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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후이왕과 끊을 수 없는 인연을 맺다

글/ 후베이(湖北)대륙대법제자

【밍후이왕 2009년 11월 15일】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동수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십년간 정법수련을 하면서 밍후이왕은 사부님의 설법을 전달하는 매체이자 국내외 동수들의 교류 장소가 되었다. 또한 대법제자들이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무대이며, 구세력과 사악의 요소를 소멸하는 단두대로, 사악을 해체하고 진상을 밝히는 데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작용을 한다. 밍후이왕은 풍우 속에서 칠흑처럼 어두운 중국대륙에서 대륙대법제자의 길을 밝혀주고 있는데, 나 또한 십년동안 밍후이와 끊을 수 없는 인연을 맺고 있다.

1, 경문을 전하고 잘못된 길을 바로 잡는 밍후이왕

나는 남편과 함께 1998년부터 대법을 수련하였는데, 그 당시에는 단체연공과 법 공부를 적게 했다. 아직 아이가 어렸고 일도 바쁘고 집안 일이 많다는 핑계로 단체수련 환경을 중요시 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참 많이 후회되지만 만회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1999년 “7.20”박해가 시작됐다. 나는 당시에는 법공부를 적게 했고 오성도 낮았으며 악당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수련을 포기하는 큰 실수를 저질렀다. 그러자 남편의 병이 점점 엄중해져 의사는 몇 달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다. 그때 자비로운 사부님께서 우리를 구해주시어 우리는 2000년 3월부터 또다시 수련의 길에 들어섰다.

그땐 정말 앞이 막막했다. 하늘이 캄캄했으며 간혹 태양이 창백한 얼굴을 내비췄지만, 참담한 빛을 내뿜는 게 마치 달과 같았다. TV, 신문, 방송국 모든 매체에서 똑같이 하늘을 가리는 거짓말을 했다. 많은 동수가 잇따라 납치당했으며 우리는 길에서 누구를 만나도 진상을 알릴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2000년 설, 나는 용기를 내어 한 노년동수 집에 갔다. 그녀는 시위원회, ‘610’, 국안, 파출소, 회사 사람을 포함해 총8명이 그녀를 감시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렸지만, 그녀는 아주 견정하게 생사를 무릅쓰고 나를 도와 연공음악 테이프를 만드는 사람을 찾아서 끝까지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그녀는 또 편지지 한 장에 한 수의 시편『심자명』베껴주면서 이것은 사부님의 경문인데 대 성시의 대학생 수련생이 전화로 전한 것이라고 했다. 그 수련생은 해외에 있는 대법 사이트인 밍후이왕에서 다운로드한 것이라고 했다. 나는 캄캄한 밤에 등대를 본 것처럼 단번에 “밍후이왕”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회만 있으면 반드시 밍후이왕에 접속할 것임을 다짐했다. 그곳에서는 사부님의 경문을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2001년 한 여름 밤, 잘 아는 노수련생이 우리집에 왔다. 그는 대법을 위해 북경에 청원 갔다가 자칫 경찰한테 잡힐 뻔 하기도 했는데, 노동교양소에서 돌아온 몇몇 동수의 말을 전해줬다. “우리는 수련 성취했으므로 응당 책을 바쳐야 한다.” 고 했다. 나는 당신이 수련성취 했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이제 갓 수련의 발자국을 내디뎠다고 말했다. 사부님께서 수련하는 사람은 원만이 되는 마지막 시각까지도 열심히 법 공부를 하고 수련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책을 바치면 어떻게 법을 배우고 어떻게 수련할 수 있겠는가? 나는 책을 바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수는 우물쭈물하다가 돌아갔다. 이튿날, 또 다른 동수가 와서 교류했더니 그는 나에게 “관을 넘었다”고 말했다. “대법을 견정히 수련하고 사부를 바싹 따라야 하는데”(《홍음2》 ), 책을 바치지 않는 것이 옳은 선택이라고 하였다.

