음도 차분해졌다. 그 기쁜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으며 의사는 많아야 8년을 살 수 있다면서 평생 약을 달고 살아야 한다고 했는데 바로 그 한순간에 이 병이 감쪽같이 나아졌다.

며칠 지나서 사부님께서 설법하시는 과정에 또 “간장에 병이 있는 사람들은 잘 들으세요, 오늘 제가 여러분의 간의 병을 치료할 겁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조용해진 그 찰나에 사부님께서 “됐습니다”라고 하셨고 10여 년간 시달려왔던 나의 간 질환이 단번에 나아졌다. 그때 간에 통증이 사라지고 붓기도 없어졌으며 매우 편안했다. 그날 설법을 듣고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는 길은 날아가는 듯했고 몸에 병이 없어 홀가분한 느낌을 확실히 체험할 수 있었다. 그날부터 오늘까지 만 8년이 지났고 약으로 생명을 유지하지 않아도 됐을 뿐만 아니라 건강하게 즐거움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 어찌 기적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옛 사람이 가로되 “일일위사, 종신위부(一日爲師, 終身爲父, 하루를 모신스승도 평생 부모님처럼 대한다)”라는 구절이 내가 설법반에 참가하는 그날부터 마음속 깊이 뿌리내렸고 이 일념이 개인 수련의 아름다운 시절과 함께 해왔고 또 정법 수련에서 난에 처한 고통스러운 나날에도 동반했다. 세뇌반에서 나를 전향시키려고 왜 파룬궁 수련을 견지하느냐는 질문에 나는 위에 서술한 내용을 그들에게 들려주고 이는 나의 절실한 소감이라고 덧붙였다. 그 후 그들은 더는 할 말이 없어 했다. 사실은 웅변보다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장쩌민 깡패집단이 어떻게 유언비어를 퍼뜨리든지 대법에 대한 나의 신념을 개변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나의 생명은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고 대법이 준 것으로 이 자리를 빌려 연분으로 진상을 알려는 사람들에게 파룬궁은 사람을 구하는 것이며 천리(天理)이며 누구라도 배울 수 있음을 알려주고 싶다. 이는 나의 진심 어린 말이다.

사부님께서 진정으로 수련하려는 사람을 위해 몸을 정화해 주셨다

문장/ 다롄(大连) 대법제자

[명혜망 2004년 9월 3일]

1994년 3월 27일, 사부님께서 처음으로 다롄에 오셔서 설법하실 때였다. 학습반의 강당 문 어귀에 승용차 한 대가 다가오더니 50여 세쯤 되어 보이는 한 여자가 차에서 내렸다. 그는 행동거지가 불편하여 남편에게 업히어 강의실에 들어오더니 집에서 갖고 온 소파를 맨 앞에 놓고 기대여 앉아 강의 들을 준비를 하였다. 사람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주목하고 있었다.

알아본 바에 의하면 이분은 과학기술 연구원이었다. 그는 1991년에 척추 대수술을 하고 나서 2년 뒤에야 겨우 출근하게 되였다. 그런데 얼마 전 외출하여 사무를 보던 중 바람을 맞고 또 병이 재발하여 여러 가지 병 치료를 다해도 도저히 낫지 않았다. 이때 사부님의 법 학습반에 참가했던 분이 그에게 파룬궁을 소개해 주고, 《파룬궁 책을 추천해 주었으며, 사부님께서 다롄 기공협회의 초대를 받고 다롄으로 오신다는 소식도 알려주었다. 그는 책을 보고 나서 아주 좋은 공법이라고 느꼈고, 법리를 좀 깨닫게 되었다. 사부님께서 설법하러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미리 입장권을 산후 사부님의학습반에 참가하러 온 것이다.

강의를 시작하시기 전 사부님께서는 소파에 기대앉은 사람이 있는 것을 보시더니 사업자들과 다롄 기공협회의 책임자를 불러 그를 내보내고, 입장권을 반납시키라고 분부하셨다. 그들은 조급해졌다. 그의 남편은 연단에 올라가 사부님을 찾아 특별한 상황을 말씀드렸다. 사부님께서는 병 치료를 해주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그의 남편은 “우리는 병 치료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보름 전부터 사부님의 책을 읽기 시작했고, 사부님의 강의 녹음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공법을 배우러 왔습니다.”하고 말씀 드렸다. 사부님께서는 이들의 오성이 좋다고 여기시고 그 여자를 보러 가셨다.

