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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궈강 수련생, 마싼자 노동교양소에서 박해로 정신이상 되고 억울하게 사망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중국 랴오닝성 보도) 중국 랴오닝(遼寧)성 진저우(錦州)시 링하이(凌海)시 파룬궁 수련생 리궈강(李國剛) 씨는 2010년 7월 거듭 납치돼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았다. 리 씨는 마싼자 노동교양소에서 정신이상이 되고 기억을 잃었으며 두 눈에 초점이 없어졌다. 9년 남짓 고통 속에 몸부림치다 2020년 1월 3일 결국 억울하게 사망했다. 향년 65세이다. 부인 왕란즈(王蘭芝) 여사는 6년의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고 잔인한 박해를 당해 수년 전 억울하게 사망했다.

리궈강은 링하이시 진청(金城)제지공장 노동자이다. 1995년 일종의 전립선 질병에 걸려 부득이하게 일을 쉬고 진저우시로 가서 입원 치료했다. 1개월 후 병원에서 돌아와 질병이 잠시 좋아졌지만, 몸은 더욱 허약했다. 추위를 심하게 타서 혹서에도 두꺼운 솜바지를 입었으며, 감기를 특히 조심했다. 1996년 3월 시험 삼아 파룬궁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얼마 되지 않아 병이 사라져 일할 때도 힘이 나고 가정이 화목해다. 가족도 대법의 신기를 목격하고 연이어 대법 수련에 들어섰다.

1999년 7월 중공(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한 후, 리궈강과 아내는 여러 차례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 1999년 9월 말 링하이시 유치장에서 1년간 박해당했고, 2003년에 진저우 노동교양소에 감금돼 1년간 박해당했다.

2010년 7월 18일, 리궈강은 야간 노동 후 자전거를 타고 귀가하던 중 다링허(大凌河)대교에서 미리 대기 중이던 유웨이(右衛)파출소 부소장 톈솽(田爽) 등에 의해 경찰차로 링하이시 공안국 국가보안대대로 납치돼 심문당했다. 리 씨는 점심시간이 지나 링하이시 유치장에 보내졌고 보름간 불법 구류처분을 받은 후 강제로 1년 노동교양처분을 받았고, 마싼자 노동교양원 남1소3대대 납치돼 가중된 박해를 당했다.

2011년 7월 18일, 리궈강은 노동교양소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한 5일째 새벽 3시 50분경, 리 씨는 몸에 이상증세가 나타나 여동생에게 “방안에서 사람 먹는 냄새가 나서 너무 코를 찌르는구나. 나가서 한 바퀴 거닐고 올게.”라고 말했다. 여동생은 “밖에 나가 거닐다 돌아오세요. 너무 오랜 시간 걷지 마시고요.”라고 말했다. 5분도 되지 않아 리궈강은 돌아와서는 밖에도 모두 사람 먹는 냄새라고 말했다. 이 말을 하고 난 즉시 리 씨는 입을 벌리고는 힘껏 ‘아, 아’ 외치더니, 몇 번 외치고는 몸을 비틀며 바닥에 쓰러져 흰 거품을 토하며 인사불성이 되어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고, 15분간 인사불성 상태였다가 깨어났다. 오전 4시 10분부터 10시 30분까지 4차례 경련을 일으켰고 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증상을 동반했다.

가족은 리궈강의 이런 상황에 근거해 상의한 후, 다링허 병원으로 보냈다. 병원에서는 리궈강에 대해 피검사, 뇌전도, 두부 엑스레이 검사를 했으며, 첫 번째 실시한 피검사에서 뇌염이라고 진단했다. 3일간 입원 후 상황이 다소 완화되었다. 뇌전도와 엑스레이 검사 결과는 정상이어서 귀가했다.

리궈강의 상황은 때로는 좋았다가 때로는 나빠졌는데, 하루하루 나빠졌다. 소변을 가리지 못했고 대뇌가 기억을 잃어 문을 나서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찾지 못했다. 나오는 대로 말을 했고, 먹을 것이 있으면 사납게 먹었다. 7시간 동안 세끼 밥을 먹었는데, 갈수록 더했다. 아무도 말리지 못했고 늘 심하게 화를 냈다.