후에, 우리는 《원만을 향해 나가자(走向圓滿)》,《교란을 배제하자(排除干擾)》,《최후의 집착을 제거하자(去掉最后的執着)》등 손으로 베낀 경문을 받았다. 나는 종이 밑에 복사지를 깔고 베껴서 동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미국 서부법회에서의 설법》 과 《북미 대호구 법회에서의 설법》도 몇 편씩 베껴서 외울 정도였다. 밍후이왕에 발표된 사부님의 경문은 우리를 가장 위험한 지경에서 이끌어냈고 한 발자국씩 걸어 나오게 했다.

2.처음 밍후이왕에 접속

집에 노트북이 있었다.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쳤지만 그때 나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중하고 이기적이라 배우기 싫어했다. 내 나이도 젊고 학력도 있어서 만약 내가 컴퓨터까지 배우면 중점적으로 박해 대상이 될 것 같아 늘 핑계를 대고 잔업을 하면서 컴퓨터 수업에 참가하지 않았다. 더구나 밍후이에 접속하고 자료를 제작해야 될 것을 생각도 못했으며 의뢰심 또한 아주 강했다.

2004년, 현지 자료점이 사악에게 파괴당하자 우리는 인터넷으로 사악을 폭로하지 못했다. 그래서 외지에 있는 동수에게 밍후이왕에 접속하여 사악을 폭로하도록 전화를 했다. 나는 밍후이왕에 접속할 책임이 있기에 더 이상 기다리고 의거하지 말아야 함을 의식했다.

내가 가진 노트북 버전은 아주 낮은 64MB 메모리와 8G하드디스크라 백신프로그램 설치를 못해 인터넷에 접속하지 못하였다. 그래도 나는 전화를 걸어 둥타이왕(动态网)의 사이트를 물어 인터넷에 접속하는 방법으로 밍후이왕에 접속했다.

눈에 보이는 밍후이왕의 조용한 배경과 “파룬따파 밍후이왕”이라는 큰 글자, 금색 연꽃이 보였다. 나는 숨을 죽이고 사부님의 사진을 보니 코가 찡 하고 눈가가 촉촉해졌다. 마치 길을 잃은 아이가 집을 찾은 것 같았다.

나는 신속하게 사부의 새 경문 《미국 서부법회에서의 설법》을 다운로드해 놓고 어떻게 다른 동수들을 보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당시 내가 아는 동수들 2.30명이 불법으로 납치되었고 모니터링, 도청이 아주 심했다. 특히 사악들의 이간질과 선동에 일부 붙잡힌 수련생들이 심성을 지키지 못해 다른 수련생들을 끌어들였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마음이 움직여서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주 많아졌다.

하지만 나는 많은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다른 동수들이 사부님의 새 경문을 읽었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때마침 그 당시 집에 혼자 있었기 때문에 나는 발정념을 하며 한걸음에 달려가 작은 프린터기를 샀다. 하지만 프린터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프린터기를 컴퓨터에 연결하면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나는 상점 주인에게 한 장 프린트하도록 했더니 효과가 아주 좋았다. 그리하여 집으로 돌아와 그대로 드라이버를 설치하려 했지만 안됐다.

그러나 나는 사부님께서 지혜를 주실 것임을 믿으며 자세히 프린터 설명서를 보면서 원인을 찾았다. 이 프린터는 컴퓨터의 제일 낮은 Configuration 64MB 메모리를 요구 했는데 나의 노트북은 이미 시기가 지나 설치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시간은 빨리 흐르고 다시 현지 자료점을 건립한다는 것은 하루 이틀에 될 일이 아닌데 동수들 또한 새 경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사부님 법상 앞에 허스하고 마음속으로 새 경문을 프린트하려고 하니 사부님께서 저를 도와 프린터를 설치하여 주십시오! 드라이버를 설치해 주십시오! 하고 청했다.

나는 종래로 프린트를 한 적이 없지만 나는 사부님께서 나를 도와주실 것임을 믿었다. 나는 시험삼아 “인쇄”을 클릭했다. 페이지 설정과 용지 설정도 몰랐지만 매 장마다 한 면씩 프린트되어 두 부의 새 경문이 나왔다!

