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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과 법을 확고히 믿으면서 하나 또 하나의 관을 넘어가다(하)

글/ 산둥 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10월 18일] 우리가 대량으로 <<9평>>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 한 동수가 엄중한 병업으로 자료점을 떠나게 되었다. 자료점에는 다만 을 동수와 나 두 사람 뿐이었으나 사업량은 전보다 훨씬 많았다. <<9평>>이 되도록 빨리 천가만호에 전해지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또 <<9평>>만 전문적으로 만드는 자료점을 세웠다.

당초에 세 사람을 선택 했으나 여러가지 원인으로 자료점이 실제 운행되면 모든 사업량 전부가 병 동수의 몸에 떨어졌다. 이 기간에 나는 경상적으로 어깨의 짐이 점점 더 무거워 짐을 느꼈다. 하지만 어떠하던지 간에 나는 늘 자신은 견정해야 함을 잊지 않았다. 절대로 사부님의 기대와 동수들의 신임을 저버리지 말아야 했다. 나는 늘 자신을 일깨워 주었다. ” 만약 자신의 누락 때문에 자료점에 사악이 뚫고 들어온다면 박해를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대법에 죄를 짓게 된다.”

몇 년 동안 각지 자료점들이 사악에게 파괴되어 번번이 우리에게 거대한 손실을 가져다주었다. 피의 교훈은 참으로 너무도 많았다. 매번 법공부 할 때면 나는 마음을 조용히 하려고 무진 애를 썼고, 나로 하여금 진정으로 법을 배울 수 있게 하였으며, 끊임없이 더욱 높은 법리를 이해하게 했다. (하지만 많이는 조용해지기 어려웠다) 몇 년이래 매번 발정념 할 때마다 나는 졸 때가 극히 드물었다. 우리의 자료점을 꼭 정정당당하게 법을 실증하는 길로 끝까지 걸어가게 할 것이다.

자료를 만드는 외에도 나는 자료를 넘겨주는 일을 책임져야 했다. 어느 날 오후 나는 <<9평>> 한 박스를 농촌 동수에게 보내려고 하였다. 국도에 금방 내리자 뒤로부터 소형 버스 한 대가 와서 내 앞 길을 막는 것이었다. 차 위에는 네 사람이 앉았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묻는 것이었다. 당신이 가진 건 무슨 물건인가? 갑자기 들이닥친 물음에 직면 하였지만 나의 마음은 이상할 정도로 평온했다. 그들은 무슨 물건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나를 쳐다보고는 차를 몰고 가 버렸다.

나 자신도 그때에 그렇게도 평온하고 침착할 수 있은 데에 대해 아주 놀랍게 생각했다. 그때의 심성 표준에 따르면 아직 완전히 그런 정도에 까지 이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앞으로 얼마 못 가서 마음이 약간 긴장해 지면서 두려움마저 생기는 것이었다. 나는 알았는데 그때 사부님께서 가지해 주신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항상 문제에 부딪히면 안을 향해 찾아보며, 자신의 원인을 찾아보라고 하셨다. 자신이 도대체 어디에 누락이 있었기에 이런 일이 발생하였는가? 나는 내가 오늘 문을 나설 때 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누가 묻는다면 사과에 뿌릴 약을 가지고 간다고 말해야 하겠다.’ 방금 남에게 조사를 당한 것도 자신이 구했기 때문이며 자신의 바르지 못한 일념으로 조성된 것이다. 수련은 얼마나 엄숙한 것인가? 낡은 세력은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있으며 기회만 있으면 박해하려고 하거니와 우리의 일사일념마저 모두 놓쳐 버리려 하지 않는다.

구정이 가까워진 새해 어느 날 저녁에 나는 혼자서 자료를 지니고 시골길을 걷고 있었다, 수많은 집들의 휘황한 불빛을 보면서, 따뜻한 집안에서 천륜지락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을 상상 하노라니 갑자기 처량한 감이 용솟음쳐 올랐다. 쓸쓸한 전야, 싸늘한 북풍, 나는 자신이 마치도 한 마리의 외기러기와도 같이 밤 장막 속에서 갈 곳 없어 헤매는 것 같아 하마터면 눈물을 쏟을 뻔 했다.

