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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사이 파룬궁 수련생 6명, 박해받아 세상 떠나다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종합보도) 밍후이왕 통계에 따르면 2020년 1월 20일에서 2월 16일까지 27일 사이에 적어도 6명의 파룬궁(法輪功) 수련생이 중공(中共-중국공산당)의 박해를 받아 사망했다. 헤이룽장(黑龍江) 치치하얼(齊齊哈爾)시 파룬궁 수련생 리후이펑, 랴오닝(遼寧) 선양(沈陽)시 퇴직 교장 리구이룽, 선양 항공엔지니어 파룬궁 수련생 후린, 진저우(錦州)시 헤이산(黑山)현 장전차이, 푸신(阜新)시 우슈팡, 후난(湖南) 웨양(岳陽)시 판원슈 등은 생전에 모두 불법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중공 감옥에서 고문 박해를 받았다.

47살밖에 되지 않는 항공엔지니어 후린은 불법으로 2년형을 선고받았고 2020년 2월 16일 선양시 선베이(沈北) 인자(尹家)향 캉자산(康家山) 감옥에서 박해받아 사망했다. 2020년 1월 중순 78살 퇴직한 리구이룽 교장은 랴오닝성 여자 감옥에서 박해받아 사망했고, 48살 파룬궁 수련생 리후이펑은 12년의 억울한 옥살이를 하면서 잔인한 고문 박해를 받았다. 매달기, 생식기 전기충격, 관샤오하오(關小號: 골방 감금) 등, 한때 박해받아 죽다 살아났지만 2020년 1월 28일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 항공엔지니어 후린, 선양시 캉자산 감옥에서 박해받아 사망

선양시의 47세 항공엔지니어이자 파룬궁 수련생 후린은 2019년 5월 23일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 납치됐다. 불법으로 2년 형을 선고받았고 2020년 2월 16일 오후 1시, 선양시 선베이 인자향 캉자산 감옥에서 박해받아 사망했다.

후린은 2019년 5월 23일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 납치됐다. 6월 20일 파쿠(法庫)현 법원은 불법적으로 2년 형을 선고했다. 후린이 파쿠현 구치소에 갇힌 기간 구치소에서는 그의 사지를 판자에 대(大) 자형으로 곧게 펴서 수갑을 채웠고 음식물 주입하는 튜브를 위장에 꽂은 채 줄곧 빼지 않았다. 구치소는 수용된 죄수에게 후린을 때리라고 사주했다. 구치소에 있던 마지막 한 달 동안 후린을 구석에 몰아넣고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그런 괴롭힘에 그는 뼈만 앙상하게 남았고 다리는 감각을 잃었으며 장기가 쇠약해졌다.

'中共酷刑示意图:绑在床上灌食'
 중공의 고문 시연: 침대에 묶어 놓고 음식물 주입하기 

후린이 박해당해 생명이 위태로워지자 파쿠현 구치소와 파쿠현 공안국은 후린을 감옥에 데려갔다. 감옥 여러 곳에 연락했지만(다베이 감옥 포함) 어떤 감옥도 후린을 받아주지 않았다. 파쿠현 구치소는 사람을 석방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선양시 캉자산 감옥에 돈을 들여 뇌물을 주고 10월 30일 생명이 위태로운 후린을 그 감옥에 보냈다.

11월 7일 후린의 가족이 캉자산 감옥에 면회하러 갔을 때 그는 이미 말라서 뼈만 앙상하게 남았고 몸을 돌리지 못했으며 두 다리는 감각이 없었다. 가족은 후린에 대해 신체검사를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캉자산 감옥 관계자는 검사해 주지 않겠다고 했다. 후린이 그곳에 도착한 후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쳤기에 정치범이어서 죽어도 석방해줄 수 없다고 했다.

사망 전 3개월 동안, 캉자산 감옥은 여러 차례 가족에게 후린이 전향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며 ‘파룬따파하오’를 외치고 밥을 먹지 않으니 그의 생명을 이미 포기했다면서 죽어도 책임지지 않겠다고 했다. 후린의 가족은 그저 흐느끼고 슬퍼할 뿐이었다.