사부님께서 다가오자 그 여자는 일어섰다. 사부님께서는 그더러 앉으라고 하시더니 손바닥으로 그의 목을 두 번 두드려 주시고 또 정수리를 두 번 치신후 두 어깨를 청리 해 주시더니 그녀더러 일어서서 걸어 보라고 하셨다. 그녀가 강단 가운데까지 걸어가자 멈추라고 하시더니 그의 두 다리를 정화시켜 주신 후 “됐습니다. 걸어 보시오.”하고 말씀하셨다. 그녀가 강단 앞을 두 바퀴 돌자 장내의 많은 수련자들은 모두 기립 박수를 보냈다.

그 날 설법이 끝날 때 그녀는 두 다리가 가벼워진걸 느끼면서 혼자서 강당에서 걸어나가 차를 탈수 있었다. 그 후부터 그녀는 능히 강의실을 혼자 드나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계단도 오르내릴 수 있었으며, 다시는 남편에게 업히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사부님께서 진정으로 수련하고자 하는 사람을 위해 몸을 정화시키는 기적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녀는 사부님께서 강의하신 내용과 자신이 친히 겪은 경험을 통해 내심으로부터 사부님과 대법에 대해 초상적인 것을 느꼈다. 그들은 사부님의 구도에 보답하기 위해 페넌트를 전문 제작하여 “파룬공법 과학의 귀중한 보물”이라는 글을 새겨 학습반이 끝날 때 사부님께 드렸다.

사부님께서 법을 전하실 때 신기한 일에 대한 회상

글/ 우한 대법제자

[명혜망 2004년 9월 7일] 1993년 3월 25일 사부님 설법 강연회에 참석하러 가는 버스에서 처음으로 지갑을 소매치기 당해 현금과 함께 입장권을 잃어버렸다. 강연회는 입장권을 보여줘야 입장이 가능한데 현금도 없고 입장권도 없었으며 잃어버린 입장권 좌석도 기억하지 못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조급한 마음에 입구에서 망설였고 입장이 거의 마무리되자 시작을 알리는 소리를 듣는 순간 머릿속에 10열 9번이 떠올랐다. 나는 검표하는 사람에게 10열 9번을 확인했더니 사람이 없어서 입장을 허락했다. 이는 바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연분으로 이어진 결과로서 내가 들어야 할 것이므로 여전히 나에게 주신 것이다.

1994년 상반기 어느 날 몸이 많이 불편해 이틀간 음식을 먹지 못했으며 배가 갈수록 더 아파 침대에서 기었다. 남편이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서 아픈 곳을 가리켰더니 매우 긴장해서 말했다. “맹장염이군요. 그해에 나도 이곳이 아파 침대에서 기어 다닐 정도여서 병원에 갔더니 맹장에 구멍이 날 것 같아 즉시 수술했잖아요.” 나는 남편을 밀어내며 말했다. “1년 넘게 수련했는데 무슨 맹장염 같은 소리를 하세요.”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는 진정한 연공인(煉功人)으로서 마땅히 아주 높은 층차에서 문제를 보아야 하며 속인의 관점으로 문제를 보아서는 안 된다. 당신이 병이 있다고 여길 때면 아마 병을 불러올지도 모른다.”(전법륜 제6강) 또 말씀하셨다. “우리는, 좋고 나쁨은 사람의 일념(一念)에서 나오며, 이 일념의 차이가 부동(不同)한 후과(後果)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한다.”(전법륜 제4강) 나의 이 같은 바른 일념으로 순간 통증이 멈췄고 음식을 먹고 싶었다.