몇 년 동안 나는 이렇게 한해 또 한해, 하루 또 하루, 자료를 만들어서 보내주고, 또 만들어서 또 보내주고 … …나는 이런 정서가 틀렸다는 것을 즉각 느꼈다. 나는 대법제자이다. 사부님께서는 나를 대신하여 거대한 난과 관을 겪으셨을 뿐더러 나를 부추겨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오늘 신의 길을 걸어가는 대법도로 되게 하였다. 인간 세상의 일체에 그 무슨 미련이 나에게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깊이 파 보니 나에게는 아직도 안일을 추구하는 마음이 있었고 아직도 세간의 일체를 버리기 아쉬워하는 그런 명, 이, 정이 내심 깊은 곳에 잠복해 있었다.

<<전법륜>>중의 사부님 말씀이 떠올랐다. “남은 말하기를 내가 속인 사회 여기에 옴은 여관에 투숙하는 것과 같이 며칠 좀 묵었다가 총총히 간다고 한다. 일부 사람은 이곳에 미련을 두고 자신의 집을 잊어 버렸다.” 또<<홍음>> 중의 <<무존>>에는 “태어나 바라는 것 없고 죽어 애석할 것 없네. 망령된 생각을 탕진하거니 부처로 수련되기 어렵지 않노라”가 있다.

이때 마음속의 처량함과 고독감이 가뭇없이 사라졌다. <<2003년 워싱턴 DC법회에서의 설법>>에서 사부님은 이렇게 말씀 하셨다. “우리가 이 단락 역사를 걸어 지나갔을 때, 뒤 돌아서 매 대법제자가 능히 내가 하려는 것을 내가 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면(박수) 그것이야 말로 가장 대단한 것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뒤돌아 볼 때 자신은 조사정법의 사전 대원을 얼마나 실천했는가? 사부님과 일찍 사전서약을 세운 대법제자로서 만약 자신의 서약을 원만히 실천하지 못했다면 그건 사부님을 속이는 것이며 새로운 우주에서 영원한 치욕으로 될 것이다.

( 5 )

2005년 추석이 곧 다가오게 되었다. 동수들의 요구에 좇아 우리는 대량의 진상 자료를 찍을 준비를 했다. 어느 날 오후 우리가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통지를 받았다. 병 동수에게 일이 생겼다는 것이다. (앞에서 제기됐던 <<9평>>을 책임지고 만들기로 한 동수) 전날 저녁 주숙한 곳에서 사악에게 납치되었다는 것이다. 을 동수의 집에도 일이 생겼다면서 즉각 돌아가서 처리하길 바랬다. 이런 소식을 들은 나는 반나절이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나는 여전히 약속한 동수의 집에 가서 몇몇 협조인과 각 지구 책임자들을 만났다. 나는 원래 여러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중점적으로 어떻게 동수를 구원하겠는가를 토론할 줄로 여겼다. 그런데 속인 가운데서 떠도는 일부 사실이 아닌 소문에 대해 그토록 반응이 강열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후에는 초점을 을 동수의 몸에 집중시키고 을 동수더러 즉시 집에 가지 않으면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내가 느끼건대 을 동수는 집에 가도 된다. 하지만 내가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자료점이 운행을 멈추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금 가장 먼저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바로 어떻게 병 동수를 구원하겠는가 하는 것이며, 어떻게 앞으로의 길을 걸어갈 것인가이다. 개별적 동수들은 낡은 세력이 만들어낸 가상에 미혹되었고 그 속에 빠져 자신의 관념으로 상상을 더해 가면서 그것에게 끌려 가 우리가 당장 해야 할 급한 일들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동시에 나는 사악의 음모가 직접적으로 자료점으로 향하고 있으며, 자료점을 파괴하려 시도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우리의 자료점을 해체시켜 우리 구역의 법을 실증하는 사업이 마비되게 하려 시도하고 있다는 것도 의식하게 되었다.