감옥은 설 명절을 쇠고, 전염병을 방역한다는 이유로 가족에게 면회하지 못하게 하고 후린에게 전화도 걸지 못하게 했다. 친척과 친구들은 이 상황을 캉자산 감옥 관할 지역검찰원에 보고하자 검찰원 측은 사람이 죽었을 때 다시 책임 문제를 논의하자고 말했다. 후린의 친구가 선양시 감옥 관리국의 캉자산 감옥을 관할하는 책임자 류싱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아 감옥 관리국을 찾아갔는데 자리에 없다면서 사흘 후에 다시 오라고 했다.

2020년 2월 14일 캉자산 감옥 측은 후린의 형 후쐉에게 전화를 걸었다. 후린이 이미 선양시 선베이 캉자산 감옥에서 병원으로 옮겨져 응급치료를 받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가족이 그날 밤 선양 병원에 다급히 갔더니 창문을 사이 두고 중증 응급실에 있는 후린을 보게 하고 후쐉에게 서명하라고 했다. 16일 오후 1시, 병원 측은 후린을 응급치료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으며 세상을 떠났다고 가족에게 통지했다.

후린이 박해받은 상황은 밍후이왕 문장 ‘중공 폭정 하에 있는 한 항공엔지니어의 비참한 운명’, ‘우수한 엔지니어 후린이 불법으로 재판을 받을 때 판자에 묶여 있었다고 말하다’, ‘생명의 위태로운 후린을 선양시 캉자산 감옥에 보내다’ 등을 참고하기 바란다.

◇ 78살 퇴직한 리구이룽 교장 랴오닝성 여자감옥에서 박해 받아 사망하다

2020년 1월 중순, 78살 선양 파룬궁 수련생이자 퇴직 교장인 리구이룽이 랴오닝성 여자 감옥에서 박해받아 사망했다.

리구이룽은 전 선양시 다둥(大東)구 허쭤가(合作街) 초등학교 교장이었다. 그녀는 5%의 임금 인상 기회를 동료에게 양보했다. 그녀는 문제가 많았던 허쭤초등학교를 질서정연하게 관리해 상사의 신임을 받았고 동료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구(區) 10대 우수 교장’ 영예를 받았다.

2006년 10월 17일 그때 64세인 리구이룽이 민중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리다가 선양시 허핑(和平)구 610 악인에게 납치됐다. 2007년 초 억울하게 7년 형을 선고받고 랴오닝성 여자 감옥에서 각종 고문 박해를 받았다. 그녀를 핍박하여 ‘전향’시키려고 감옥 경찰은 죄수를 사주해 그녀를 혹독하게 때렸다. 딱딱한 신발 바닥으로 두 손을 떼려 손등은 즉시 부었고 시퍼런 큰 혹이 생겼다. 그녀 온몸은 맞아서 청자색으로 멍이 들었다. 한번은 악인이 그녀 머리카락을 잡고 방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녀 머리카락이 한 뭉텅이 빠졌다. 또 쪼그려 앉기 고문을 했다. 하루하고도 반나절, 이틀 반나절을 꼬박 쪼그려 앉게 했다. 그 과정에서 밥을 먹지 못하게 했고 화장실에 가지 못하게 했으며 잠을 자지 못하게 했다. 감옥경찰 대장은 바오자(包夾-24시간 따라다니며 감시하는 사람)를 사주해 리구이룽을 때리게 해 그녀는 온 얼굴이 피투성이가 됐다. 그다음 옷을 만드는 좌판 아래에 그녀를 밀어 넣고 장시간 쪼그리고 앉아있게 했다.

2013년 10월 17일 7년의 불법적인 형기가 만기가 됐을 때 리구이룽은 박해받아 몸이 약해지고 머리카락이 희끗희끗 해졌으며 이가 모두 빠졌다. 감옥에서 석방된 후 파룬궁 수련을 거쳐 리구이룽의 몸은 매우 빨리 정상으로 회복됐다.