1994년의 어느 날 밤, 낮에 가부좌를 하지 않아 밤 12시에 일어나 가부좌를 하려 했다. 그때 나는 연공에 매우 적극적이었으나 법공부에는 그렇게 적극적이지 못했다. 깨어나려는 생각을 갖고 깊이 잠들었다. 갑자기 우렁찬 목소리로 “12시 5분전” 라는 소리가 들려 반신반의하며 일어나 시계를 보았더니 바로 12시 5분전 이었다. 나는 가부좌를 하고 제5장 공법을 연마했다. 그때는 아직 사부님의 법신이 깨워주신 것임을 깨닫지 못했으며 나중에야 자비로운 사부님께서 시시각각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심을 알았다.

1994년 말 광저우 사부님 설법반에 참가했는데 그때 사부님께서 수련생의 신체를 청리해주셨다. 사부님께서 편안하지 않은 곳을 생각하라고 알려주실 때 마치 사부님께서 손으로 나의 심장을 잡는 느낌이 들었으며 그리고 나서 훨씬 편안해졌다. 그리고 이전에 여러 차례 사부님의 설법을 들을 때는 잠자는 일이 없었는데 광저우 설법반에서 나는 깊이 잠들었으나 사부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한글자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들었다.

1993년 3월 25일 사부님 설법 강연회에 가기 전 점심에 한약을 마셨으나 사부님의 강연을 듣고 나서 그 약을 버렸으며 지금까지 한 번도 병원에 가지 않았고 약 한 알 먹지 않았다. 20여 년간 병마에 시달렸는데 허리 디스크, 골질증식, 만성 결장염, 심장병, 비문증, 3가지 감소(백혈구, 적혈구, 혈소판 감소), 자궁근종, 변비 등 각종 질병이 있었다. 매월 몇 백 위안(한화 17000 원)의 약비용을 청구받고 약을 떠나 살 수 없던 내가 단번에모든 약을 버릴 수 있었다. 자신이 직접 겪은 일이 아니었더라면 누가 믿겠는가. 파룬따파는 두말할 것 없이 좋고 신기하다.

1994년 4월 동료가 심한 혈액병에 걸려 퇴원을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병문안을 갔더니 자신의 정황을 소개했다. 얼굴과 전신 피부에 황갈색 반점이 생겨 병원에서 검사하니 혈액이 진흙탕 같았고 황갈색이었으며 병원에서는 혈액을 채취하여 씻은 후 맑은 혈액으로 바꾼 다음 다시 주입했는데 한번에 1만 위안(한화 약 170만원) 비용이 들었고 연속 3번이나 했다. 하지만 퇴원만 하면 다시 재발해 퇴원을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같은 사무실에 있어서 서로 잘 아는 사이였으며 나의 기색과 정신상태가 매우 좋은 것을 보고 물었다. “건강이 어찌하여 이렇게 좋아졌나요?” 나는 “파룬궁(法輪功) 수련으로 좋아졌어요. 1년 넘게 연공했는데 한 번도 병원에 가본 적이 없고 약을 먹어본 적이 없어요. 바로 연공 첫날에 모든 약을 버렸어요.”라고 알려줬더니 그렇게 좋은 공법이라면 자신에게도 가르쳐달라고 했다. 나는 “퇴원하면 가르쳐드리죠.”라고 대답했다.

며칠 후 그는 정말로 퇴원한 후 우리 집에 찾아와 연공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연공동작을 가르치고 ‘중국파룬궁(中國法輪功)’ 책을 보여줬다. 그는 오성(悟性)이 좋아 단번에 모두 믿었으며 1994년 4월부터 현재까지 다시 병이 재발하지 않았으며 깨끗이 나았고 피부도 정상으로 됐다.

1994년 말 나는 그와 함께 광저우 사부님 설법반에 참가했다. 기차에서 그는 사부님의 법신을 보았고 천병천장(天兵天將)이 우리를 보호하고 있음을 보았는데 광저우로 다녀오는 노정은 매우 순리로웠다. 또 사부님께서 광저우에서 설법하실 때 광저우 하늘이 큰 파룬(法輪)으로 뒤덮인 것을 보았고 갓으로 쌓인 내부는 조용하고 질서가 매우 좋았다. 하지만 밖은 매우 혼란했고 각 조대(朝代)의 사람으로 가득했다. 더 신기한 점은 광저우에서 설법을 듣는 8일 동안 날마다 비가 내렸으나 설법장소까지 왕복 시간에는 비가 멎어서 설법장소에 도착하거나 집에 도착하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는 한 번도 비를 맞은 적이 없었다.