마치 엄동설한에 석탄을 보내준 것처럼 두 부의 신경문은 신속히 동수들 속에서 전해졌다. 동수들이 전에 얻은 경문은 아주 정교했으나 갑자기 자료점이 없어졌기에, 나처럼 의거하는데 습관화 된 동수들은 내가 서툴게 프린트한 경문을 받았으나 누구도 나무라지 않고 여전히 보물을 얻은 것처럼 기뻐했다. 후에 천천히 일부 동수들이 점차 자료점을 하기 시작했다. 사악이 아무리 머리를 짜도 밍후이왕과 사부님, 그리고 해외동수와 연계하는 우리를 막을 수 없는 것이다.

3, 처음으로 밍후이왕에 투고하다

나는 원래 아주 나쁜 습관이 있었는데 《밍후이주간》과 자료들을 늘 한 눈에 열 줄씩 보면서 말을 타고 꽃구경을 했다. 보았다고 하지만 말할 수 없고 보지 않았다고 하자니 또 좀 인상이 남아 있었다. 또한 고학력인 나의 수준에 비해 밍후이왕에 투고된 자료의 문장들이 너무나 평범하고 문장수준이 낮다고 생각했다.

2006년 여름, 나는 『사부님의 은혜』란 책 두 권을 인쇄하여 한 권을 동수에게 주고 한 권은 모친의 집에 가져갔다. 글씨가 비교적 작다보니 어머니는 나에게 읽어 달라고 했다. 그것이 명혜문장에서 내가 제일 참답게 읽은 한 번이었다. 이전에 나는 늘 사람의 일면에서 『사부님의 은혜』중 문장이 허술하다고 여겼다. 이번에 한 글자 한 구절씩 읽으니 도리어 진감하는 느낌이었고 그 책의 두 페이지가 반대로 되었음을 발견했다. 나는 다 읽은 후 다시 만들려고 했는데 다 읽고 나니 그 두 페이지가 저절로 제대로 복귀되었다! 뿐만 아니라 내손으로 책을 받쳐 들고 읽은 지 두 시간이나 되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의도적으로 나에게 신기함을 보여 나의 관념을 전변하게 하셨음을 깨달았다. 나의 사상이 사당의 “무신론”에 독해되었고, 대법수련에 대한 인식이 아주 옅다는 것을 반성하게 되었다. 나는 단숨에 이 일의 경과를 써내어 제목을 『를 읽고 사부님의 은혜에 흠뻑 젖다』란 제목으로 “인터넷 투고”를 하여 밍후이왕에 보냈는데 놀랍게도 이튿날에 게재됐다.

나는 신심을 갖고 직장에서 겪은 이야기『사생마음속의 가장 진귀한 예물』이란 제목으로 문장을 써서 또 밍후이에 보냈다. 내가 쓴 내용은 “쩐, 싼, 런”으로 학생을 인도하여 학생들의 진보가 커진 사실이다. 문장에 한 학생의 편지를 삽입했다. 며칠 지나 밍후이왕에 또 게재되었고 또한 “추천문장”에 있었다. 내가 자세히 보니 나의 전문장의 순서가 조절되었고 또 “선생님의 말”, “학생의 말” 로 고치고 앞에 간단히 소개하는 형식으로 하였다. 수정된 문장은 읽는 사람에게 아주 간결하고 순정함을 느끼게 했고 또 사람을 감동시켰다. 늘 오만했던 나도 탄복을 금할 수 없었다.

4, 나는 밍후이왕의 통신원이 되고 싶었다

2007년 나는 인터넷에 접속하여 『사생마음속의 가장 진귀한 예물 』찾아보니 단번에 연이어 열 개나 찾았다. 열어서 보니 원래 이 문장이 9개 곳의 진상자료 소책자에 응용되었고 한 책에서는 그것을 “권두문”으로 사용했다! 이로부터 나는 계발을 받고 밍후이왕에 투고하기만 하면 대 면적으로 사람을 구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밍후이왕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함으로 매일 아주 많은 대법제자와 속인들이 인터넷 열람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료점에서 널리 응용하여 전할 수 있기에 진상을 밝히고 사악을 폭로할 수 있다!

나의 주변에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제자들의 이야기가 부지기수이다. 나는 그들을 취재하여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후 밍후이왕에 보냈다.

