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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남 제자, 반박해 일부 경력

글 / 운남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11월 11일] 나는 사악의 나에 대한 박해는 사부님 안배하에, 모두 희극성적으로 내가 법을 실증하는데 유리한 환경으로 변한다는 것을 놀랍게 발견하였다. 이를테면, 매번 내가 감금되었을 때마다 사부님께서는 모두 교묘하게 각종 방법을 통해 나에게 신경문을 보내 오셨고, 심지어 내가 다른 대대에 감금 되었을 때도, 사부님은 나로 하여금 신경문을 얻게 하셨다. 나더러 저녁에 연공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사악은 마약인원을 전문적으로 배치하여 단독으로 나와 함께 자게 하였는데, 뜻밖에도 나의 코고는 소리가 너무도 요란하여서 그는 전혀 잘 수가 없게 되자 나중에는 나를 깨우면서 연공하라는 것이었다……

— 본문작가

자비로운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동수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법을 얻기 전, 부친의 기공 애호의 영향을 깊이 받은 나는 줄곧 생명이 세간에 오게 된 답안을 얻을 수 있기를 내내 갈망하였고, 사람의 일생은 단지 생노병사를 위해서만 사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더욱 큰 의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부친께서는 방방곡곡 도처로 다니면서 사부를 모시면서 기공을 배우셨고, 많은 기공책을 나에게 소개해 주셨지만 나는 늘 만족이 되지 않았다. 1996년, 나는 부친에게서 《전법륜》 책 한 권을 얻은 후 나는 알게 되었다. 부친께서 방방곡곡으로 다니며 기공을 배운 것은 바로 파룬궁을 찾기 위해서였구나. 그때로부터 사존님의 자비로운 보살핌 속에서 우리 온 집안,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모두가 행운스럽게도 생명 회귀의 길을 걷게 되었다.

1. 진상자료를 찍다

1999년 “7.20” 사악한 박해가 시작된 후, 사부님의 경문을 얻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현지에는 모두 법을 막 얻은 신수련생 뿐이어서 갑자기 들이닥친 공포적인 탄압에 어찌했으면 좋을지 몰라 하였다. 이때 사부님 안배로 나는 컴퓨터를 배웠고 인터넷에 접속하여 경문을 볼 수 있었으며, 한 자 한 자씩 베껴 동수들에게 주었다. 프린터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하는 생각을 하자, 마침 직장에서 갑자기 나에게 낡은 인쇄기 한 대를 교학용으로 쓰라고 주었다. 이렇게 되어 나는 사이트에서 경문을 다운로드 한 다음 다시 집에 와서 인쇄하였다. 잇따라 직장에서 나에게 또 컴퓨터 방을 주어 전화로 인터넷에 접속하게 하였고, 아울러 컴퓨터 방의 열쇠를 나에게 주면서 나더러 방을 지키라고 하였다.

낮에는 컴퓨터 방에 사람이 많아 인터넷에 접속하기 불편했으므로 나는 밤에 주동적으로 밤을 지새우는 잔업을 하면서 컴퓨터를 지켰다. 한편으로는 일을 하고 한편으로는 인터넷에 접속하여 다운로드하고 프린트하였는데, 일체 모두는 아주 질서 있게 안배되었다. 명혜망의 “천안문 분신자살 진상” 녹화를 본 후 나는 꼭 더욱 많은 사람들이 보게 해야 겠다고 생각하고는, 직장에 CD 제작기(Writer)기를 살 것을 신청하였다. 직장에서도 마침 자신의 선전필름을 제작하려 하였는데 바깥에서 구우면 원가가 비싼지라 지도부에서는 내가 CD 제작을 할 줄 안다는 말을 듣고 아주 기뻐 하면서 동의하였다. 대법 사이트에 접속하여 진상자료를 만들려면 모두 당시의 최신기술을 배워야 했는데, 직장 동료는 나의 업무 능률이 끊임없이 제고되고 주동적으로 잔업을 할 뿐만 아니라 보수를 따지지 않고, 사업을 참답게 책임지고 하는 것을 보았다. 직장에서는 내가 파룬궁을 수련하는 일을 위에다 보고하지 않았다.