그가 나를 따라 광저우에서 사부님 설법을 듣게 된 일을 알고 그의 남편도 휴가를 내고 광저우로 사부님 설법을 들으러 왔다. 그의 남편은 이렇게 심한 병이 치료하지 않고 연공하여 좋아졌고, 이렇게 위대한 선생님이 광저우에서 설법하고 공을 가르치시는데 어찌 참가하지 않겠냐고 했다. 나는 직장동료인 그에게만 입장권을 마련해서 그의 남편의 입장권은 없었다. 그는 장내로 입장해 설법을 들을 수 없더라도 선생님의 얼굴을 한번 뵐 수 있는 것도 자신의 복이라며 기어코 찾아왔다. 그때 입장권이 매진됐고 그의 남편이 광저우에 도착했을 때 입장권이 없는 사람이 대략 500여명이었으며 체육관 밖에서 선생님의 설법을 들었다.(밖에 확성기를 설치했음) 그렇게 설법을 들은 두 번째 날에 한 수련생이 급한 일로 입장권을 반환했는데 그 결과 그의 남편이 사게 되었다.

설법 중에 사부님께서 당신들은 어디가 불편하거나 혹은 어디에 병이 있다고 느껴지면 그곳을 생각하라고 말씀하셨다. 그의 남편은 불편한 곳이 없어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딸 신체의 불편한 곳을 생각했다. 딸은 2년 전 출산하며 성대에 문제가 생겨 더는 소리를 낼 수 없어서 치료해도 낫지 않아 더는 가망이 없어 학교 측에서는 총무부에 배치했다. 그래서 그는 딸의 성대를 생각했다.

그의 남편이 사부님 광저우 설법반에서 집에 돌아온 후 딸이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가 떠난 세 번째 날에(바로 사부님께서 수련생의 신체를 청리해주신 날임) 저의 성대가 좋아졌어요, 말할 수 있게 회복됐어요.”

그의 남편은 사부님께서 어떻게 청리하셨는지 정황을 이야기했다. 천리를 사이에 두고 이렇게 생각하라는 말씀에 따라 했더니 나아지다니 정말로 신기한 일이었다.

광저우에서 우리와 함께 사부님 설법을 들은 젊은 대학생이 있었는데 우리와 같은 숙소를 사용했으며 도수가 높은 안경을 착용했었다. 사부님께서 “당신은 어느 불(佛)ㆍ도(道)가 거기에 앉아 담배를 물고 있는 것을 보았는가? 그런 것이 어디 있는가?”(전법륜 제7강) 라고 하신 말씀을 들은 후 이 젊은 수련생은 어느 불, 도가 안경을 착용했는가? 라고 연상했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착용한 안경알에서 ‘댕그랑’ 소리가 났다. 그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숙소에 돌아와 안경을 벗어보니 안경알이 전부 조각났다. 그는 안경을 착용하지 말아야 하는 것으로 깨닫고 안경을 버렸으며 천천히 눈의 시력이 좋아져 갈수록 밝게 보였다.

구이양 대법제자, 사부님께서 법을 전하실 때의 아름다운 시절을 회상

[명혜망 2004년 9월 11일] 사부님께서 4번이나 주청(築城)에 오셔서 공을 전하고 설법하시며 수많은 감동적인 이야기와 신적을 남기셨다. 구이양(貴陽)의 많은 대법제자는 행운으로 직접 사존의 가르침을 들을 수 있었다. 박해가 시작된 이후 5년간 사악이 아무리 창궐하고 환경이 얼마나 악랄하며 정황이 얼마나 복잡하든지 대법제자의 사부님에 대한 그리고 대법에 대한 반석같이 확고한 마음은 동요될 수 없었다. 대법을 실증하고 사존의 은혜에 감사하며 수련생과 서로 격려하기 위해 수련생들이 직접 겪은 일들을 적어본다.