2015년 2월 7일 73세인 리구이룽이 파룬궁 진상 자료를 배포할 때 진상을 모르는 사람에게 모함을 당해 공안에게 납치됐고 집을 수색당했다. 2015년 6월 하순, 선양시 훈난(渾南)구 법원은 리구이룽에게 5년 형을 선고했다. 그녀는 줄곧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다.

2020년 1월 중순, 리구이룽은 향년 78세에 랴오닝성 여자 감옥 병원에서 박해받아 사망했다.

◇ 12년 억울한 옥살이 한 헤이룽장 치치하얼 리후이펑이 억울하게 사망

헤이룽장성 치치하얼시 파룬궁 수련생 리후이펑은 12년의 억울한 옥살이를 할 때 잔인한 고문 박해를 받았다. 상다과(上大掛-매달기)를 포함한 생식기 전기 충격, 관샤오하오 등을 포함해 한때 박해받아 빈사 상태에 처했다가 2020년 1월 20일 뇌출혈이 일어나 28일 억울하게 사망했다. 그의 나이는 48세밖에 되지 않았다.

리후이펑(남, 1972년 6월 12일생)은 헤이룽장성 치치하얼시 톄펑(鐵鋒)구 징신(景新) 아파트단지에 살고 있었다. 2001년 1월 22일 치치하얼시 젠화(建華)구 형사경찰 3중대 경찰에게 불법으로 붙잡혔다. 형사경찰 3중대는 리후이펑에게 10만 볼트 고압 전기봉으로 감전시켜 생식기를 타게 했다.

'酷刑演示:电棍电击'
 고문 시연전기봉으로 감전시키기

리후이펑은 생전에 말했다. “2001년 1월 22일 오후 5시경, 형사경찰 3중대 경찰 5명이 수련생 원제 집에 갑자기 뛰어들어와 우리 다섯 명의 눈을 가리고 맨발로 형사경찰 3중대에 끌려갔습니다. 이어서 저를 고문해 자백을 강요했습니다. 제 두 손을 수갑으로 등 뒤로 채운 다음 두 손을 2m 높이 되는 쇠갈고리에 걸어놨습니다. (이런 형벌을 ‘상다과’라고 합니다) 끈으로 두 발을 묶은 후 끈을 당기면 몸이 당겨져 펴집니다. 그런 느낌은 극히 고통스러운데 경찰은 그것도 모자라 옆에서 저를 발로 차 왔다 갔다 흔들리게 해 고통을 가중했습니다. 그러면서 큰소리로 ‘네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면 난 즐겁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음 10만 볼트 되는 전기봉을 켜고 제 생식기에 찔러 넣고 감전시켜 생식기가 탔습니다. 두 팔은 6개월이 지나서야 들 수 있었습니다.”

酷刑演示:吊铐
 고문 시연매달기

2001년 7월 치치하얼시 젠화(建華)구 법원은 리후이펑에게 죄명을 뒤집어씌워 12년 징역형, 4년간 정치권리 박탈 선고를 내렸다. 다칭(大慶)감옥 왕잉제 감옥장은 감옥 행정관리 과장 위안훙쥔, 리톄, 경찰 판리쥔, 천쉐쑹, 왕제원 등 6명을 거느리고 리후이펑을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며 가죽 벨트로 후려쳤다. 경찰은 리후이펑을 강제로 골방에 끌고 가 철의자에 묶어 놓고 경찰봉과 주먹으로 구타하고 7시간 넘게 매달았다.

酷刑演示:毒打
 고문 시연혹독한 구타

2013년 1월 리후이펑은 집에 돌아온 후 현지 공안이 늘 괴롭히자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났다. 2020년 1월 20일 심신에 깊은 충격을 받은 리후이펑은 뇌출혈이 일어나 응급치료를 받았지만 2020년 1월 28일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리후이펑의 아내 장수저도 2001년 1월 22일 납치됐다. 처음에는 불법으로 노동 교양을 받았고 그 후 불법으로 징역형 선고를 받아 하얼빈 여자 감옥에서 박해를 받았다.