2. 동수를 일깨워 함께 자료점을 건립

진상자료가 있게된 후 나는 휴가를 이용하여 고향에 돌아가 사악에게 미혹된 동수를 각성시켰다. 처음에 동수에게는 두려운 마음이 있어 나와 감히 접촉하지 못하였고, 후에 녹화를 보여주고, 신경문을 함께 공부하고 교류하는 것을 통해 많은 동수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법실증의 길로 다시 걸어올 것을 결정하였다. 현지 정보가 비교적 막혀 있었기 때문에 동수 대부분은 컴퓨터 기초가 전혀 없었고, 심지어 컴퓨터라는게 무슨 물건인지 조차 몰랐으므로, 짧은 시간내에 자료 만드는 일을 동수에게 가르쳐 주는 일은 예전에도 종래로 해본적이 없었던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부님께서 안배한 이상 꼭 잘못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었다.

나는 동수에게 내가 컴퓨터를 배운 경험을 이야기해 주었다. 실제상 나의 컴퓨터 기술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이 아니라 법을 실증하는 중에 사용하면서 알아낸 것이다. 오직 우리가 신사신법하고 자아관념을 돌파하기만 하면 못해낼 일이 없는 것이다. 동수를 가르쳐 주는 과정에 나도 심심히 체득하게 되었는바, 오직 우리가 집착과 관념을 내려놓고 길을 바르게만 걸어간다면, 사부님께서는 꼭 우리의 법실증 길을 아주 순조롭게 안배해 주신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속인들이 말하는 “기적”이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를 테면 어느 동수가 좀 저렴한 컴퓨터를 사고자 하면 즉시 저렴한 컴퓨터나 컴퓨터 부품을 할인해 파는 사람이 있게 된다. 어떤 동수는 인터넷에 접속하고자 하면 초고속 인터넷이 즉시 집앞까지 설치된다. 어느 동수가 프린터를 갖고 싶어 하면 시장의 프린터가 즉시 새것으로 바뀔 뿐만 아니라 공능도 갈수록 우리의 법실증의 수요에 부합된다. 많은 동수들에게는 컴퓨터 기초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곧 어떤 동수에게는 중점적으로 인터넷에 접속하여 명혜문장을 다운로드하는 것을 배우게 하고, 어떤 이에게는 인터넷에서 다운로드한 문장을 편성하는 것을 배우게 하였으며, 어떤 이에게는 문장을 프린트 하는 것, 어떤 이에게는 CD 굽는 것을 중점적으로 가르쳐 주었다.

배운 내용에 대해 왜 이렇게 조작하는가에 대해 나는 우선 동수에게 너무 많은 해석을 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규정된 절차에 따라 수요되는 결과를 완수하면 되는 것이다. 한 동안 지나 동수가 숙련된 후 다시 천천히 왜 이렇게 하는가를 해석해 줄 뿐만 아니라, 동수들이 서로간에 협조하여 인터넷에 접속하고, 조판 인쇄하고 시디를 굽고, 정리하고 봉투에 넣는 등 흐름선을 함께 운행한다.

이렇게 아무런 컴퓨터 기초가 없는 동수라 할지라도 오히려 기적적으로 아주 짧은 시간 내에 각종각양의 진상자료를 만들어 내게 되었다. 아울러 여러 사람은 서로 협조 배합하는 동시에 컴퓨터 기술과 씬씽도 함께 제고되었다. 고향 동수들이 만든 진상자료를 가지고 성 소재지에 돌아와 시내 동수들께 보여 주었더니 크게 고무를 받았다. “예전에는 진상자료를 농촌에 보냈는데 지금은 반대로 되었다! 우리는 절대로 뒤떨어져서는 안 된다! 어떻게 하겠는가? 그럼 개인 자료점이 곳곳에 피어나게 하자!” 결과적으로 성 소재지의 개인자료점은 하나 하나 연달아 건립되기 시작하였다.