1. 왕 씨는 사부님의 구이양에서 첫 회 설법반에 참가했다. 두 번째 날과 세 번째 날 집에서 제2장 공법을 할 때 아내는(수련생) 그의 앞이마와 정수리 부위 등에서 큰 광환이 회전하는 것을 보거나 느낄 수 있었으며 동시에 머리가 붓고 아프고 괴로운 느낌을 받았다. 왕 씨는 사부님께 어찌된 일인지 여쭸다. 사부님께서는 좋은 일이며 그것을 마음에 두지 말라고 하셨다. 나중에 이들 부부는 사부님께서 아내의 신체를 조절해주셨음을 깨달았다. 아내는 그때 설법반에 참가하지 않았으나 사부님께서는 이미 제자로 여기시고 책임지셨다.

2. 사부님께서 왕 씨의 연공 동작을 교정하실 때 그는 즉시 전신이 마치 전기에 접촉한 듯 매우 강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제2장 공법의 량처빠오룬(兩側抱輪)을 할 때 파룬이 손바닥에서 매우 큰 힘으로 회전하며 한 가닥의 강대한 기둥 모양의 에너지를 내보내 두 귀로 관통해 다른 한 손바닥에 이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두 귀를 관통해 원래의 손바닥으로 회전해 오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4, 5분가량 지속됐다. 설법을 들을 때 정수리는 마치 물고기의 입처럼 규칙적으로 닫혔다 열렸으며 여러 차례 나타났다.

3. 하(何) 씨 아저씨는 올해 칠순이 넘었다. 사부님 설법반에 참여하기 전 일찍 병으로 집에서 쉬고 있었다. 그는 하도 병이 많아 이름났는데 매년 적어도 두세 번은 입원했고 그 외에 매주 집에서 링거를 맞아야 했고 매일 약을 먹어야 했다. 좌골신경통, 관상동맥 심질환, 일하다 다친 뇌진탕 후유증 등 고질병으로 고생했다. 후유증이 발병하면 기절했으며 구이양에서 적잖은 명의가 진료했으나 치료가 안 됐다. 하 씨 아저씨가 사부님 제1회 학습반에 참가하기 전 춘레이(春蕾) 광장 영화관에서 사부님 설법을 들었는데 그날 좌골신경통이 즉시 사라졌다. 그 후 사부님 제1회 학습반에 참가했다.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11년간 하 씨 아저씨는 약 한 알 먹지 않았고 직장에 의료비를 한 푼도 청구하지 않았다.

4. 하 씨 아저씨의 아내 저우(周) 씨는 전에 병마에 시달렸다. 심한 빈혈, 혈소판감소, 위출혈, 기관지 확장, 심한 신경쇠약, 하체 냉증, 마비증상이 있었으며 따뜻한 물주머니로 체온을 유지해야 했다. 병 치료를 위해 그는 많은 기공을 배웠으며 베이징으로 가서 모 기공을 배우기까지 했다. 매달 대부분 급여는 전부 병 치료와 기공을 배우는 데 사용했으나 모두 효과를 보지 못했다. 저우 씨가 사부님의 설법을 듣게 된 그 날 온몸이 가벼워짐을 느꼈고 창백하여 혈색이 없던 손바닥이 단번에 불그스레해졌다. 그는 파룬궁(法輪功)은 일반 기공이 아님을 그 자리에서 인정했으며 사부님의 자비와 상화로움을 깊이 느꼈다. 왜냐하면 어느 기공사도 사부님처럼 친히 수련생의 연공 동작을 교정해주지 않았다. 저우 씨는 그때로부터 진심으로 파룬궁을 수련(修煉)했고 모든 병이 치료하지 않고 나았다.

