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2010년 4월 22일] 2010년 3월 19일 랴오닝성 선양에는 함박눈이 내렸다. 오전 10시경 스잉춘(史迎春) 가족은 장례식장(殡仪馆)에 도착했다. 감옥에서는 이미 150여 명의 경찰을 배치하여 이곳을 지키고 있었고, 8명의 가족들을 강제로 두 팀으로 나누어 시체를 보게 했다. 전반 과정에 가족들 주위에는 모두 경찰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가족들은 스잉춘의 시체가 분명하게 처리되었음을 발견했다. 수의를 입혔고, 두 귀는 멍들고 부었으며, 엉덩이 부위에는 작은 상처가 3곳 있었다. 바지에는 두 군데 피가 묻었고, 어깨에는 이빨자국이 있었다. 가족들이 묻자 경찰은 “사체를 검진할 때 조심하지 않아 부딪쳤다.”고 말했고 (시체가 부딪쳐도 피 날수 있나?) 사체검진을 완료했으므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사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가족이 없는 상황에서 실시한 사체 검진은 근본적으로 무효이다. 하루 전 3월 18일 아침 7시에 후루따오(葫蘆島)시 롄산(連山區)구 보하이(渤海) 제따오 베이닝지역(北寧社區 )의 강씨라는 사람이 스잉춘의 집에 와서 가족들에게 “랴오닝 여자감옥에서 전화가 왔는데, 즉시 스잉춘을 집으로 데리고 가라. 병이 중하다”고 전했다.
랴오닝성 후루따오시 부녀 스잉춘은 단지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수차례 중공당국에 납치되어 박해받았다. 그리고 두 번의 불법 노동교양으로 5년 동안이나 고통을 받았다. 2008년 8월 2일 또 납치됐고, 비밀리에 7년 불법판결을 받았으며, 박해로 사망하기까지 계속 랴오닝성 여자감옥에 감금되었다.
스잉춘(여, 1952년 1월 20일 출생)은 올해 60세로 후루따오시 롄산구 베이닝사구 보하이 가도에 거주하며 야채를 팔아 생활했다. 그녀는 치통, 담낭염, 신경쇠약 등 여러 가지 질병이 있어 치료를 받았으나 효과가 없었다.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려는 생각에 1995년에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수련한지 약 한 달이 되자 모든 병증이 완전히 사라졌고, “쩐, 싼, 런(眞,善,忍)” 법리의 지도하에 수련자의 너그러운 심태로 자신을 요구하고, 전에 있던 친척간의 모순도 화해했다. 수련중에 그녀는 몸과 마음이 동시에 개선되는 것을 체험했다. 일가족 세 식구가 대법을 수련하니 항상 상화롭고 행복했다.
1999년 ‘7. 20’이후, 중공 장쩌민 집단은 파룬궁 수련생들을 잔혹하게 탄압했다. 스잉춘 가족도 나뉘어 노동교양소에 보내져 박해를 받았다. 남편과 아들은 불법으로 후루따오시 노동교양소에 갇혔다. 이때부터 행복했던 세 식구는 사분오열되었다. 스잉춘의 아들 왕줘(王茁)는 아직도 마산쟈 노동교양소에서 박해를 받고 있다. 가족들은 왕줘가 엄마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도록 요구했으나, 감옥에서는 핑계를 대어 지체하고, 아들은 아직까지 엄마가 박해로 사망한 소식을 모르고 있다. 그의 부친은 아들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
1. 연공했다는 이유로 불법구류 당하고 후루따오시 구치소에서 불법박해를 받다
1999년 7월, 중공과 장쩌민은 파룬궁 박해를 시작했다. 스잉춘은 대법을 수련하여 많은 이익을 얻었기에 연공을 견지했다. 99년 7월 말(23일 전후), 공원에서 연공하다가 납치되었고 집은 불법수색 당했다. 경찰들은 스잉춘의 집에서 《전법륜》10여권, 설법비디오테이프 3세트, 설법 녹음테이프 한 개, 사부님 법상 액자, 파룬 도형 네 폭 및 기타 대법서적 10여 권을 빼앗아 갔다. 이후에 스잉춘은 불법으로 7일 동안 구치소에 감금되었다.
경찰은 불법심문하며 물었다. “연공하지 못하게 했는데 왜 아직도 연공하느냐?” 스잉춘은 말했다. “파룬궁은 사람을 선하도록 가르쳐주었는데,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틀리지 않다.” 경찰은 또 물었다. “좋으면 집에서 연공하지.” 스잉춘은 말했다. “좋은 일을 하는데 왜 사람들이 아는 것을 두려워하나? 국가에서 인민은 신앙의 자유가 있다고 규정하지 않았는가?” 경찰은 도리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을 풀어주지 않았다.