2011년 9월 7일, 딸은 그를 진저우시 부속병원에 보내 거듭 검사를 받게 했다. 병원에서는 강자성 공명(磁共振) 검사를 하겠다고 했으나, 리 씨에게 경련이 오자 의사는 곧 진정제를 주사했으나 효과가 없자 세 차례를 주사했다. 진정제가 듣지 않아 리 씨는 결국 자기 공명 검사를 받지 못했다. 의사는 다만 촬영한 엑스레이 사진을 들고, 대뇌 중추신경계통이 감염됐다고 분석할 수 있었다. 그 뒤로는 아무 말도 없었다. 그곳에 10일간 입원했어도 호전이 없어 매일 의료비 1000위안(한화 약 17만 원)이 들었다. 딸은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없어 결국 아버지를 집으로 모셔갔다.

이후 리궈강의 상태는 더욱더 비정상이었다. 온밤 잠을 잘 수 없었고 곳곳에서 함부로 뒤졌으며, 눈동자가 흐리멍덩하고 기억을 잃어 예전 일을 횡설수설했다. 집에서 간호할 사람이 없어 잠시 링하이시 바이양(白羊) 노년양로원으로 옮겼으나 상태는 더욱 비정상으로 되어갔다.

납치돼 노동교양처분을 받기 전, 리궈강은 몸이 매우 건장했고 성격이 밝고 시원시원했으며, 정직하고 선량해 친척, 친구, 이웃들의 눈에서 공인받는 좋은 사람이었다. 1년 사이에 멀쩡하던 건장한 사나이가 박해로 정신이상이 되었다. 친척, 친구들은 리 씨의 증세로 보아 리 씨가 노동교양소에 있을 때 악인이 주사나 음식물에 중추신경 파괴 약물을 넣은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9년 넘는 고통스러운 몸부림 끝에 리궈강은 2020년 1월 3일 억울하게 사망했다.

아내가 수년 전 박해로 사망

리궈강의 아내 왕란즈(王蘭芝)는 1999년 7월 베이징에 청원하러 가서 파룬궁을 위해 몇 마디 공정한 말을 했다. 1999년 10월 28일에 왕란즈 등 17명은 납치돼 베이징 둥청(東城)구 구치소로 보내졌고, 불법적으로 38일 동안 형사 구류처분을 받은 후 즉시 베이징 7처 감옥으로 옮겨져 박해를 당했다.

1999년 12월 4일, 왕란즈는 불법 체포를 당했다. 1개월 후 또 베이징시 둥청구 구치소로 옮겨져 돌아왔다. 이후 또 베이징 둥청구 법원에 의해 6개월의 불법 징역형(1999년 10월 27일~2000년 4월 26일)을 선고받았다.

2000년 1월 17일, 왕란즈 등 12명은 베이징시 제2 중급인민법원에 상소를 제기했으나 원심이 유지됐다. 박해 참여 기관은 베이징시 톈안먼 지역 공안 분국, 베이징시 톈안먼 관리처, 베이징시 톈안먼 무장경찰부대, 베이징시 둥청구 구치소이다. 1999년 11월 16일, 왕란즈는 공직에서 해고당했다. 직장은 진저우(錦州)시 진청 제지주식 유한회사 환경처이다. 총사장은 주즈런(朱智仁)이고 서기는 리밍주(李明久)이며 처장은 류전야(劉振亞)이다.

2000년 4월 26일, 왕란즈는 베이징에서 돌아와 직접 링하이시 진청 파출소에 의해 현지 세뇌반에 보내져 박해당했고, ‘연공 하지 않고, 베이징에 들어가 청원하지 않는다’는 보증서를 쓰도록 핍박당했다. 이들은 또 가족에게서 보증금 천 위안을 갈취했다.

2003년 2월 중순 저녁, 왕란즈는 현수막을 걸어 세인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알려주었다는 이유로 본 공장 공안처(지금의 공안 분국) 처장 왕징산(王景山)이 대동한 사람들에게 납치됐다. 그리고 불법으로 징역 6년을 선고받아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 여자감옥에 감금당해 잔인한 고문을 당했다.

