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랴오닝성 후루다오시 웨이밍샤 박해로 사망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랴오닝 보도) 8월 2일 파룬궁 수련생 웨이밍샤(魏明霞)가 안타깝게도 박해로 사망했다. 사망한 웨이밍샤는 지난 7월 19일 웨이밍샤는 랴오닝(遼寧)성 후루다오(葫蘆島)시 강툰(鋼屯)진에서 납치되어 구치소에 구금당했다. 그녀가 박해로 억울하게 사망했음에도 핍박은 아직 끝나지 않고 있다. 파출소가 이른바 증거자료를 추가하려 한다는 소식이 들리며 웨이밍샤의 가족들은 여러 방면으로 공갈 협박을 당해 곤란을 겪고 있다고 한다.

2021년 7월 19일 오전 10시경, 후루다오시 공안국, 시 국가보안대대, 롄산구 분국, 롄산구 국가보안분대, 강툰진 파출소의 차량 세 대가 강툰진 자오툰(趙屯) 촌 파룬궁 수련생 주쥔(朱軍)의 집에 들이닥쳐 주쥔, 세쿤(解琨), 웨이밍샤(魏明霞)를 납치했다. 또 불법적인 가택 수색을 진행해 대법 책, 자료, 파룬궁 사부님의 법신상과 프린터 1대 및 기타 개인 물품을 강탈했다. 납치된 세 명 중 주쥔만이 그날 저녁에 집으로 돌아왔다.

세쿤, 웨이밍샤는 후루다오 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했다. 소식에 따르면, 웨이밍샤는 휠체어에 앉아 구치소로 보내졌다고 한다.

8월 2일 저녁, 세쿤은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같은 날 저녁, 웨이밍샤는 박해로 사망했으며, 8월 3일 오전 그녀의 사망한 소식이 알려졌다.

웨이밍샤는 약 70세였으며 납치되기 전 건강해 집안일을 하며 지냈다. 현재 그녀의 시신은 장례식장 냉동고에 있으며 가족은 정부 측과 교섭 중이다.

1999년 7월 파룬따파(法輪大法)에 대한 박해가 발생한 후, 웨이밍샤는 여러 차례 납치, 불법적인 가택 수색, 감금 박해를 받았다. 2000년 6월 26일, 파룬궁 수련생 정자위(鄭加玉)의 집에 온 웨이밍샤를 강시촌 위원회 리위핑(李玉平)가 파출소에 신고했다. 소장 마언유(馬恩友), 왕잉(王英), 왕전제(王振傑), 멍칭쥔(孟慶軍) 등은 경찰차를 몰고 들이닥쳐 대법 서적 및 녹음테이프 등을 강탈했다. 동시에 불법적으로 웨이밍샤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당시 멍칭쥔은 쇠 막대기로 웨이밍샤의 등과 둔부를 사납게 구타했다. 기력이 소진할 때까지 무차별 구타를 강행했다. 구타로 웨이밍샤의 온몸은 상처투성이가 되었고 움직이기가 어려웠다. 현장에 함께 있던 정자쿤과 정자위도 강압 때문에 무릎을 꿇은 채 밖에 잡혀 있었다. 짱궈광(藏國光, 경장)은 “재료의 출처를 말하지 않으면 살갗을 벗겨내겠다!”라고 소리 질렀다.

다음 날, 짱궈광은 십여 명이 에워싼 상황에서 웨이밍샤의 자료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웨이밍샤는 협력하지 않았고 혹독한 구타를 당했다. 그런 다음 수갑이 채워져 불법적으로 구치소에 감금됐고, 30일 간의 불법적인 구류처분이 내려졌다.