내가 그 당시 법 학습이 깊지 못하였기 때문에 법리상에서 동수들과 공동으로 눈앞의 국면을 똑똑히 인식하지 못하였음으로 하여 정체적인 제고, 정체적인 승화로 낡은 세력의 사악한 배치를 철저히 제거하는데 도달하지 못하였다. 후에 참으로 침통한 후회를 느꼈다.(병 동수는 후에 불법 재판을 받았다. ) 을 동수는 집으로 돌아갔고 병 동수는 감옥에 갇혔다. 자료점은 운행을 멈추었고, 우리 구역의 기세 드높던 대법실증의 형세는 한시기 식어버렸다.

몇 년 동안의 비바람 속에서,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살핌 속에서 우리의 자료점은 어렵게 오늘까지 걸어 올 수 있었다. 오늘 ‘9평’이 널리 전해지고, 중공을 해체시키고 중생을 구도하는 관건적인 시각에 자료점은 도리어 정지되었다. 나는 흐르는 눈물을 더는 억제할 수 없었다. 자료점의 여러 사람 가운데서 오늘은 나 혼자만 남았다. 우리의 기계를 앞에 놓고, 모든 설비와 소모재료를 마주하고, 인쇄해 냈으나 아직 정정하지 못하고 쌓여 있는 ‘9평’을 다시 바라보노라니, 또 을 동수가 집에 가기 전에 인쇄한 진상 자료들을 보노라니 나는 일종 무형의 압력이 습격해 옴을 느꼈다.

당시의 환경과 각종 조건의 제한에 근거하면 나 혼자서는 자료점을 운영하기가 아주 어려 웠으며, 또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해도 주변 환경에 대처하기가 아주 어려웠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다. 어느덧 나는 속인의 마음을 움직였다. 자료점에 오는 사람이 없으면 이 모든 물건들을 어떻게 하겠는가? 어디로 전이해야 하는가? 나 자신은 이후 어떻게 하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 나는 아무 도움도 받을 수 없다는 감을 느꼈고 내 마음이 피를 흘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

나는 또 병 동수를 생각하였다. 기실 병 동수는 자료점에서 사업할 수 있는 조건을 완전히 구비했다. 그는 능력이 있을 뿐더러 고생을 아주 잘 겪으며, 법을 실증하기 위하여 많고도 많은 것을 바쳤다. 우리가 썼던 기계는 속도가 빠르고 소리가 커서 작업 시 문들을 반드시 밀봉해야 하였다. 이렇게 했다 해도 마당에서는 ‘쾅쾅’하는 소리가 여전히 들렸다. 무더운 여름철 내내 병 동수는 밀폐된 방에서 기계와 함께 보냈고, 오랫동안 그는 집에서 아침을 먹고는 끓인 물 한 컵, 찜빵 두개를 가지고는 자료점에 가서 작업을 하곤 했다. 점심도 물 한 컵과 찐빵 두개였다. 그러고는 줄곧 저녁까지 일하였는데 어떤 때는 쉴 사이도 없이 한 차나 되는 ‘9평’을 차에 실어서는 동수들에게 보내 주었다. (후에 이렇게 하면 병동수가 법공부를 따라가지 못할 수 있어 하루에 반날씩만 하게 했다.)