밍후이왕 보도에 따르면, 왕란즈는 감옥에 납치된 첫날 저녁부터 생활용수 공급실로 끌려가서 고문을 당했다. 흉악범 무리가 사납게 구타하고, 신발 바닥으로 왕 씨의 머리, 어깨, 얼굴을 후려쳤다. 왕 씨의 비명에 모든 수감자가 놀라 잠을 깼다. 당시는 11월로 매우 추운 날씨였지만 왕 씨는 매일 저녁 속옷 차림으로 생활용수 공급실에 서 있게 강요당했다. 낮에는 음랭한 공장 방안에서 반성을 강요당하며 매일 사악한 악도에게 구타, 시달림을 당했다. 왕란즈가 대법 책을 모독하는 것을 거부하자, 사악한 악도 장옌핑(張豔萍, 살인범)은 왕 씨의 양쪽 귀뺨을 번갈아 때리고 땅에 눌러 넘어뜨리고 머리칼을 잡아당겼다. 걸을 때마저도 왕 씨의 옷깃을 꽉 붙잡고 걸었다.

살인범 장옌핑이 자술한 데 따르면 다음과 같다. 왕란즈의 귀뺨을 구타했는데, 매번 30번을 초과했다. 인성을 잃은 죄수를 이용해 왕란즈의 몸을 꼬집어 시퍼런 멍이 큰 응어리까지 되게 했다. 장옌(張妍, 절도), 쉬안진춘(玄今春, 마약복용)와 저우쉐잉(周學影, 마약복용)이라고 부르는 죄수가 있었는데, 그녀들은 평소에 무슨 불쾌한 일이 있으면 머리를 완전히 짜내어 구실을 만들어 왕란즈에게 대판 싸움을 벌였다. 왕 씨를 상대로 불만을 털어놓은 후 흉악한 웃음을 드러냈다. 게다가 왕 씨를 때리는 것은 대장에게 보고할 필요도 없다는 말을 퍼뜨렸다. 이로써 대장이 지시해 구타한 것이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또 왕란즈에게 이후 다시 대장을 찾아 이야기하려면 먼저 왕 씨를 감시하는 죄수의 동의를 거쳐야 한다고 했다.

감옥 경찰은 왕란즈가 당한 혹독한 구타에 대해 오히려 보고도 못 본 체했고 듣고도 못 들은 체했다. 게다가 배후의 감시 인원 두 명에게 감시카메라를 없애도록 명령하고, 그녀에게 어떠한 자유도 주지 않았다. 차오스메이(矯世美, 대장)는 손을 더 봐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 몇 명의 흑수(黑手)들은 모두 이미 인과응보가 시작돼 손이 아프고 팔이 아프다고 외쳤다. 왕란즈는 그녀들에게 파룬궁 수련생을 구타하지 말라며,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좋은 점이 없다고 권고했다. 그녀들은 권고를 듣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더 심하게 괴롭혔다. 손이 아프면 신발 바닥으로 구타했고, 옷걸이로 구타했다. 옷으로 왕란즈의 입을 막고 그녀에게 외치지 못하게 했다. 밥을 먹고 걸을 때 자세마저 제한을 받았다.

왕란즈는 악도에게 학대당해 대뇌가 심각하게 자극받아 반응이 매우 늦었고 눈빛이 흐리멍덩했다. 출소해 집으로 돌아갔을 때는 이미 정신이 혼미했다.

2010년 7월, 리궈강이 납치당했을 때, 링하이 유웨이 파출소 톈솽 등은 자택에 불법 난입해 가택 수색을 진행했다. 당시 왕란즈 혼자 집에 있었는데, 놀라서 병세가 가중됐다. 감히 집에 있지 못해 집안의 모든 증명서를 주머니에 담아 몸에 지니고 밖에서 배회했다. 결국, 2013년 새해 초사흗날 억울하게 사망했다.

 

원문발표: 2021년 5월 12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례
원문위치: www.minghui.org/mh/articles/2021/5/12/42503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