◇ 후난 웨양시 선량한 여성 판원슈가 박해 받아 억울하게 사망

후난성 웨양시 쥔산(君山)구 파룬궁 수련생 판원슈는 불법적으로 3년 6개월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후난 창사(長沙) 여자 감옥에서 잔혹한 세뇌 박해를 받았고 ‘병보석’을 받았다. 당시 열흘밖에 살지 못한다고 말한 의사는 현지 사법국 관계자의 협박을 받았다. 2020년 1월 21일 웨양시 바링(巴陵) 병원에서 향년 53세 나이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范文秀在病床上'
 병상에 누워 있는 판원슈

판원슈는 1967년 2월 20일생이며 후난성 웨양시 쥔산구에서 태어났다. 그녀 육친을 포함해 판원슈를 아는 사람은 모두 판원슈가 매우 선량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판원슈가 29살 때 남편은 다른 사람의 오인 공격으로 살해됐는데 지금까지 범인을 찾지 못했다. 당시 그녀의 딸은 매우 어렸고, 선량한 그녀는 딸을 위해 외지에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딸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기 전까지 생활비를 내주었다.

2017년 9월 1일 판원슈는 쥔산구 쉬스(許市)진 진펀(金盆)촌에서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 진상을 모르는 사람이 경찰에 고발해 웨양시 쥔산구 분국 쉬시전 파출소 등의 경찰에게 납치됐고 재산을 몰수당했다. 2018년 2월 2일 쥔산구 법원은 판원슈를 불법으로 재판해 변호사 없이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하고 5천 위안(약 85만 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판원슈 오빠와 언니들은 그녀의 병원 진단서 등 증명서를 갖고 각 부처를 찾아가 암에 걸렸던 여동생이 몸을 휴양할 수 있도록 집에 돌아가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공검법(공안, 검찰, 법원) 기관은 판원슈 진단서를 받고 등록은 했지만, 집에 돌려보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암이 있어도 감옥에 보내겠다고 말했다.

2018년 3월 13일, 판원슈를 창사 여자 감옥에 보내 계속 불법으로 가두고 박해했다. 감옥에서 판원슈는 잔혹한 세뇌 박해를 받아 건강 상태가 악화되어 암이 재발해 갑자기 쓰러졌다. 감옥 측은 가족에게 병원에 가 서명하라고 통지했다. 7월 27일 창사 감옥 병원에서 수술할 때 의사는 대장 천공을 발견했고 또 다른 한 난소에서 종양을 떼어 냈다. 화학 검사를 거쳐 이미 악성종양 말기라고 진단했다. 의사는 치료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당시 한 권위 있는 의사가 열흘밖에 살지 못한다고 말했다. 감옥은 그제야 가족에게 ‘병보석’ 절차를 밟고 몸이 매우 허약한 판원슈를 데려가라고 했다.

가족은 판원슈를 웨양의 한 병원에 입원시켰는데 몸이 좀 회복되자 얼마 되지 않아 퇴원하고 집에서 조리했다. 법공부를 많이 하고 연공, 발정념을 해서 몸이 거의 건강을 회복했고 밖에 나가 채소를 사고 집에서 밥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19년 3월경, 쥔산구 사법국의 몇몇 불법 관계자는 판원슈의 임대주택에 뛰어들어 강제로 감시기기를 달자 판원슈는 놀라서 정신적 충격을 받아 병세가 악화했다. 며칠 되지 않아 혈변을 보았고 부종이 생겼으며 소변이 잦았다. 그런데도 쥔산구 사법국 관계자는 여전히 그녀를 괴롭혔다.