5. 황(黃) 씨 아주머니도 60~70세 되는 노인이며 어려서 생긴 두통으로 몇십 년 고생했다. 황 씨가 사부님의 구이양 제3차 학습반 3일째 되는 날 사부님께서 병 치료라는 말씀을 마치자 즉시 혼미한 상태에 들어갔다. 하지만 마음은 명백한 상태였다. 저우 씨 머리가 좌우로 3번 움직이고 나서 두통 증상이 더는 발생하지 않았다. 학습반에 참가하는 기간에 황 씨는 2번이나 열상을 입었다. 한번은 달아오른 기름을 오른손과 팔에 쏟았고 다른 한번은 끓인 물을 오른발에 쏟았는데 두 번 모두 통증이 없고 붉게 붓지도 않았으며 물집도 생기지 않고 아무런 상처도 남지 않아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은 듯했다. 황 씨는 사부님께서 자신을 보호해주신 것임을 알았다.

6. 구이양 세 번째 학습반에 구이양 예술학교 장애인이 업혀서 입장했으나 사부님의 신체 조절을 통해 그날로 걸을 수 있었고 스스로 강당에서 걸어서 집에 돌아갔다.

7. 구이양 샤오허(小河)의 한 여성 수련생이 첫 회 학습반 심득체험 발언에서 사부님께서 자신의 가정을 구해주신 것에 감사를 드리며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꼈다. 설법반에 참가하기 전 일 년 반의 시간에 그는 남편과의 관계가 좋지 않아 서로 양보하지 않았으며 모순이 끊임없이 격화됐고 가정이 해체될 위기에 처했다. 사부님의 3일간 설법을 들은 후 그는 집에 돌아가 남편과 화해했으며 관계가 다시 처음과 같이 좋아져 부부 사이의 일 년 동안의 빙산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8. 구이양에는 또 사부님의 다른 한 감동적인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사부님께서 구이양에서 법을 전하실 때 베이징로의 한 수련생이 사부님과 함께 식사할 기회가 생겼다. 그때 사부님께서 바닥과 밥상에 떨어진 밥알을 주워서 드실 때 마음속으로 이 기공 대사는 어찌하여 이렇게 좀스럽고 비참한 모습인가? 라고 생각했다. 그 후 끊임없는 법공부를 통해 그는 비로소 깨달았다. 사부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일체 생명에 대한 무량한 자비의 표현이고 소중하게 여기시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사부님께서 설법에서 수련생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물질이든지 다른 공간에서는 모두 생명이 있다. 몇 번이고 이 수련생은 자신이 그때 우매하여 모르고 사부님을 오해했던 것에 후회했다.

사부님께서 톈진(天津) 라디오 방송국 초청으로 핫라인 생방송을 하실 때 청취자의 신체를 조절해 주시다

글/ 뉴질랜드 Wellington 류이(刘毅)

[명혜망 2004년 9월 14일] 1994년 3월, 톈진 제2기 학습반 기간 동안 사부님께서는 톈진 라디오 방송국의 아침 프로그램에 초청되어 핫라인 생방송을 하셨다. 그중에 있었던 이야기가 나의 기억에 오랫동안 남아있다.

당시 사부님께서는 40여 세 되는 한 남자로부터 걸려온 핫라인 전화를 받으셨다. 그는 몸에 병이 있는데 여러 병원을 다녀보았지만 치료하지 못해 몹시 아프고 고통스럽다고 했으며 파룬궁(法輪功)이 그의 이런 병을 고칠 수 있는지를 사부님께 물었다. 사부님께서는 병에 대한 파룬궁의 인식을 이야기하셨으며, 파룬궁을 수련하려면 반드시 자신의 병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그에게 알려 주셨다.