구치소에서 스잉춘은 연공을 견지했다고 뚱뚱한 경찰(당시 오, 육십여 세)의 발에 차여 땅에 넘어졌고, 28시간 동안 등 뒤로(背铐) 수갑을 채워졌다. 수갑은 살을 파고 들어 두 손이 찐빵처럼 부었고, 두 다리와 발은 자주색으로 변했다.
2. 또다시 연공하였다는 이유로 납치되어 후루따오 구치소에서 잔인한 박해를 받다
99년 10월 5일, 스잉춘은 연공을 견지했다는 이유로 또다시 후루따오시 롄산구 공안분국에 납치되었다. 그 후에 후루따오시 구치소에 불법으로 감금되었다. 구치소에서 세 차례에 걸쳐 “연공하겠다” 또는 “연공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을 거절한 이유로 구치소 소장 리야제(李雅傑), 저우제(周潔), 그리고 이름 모를 뚱뚱한 경찰(50여 세)에게 혹독하게 맞았다.
한 번은 리야제(李雅傑)는 스잉춘을 복도로 불러내 사람을 불러 그녀의 바지를 벗기고 땅에 엎드리게 하고 말했다. “너 연공한다고 했지? 이리 와라, 우리 둘이서 우선 연습하자.”고 말한 다음 리야제는 손에 고무호스를 잡고 스잉춘의 엉덩이를 한바탕 호되게 때렸다. 때리다가 지치면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면서 때렸다. 그녀들이 따귀를 때릴 때, 한번만 맞아도 눈에서 별이 보이는데 어떤 때는 신발 바닥으로 때렸다. 한 번은 강제로 옷을 벗겨 팬티만 남기고 승냥이 이빨모양(狼牙棒) 방망이로 때렸다. 내리칠 때마다 가시가 살에 박혀 고통을 참기 어려웠다. 악경들이 승냥이 이빨 방망이로 36번을 때려 피부가 갈라지고 팬티는 살을 파고 들어갔다. 철근으로 두 손목을 졸라 철근이 살을 파고들었고, 발에는 족쇄를 채웠으며, 구두로 얼굴을 때렸다.
한번은 ‘바람 쐬는’시간에 저우제는 스잉춘을 불러와 손바닥으로 얼굴을 때렸다. 한바탕 때리고 나니 손이 아파서 스잉춘의 신발을 벗겨서 신발로 얼굴을 때렸다. 좀 있다가 스잉춘의 왼쪽 눈이 부풀어 올라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때렸는데 얼마나 때렸는지 모른다.
리야제는 스잉춘이 연공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하루는 사람을 불러 스잉춘의 손에 수갑을 채우고 발에는 족쇄를 채웠다. 그리고 더러운 수건을 가져다 한 끝은 족쇄에 매고 다른 한끝은 그녀의 이빨로 물게 했다. 수갑을 등 뒤에 채워 허리를 펴지 못하게 한 채 억지로 앞으로 걸어가게 했다. 발을 들 때도 매우 무거웠고 내딛기도 아주 힘들었는데 한 걸음 걷기가 매우 고통스럽고 괴로웠다. 그리고 무릎을 꿇게 했는데 한번 굻어 앉으면 몇 시간씩이다. 땀이 얼굴을 타고 내려와 땅 바닥까지 젖었다. 저녁에는 잠을 재우지 않고 앉거나 서있게 했다. 어느 날 흉악한 리야제마저 스잉춘의 온몸이 상처투성이고, 두 손이 찐빵처럼 부은 것을 보고 감탄을 하며, “살인범도 너처럼 이렇게 고생하지 않았다.” 고 말했다.
3. 2년 불법 노동교양 동안 마산쟈에서 받은 박해
스잉춘은 구치소에서 20여 일 동안 박해 받은 후, 불법으로 노동교양 2년을 선고받고 랴오닝성 마산쟈 노동교양소로 보내졌다. 마산쟈 여자 2노동교양소에서 스잉춘은 신앙의 권리를 수호하기 위해 단식하며 불법 박해에 대해 항의했다. 지리(吉利)라고 부르는 경찰은 그녀를 사무실로 불러와 다른 경찰과 함께 전기 방망이로 동시에 전기고문 했다. 한 사람은 발에, 다른 한 사람은 상반신과 얼굴에 전기 충격을 가했다. 전기방망이에서는 ‘팍팍팍’ 하는 소리가 났고, 그녀는 전기 충격으로 온몸을 격렬하게 떨었다. 또 10시간 넘게 서 있게 하는 벌을 세웠다. 불법경찰들은 범인을 사주하여 파룬궁 수련생들을 박해했다. 쪼그리고 앉기, 거꾸로 엎드리기 등 끊임없이 괴롭히는 수단을 바꿨다. 어느 날 저녁, 경찰은 범인을 시켜 스잉춘을 끌고 화장실 작은 의자에 앉게 하고, 마포 걸레를 더러운 물통에 넣었다가 꺼내어 얼굴과 머리에 반복해서 문질렀다. 갑자기 코 위에서 멈추었는데, 그녀는 코가 막혀서 숨을 쉴 수가 없어 입을 벌려 숨을 쉬였다. 결국 더러운 물과 물질이 모두 뱃속에 들어가고, 온 몸에는 더러운 물이 가득하고 얼굴과 머리는 끈적거렸다.