나중에 전문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기 위해 건립된 “610” 사무실에서는 내가 파룬궁을 연마하면서도 여전히 반 주임을 맡고 수업을 한다는 것을 알고는 크게 놀랐다. 그들은 직장의 “문명단위” 칭호를 즉시 취소하고, 나를 반 주임과 교육사업에서 전출시켰다. 하지만 내가 평소에 수업하면서 보수를 따지지 않고 컴퓨터에 고장이 생겨 아무 때나 불러도 아무 때건 와서 해결해 주었고 서비스 태도도 좋아 학생과 교원들로부터 많은 환영을 받았으므로, 직장 지도부는 “610” 몰래 나더러 관리사업을 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과외학생 지도와 교사에게 컴퓨터 가르치는 것을 겸직하도록 하였다. 나는 사부님께서 나에게 안배해 주신 진상을 알릴 수 있는 이 기회를 아주 소중하게 여겼다. 관리사업은 도리어 “세 가지 일”을 할 시간이 더 많게 하였다. 예를 든다면, 나는 학생들의 방학이나 졸업시기를 융통성 있게 이용하여 학생들을 조직하여 방영실에서 대형 전광판에 진상녹화를 방영하고 어떻게 인터넷 봉쇄를 돌파하는가를 가르쳐 주었으며 진상CD를 나누어 주었다. 학교 선생님들은 나를 신임하여 거의 모든 집의 가정용 컴퓨터는 나를 청하여 설치하거나 수리하였는데, 나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그들의 컴퓨터에 인터넷에 접속하는 소프트웨어와 진상자료를 설치하였다.

바로 이렇게 사업을 겸직하면서 한편으로는 이 겸직이라는 더 좋은 조건으로 중생에게 진상을 알려 주었고, 직장 지도부에서도 끊임없이 “610”에 내가 어떻게 사업을 책임감 있고 참답게 하는가를 말해 주었다. 이리하여 컴퓨터 사업을 하는 기회를 이용하여 동수들을 도와 수많은 개인자료점을 세우는데 더욱 편리하게 되었다. 사부님의 안배는 그야말로 묘 하시다.

3. 교훈 중에서 승화

또 얼마 동안이 지나, 나는 몇 몇 학생에게 진상CD를 나누어 준 후 늘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고, 법공부 상태도 그다지 좋지 못했으며, 발정념도 늘 사상이 집중되지 않았고, 소침한 상태가 나타나 정진하는 의지가 해이해졌다. 그렇지만 이는 오히려 나로 하여금 고도의 중시를 일으키지 못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남들도 이럴 것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참으로 한 차례의 침통한 교훈이 되었다. 얼마 후 내가 학생에게 진상CD를 나누어 준 것으로 하여 (그 중 한 학생의 가장이 바로 “610”사업 인원이었음) 사악에게 불법 노동교양 3년형을 받았다.

이 번의 침통한 교훈을 통해 나는 소침하고 정진하지 못하던 데로부터 깨어나게 되었다. 나는 눈물을 머금고 사부님의 경문을 읽었다.

몸이 감옥에 갇혔다고 슬퍼하지 마라 정념정행하면 법이 있거니 조용히 생각해 보니 집착한 일 얼마이더냐 사람 마음을 덜면 악은 스스로 패하리라 (《홍음2》)

비록 구세력이 배치한 “사악한 환경”으로 대법제자를 박해한 것이긴 했지만 오직 제자의 정념이 족하기만 하면 필연코 이 “사악한 환경”을 대법제자가 세인을 구도하는 정념의 장으로 전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살핌 속에, 동수들의 공동으로 진상을 알리는 정체적인 배합을 통하여 우리는 사악한 노동교양소에서 법을 실증하는 길을 아주 신기하게 열어놓을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법공부, 연공을 못하게 하던 데로부터 노동교양 인원은 파룬궁 수련생들이 바람을 쐬게 하고, 연공을 하도록 보호해 주었으며, 나중에는 경찰이 전문적으로 방 한 칸을 내어주어 우리가 마음대로 법공부, 연공, 발정념하게 하는 데로 이르렀다. 단지 위의 지도자가 사업 검사를 내려올 때만 노동교양 인원을 시켜 하지 않도록 하였다.

