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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간 억울하게 옥살이한 헤이룽장 치치하얼 리후이펑, 심한 상해로 사망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헤이룽장 보도) 헤이룽장(黑龍江)성 치치하얼(齊齊哈爾)시의 파룬궁 수련생 리후이펑(李惠豐)은 12년의 억울한 옥살이 기간에 큰 괘에 올리기, 생식기에 전기충격 가하기, 독방에 가두기 등 잔인무도한 고문을 받았다. 심한 박해를 받은 그는 2020년 1월 20일 갑자기 뇌출혈 증상이 나타났으며, 1월 28일 48세로 억울하게 사망했다.

리후이펑(남, 1972년 6월 12일생)은 헤이룽장성 치치하얼시 톄펑(鐵鋒)구 징신(景新) 주택 단지에 살았다. 2001년 1월 22일 치치하얼시 젠화(建華)구 형사경찰 3중대에 불법으로 납치되어 10만V의 고압 전기봉 충격으로 생식기가 탔다.

酷刑演示:电棍电击
고문 재연
: 전기충격

리후이펑은 생전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2001년 1월 22일 저녁 5시경 형사경찰 3중대 경찰이 수련생 원제(文傑)의 집에 갑자기 들이닥쳤다. 우리 5명은 눈이 가린 채 맨발로 형사경찰 3중대로 끌려갔다. 그들은 내게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했다. 두 손을 등 뒤로 하여 수갑에 채우고는 2m 높이의 쇠갈고리에 걸었다(이것을 ‘큰 괘에 올리기 고문’이라 함). 그다음 두 발을 묶고는 끈으로 몸을 잡아당겼다. 이 고문은 극히 고통스러웠다. 경찰은 이것에 만족하지 않고 바로 옆에서 내 몸을 발로 걷어차서 몸이 왔다 갔다 하며 흔들거리게 하면서 고통을 가중했다. 그러면서 ‘당신의 고통이 내 즐거움이다.’라고 소리쳤다. 그런 다음 10만V의 전기봉 충격으로 내 생식기를 태웠다. 나는 두 팔을 6개월 후에야 들 수 있었다.”

이튿날, 리후이펑은 치치하얼 하얼빈시 제2구치소로 이송됐다. 그곳에서 1년간의 박해로 피골이 상접했다.

2001년 7월, 리후이펑은 치치하얼시 젠화구 법원에서, 억지로 법원에 의해 뒤집어씌운 죄명으로 징역 12년과 정치적 권리 박탈 4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법원 송달서에 ‘판결에 불복해 상소한다.’라고 쓰고는 구치소로 돌아온 후 항소장을 법원에 넘겨주었다. 그러나 치치하얼시 중급인민법원의 2심 판결문에는 리후이펑과 원제(원제는 불법 징역 11년을 선고받고 상소했음)가 1심 판결을 수용하여 상소하지 않았다고 씌어 있었다.

2002년 1월 24일, 리후이펑은 하얼빈 제3감옥으로 이송되어 박해받았다. 그곳에서 집중훈련대의 경찰 황(黃) 모 대장과 궁다웨이(龔大偉)는 리후이펑이 자백하지 않자 독방에 가두고 심한 상해를 입혔다. 그들은 2월의 추운 날씨에도 솜옷을 입지 못하게 했으며, 창문을 모두 열어놓고 저녁에 이불도 주지 않았다. 매일 소량의 옥수수죽만 주었으며, 형사범 두 명에게 그를 감시하게 했다. 그는 39일 동안 갇혀 사경을 헤매서야 풀려났다.

보름 후, 리후이펑은 6감구로 이송되어 밤낮없이 형사범의 감시를 받았다. 또한, 인신 자유 제한, 강제 노동, 사상보고서 강제 작성, 삼서(三書) 강제 작성, 폭로․비판서 강제 작성 등의 박해를 받았다. 대대장 주원천(朱文臣)과 탕신민(唐心民)은 그를 욕하면서 모욕했으며, 가족이 부쳐준 돈과 물건을 압수해버려 그는 세수 용품도 살 수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가족이 보낸 우편물도 압수하는 등 비열한 짓을 했다. 탕신민은 또한 형사범에게 리후이펑을 구타하게 하여 심한 상해를 입히는 등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 법을 위반했다.

하얼빈 감옥의 610 사무실 주임 천수하이(陳樹海)와 리푸차이(李福才)는 늘 리후이펑을 비롯한 파룬궁 수련생을 강제 세뇌했고, 파룬궁을 박해하고 모욕하는 영상을 강제로 보게 했다.