한번은 스잉춘이 강제걷기를 거절하자 지리는 두 사람을 데려와서 세 사람이 동시에 전기방망이로 발바닥, 손바닥, 얼굴과 입에 충격을 가하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너를 굴복시키기 전에는 끝나지 않는다.” 얼마 안 되어 스잉춘은 심장이 튀어 나올 것 같은 것 같았다. 당시 아주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전기방망이에서 소리가 안 났다. 경찰은 밧데리가 없다고 말했다. 경찰들은 포기하지 않고, 세 개의 전기방망이를 충전하면서 스잉춘을 걷게 하였으나 스잉춘은 거절하였다. 또 강제로 기어가게 하였으나 또 거절했다. 지리는 범인 몇 명을 불러와 두 사람이 스잉춘의 두 어깨를 잡고 한 사람이 뒤에서 밀고 당기며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뛰었다. 뛰다 지치면 다른 팀과 바꿔 계속 뛰었다. 몇 번 돌다보니 스잉춘의 온 몸은 땀투성이가 되었다.
또 한번은 연공했다는 이유로 장씨라는 대대장이 스잉춘을 사무실로 불러 그녀의 옷을 벗기고 손을 등 뒤에(背铐) 놓았다. 손에 전기방망이를 들고 벽에는 또 전기방망이 한 개를 충전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전기방망이 두 개를 이용해 동시에 얼굴과 허리에 잠깐씩 충격을 가했는데 머리카락은 충격을 받아 온 땅바닥에 널렸다. 좀 있다 다른 범인 한 명을 불러 도와주도록 했다. 그 범인은 집중적으로 발바닥에 충격을 가했는데 발바닥에 구멍이 나서 선혈이 흘렀다. 그래도 그녀들은 멈추지 않았다. 스잉춘의 얼굴은 아주 커다랗게 부었고, 걸을 때면 허리와 다리는 아주 힘이 들었다. 이번에도 그녀들은 스잉춘을 박해했을 뿐만 아니라, 연공을 견지하는 다렌 수련생을 옆방 사무실에 가두고 스잉춘이 박해받는 소리를 듣게 하여 협박하고 위협했다.
“쩐, 싼, 런(眞,善,忍)” 신앙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스잉춘은 마산쟈 노동교양소에서 2년간 박해를 받는 동안 비인도적(非人折磨)인 시달림을 받았다. 수 차례 여러 개의 전기 방망이로 고문을 받고, 지독하게 맞아 왼쪽 눈이 실명하고, 혈압이 올라갔는데 저혈압 수치는120, 고혈압 수치는 180이었다.
2001년 10월 24일 경, 보하이 파출소 경찰은 마산쟈로 스잉춘을 데리러 갔는데 오기 전에 마산쟈에서는 스잉춘에게 불법음식물을 투입한 비용 600위안을 강탈했다. 그리고 보하이 파출소 경찰은 스잉춘을 집에 보내지 않고 보하이 파출소로 끌고 갔다. 경찰 줘융펑(卓永鵬)은 업무보고를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스잉춘을 협박하여 “밖에서 연공안함, 청원 안함, 표어 안 붙임” 등의 보증서를 쓰게 했다.
4. 연공했다는 이유로 납치당해 세 번째로 3년 불법 노동교양하다
집에 돌아온 지 6일 후, 스잉춘은 ‘밖에서 연공 안한다’는 보증서를 쓰지 말아야 했다고 생각하고, 다시 공원에 나가 연공하다가 악인의 모함으로 또다시 보하이 파출소에 납치당했다. 렌산구 공안분국에 보내진 날 후루따오시 구치소에 보내졌다. 구치소에 한 달간 불법감금 된 후, 또 마산쟈 노동교양소에 보내져 불법노동교양 3년을 받았다.