中共酷刑示意图:毒打
중공 고문 설명도: 혹독한 구타

웨이밍샤는 구치소에서 현지 파출소로 끌려와 계속 박해를 당했다. 웨이밍샤는 그해 밍후이왕에 다음과 같이 신고했다: 7월 28일, 강툰진에서 세뇌반을 조직했는데, 그날 마침 가랑비가 내렸다. 나는 차에서 내려 복도(전 2병원의 옛 주소)로 걸어 들어갔는데, 대법제자 몇 명이 모두 벽을 마주해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자오주차이(趙久才)라고 부르는 악랄한 자가 방 안에서 나오더니 나에게 “당신이 유치장에서 단식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번에 당신은 밥을 먹으려는 생각을 더는 하지 말라”라고 말하며 내 머리칼을 잡고 벽에 박았다. 이어 내 뒤통수를 주먹으로 세게 쳤고 내 등 뒤에서 발로 사납게 걷어찼다. 몇 번의 거센 공격을 받은 나는 어지러웠고 눈앞이 어찔해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 이런 식으로 악도 들은 온종일 우리를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구타와 욕을 퍼붓기 일쑤였다. 그리고 밥을 주지 않았고 물도 마시지 못하게 했다. 삼복더위에 기온은 37~38도였는데, 잠을 자지 못하게 했고, 온종일 햇볕 아래 달리게 했다. 달린 직후에는 이어 한 발로 서게 했다. 만약 발이 땅에 닿으면 악도 들은 쇠막대기로 구타했다. 악도 들은 사람이 많아 발이 땅에 닿은 것이 보이지 않으면 두 손과 발을 곧게 펴고 머리를 위로 향하게 한 상태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머리를 거꾸로 U자 모양으로 만들게 했다. 50에서 70세에 이른 노인이 어떻게 그런 고문을 버틸 수 있는단 말인가?! 달린 다음 아무 힘도 없어 일어설 수조차 없었는데,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옷섶을 걷어 올리고 가시나무로 후려쳤다. 악도 들은 모든 악랄한 수단을 다 썼다. 체력을 초과한 달리기를 하는 상황에서 나는 서너 번 기절해 의식을 잃었다.

2001년 2월 21일, 웨이밍샤는 불법으로 ‘마싼자(馬三家)’로 보내져 3년간 불법 노동교양소에 구금됐다. 그녀는 여자 제2대대, 3대대, 1분대, 3분대, 1대대, 2분대에서 꼬박 21개월 동안 박해받았다. 웨이밍샤는 그해 밍후이왕에 다음과 같이 신고했다: 마싼자에서 대법제자를 구타하고 욕하고 고문을 가하는 박해 외에도 한 가지 장기적인 박해는 바로 체력을 초과하고 시간을 초과하는 불법 노예 노동이었다. 노예 노동의 고통은 마치 사형과도 같았다. 그곳에서 다루는 많은 일은 모두 다른 공장에서 꺼리는 맹독성 상품 또는 원료였다. 사람들은 중독돼 현기증, 메스꺼움, 구토, 알레르기가 반응이 나타났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두통과 알레르기 증상이 있다. 그때 발은 부어 노란 물이 나왔는데 겨우내 면화를 신을 수 없었고 열이 자주 났다. 마비되어 걷지도 못했는데도 일하러 가야 했다. 전향하지 않고 대법을 포기하지 않는 수련생에게는 더욱 잔인했다. 수련을 포기하지 않는 한 악한 경찰과 유다 들은 일체 악랄한 수단을 다 써 수련생을 박해할 것이 명백하다. 큰 괘에 올리기 고문, 전기 충격을 가하기, 매달아 구타하기, 체벌, 쭈그려 앉히기 등 고문이다. 어떤 이는 고문을 받아 정신이상을 일으키고, 박해를 받아 사망했는데, 그곳에서는 시시각각 비극이 발생하고 있다.

밍후이왕이 보도한 통계에 따르면, 2016년 1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후루다오시에서 총 36명의 파룬궁 수련생이 불법적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중 최고형은 14년이며 벌금은 4만 7000위안(한화 약 844만 원)이다. 그 외 141명이 납치되고 75명이 괴롭힘을 당했다. 2019년부터 2020년까지 2년 동안, 후루다오시에서 박해 중 사망한 파룬궁 수련생은 2명이다. 그 외 불법 징역형 선고 17명, 불법 구금 7명, 납치 41명, 정신병원 입원 1명에 이르며 다수가 괴롭힘을 당했다. 중공이 저지른 박해는 봉쇄되어 박해 사실이 제때에 알려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통계는 박해 일부일 뿐이다.

2020년 5월 12일 후루다오시의 청웨이싱(程衛星)이 납치되어 후루다오시 구치소에 불법적으로 감금됐는데 박해로 사망했다. 박해 사망 사실이 은밀하게 봉쇄되어 청웨이싱이 감금 박해를 당한 구체적인 정황과 시간을 파악하기 어렵다. 어떤 이는 그가 올해 1월에 사망했다고 말했고 어떤 이는 올해 5월에 사망했다고 했다.

 

원문발표: 2021년 8월 10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망사례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8/10/42938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