하얼빈 감옥 경찰은 2001년부터 2004년 사이 형사 죄수에게 파룬궁 수련생을 구타하라고 지시하여 여러 명을 사망하게 하거나 불구가 되게 했다. 하얼빈 감옥은 외부의 압력과 박해받은 파룬궁 수련생의 고소 때문에, 박해 진상을 감추기 위해 2004년 7월 1일 하얼빈 감옥의 파룬궁 수련생 108명을 다칭(大慶), 타이라이(泰來), 무단장(牡丹江) 등지의 감옥으로 옮겨 박해했다. 리후이펑을 비롯한 파룬궁 수련생 30명은 2004년 7월 1일 다칭 훙웨이싱(紅衛星) 감옥으로 이송됐다.

파룬궁 수련생 30명이 다칭 감옥으로 이송된 후, 다칭 감옥은 헤이룽장성 노동 교화국(勞改局)과 함께 박해 진상을 덮어 감추고, 파룬궁 수련생들에게서 옷과 일상용품, 이불, 세탁 용품을 제외한 모든 물건을 압수했다. 7월 9일, 리후이펑은 1감구로 배치됐다. 이곳에서도 인신 자유가 제한되었고 가족과의 면회가 허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다칭 감옥에 주재하는 검찰원에 준 고소장도 불법으로 압수되었다.

2006년 3월 1일 1시가 넘은 한밤중, 다칭 감옥장 왕잉제(王英傑)는 옥정과장 위안훙쥔(袁紅軍), 리톄(李鐵), 경찰 판리쥔(樊利軍), 천쉐쑹(陳雪松), 왕제원(王傑文) 등 6명을 데리고 와서는, 2대대 3중대에 불법으로 감금된 파룬궁 수련생 리후이펑과 리하이, 샤융(夏勇)을 박해했다. 왕잉제가 직접 지휘하는 가운데 경찰 몇 명이 손찌검했다. 그들은 파룬궁 수련생 3명을 침대에서 땅으로 끌어내려 무차별 폭력을 가하고 가죽띠로 후려쳤다. 악독한 경찰은 리후이펑에게 강제로 죄수복을 입혀 독방으로 끌고 가서 철제 의자에 채워 경찰봉과 주먹으로 구타했다. 그다음 큰 괘에 올리기 고문을 7시간가량 가한 후 의자에서 풀어 내리고는 독방에 가두고 죄수가 24시간 동안 지키도록 했다. 그들은 또한 파룬궁 수련생 3명의 개인 물품을 부숴버렸고, 현금 350위안을 강탈하고 옷과 일상용품 그리고 우편물을 현장에서 불태워 없앴다. 리후이펑이 왕잉제에게 경찰이 사람을 구타했다고 하자 왕잉제는 눈을 부라리며 구타를 부인했다. 리하이는 구타로 늑연골 한 개가 부러져 1개월가량 몸을 옆으로 눕히지 못했다. 그러나 리하이를 데려가 검사한 경찰은 아무 일도 없다고 그의 가족에게 거짓말했다.

리후이펑은 다칭 감옥에서 받은 5년간의 박해로 심신에 심한 상해를 입었다. 2013년 1월, 억울한 옥살이가 만료되어 집으로 돌아왔으나, 현지 공안이 늘 소란을 피웠기에 부득이 고향을 떠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현지 경찰은 여전히 그를 놓아주지 않고, 매번 이른바 민감일 이면 그의 가족에게 소란을 피웠다.

2019년 70년 국경일 전, 치치하얼 공안은 안정 유지를 명분으로, 리후이펑이 사는 지역의 파출소 경찰을 찾은 다음 리후이펑의 직장으로 가서 소란을 피워 그에게 매우 큰 압력을 조성했다. 2020년 1월 20일, 심신에 심한 타격을 입은 리후이펑은 갑자기 뇌혈전 증상이 나타나 응급처치를 받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결국, 2020년 1월 28일 억울하게 사망했다.

리후이펑의 아내 장수저(張淑哲)도 리후이펑이 납치되었던 2001년 1월 22일 납치됐다. 먼저 불법 노동 교양처분을 받은 후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아 하얼빈 여자감옥에서 박해받았다.

누가 화목하고 행복하던 이 선량한 가정에 재난을 가져다주고, 가족이 단란하게 모이는 설 명절에 가족의 사망으로 가정에 고통을 안겼는가? 바로 대법을 박해하고 ‘진선인(眞․善․忍)’을 적으로 삼은 중국공산당 장쩌민(江澤民) 사악 집단이다! 국내외의 정의롭고 선량한 인사들이20년에 걸친 피비린내 나는 이번박해, 그리고 현재 여전히 박해받고 있는 파룬궁 수련생과그 가족에 대해 계속관심을 가져, 인성을 완전히 상실한 이번 박해가 하루빨리 끝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원문발표: 2020년 2월 1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2/1/40056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