추석에 나는 월병과 과일을 들고 박해를 당한 동수의 집을 방문했다. 동수는 4년 판결을 당했다. 집에는 백발이 성성한 모친과 병을 앓고 있는 아내와 어린 아들뿐이었다. 일가족이 아주 낡은 방에서 생활했고 연로한 모친의 퇴직금과 계란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비록 생활은 아주 빈곤했지만 동수의 가족은 동수들의 증정품을 받으려 하지 않았는데 그들도 많은 동수들이 아주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노모는 엄동설한의 깊은 밤에 엎어지면서 정법위원회 서기 집에 찾아가서 문을 두드렸으나 그들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러나 뇌물을 전하는 사람이 끊이지 않았는데 이 정경을 보고 뇌물을 보내는 사람들이 재빨리 가버리며 누구도 그를 아는 척 하지 않았다. 노모는 또 여러 번 “610”사무실에 찾아가 정의롭고 늠름한 정신으로 악인에게 “나의 아들은 법을 위반하지 않았고 파룬궁을 연마하는 것은 잘못이 없다. 도둑질도 아니고 약탈도 아니고 창기 도박도 아니 하고 탐오도 점하지도 아니 했으며 창피한 일을 한 것도 아니다. 당신들은 빨리 나의 아들을 내놓아라!” 고 했다. 동수의 아내는 악경이 남편을 납치하는 것을 제지하다가 맞아서 온 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었고 옛 병이 발작했다. 그녀는 남편을 내놓으라고 갔다가 몇 번이나 파출소와 ”610“ 사무실에서 졸도했다. 그러나 인성을 잃은 악자들은 무관심했다.

그들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가슴이 뭉클했다. 이 대법제자의 가족들은 이렇게 참혹한 박해에서도 의연히 정의와 양지를 견결히 지키고 있었다. 대륙의 금전만능 사회에서 의연히 물들지 않고 있었다. 그들의 낡은 옷, 낡은 집은 반짝이고 있지만 박해에 참여한 관원들의 호화주택과 명품 차에는 도리어 검은 기가 가득했다. 그런 가련한 사람들이여, 연기처럼 사라지는 현실의 조그마한 명리를 위해 사당에 속아서 천인공노할 큰 죄를 짓고 있으며 자신과 가족들의 미래를 끊어 버리고 있다니.

나는 또 갓 출옥한 동수들을 인터뷰 했다. 그들은 눈 내린 뒤의 청송과 같아서 압력이 심할수록 더욱 견정했다. 몸은 상처투성이고 사악의 흉악하고 참혹한 짓을 말하면서도 얼굴빛은 자상하고 담담하였으며 담화 중에서 자신의 집착심을 반성했고 사부님의 가호와 정법의 위엄을 이야기 했다. 여전히 이전과 마찬 가지로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정념정행으로 사악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나는 일부 신 수련생과 노 수련생도 인터뷰했다. 대법의 신기함이 인간 세상에 나타 내었다. 교통사고로 30여 미터 날아갔고, 오토바이가 차에 부딪쳐 박살났지만 그들은 오히려 무탈했다. 암 말기 환자가 성심으로 “대법이 좋다”고 염하자 기적으로 살아난 이야기, 퇴당, 퇴단, 퇴대하여 복을 얻은 사실……

박해가 발생하여 나와 동수들은 천방백계로 소식을 물어 정확하게 제때에 박해 소식을 인터넷에 폭로했다. 악인의 악한 일을 폭로하면서도 될 수 있는 한 자비한 심태로 남이 안 좋은 일(화)을 당하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기뻐하는 마음을 닦아 버렸다. 악인의 정보를 보도할 때 사악을 폭로하고 악행을 제지하는 자비로운 심태를 품고 쟁투심을 닦고 격분하거나 원망하는 마음을 닦았다.

처음 인터뷰를 시작할 때는 두려운 마음이 있었다. 사악의 박해가 두려웠고, 동수가 수구하지 못할까봐 두려웠고 이리저리 전해 안전하지 못할까봐 두려웠다. 여기저기서 들은 것을 써내어 늘 안심할 수 없었고 믿음이 차하였다. 사람에게 부탁하여 알아보았지만 그 사람은 “전업인사”가 아니라 물어보아야 할 것을 똑똑히 물어보지 못했고 묻지 말아야 할 것을 한 무더기나 물어왔다. 안되겠다. 친히 가야 한다. 그리하여 공책과 볼펜을 들고 나섰다.