밀봉된 방은 시루 안 같아 움직이지 않아도 온 몸에 땀이 났다. 그러므로 병 동수는 날마다 물에 씻긴거나 다름없었다. 반년이 안 걸려 그는 혼자서 3만권의 ‘9평’을 찍어 내었는데 2백여만 페이지 수량과 맞먹는다. 병 동수의 납치는 우리 지역의 법 실증에 중대한 손실을 가져다주었다. 한 동수가 “이렇게 큰일을 당신은 어찌하여 병 동수 혼자만 하게 하였는가?”고 나를 질책할 때 나는 침묵을 지켰다. 나는 그 당시의 배치를 말하고 싶지 않았으며, 다른 동수에게 압력을 줄 생각도 없었거니와 나는 그녀들이 법리상에서 자신의 부족을 인식하고 하루 속히 제고되기를 축원하였을 뿐이다. 후에 나는 부득불 개별적인 동수들에게 사실 정황을 말해 주게 되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이후 사업을 하는데 너무도 수동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떠하든지를 막론하고 나는 자기의 책임을 밀어 버릴 수 없으며, 어쨌든 간에 병 동수 혼자서 자료점에서 반년이란 시간을 견지하게 하지 말았어야 했다,

어제까지도 자료점은 분망한 기계소리로 분주하였는데 오늘은 갑자기 깊은 잠에 곯아 떨어진 듯 조용하다. 나는 혼자서 외롭게 오락가락 했다. 정말이지 눈앞의 현황을 마주할 기력조차 없었다. 법공부 할 때도 조용해 지지 않았고, 밥도 먹을 수가 없었다. 이틀이 지나자 아침 연공을 할 때 온 몸이 마구 떨렸다. 이대로 나간다면 며칠 안 걸려 쓰러지고 말 것이다. 사악이 이런 형식으로 나를 박해하는 것을 절대로 승인할 수 없다. 반드시 먹어야 하며, 배가 고프지 않더라도 뭘 좀 먹어야 한다. 한편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한편으로는 말라버린 며칠 전의 찐빵을 힘주어 쪼개서 한 조각 입에 넣고 겨우 씹었지만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나는 약 먹듯 물로 넘겼다. 바로 이렇게 씹어서는 물로 넘기면서 반 조각 빵을 간고하게 먹었더니 몸에 기운이 나는 것이었다. 그 며칠동안을 나는 이렇게 먹었던 것이다.

어느 날 점심에 나는 베란다에 서서 추석의 하늘을 우러러 보노라니 마음속에 또 천만가지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고생도 마다하고 일하던 병 동수를 생각했고, 우리가 기술 인원이 모자라 일체를 포기해야 할 형편일 때 견결히 걸어 나왔던 을 동수를 생각했으며, 우리의 자료점은 조사정법 가운데서 적어도 6,7백 동수들이 수요하는 사부님의 경문, <<명혜주간>>, <<9평>>과 진상자료를 부담하였던 일을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엔 작용을 발휘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또 극도로 되는 슬픔과 고통 속에 빠져 버렸다.

삽시에 배안에 무슨 물건이 꽉 들어차는 것 같았고, 가슴이 급속히 팽창하면서 마치 순간적으로 폭발할 듯 하여 나는 바로 설수가 없었다. 나는 벽을 짚으면서 급히 주저앉아 외쳤다. “사부님 절 구해 주십시오.” 말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배안의 나쁜 물건들이 전부 없어진 감을 느꼈다. 나의 마음도 따라 평정해 졌고, 비할 바 없는 가벼움을 느꼈다. 만약 사부님께서 나를 구해주지 않았다면 그 시각에 나는 철저히 붕괴되었을 것이다.

점차 나는 조용한 마음으로 법공부 할 수 있게 되었고, 법학습을 통하여 사상은 점점 더 똑똑해 졌다. 나는 낡은 세력이 악독한 수단으로 우리의 자료점을 무너뜨리려 할 뿐만 아니라, 나 개인의 의지를 무너뜨리려고 시도하는 것을 보아냈다. 그렇다면 낡은 세력은 어떠한 구실로 이렇듯 음흉한 나쁜 짓을 할 수 있게 되었는가?

