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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시 양취안시 왕란팡, 11년의 억울한 징역형 선고받아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산시 보도) 산시(山西)성 양취안(陽泉)시 광안지역의 파룬궁수련생 왕란팡(王蘭芳)은 1999년 4월에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했는데, 7월에 중국공산당은 파룬궁 박해를 시작했다. 왕란팡은 수련을 견지해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가 박해를 당했고, 그 후 불법으로 11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녀는 자신이 수년간의 일부 경험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1959년에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고생했지만, 하늘에 신과 부처가 있다고 믿었고 1999년에 대법 수련을 시작해 매우 운이 좋았다. 나는 사부님 법신의 인도로 대법을 얻었다. 대법을 얻기 전에는 병마에 시달려 일 년 내내 괴로웠다. 어느 하루는 몹시 불편한 느낌이 들었지만, 무의식적으로 밖으로 걸어나가고 싶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연공장 문 앞으로 걸어나가 곧 그들에게 뭘 하는지 물었다. 그들은 “연공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연공한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충격을 받았는데, 그런 감정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마치 전기가 통하는 것 같았고 전심전력 이 공을 배우고 싶었다. 그들은 “당신은 병을 치료하려는 마음을 품고 연공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치료할 수 없을 겁니다. 만약 누가 내 온몸의 병을 다 낫게 한다면 그것은 정말 기적입니다.”라고 말했다. 당시 나는 기공이 병 치료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마음속으로 얼른 심혈을 기울여 동작을 배워 집에서 연마하려고 생각했다. 시간이 있으면 많이 연마하고, 시간이 없으면 적게 연마하는데 이것이 얼마나 좋은가. 막 동작을 배워 알게 됐을 때, 딸이 다리에 화상을 입었다. 그때도 교란인지 몰랐고 마음이 초조했으나 연공할 수 없었다. 그 후 수련생이 나에게 “당신은 반드시 책을 봐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당시 가정생활이 어려워 아직 책을 사지 않았는데 수련생은 책을 봐야만 비로소 당신의 수련을 지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1999년 4월 8일, 나는 ‘전법륜(轉法輪)’ 한 권을 부탁해 가져와 책을 열어 보았는데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은 아주 낯익었다. 게다가 사부님의 법상 왼쪽 눈 아랫부분이 온통 붉은 것을 보았는데, 그 후 다시 보자 사라졌다. 책을 보자마자 마음은 매우 크게 흔들렸고, 무슨 요추디스크, 골 증식, 신경관능증, 결장증, 만성 위염 등이 모두 사라졌다. 걸을 때면 바람이 일어, 나는 듯했다. 예전에는 질병의 시달림으로 나는 정말 살고 싶지 않았는데,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얻고 나는 ‘이번 이 세상은 헛걸음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또 이렇게 위대하신 사존께서 계신다! 이것이 바로 내가 찾으려 하던 것이다’라고 생각하게 됐다. ‘파룬따파(法輪大法)-진선인(真·善·忍)’을 공부한 후 사람과 화목하게 지냈고 일을 함에 먼저 다른 사람을 배려해 주었으며, 이익 앞에서 다른 사람과 다투지 않았고 시시각각 자신을 수련인으로 여겨 모든 일을 함에 ‘진선인(真·善·忍)’을 준칙으로 자신을 단속했다.

1999년 7월 20일, 중국공산당 장쩌민(江澤民) 집단이 광적으로 대법 수련생을 박해하기 시작해, 대법을 모함하고 연공함을 허락하지 않았다. 우리는 곧 성(省) 정부로 가서 이렇게 좋은 공법을 무엇 때문에 연마하지 못하게 하는지에 대해 청원했다. 정부 측은 계엄령을 내려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그들은,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시오. 사흘 내에 답변하겠소.”라고 말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렇게 좋은 공법을 그들이 연마하지 못하게 하자 마음이 매우 괴로웠다.