나는 처음에 단지 《논어》만 외울 수 있었는데, 나중에는 아주 긴 세 편 설법, 50여 편의《정진요지》와 《홍음》을 모두 외울 수 있었고, 나중에는 MP3 플레이어로 《광주설법》, 《신경문》을 들을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노동교양 당하는 수련생들이 “9평 공산당”을 들은 후 중공조직에서 탈퇴하였다. 또한 파룬궁 수련생을 감시인원 이외의 어떠한 사람과도 접촉하지 못하게 하던 데로부터 대법제자들은 공개적으로 함께 교류할 수 있게 되었고, 나중에는 노동교양 인원이 주동적으로 MP3 플레이어와 손으로 베낀 사부님의 경문을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MP3 플레이어의 건전지를 제공해 주었다. 파룬궁 수련생들을 맨 나중에 밥을 담고, 목욕하게 하던 것을 노동교양소 “대조장(大组长)”은 집합했을 때 규정을 선포했다. “이후부터 파룬궁 수련생들이 먼저 밥을 담게 하고, 파룬궁 수련생들이 먼저 목욕하게 하며, 파룬궁 수련생들이 청소한 곳에 담배꽁초를 마음대로 버리지 못한다.”

나는 사악의 나에 대한 박해는 사부님 안배하에, 모두 희극성적으로 내가 법을 실증하는데 유리한 환경으로 변한다는 것을 놀랍게 발견하였다. 이를테면, 매번 내가 감금되었을 때마다 사부님께서는 모두 교묘하게 각종 방법을 통해 나에게 신경문을 보내 오셨고, 심지어 내가 다른 대대에 감금 되었을 때도, 사부님은 나로 하여금 신경문을 얻게 하셨다. 나더러 저녁에 연공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사악은 마약인원을 전문적으로 배치하여 단독으로 나와 함께 자게 하였는데, 뜻밖에도 나의 코고는 소리가 너무도 요란하여서 그는 전혀 잘 수가 없게 되자 나중에는 나를 깨우면서 연공하라는 것이었다.

내가 “파룬따파 하오”를 외치면서 반박해할 때 사악은 네 명의 마약인원을 배치하여 나를 제지하게 하자, 나는 일하러 가는 때를 선택하여 공개적으로 행인을 향해 “파룬따파 하오”를 외치거나 사합원(四合院)에서 촬영기를 향해 “파룬따파 하오”와 “모모모가 사람을 때렸다”고 외쳤으며, 아울러 때린 자에게 정중히 알려 주었다. 만약 당신이 감히 손을 댄다면 사람을 때린 증거를 남기게 될 것이며, 앞으로 나는 당신을 기소할 것이다. 나중에 “감시인원(包夹)”은 모두 사직하고 그만 두었다. 사악이 나에게 억압으로 노동교양복을 입히고 노동교양 보고(报告) 제도를 준수하라고 할 때 나는 말하였다. “그러겠다, 하지만 나의 노동교양복에 ‘파룬따파 하오’라 쓰고, 읽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사악은 듣자 즉시 그만두고 말았다. 이때로부터 무슨 노동교양 회의요, 출석을 부르거나 학습같은 것들은 모두 나와는 무관한 것으로 되어 버렸다. 사악은 나를 억지로 노동교양 노예노동에 참가시키려 하였지만 나는 복종을 거부하였다. 하지만 주동적으로 노동교양 인원들에게 끓인 물을 보내주고, 공구를 날라다 주고 대법제자 노래를 부르고, 경문을 외우고, 진상을 알려 주었더니 노동교양 인원들은 모두 이구동성으로 좋다고 하였고, 사악은 화가 났지만 별 수가 없었고, 또 상급에 감히 보고하지도 못했다.