사부님께서 이야기를 마치시자 그 사람은 “리 선생께서 저의 신체를 조절해 주실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 말에 사부님께서 “당신은 지금 한창 아프지요. 그렇지 않습니까?”라고 하시자, 그 사람은 “아주 심하게 아픕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사부님께서는 “그럼 좋습니다, 우리 모든 청취자분들께서도 무릇 이 부위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내가 말하는 대로 하세요. 여러분들은 모두 똑바로 서서 몸을 느슨하게 하시고 병이 있는 곳을 생각하세요. 똑바로 서시고요. 느슨하게 하세요. 느슨하게요.“라고 설명하셨다. 그런 후 약 5, 6분이 지난 뒤 사부님께서 “됐습니다. 여러분은 빨리 몸을 움직여 보세요.”라고 하신 다음 전화를 건 사람에게 “나았습니까?” 라고 물으시니 그 사람은 다 나았다고 하였다. 사부님께서 다시 정말 나았습니까? 이젠 아프지 않습니까? 라고 물으시니 그 사람은 “아프지 않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지금 라디오 방송국을 향해 당신께 절을 올리고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웃으시며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이때, 라디오에서는 그 남자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한편 울먹이면서 한편 말하기를 “정말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여러 해 동안 이 병으로 제가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는지를 당신은 모르실 겁니다, 정말 너무나 감사합니다.”라고 하니, 사부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셨다. 여자 사회자도 “청취자께서는 너무 격동하지 마세요,”라고 했다. 사부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셨다. “내가 말한다면 기공사들은 병을 치료할 때 상식을 초월하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어떤 사람은 오성(悟性)이 좋아 기공사가 그에게 나았습니까? 라고 물을 때 그는 나았다고 말하는데 정말 나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오성(悟性)이 좀 좋지 않아 기공사가 나았는가를 물었는데 그는 나았다고 했습니다만 좀 괴로운 듯하였습니다. 이렇게 되자 정말 자신에게 약간 남겨놓았습니다.”

이 이야기를 생각할 때마다 나 역시 사부님께서 직접 신체를 조절해 주시는 복을 누릴 수 있었는데 이것은 얼마나 큰 인연인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여! 당신은 지금 여기에 계십니다, 당신의 이 한 순간 체험만으로도 파룬궁에 대한 거짓말이 제아무리 클지언정 당신 앞에서는 모두 자멸하고 안개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기연으로 법을 얻은 후, 눈 깜빡할 사이에 십 년이 지나가다

-두 번에 걸쳐 참석했던 사부님의 세미나(传法班)를 상세하게 기억하면서

글/ 캐나다 쉬둥(许冬)

[명혜망] 1993년 “파룬궁”이라는 단어를 처음 본지 11년이 되었다. 나는 내가 가장 보배로 여기고 있는 얼마간의 기억들을 교류하고자 한다.

1993년, 나는 후베이성, 우한시에 있는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나는 한 잡지에서 파룬궁을 소개하는 기사를 읽었는데, 즉시 이것에 매력을 느꼈다. 왜 그랬는지는 몰랐지만, 나는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흥분을 느꼈다. 8월에, 나는 결국 우한시 한커우 지구에 있는 연공장을 발견했다. 뒤돌아 생각해보면, 연공장의 보도원에게서 파룬궁의 첫 번째 책을 받았지만, 나는 내가 진정하게 얻은 것을 사실상 몰랐다.

사부님의 세미나(传法班)에 처음으로 참석하다

한 달 후, 1993년 9월 25일에, 나는 중난 경제 대학 강당에서 열렸던 사부님의 강의에 참석했다.

이것은 8일 강의였고 처음으로 사부님을 뵈었다. 내가 사부님에게서 받은 인상은 사부님이 아주 친절하셨고 복장이 매우 단순했다는 것이다. 그분은 짧은 소매의 흰색 셔츠와 긴 바지를 입으셨다. 사부님께서는 강단 위에서 계속해서 강의를 하셨는데, 나는 아직도 법을 들었을 때의 기분을 기억한다. 사부님은 내가 생전 들어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에 대해 말씀하셨다. 어떤 것은 이해했지만 모든 것을 이해하지는 못했으며, 어떤 것은 믿었지만 전부를 믿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의 마음속에 하나의 생각이 있었는데, 파룬궁은 좋은 것이고 나는 부지런히 수련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매일 법 강의가 있은 후에, 사부님께서는 다섯 개의 동작을 가르쳐 주시거나 아니면 복습을 했다. 그분은 또 강단에서 내려오신 다음 친히 수련생들의 동작을 시정해주시기도 했다.