물론 여기에는 정체적인 누락이 있을 뿐더러 작은 누락이 아니다. 그런데 가장 마땅히 찾아봐야 할 사람이 바로 나이다. 나의 누락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반드시 그 근원을 파헤쳐 봐야 한다. 집을 떠나 떠돌아다닌 지 몇 년이 되는 동안 나는 줄곧 자료점 사업을 하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료점을 제 집으로 여기게 되었다. 외출하였다 돌아오면 집으로 돌아온 듯한 느낌이다. 뿐만 아니라 어떤 땐 자료점의 동수들을 집식구들로 여기고 생활상 많게 적게 의뢰함이 생겼다. 자료점이 없으면 나는 마치도 집이 없는 듯 하였다. 동수를 떠나면 마치 친인이 없는 듯 하였다.

몇 년간 동수들은 하나하나 나를 떠나고 매번 동수들이 떠나면 나는 가슴 아파 남몰래 눈물을 흘리곤 했다. 하지만 이 눈물 속에는 동수에 대한 일종의 정이 배여 있었다. 깊이 파보니 마음속 깊은 곳에는 위사위아의 마음이 잠복해 있었던 것이다. 만약 자료점을 잃는다면 마치도 자신의 수련에 손실을 입은 것처럼 여겼다. 나는 평소에 자료점을 특별히 중시하면서 다른 동수들도 모두 중시해 주길 바랐는데 기실 다른 사람들더러 자신의 불순한 마음을 중시해 주길 바랐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흑수 난귀가 나 개인에게 진행한 박해의 근원이다.

깊이 숨어 있던 이 집착을 내려놓으니 진정으로 자신을 제고할 수 있었고 정념을 가강할 수 있었다. 얼마 안가서 사부님의 기가 막힌 배치 하에 우리의 자료점은 또 다시 운행되었다. 하지만 이번의 나 자신의 감수는 도리어 한차례의 죽었다 살아난 경력을 겪은 것 같았다.

( 6 )

2006년 구정 전후에 각 곳 동수들 수요에 따라 우리는 반드시 많은 진상자료를 만들어야 하였다. 구정기간에 여객운수에 대한 검사가 아주 심했지만 우리는 많을 때는 5,6박스나 되는 자료를 보내 주었다. 차 주인은 이것저것 물었고 안전 검사원도 와서 ‘3품’이 없느냐고 물었다. 나는 태연하게 설에 쓸 물건인데 무슨 3품이 있겠느냐고 말하였다. 하지만 어떤 승객의 짐 혹은 상자는 그들이 기어이 검사하려 한다. 후에 나는 생각 하였다. ‘내가 지닌 것은 중생을 구도하는 진상자료이므로 그들은 마땅히 물어 보지 말아야 한다.’ 사부님께서 보호해 주실 것을 청했다. 과연 그 후부터 그들은 묻지 않았다.

어떤 땐 경찰이 가는 차를 막고 검사한다. 나는 진정하고는 마음속으로 ‘나는 사부님의 대법제자이다. 다른 것은 그 누구의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 발정념하여 대법을 파괴하는 일체 사악한 인소를 해체시킨다. 한 번은 차 위에서 보니 먼 곳 앞에 경찰이 있기에 나는 곧 발정념 하면서 사부님에게 가지해 주실 것을 청하여 경찰이 잠들게 하여 그가 검사하지 못하게 하라고 하였다. 그 곳에 이르러 보니 과연 경찰이 고개를 떨어뜨리고 자고 있었다.

구정을 전후로 한달 남짓한 동안에 우리는 대량의 진상자료를 순조롭고 안전하게 각 곳의 동수들에게 보내 주었다. 그 가운데서 사부님은 시시각각 보살펴 주고 있음을 더욱 체험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두려운 마음이 없었다. 무슨 낡은 세력이요, 무슨 사악이요, 무슨 박해요 하는 따위들은 당연히 존재하지 말아야 한다.