나중에 내가 건설공지에서 노동교양 인원들에게 대법제자 노래를 불러주고, 경문을 외우고, 진상을 알려주는 것은 나에게 날마다 있는 필수 프로그램이 되었다. 사악은 나를 경찰의 곁에 앉아 있게 하고 노동교양 인원들과 접촉하지 못하게 하자, 나는 끊임없이 경문을 외우고 발정념 하였더니, 경찰은 배겨내지 못하여 나만 보면 즉시 숨어 버렸고, 나중에는 아예 방 한 칸 을 “내장 공사”를 한다고 하면서 그곳에 나를 감금했다. 나는 기쁘게 그 안에서 법공부 하고 연공하고 경문을 베꼈다.

4. 노동교양소에서도 여전히 확고히 수련해야 한다

노동교양소에서도 여전히 확고히 수련해야 한다. 나 개인적으로 여기건대 이 몇 개 방면에서 청성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첫째, 법암송이다. 마음에 법을 담으면 가장 착실하다. 사악이 아무리 미친듯이 박해해도 마음속에 법이 있으면 두려운 것이 없으며, 대법은 우리에게 지혜를 주어 구세력의 배치를 제거하게 하므로 반드시 법암송을 중시해야 한다. 이는 우리가 집착을 내려놓고 사람 마음을 버리는 제일 좋은 방법이다. 사람 마음이 중하던 수많은 동수들은 모두 법암송을 통하여 정념을 확고히 하게 되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법은 일체 집착을 타파(破)할 수 있고, 법은 일체 사악한 것을 타파(破)할 수 있으며, 법은 일체 거짓말을 제거(破除)해 버릴 수 있고, 법은 정념(正念)을 확고(堅定)하게 할 수 있다.” (《정진요지2》)

둘째, 시시각각 정념으로 악인을 정시하고, 대법에 비추어 안을 향해 찾아보며, 정정당당하게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해야 한다. 구세력의 배치는 바로 우리의 집착심을 겨냥하여 온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가 대법으로 가늠하고 자신에 대한 씬씽 요구를 구세력의 배치보다 초월하게 한다면, 너 구세력이 어떻게 하는지 보자. 악인은 사악의 뒷받침을 잃으면 바로 “작은 흙으로 된 사람”인데 두려울 것이 무엇인가?

셋째, 진상을 말할 때 상대방의 접수능력을 고려해야 하며, 너무 높게 말하지 말고 될수록 상대방의 실제 상황에 결합하여 말해야 한다. 이를 테면, 노동교양 인원 대다수는 너무 일찍이 중도에서 학업을 그만두고 마약 피우는 길을 걷게 되었다. 나는 그들이 왜 공부에 흥미가 없는지에 대한 원인을 분석해 보았다. 학생이 총명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교육이 당 문화에 의해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학생이 배운다는 것은 모두 당문화이지 중국의 전통문화가 아니며, 학생은 자기의 흥취에 따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사당의 수요에 따라 배운다. 그러므로 사당이야말로 비로소 당신이 마약을 하는 길로 가게끔 야기시킨 근본 원인이다.

넷째, 사악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 노출되는 것이다. 법률적 수단을 통해 도처에 악인을 고소하고, 해외 동수는 전화로 진상을 알리고, 가족이 배합하면 사악의 박해를 제압하는데 모두 아주 좋은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이상은 내가 대법수련 중에서 걸어온 사소한 일들로서, 나는 내가 잘할 수 있었던 이 일체는 모두 사부님의 자비한 안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사부님의 요구와는 아직 거리가 아주 멀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앞으로 꼭 더 정진하여 “세 가지 일”을 잘 완수하고 사부님의 자비에 어긋나지 않게 할 것이며, 중생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게 할 것이다!

여러분 감사 합니다! 허스!

(명혜망 제5회 중국대륙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 2008년 11월11일
문장분류 : [대륙법회]
원문위치 :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8/11/11/18795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