한 강의에서, 사부님은 모든 사람들이 파룬이 도는 것을 경험하도록 하셨던 것을 기억한다. 그분은 우리에게 손바닥을 가슴 앞에 놓으라고 요청하신 다음 강단 위에서 우리를 향하여 손을 흔드셨다. 나는 무엇인가가 내 손바닥 중앙에서 돌고 있는 것을 느꼈는데, 그 느낌은 정말로 훌륭했다.

신체가 청리되는 과정은 내게는 크게 강렬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이것은 나의 신체에 아주 많은 문제들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8일간의 세미나의 후반에, 나는 심한 사상업의 교란을 받았다 (물론 나는 이것이 사상업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나의 마음속에, 대법과 사부님에 대한 의심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이것은 마치 내가 어떻게 해도 억제할 수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강당을 들어오는 순간 그것들은 사라져버렸다.

10월 2일 세미나 마지막 날, 나는 사부님께서 대수인을 하시는 것을 보았고 마음속에서 일종 묘사할 방법이 없는 미묘(美妙)함을 감각했다. 우리는 모두 세미나로부터 얻은 심득체험을 써서 사부님께 드렸다. 10월 3일 오후, 사부님께서 들르셔서 세미나에 참석한 모든 수련생들과 사진을 찍으셨다. 강당 밖에서, 우리는 연공장 별로 나뉘어 사부님과 사진을 찍었다. 나는 이 귀중한 사진을 항상 내 곁에 두고 있다.

산둥성, 지난시에서 있었던 사부님의 세미나에 참석하다

나는 1994년 6월에 지난에서 열리는 사부님의 세미나에 한 번 더 참석하는 행운을 가졌다. 그때는, 나의 연공장에서 다른 두 명의 수련생과 함께 나는 우한에서 지난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조금 늦게 출발을 했지만 기차에서 우리는 우한에서 온 다른 많은 수련생들을 만났다. 함께 있으니, 우리는 따뜻함과 편안함을 느꼈다. 우리는 끊임없이 심득체험교류를 했다. 좌석이 없을 때는, 서서 이야기했고 좌석이 있을 때는, 연세가 높은 분이나 어린아이들을 앉게 했다. 드디어 세미나가 시작되는 날 우리는 지난에 도착했다. 세어보았더니 기차에는 100명 이상이 탔었다.

내가 참석했던 세미나는 지난에서 두 번째 열리는 파룬궁 세미나였다. 이것은 수 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운동장에서 열렸다. 우리는 아직도 지난 설법의 비디오테이프에서 그때의 장면들을 볼 수 있다.

세미나에 참석할 수 있고 사부님의 설법을 들을 수 있음으로 해서, 나는 따뜻함을 느꼈고 이것이 귀중하다는 것을 알았다. 세미나 중에, 나는 신체가 한 번 더 청리 되는 것을 경험했다. 이번에는 이것을 느꼈다. 열이 났고 감기 같은 증상이 있었지만, 세미나가 끝난 후에는 괜찮았다. 세미나 동안 내가 아직도 분명하게 기억할 수 있는 작은 에피소드가 있었다.

강의를 하시는 동안, 사부님께서는 수련생들에게 부채질하는 것을 그치라고 요청하셨다. 그때, 지난의 날씨는 더웠고 그곳에 앉아 있는 수련생들의 숫자가 수천 명이 되었다. 그러므로 꽤 많은 사람들이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부님께서 사람들에게 부채질을 중지하라고 요청하시는 것을 끝낸 후에, 서늘한 바람이 우리에게 불어왔고 이것은 아주 편안했다. 강당에는 아주 많은 사람이 있었고, 모든 창문들과 문들이 기본적으로 닫혀있었다. 그 당시, 나는 정말로 서늘한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왔는지 이상하게 여겼다.

지금까지 나는 수련의 길을 11년간 걸어왔다. 이 시간 동안 많은 우회를 했지만, 나는 항상 사부님께서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나를 항상 인도하시며 나를 바라보고 계시다는 것을 느꼈다.

수련의 길에서, 저는 비틀거리고 넘어졌지만, 부디 안심하십시오. 저는 매 마지막발걸음을 잘 걸을 것이고, 사부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4/10/2/8560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