사부님께서 현지 사악을 폭로하라고 하신지 이미 여러 해 되었다. 나 자신도 내가 박해를 당한 실명을 밝히지 못하고 늘 사악이 보복할까봐 두려워하는 사람의 마음을 갖고 있었다. 한 번은 한 여자 동수를 인터뷰했는데 그녀는 박해 당한 경력을 말했다. 2001년 다른 동수가 그녀에게 “천안문 가짜분신자살진상” 전단지 6장을 전하여 당지 파출소에서 참혹한 혹형을 4시간이나 당했다. 그녀는 누가 주었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고 누구에게 주었다는 것도 말하지 않았기에 악경은 전기 몽둥이로 그녀를 기절시켰다. 그녀의 남편과 오빠가 그녀를 보러 갔지만 누구도 악경에게 뭐라 말하지 못했고 도리어 그녀를 핍박하여 다른 사람 이름을 대라고 했다. 그녀는 죽음을 초개같이 여기고 남편에게 후사까지 교대했다.

나는 밍후이왕에서 박해 실례를 많이 보았고, 이 보다 더 참혹한 것도 있었지만 이 동수의 경력에 특별이 감동했다. 원인은 세 가지였다. 첫째, 그녀는 법을 공부했을 뿐 사람을 따라하지 않았다. 당시 많은 동수들은 쩐, 싼, 런을 수련한다면서 참말을 하여 악경에게 추호도 감추지 않았다. 그녀는 파출소의 책상위에서 『전법륜』을 보고 단번에 사부님의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해야 한다는 말씀이 생각났다. 동수와 세인의 이름을 대지 않았기에 다른 사람이 박해당하는 것을 피면했고 진심으로 선을 위했다. 둘째, 그녀가 인터넷에 폭로한 두 악경 중 하나는 이름이 폭로되어 그 사람이 다시는 박해에 참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대법제자를 잘 대했다. 다른 한 이름을 몰라 밝히지 않은 사람은 2007년까지도 계속 나쁜 짓을 했다. 셋째, 그녀는 현지 사람이고 의사였다. 대법을 수련한 후에는 마작놀이 습관을 버리고 성격이 온화해졌고 병원에서 환자를 친인처럼 대했으며 성심성의로 치료했다. 그녀는 집에서는 현모양처로 남편을 잘 대하고 자녀를 잘 교육했다. 이렇게 선량한 여성이 6장의 전단지를 보았다고, 다른 사람을 연루되게 하지 않으려고 자칫하면 폭행치사 당할 뻔했고 팔과 다리에 검은 멍이 들었다. 누가 바르고 누가 사악한가는 일목요연했다.

나는 『현지의 민중을 향하여 현지의 사악을 폭로하자 ◎사부님의 평어』중의 사부님 말씀이 생각났다. “악경(惡警)과 나쁜 사람을 폭로하고 사회에서 그 사람의 악행을 공포(公布)하는, 이런 방법은 이성(理性)이 없는 그런 악인에 대하여 두려워 떨게 하는 극대한 작용을 일으켰다. 동시에 또한 현지에서 진상을 똑똑히 알리는 중에 민중들에게 사악의 박해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폭로와 인식을 불러 일으켰다. 동시에 또 거짓말에 독해되고 기만당한 민중을 구도하는데 있어서 한 가지 좋은 방법이다. 대륙의 전체 대법제자들과 신 수련생들이 모두 이 일을 잘하기를 희망한다.” 나는 사람들이 진상을 알까봐 두려워하는 것은 확실히 사악이라는 것을 진정으로 감수했다. 우리는 박해를 당한 적 있으면서 감히 누가 우리를 박해했다는 것을 말하지 못한다면 정기가 부족하고 사악한 기가 남은 것이므로 사악은 반복적으로 박해할 것이다. 나는 사부님의 이 교묘한 배치에 아주 감사했다. 우리는 또 전문 악인의 정보를 수집하여 악인을 폭로함으로써 사악을 질식하게 했다.