2001년 1월 13일, 나는 우리 현지 보도원이 우리 집에 두었던 현수막[파룬따파(法輪大法)의 공법 특징]을 베이징으로 가져가 대법을 실증했다. 당시 수련생은 “그것은 다른 사람의 현수막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대법 수련생은 하나의 정체로, 누가 하든지 모두 마찬가지다. 따라서 우리는 톈안먼 광장에서 현수막을 펼쳐, 천상과 지상의 생명에게 모두 파룬따파(法輪大法)의 아름다움을 보여줘야 한다!’ 바로 그 순간 우리 세 사람은 납치돼 자동차 트렁크 안에 갇혔고 베이징에서 50km 떨어진 파출소로 끌려가 학대를 당했다. 그 두 명의 여성 수련생은 구타를 당해 온 얼굴이 모두 시퍼렇게 됐고, 기마자세로 쪼그려 앉히기 고문으로 온종일 괴로움을 당했다. 저녁이 되어 파출소장이 들어와 내 뺨을 두 대 때렸다. 때린 후 그는 얼굴이 붉어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돌아왔다. 그는 나를 구타해 손이 아팠지만, 얼굴은 붉어지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문을 나서며 대법 수련생답다고 말했다. 구타를 당한 후 또 순이(順義) 구치소로 보내졌고, 이튿날 순이 구치소에서 남녀를 함께 끌어내 수갑으로 한 데 채워 어느 곳으로 보냈으며 돈을 전부 몰수했다. 돈을 다 수색해내고는 10명을 한 작은 접대소에 가뒀는데, 꼬박 3일간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그 후 나는 현지 파출소의 류시팅(劉喜亭), 허우하이(侯海), 웨이즈샹(魏志祥) 등에 의해 직접 우쾅(五礦) 파출소로 끌려가 밤새 불법 심문을 받은 후, 불법적으로 양위안시 구치소에서 어떠한 절차도 없이 28일간 감금을 당했다. 그 후 2년 불법 노동교양 처분을 받았고 타이위안(太原) 신뎬(新店) 여자 노동교양소에 감금돼 계속 박해를 당했다.

노동교양소에서 그들은 ‘톈안먼 분신자살’ 가짜 사건을 틀어 놓고 강제로 세뇌를 진행했으나 나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쑨(孫) 씨인 과장이 나에게 어느 해에 대법을 얻었는지 물었는데, 나는 그에게 1999년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자는 99년에 대법을 얻고도 감히 대법을 실증하네.”라고 말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서 하신 “수련은 선후(先後)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씀을 생각했다. 나는 노동교양소 1대의 부중대장 천춘샹(陳春香)에게 분신자살 사건은 가짜라고 알려줬다. 단번에 그녀들은 곧 펄쩍 뛰며 5~6명이 함께 나를 공격했다.

2003년의 어느 날, 우광 파출소의 서기 한(韓) 모씨가 한 무리 사람을 데려와 나에게 서명하고 지장을 찍으라며 위협했다. 나는 그에게 “파룬따파(法輪大法)는 사람에게 선을 행해 도덕성이 향상되게 가르칩니다. 텔레비전에서 대법을 비난하고 모함하는 거짓말을 듣지 마세요. 당신들은 똑똑히 알지 못해요.”라고 말하자 그들은 곧 떠났다.

2004년 3월 15일 밤 12시, 악독한 경찰은 보안 인원 5~6명을 데리고 와서 집 문 앞뒤에서 모두 감시를 진행했으며, 셰퍼드를 끌고 카메라를 메고 문을 강제로 열어 날 파출소로 납치하려 했다. 양취안시 광산 구역의 610의 마모이(馬默意)는 나와 대화하려 했다. 나는 말했다. “가지 않겠습니다. 내가 무슨 법을 위반했나요? 무슨 대화할 것이 없습니다. 장쩌민마저 법정에 올려졌는데 당신들은 아직도 그의 앞잡이로 일합니까.” 내가 그들에게 카메라를 내려놓도록 하자 그들은 내려놨다. 그 후 그들은 “그럼 당신이 우리와 함께 파출소로 한번 가죠.”라고 말했다. 나는 “나는 가지 않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낮에 이야기해요. 밤중인데, 귀신만이 밤중에 나와요!”라고 말했다.