2006년 봄이 막가는 어느 날 저녁, 식사 후 나는 법공부 하러 가려고 금방 몇 발자국을 떼자 이웃집 개가 나의 갈 길을 막고서 나를 앞으로 가지 못하게 하였다. 내가 억지로 가려하니 나의 다리를 물었다. 내가 뒤로 물러서자 그놈은 그 곳에 앉아서 꼼짝 않고 나를 지켜 는 것이었다. 내가 다시 앞으로 가려하니 그놈은 여전히 나를 막는 것이었다. 나는 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 개는 평소에 나하고 아주 사이가 좋아 내가 집을 나설 때면 나를 늘 아주 멀리까지 바래다주었고 내가 돌아오면 그는 아주 멀리까지 마중 나와서는 머리를 흔들고 꼬리를 저으면서 아주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종래로 오늘처럼 이런 적은 없었다. 나는 낮은 소리로 그에게 말하였다. “내 너한테 빌어, 제발 내 갈 길을 막지 말어.” 그는 듣지 않고 그냥 나를 막는 것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사부님께서 이 개를 이용하여 나에게 무슨 점화를 해 주시는 것은 아닐까? 앞에 개와 같은 악인들이 나를 막자고 하는 것이 아닐까? 내 마음 속에 일념이 생겼다. ‘낡은 세력의 배치를 절대 승인하지 않는다.’ 집에 들어와 가부좌 하고 입장하고서 발정념을 반 시간 정도 하였다.

어느 날 오후, 나는 재료를 사서 주머니에 넣은 후 자전거에 싣고서 돌아오고 있었다. 개가 내 길을 막은 그때부터 나는 재료를 사거나 자료를 보낼 때면 자신의 정념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길을 가면서도 쉼 없이 정법구결을 묵념하였다. 절반 쯤 왔을 때 ‘창허’패 차가 나의 곁에 오더니 차안의 사람이 나에게 묻는 것이었다. “당신은 뭘 가지고 가는가?” 나는 그들을 힐끗 보고는 그대로 그냥 갔다. 대략 2,30미터쯤 갔을 때 그 차는 또 따라와서 뒷자석에 앉은 자가 여전히 묻는 것이었다. “당신은 어느 직장에 다니는가. 가진 물건은 무엇인가?”

이때 나는 그들이 사복 경찰임을 보아냈다. 허나 시간은 내가 더 오래 생각할 틈을 주지 않았다. 만일 내가 조금이라도 머뭇거린다면 아마 크나큰 시끄러움을 빚어내게 될 것이므로 나는 진정하고 먼저 책망하는 어조로 그들에게 물었다. “당신들은 뭘 하는 사람인데 무엇 때문에 내 길을 막는가?” “우리는 형사 경찰대이다.” 차 위의 두 사람이 내렸다. 나는 “증을 보여 주시겠습니까?”라고 말하였고 그 중의 한 자가 증을 꺼내었다. 나는 그들을 근본 대수로워하지 않는다는 표정을 나타내면서 냉랭하게 말하였다. “나는 유묵을 갖고 가는데 학교에서 쓸 것입니다. 보여 드릴까요?” 그 사람이 말하였다. “선생님, 진작 말씀을 하실거지.” 그리고는 중얼거렸다. “우린 안건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차를 몰고 가버렸다.

자비로운 사부님께서 또 한번 나에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마난을 풀어주셨다. 여러 날 앞당겨 이웃집 개로 나를 점화해 주시여 내가 제때에 자기의 공간 마당을 청리하게 하여 나와 자료점을 박해하려는 사악한 요소를 해체 시키신 것이다. 법공부를 통하여 나는 깨우쳤다. 우리의 정념이 강할 때 그 층차의 법의 요구에 도달되면 다른 공간의 사악은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며, 우리를 근본적으로 해치지 못한다. 하지만 이 일을 통하여 나는 또 자신의 수련가운데의 부족과 경지의 제한을 발견했다. 나를 막은 자들이 사복 경찰임을 알았을 때 좀 긴장되었고, 비록 내 표면의 진정됨에는 영향은 없었지만 그러나 필경 그것은 두려운 마음이었고, 신의 경계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의 마음이었던 것이다.