한 번은 친인동수를 구출하기 위해 나는 동수에게 가족들에게 알아 달라고 부탁하여 옥중에서의 상황을 폭로했다. 현지 동수는 이런 소식을 현지 진상전단지에 편입했다. 결과 어떤 동수는 그의 신체가 그 정도로 엄중하게 악화되지 않고 이렇게 진실한 보도가 부면작용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안으로 찾았는데 동수에 대한 ‘정’때문이었다. 내가 박해를 당할 때 그들이 나의 구출에 참여했고 지금은 그가 감옥에 있기에 내가 특별히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의 신체악화정도를 엄중하게 썼을 뿐만 아니라 한 조의 대구법을 이용하여 리듬감이 유력하게 하여 의분을 자아내는 효과를 얻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 번의 전단지는 이 문제뿐만 아니라 박해 시간도 잘못 썼다.

인쇄한 전단지를 나는 수개해놓았다. 이것을 보고 어떤 동수들은 태워버려야지 배포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마음이 아주 아팠다. 나의 동수의 정, 화려한 색채를 과시하려는 마음이 정체에 중대한 손실을 주었다. 나는 다시 이렇게 할 수 없었다. 나는 이러한 보도는 밍후이왕에 대한 일종의 모독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다시 정확하게 조사한 후, 다시 정정을 하고는 밍후이 편집부에 사과했다.

나는 98년에 갓 법을 얻었을 때 『홍음』을 베끼며 늘 사람의 언어로 규범하고 대조했다. 수련경지가 제고 된 후에야 비로소 한 번씩 『홍음』시구의 배후의 박대정심한 내함을 깨달았다. 고층차 생명을 놓고 말하면 자신이 얼마나 가련하고 가소로운가. 나는 수련의 엄중성을 더욱 체험했고 오직 진정으로 사부님의 교시대로 해야만 비로소 정확하다는 것을 더욱 체험했다.

밍후이왕에서 동수들이 얼굴을 맞대고 진상하고 삼퇴를 권하여 중생을 구도한 이야기를 보고 나는 응당 이 방면에서 돌파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나는 늘 소지식분자의 그런 고결하고 체면을 차리는 마음으로 늘 사람들이 거절할까봐 두려워했으며 다른 사람들이 비웃을 까봐 하지 못했다. 나는 이런 마음을 천국에 가지고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얼굴을 맞대고 진상을 하기로 했다.

하루는 내가 물건을 사는 한 노인에게 진상을 알렸더니 그녀는 나의 팔을 붙잡고 호주머니에서 작은 『전법륜』을 꺼내 보였는데 동수였다. 그녀는 격동되어 나에게 자신의 남편이 대법에 대한 정확한 인식으로 죽음에서 소생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나도 아주 격동되었다. 집에 돌아와 나는 이 이야기를 써냈는데 기본상 그 노인의 구술이었다. 글은 아주 소박했지만 노인의 정신, 대법에 대한 위덕은 오히려 나를 감동시켜 눈물을 흘리게 했다. 아들은 이상하여 건너와 보더니 현시대의 신화전설이라 했다. 이 문장은 아주 빨리 발표되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밍후이주간』에 선정되었다.

밍후이왕에 투고하게 되면서 나는 많은 사람의 마음을 발견했다. 예를 들면, 발표된 문장을 수집하였는데 표면적으로는 현지의 진상자료를 편집하기 위한 것 같았지만 이면에는 나 자신을 실증하려는 사심이 숨겨져 있었고 내가 얼마나 대단한가, 이렇게 많은 문장을 썼다! 는 것이다. 문장을 발표했으나 다른 사람에게 알려 줄 수 없었지만 마음속으로는 늘 자신을 과시하려고 했다. 밍후이왕을 열람하기만 하면 내가 쓴 문장제목을 찾아보고 만약 발표되면 기뻐하면서 다운로드하여 수집했을 뿐만 아니라 동수들의 문장은 열심히 보지 않았다. 이런 마음을 찾아내었을 때 또 나 자신이 너무 보잘 것 없이 느껴졌고 일체는 모두 사부님께서 부여한 것이고 나의 이 능력도 그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밍후이왕에 투고하는 과정에서 나는 정말 아주 빨리 속세의 먼지를 깨끗이 씻을 수 있다. 2년 전, 나는 두 번째로 마의 발톱에서 벗어난 후, 내가 박해당한 원인이 신사신법에서 견정하지 못했으며, 대륙에서 박해 당하는 환경에서 사람의 방법으로 나 자신을 보호하고 동수들과 정체를 형성하지 못했음을 똑똑히 알았다. 나는 사부님께서 『길』에서 말씀하신 법을 깨달았다. 나는 나오자마자 새 컴퓨터를 구입하고 대법제자가 응당 해야 할 일을 했다.