그중 허우하이라고 부르는 한 악독한 경찰은 4~5명의 사람을 시켜 나를 강제로 차에 들어 올리게 했지만, 그들은 들 수 없었다. 허우하이는 화가 나서 그 네 명에게 할머니도 들지 못하냐고 말했다. 그들은 헐떡거리며 들 수 없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서로 대치하고 있다가 그들은 강제로 나를 차로 납치해 파출소로 끌고 갔다. 610의 마모이는 위선적으로 나와 대화했다. 나는 주변에 서 있는 세 명의 보안 인원에 대해 정념을 발했는데, 한 사람은 머리가 어지럽고 한 사람은 배가 아프고 한 사람은 구토하려 했다. 그들은 “이것이 어찌 된 일이야? 당신이 공을 발사한 게 아니야?”라고 말했다. 맨 마지막까지 나는 사상이 똑똑했으나 사지가 굳어져 움직일 수 없었다. 그들은 두려워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그에게 서명시켜 병원으로 보내게 했다. 남편은 “집에 있을 때 멀쩡하던 사람이 당신들이 납치하여 박해해 이 모습이 됐는데, 내가 그 사람의 부모님께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라고 말했다. 그리고 120을 불러와서 나에게 산소를 공급했지만 공급하기도 전에 산소가 모두 없어졌다.

그들은 그 후 나를 구급차에 들어 올렸다. 어린 보안 요원은 너무 무서워서 “나는 이 업무를 하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연세가 많은 사람이, 멀쩡하던 사람이 단번에 이렇게 됐는데, 일단 무슨 일이 있으면 누가 이 책임을 감당하겠나요?”라고 말했다. 다른 한 어린 보안 요원은 “내가 차에 올라 노인을 안을게요. 본래 별일 없었는데, 차에서 떨어진다면 정말 큰일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들이 한 말을 나는 모두 알았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응급실로 가서 심전도 검사를 받았는데 모두 정상이었다. 의사는 그들에게 내가 누구인지 물었다. 그들이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이라고 말하자, 의사는 파룬궁은 병이 없다고 말하며 진찰하지 않고 떠났다. 경찰은 나를 병실로 데려다 놓고 전부 도망쳤다. 그 후 나는 스스로 걸어서 돌아왔다.

나는 박해를 당해 유랑생활을 했다. 어느 날, 나는 거리로 나가 물건을 샀는데 그 사람은 나에게 몇십 위안을 더 거슬러주었다. 내가 그에게 돈을 더 많이 주었다고 하자, 그는 즉시 “지금 아직도 이렇게 좋은 사람이 있나요?”라고 말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아주 이상하게 보았다. 나는 그에게 내가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는 사람이라고 알려주며, 진상 자료를 그들에게 보여줬다. 옆에는 또 한 자동차 기사가 나에게 ‘전법륜(轉法輪)’을 보겠다고 했다. 나는 그가 대법 책에 대해 불경할까 두려워 그에게 내가 먼저 당신에게 빌려주겠으나 다 본 후 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일정 시간이 지나서 나는 그에게 다 보았는지 묻자 그는 웃으면서 “이건 보서(寶書)입니다. 누님, 저는 당신에게 주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들은 후 나는 마음속으로 특별히 기뻤다. 그리고 또 다른 신수련생이 이전에 류머티즘 관절염에 걸려 일 년 내내 솜옷을 입었다. 내가 그녀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 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읽으라고 알려줬다. 그녀도 따라서 수련하고 싶어했다. 그 후 그녀의 눈물 흘리던 고질병이 나았고 솜옷도 벗어버렸다. 그녀 어머니와 여동생, 남동생 일가족 네 식구도 따라서 수련했다.

2008년 12월 1일 아침, 나는 유랑생활을 하던 지역에서 현지 악독한 경찰에게 발견됐다. 경찰은 나와 함께 유랑생활을 하던 아들(수련생)을 차로 납치했다. 그리고 집 열쇠를 수색해 낸 후 나를 찾아 우리 두 모자를 양콴시 구치소로 납치했다. 양콴시 광산 구역 법원에 의해 나와 아들은 각각 11년 형, 10년 형의 불법징역을 선고받았다. 구치소에 있던 기간, 아들은 구타로 머리가 깨져 피가 흘렀으며, 손가락에 대나무 바늘 꽂기, 또 담배꽁초로 팔에 화상을 입는 고문을 당했다. 지금 머리와 팔 위에는 여전히 상처가 있다. 40kg의 족쇄를 10개월 반이나 채워놨는데 감옥으로 가서야 비로소 떼어낼 수 있었다.

 

원문발표: 2020년 7월 24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 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7/24/40927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