정법형세의 추진에 의해 우리 지역의 가정 자료점도 끊임없이 탄생했다. 자료점이 곳곳에 피어나라고 한 것은 사부님의 요구이며, 또한 우리 자료점 동수들의 장기간에 걸친 염원이기도 하다. 우리는 각 방면의 배치를 하여 큰 자료점을 분산시켰다.

( 7 )

어느 날, 내가 모 지역의 동수에게 물건을 보내 주고 버스에 앉아 돌아 올 때는 이미 저녁 8시였다. 버스의 두 개의 등이 고장 나서 주인은 차 하나를 세내어 앞에서 길을 인도하게 하였다. 며칠이 지난 후 또 그곳으로 갔다가 돌아 올 때 역시 8시였다. 차에 오르니 나는 몸이 고통스럽고 머리도 아팠다. 시 구역을 벗어나자 표 파는 사람이 말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차등을 왜 켜지 않아요?” 기사가 하는 말, “고장 났어.” 표 파는 사람의 말, “어디 가서 수리합시다.” 운전기사의 말, “수리하기 쉽지 않소, 돌아가 수리하죠.” 나는 또 전등이 없는 차를 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길을 인도하는 차를 얻지 못하여 운전기사는 어둠 속에서 차를 몰아야 했다. 내가 연속 두 번이나 차등이 없는 버스를 탄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바로 내 곁에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근심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신체의 괴로움은 점점 더 뚜렷해졌고 조금 후에는 다리마저 아프기 시작하였다. 버스는 등불없이 두 시간을 달렸고, 하차한 후 나는 다리가 아파 쩔뚝거리며 숙소로 향했다. 이날 밤 나의 온 몸은 아픔이 점점 더 엄중해 졌다. 이튿날엔 아픔이 더 가중해 졌고 두 다리와 어깨 관절 부분이 특별히 아팠는데 그야말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아프지 않은 데가 없었다. 길 걷는 것마저 온정하지 않았다.

두 차례나 등 없는 밤차를 탔고, 특히 두 번째로 차에 올랐을 때 몸이 고통스럽고 그것이 지금의 이런 전신 동통의 상태에까지 이른 것을 생각하니 나는 명백해 졌다. 나는 한 차례의 대 재난을 피한 것이다. 역시 사부님께서 나에게 풀어 주신 것이다. 두 차례나 차 등불이 켜지지 않은 것이 바로 사부님의 점화가 아닌가? 나는 비록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온 몸이 아프지만 그러나 만약 사부님의 거대한 감당함이 없어 정말로 큰 차 사고가 몸에 떨어진다면, 그건 나에게 어떤 후과이겠는가? 그야말로 상상조차 감히 할 수 없다. 지금의 내가 받아 당함은 사부님이 나를 위해 재난을 받아 당한 후 나에게 남겨주어 나를 수련 제고시키기 위한 약간의 고통밖에 더 되지 않는다.

사부님의 백방으로 되는 보살핌 속에, 매번마다 자신을 대신하여 거대한 난관을 받아 당하신 것을 생각하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사부님. 시름 놓으십시오, 난 이겨 낼 수 있습니다.’ 나의 온 몸은 이틀 밤 하루 낮을 아프고 나서 세 번째 날에는 곧바로 나아졌다.

몇 년이래 법을 실증하는 길에서 친히 사부님의 자비와 대법의 신기를 체험하였는데 참으로 너무도 많고도 많다. 여기에 써낸 것은 그 중의 일부분이다. 7년래 사악의 미친듯한 박해 속에서 나의 유일한 선택이란 바로 자신의 일체를 사부님과 대법에 맡긴 것이다. 때문에 사부님의 보살핌 속에서 오늘까지 걸어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정법은 이미 최후의 최후에로 다가 왔다. 일체는 바야흐로 모두 나타날 것이다. 자신은 오로지 끊임없이 정진해야만 사부님께 미안하지 않고, 대법에 미안하지 않으며 동시에 자신의 양심에도 미안하지 않을 것이다.

(제3기 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 서면 교류대회 교류 원고)
문장발표 : 2006년 10월 18일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6/10/18/139149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