사악은 필사적으로 나의 머릿속에서 검은 소굴에서의 박해를 상기시킴으로써 나를 저애하려 했다. 처음 시작할 때 나는 견정한 일념, 즉 사부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하라고 하시면 나는 이렇게 하겠다고 했다. 사악이 말한 대로 할 수 없다. 후에 나는 공산사당은 대법제자를 시험하려는 하나의 공포의 장이며, 목적은 우리가 수련하여 중생을 구도하는 것을 제지하려는 것임을 알았다. 그러므로 내가 두려워하는 마음은 근본 내가 아니라 사악이 몇 십년간 폭력정치를 가함으로써 형성된 것임을 알았다. 만약 내가 홍콩, 타이베이, 미국 혹은 세계의 기타 지역에 있었다면 내가 대법이 좋다는 말을 이렇게 두려워하면서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발정념으로 이 ‘두려움’을 제거함과 동시에 법 외우기를 견지하면서 진상을 밝혔다.

두 번이나 박해를 당하다보니 남편도 아주 두려워했다. 내가 컴퓨터 앞에 앉기만 하면 남편은 신경을 곤두세우며 화를 냈다. 그러다보니 나는 아주 오래도록 남편의 눈을 피해가면서 했다. 나는 악경을 두려워하지 않고 외인도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남편을 두려워했다. 결혼한 지 그렇게 오래되었지만 나는 줄곧 남편의 말을 잘 들었고, 남편이 집안일을 도맡았다. 나는 전에 늘 남편이 나를 저애하고 있다고 여기고 ‘그가 나더러 하지 못하게 한다’는 구실로 나 자신의 두려운 마음을 덮어 감추었고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책임을 떠밀었음을 발견했다. 나의 마음은 얼마나 더러운가! 나는 더는 이렇게 숨고 사악을 부추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하는 것은 가장 바른 것이다. 그가 사악의 편에 서서 자신과 중생을 회멸하게 할 수 없다. 동시에 나는 발정념으로 그의 배후의 사악의 교란 요소를 해체했다.

내가 일을 할 때 남편이 다가오기에 내가 한 일이 어떤지 물었다? 그러자 남편은 크게 화를 내면서 “또 들어가고 싶은가”고 했다. 그러면서 계속 나를 욕하면서 물건을 마구 던지고 폭행을 했지만 어떻게 해도 나를 막을 수 없었다. 나는 남편에게 진상을 알리는 것을 견지했다. 후에 남편은 더이상 관할하지 않았고 그 후에는 주동적으로 내가 무엇을 하는가를 보았다. 가정환경을 바로 이렇게 개척하면서 남편의 상태도 좋아졌다.

지금은 기본상 “민감일”이란 개념이 없고 다시는 사당의 그늘에서 생활하지 않는다. 나는 매우 평온하며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움츠러들지 않고 휴식이 없으며 ‘전화’는 더욱 존재하지 않는다.

5, 사악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밍후이왕이다

나는 처음 박해를 당할 때 단수, 단식으로 반 박해를 했다. 사악의 “610”두목은 위선적인 얼굴로 나의 앞에서 밍후이왕을 헐뜯으면서 밍후이는 가짜이고 내가 속고 있다고 했다. 당시 나는 밍후이왕에 접속한 적이 없었고 진상자료는 모두 손으로 썼거나 인쇄한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밍후이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가장 식별하기 좋은 방법이 있다. 당신이 밍후이왕을 열어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보게 하여 우리 모 지역 모모는 어떤 사람이고 그녀는 어떻게 죽었고 당신들 공안이 무슨 짓을 했는가를 대조해 보면 국민이 전부 알 수 있다. 당신들이 그렇게 많은 돈을 팔아 봉쇄할 필요가 있는가! 얼마나 일을 덜 수 있는가!” 그의 얼굴은 붉었다 푸르렀다하더니 슬그머니 가버렸다.