판원슈는 2020년 1월 21일 웨양시 바링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 진저우시 헤이산현 장전차이, 다롄 감옥에서 박해받아 사망

진저우시 헤이산현 파룬궁 수련생 장전차이, 장롄룽 부부는 2019년 7월 14일 진상을 알리다 납치된 후 불법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장전차이는 불법으로 다롄의 한 감옥에 갇혔는데 2020년 2월 7일에 박해받아 사망했다. 지금 장롄룽은 불법으로 마싼자에 수감되어 있다.

2019년 7월 14일 저녁, 10시경 헤이산현 둥관(東關)촌 파룬궁 수련생 장전차이, 장롄잉 부부는 사람들에게 파룬따파하오 진상을 알리기 위해 밖에 나가 진상을 전하다 수신위안(舒心園) 부근에서 납치됐다.

2019년 7월 15일 오전, 경찰과 대대서기가 장롄룽, 장전차이 부부 집에 와서 며느리에게 방에 들어가 봐야겠다고 말했다. 며느리는 열쇠가 없다고 말했다. 경찰은 자기들에게 있다면서 장롄룽, 장전차이 부부에게서 빼앗은 열쇠로 문을 열고 방에 들어갔다. 경찰은 방안에서 불법적으로 ‘공산주의 최종 목적’ 반제품 한 상자를 수색해 냈고, 또 큰 칼, 풀 등 적지 않은 물건을 찾아냈다.

2019년 7월 29일에 장롄룽, 장전차이 부부가 불법으로 체포됐으며. 헤이산현 공안국 경찰은 그들을 모함해 검찰에 고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후 헤이산현 법원은 장롄룽, 장전차이 부부에게 불법으로 징역형을 선고했다. 장롄룽은 2년 2개월 형을 선고받은 후 마싼자에 수감됐고, 장전차이는 불법적으로 1년 11개월 형을 선고받고 다롄의 한 감옥(어느 감옥인지는 분명하게 모름)에 갇혔다.

2020년 1월 23일 다롄 감옥의 감옥 경찰이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장전차이가 췌장암에 걸렸다고 말했다. 2주 후인 2월 7일 장전차이는 감옥에서 세상을 떠났다.

◇ 박해받아 식물인간이 된 랴오닝 푸신시 우슈팡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망

랴오닝성 푸신시 파룬궁 수련생 우슈팡은 불법으로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18년 8월 19일 감옥에서 석방될 때 그녀는 이미 뼈만 앙상하게 남은 식물인간이 됐다. 2020년 2월 8일 박해받아 64세에 세상을 떠났다.

우슈팡(여, 사업기관 기술원)은 2015년 8월 18일 파룬궁 진상 스티커를 붙이다 푸신시 하이저우(海州)구 공안국 경찰에게 납치돼 불법으로 신디(新地) 구치소에 갇혔다. 우슈팡은 경찰, 검찰원으로부터 모함받아 불법으로 3년 형을 선고받았다. 2016년 6월 말 랴오닝성 여자 감옥에 납치됐다. 랴오닝성 여자 감옥에서 우슈팡은 박해받아 뇌출혈이 나타났다. 지인에 따르면 우슈팡은 박해받아 말을 할 수 없었고 눈동자가 움직이지 않았으며 몸이 말라 뼈만 앙상하게 남았고 스스로 생활할 수 없었으며 코에 호스를 꽂고 있었고 밤낮으로 사람이 옆에서 돌봐줘야 했다.

2018년 8월 19일 가족이 그녀를 데려왔을 때 이미 뼈만 앙상하게 남은 식물인간이었다. 우슈팡을 시광산 종합병원에 보냈었는데 마음씨 좋은 분들이 이 병원을 찾아갔을 때 우슈팡은 8월 30일에 이미 퇴원했다. 주치의는 우슈팡은 의식이 없지만 아픔은 느낄 수 있었으며 콧줄로 관리했었다고 말했다.

딸 한 명밖에 없는 우슈팡은 딸과 사위가 돌봐주어야 하는데 그들은 출근해야 했다. 우슈팡은 박해받고 연금이 지급되지 않아 세상 뜨기 전까지도 그녀는 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원문발표: 2020년 2월 28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2/28/40179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