악경은 죄인을 시켜 무지막지하게 강제 음식물 주입하고 욕하였다. 나는 그들에게 누가 당신들더러 이렇게 하라고 했는가? 이름을 말하라! 내가 당신을 밍후이왕에 올리겠다! 고 했더니 악인의 기세는 즉시 소실되었다. 물론 그들도 감히 이름을 대지 못했다.

두 번째 박해를 당했을 때 악경은 천방백계로 밍후이를 헐뜯으면서 “우리가 고생스럽게 갖은 방법을 다하여 전화시켜놓으면 여기에서 나가기만 하면 밍후이왕의 경문 한편이 당신을 반대 방향으로 튀게 한다.” 고 했다.

지금은 그래도 많은 사악은 갖은 방법을 쓰지도 못하고 요절났다. 동수들은 일심협력하여 해내외가 하나의 정체를 형성하는데 밍후이왕은 너무나 대단하다.

우리 현지의 작은 자료점은 점차적으로 곳곳에 꽃피어 밍후이왕과 단선 연계를 하고 독립적으로 운행한다. 얼마 전에 구치소의 경찰이 불평을 하면서 당신들 파출소에서 다시는 파룬궁을 여기에 보내지 말라! 사람이 오기도 전에 해외에서 전화가 여러 번 걸려 왔다! 어떻게 된 것인지 그들이 우리의 이름마저 다 알고 있다! 한 동수가 향진거리에서 자료를 배포하고 삼퇴를 권하다가 불법으로 구치소에 납치당했는데 그는 문에 들어서자 경찰에게 “대법제자는 당신들을 구하러 왔다! 빨리 퇴당, 퇴단, 퇴대 하라, 파룬따파 하오! 를 기억하라 재난이 올 때 보우한다! 고 했다. 3일 후, 정념으로 뛰쳐나갔다. 나갈 무렵에는 감옥 문지기 경찰에게 달려가 “대법제자가 집으로 가게 되었다! 퇴당, 퇴단, 퇴대 하지 않은 동포들이여 기회를 틀어쥐라! 빨리 이름을 말하라!” 고 외쳤다. 그는 많은 삼퇴 명단을 갖고 집에 돌아갔다. 집에 돌아 온 그날, 그녀는 그녀를 박해한 파출소 당직 경찰을 찾아 일가 전부를 삼퇴 시켰다. 이튿날 그녀는 향진에 돌아가 계속 진상을 알렸고 파출소와 국안 대대에 가서 자료와 MP4를 되돌려 왔다.

현지 “610”두목은 폭사했다. 시위 서기는 두려워하며 “ 파룬궁더러 알게 하지 말라. 인터넷에 오르면 시끄럽다!” 고 했다.

사당은 백성들이 밍후이왕에 접속하는 게 두려워 강제로 네티즌에게 “성공극속(星空极速)”, “ 록패(绿坝)”를 설치하게 하고, 국산 백신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게 하여 자유 문 인터넷 돌파 소프트웨어를 병독봉살로 여기고 건달본성을 드러냈다. 마가 한 자 높으면 도는 한 장 높다. 밍후이왕은 종래로 봉쇄된 적이 없다. 동수들이여, 우리는 정념정행하며 모두 밍후이왕에 접속하자. 그리하여 밍후이왕의 사업을 지지하여 함께 밍후이왕을 더욱 잘 꾸려 정체로 제고하여 중생을 구도하는 중에서 더욱 큰 작용을 발휘하도록 하자!

부당한 곳이 있으면 자비로 시정하기 바란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동수들 감사합니다!

(밍후이왕 제6기 중국대륙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09년 11월 14일

문장분류: 정법수련 >대륙인터넷법회글 >6회

문장위치: http://minghui.org/mh/articles/2009/11/15/21222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