마산쟈에서 노동교양소 경찰들이 소위 가상이불(假相被)을 만들었는데 스잉춘이 협조하지 않자 자오징화(赵敬华)는 구타를 했다. (주 : 가상이불(假相被)은 마산쟈에서 외부를 기만하는 수단이다. 딱딱한 종이판을 잘 접어서 이불 옆에 놓는데 이불을 규범에 맞게 정사각형으로 만들 것을 요구한다.) 또한 스잉춘은 연공했다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했다.
이번에 마산쟈에서 받은 육체적인 박해보다 상대적으로 더욱 심각한 것은 정신적인 손상을 받은 것이었다. 불법경찰 츄핑의 미혹과 유혹에 스잉춘은 ‘전화’되어 이른바 “연공 안 한다”는 보증서를 썼다. 그 후 정신적으로 거대한 압력과 고통에 시달리며, 때때로 영문을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 그 후 강제로 정신병원에 보내져 이른바 ‘진찰’을 받고 정신병을 치료하는 약을 받았다. 노동교양소에 돌아와서 억지로 약을 먹게 하고 노동교양소 진료실에서 ‘침’을 맞게 했다. 몸이 괴로워서 침을 한번 맞고 중단하고, 약을 먹는 것도 마음이 괴롭다는 생각에 단 한번만 먹고 끊었다.
5. 불법으로 7년 판결을 받다
2008년 8월 2일 저녁, 스잉춘은 진상소책자를 배포하다가 악인의 신고로 후루따오 시 롄산구 보하이 파출소와 롄산구 국보대대 경찰에게 납치되었다. 그날 저녁 10시경 후루따오시 롄산구 국보대대, 보하이파출소 보안 6, 7명은 스잉춘에게서 빼앗은 열쇠를 가지고 집 문을 열고, 대법서적 20여 권과 진상자료를 강탈하고, 집에서 자고 있는 남편을 납치했다. 그들 두 사람은 보하이 파출소에 불법으로 감금되었다가 이튿날 오전, 후루따오시 구치소에 불법감금 되었다. 남편은 보름 동안 불법으로 형사구류 당한 후에 석방되었다.
가족에게 통지하지 않고 스잉춘을 비밀리에 불법으로 7년 판결을 내리고, 10월 22일 랴오닝성 여자 감옥에 보냈다 .
스잉춘의 아들 왕줘는 2008년 10월 21일 오후 3시에 집에서 납치되었다. 그가 거주하고 있는 구역 보안이 ‘등기’한다는 이유로 문을 열게 한 후에, 후루따오시 롄산구 화지 가도 파출소 경찰 리광위(李廣玉)와 후루따오시 롄산구 국보대대 악인들 몇 명이 집에 들어와 약탈하였다. 그리고 왕줘를 강제로 후루따오시 싱청서우산 구치소에 끌고 간 후, 다시 랴오닝 성 마산쟈 노동교양소에 보내 박해를 받게 했다.
스잉춘이 불법으로 랴오닝성 여자감옥 8감시구역에 감금된 후, 리단이 관리[管教]하다가 후에는 양양이 관리했다. 스잉춘은 2010년 3월18일에 박해로 사망했는데 정황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6. 원한이 풀리지 않다
2010년 3월 18일 오전 7시, 후루따오시 롄산구 보하이 제따오 베이닝구의 강씨가 스잉춘의 집 문을 두드리며, 랴오닝성 감옥에서 전화가 왔는데 가족과 연락이 잘 안돼서 파출소에 전화하고, 파출소에서 지역에 전화하여, 스잉춘의 병이 중하므로 가족들이 랴오닝 마산쟈 감옥에 가서 빨리 데려오라고 말했다고 했다.
스잉춘 친척 8명이 당일 오후 2시 30분에 랴오닝성 여자감옥에 도착하니 순강(남) 과 왕즈(여)(이 두 사람이 스잉춘의 후사 처리를 맡았다) 등 몇 명의 경찰은 벌써 그곳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또 왕의사, 양양, 당직 교관 자오모 등이 있었다. 그들은 아주 ‘열정적’으로 스잉춘 가족들을 접대했다.
가족들은 보고 싶은 마음에 바로 스잉춘을 만나려고 했지만, 경찰들은 회피하며 가족들을 여자감옥 초대소로 안내했다. 가족들이 물었다. “사람이 어떻게 되었어요? 아직 숨쉬고 있어요?” 경찰이 “다급해 하지 말고 좀 있으면 당직대장이 당신들에게 과정을 알려줄 것이오.”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스잉춘의 한 친척이 비통한 마음에 침대에 넘어졌다. “무엇을 과정이라고 하는 건가? 과정이라면 바로 끝났단 말이 아닌가? 내가 흉수를 찾아내면 꼭 그에게 목숨을 갚게 하겠다.”
8감시구역 당직교관 조씨의 말에 따르면, 2010년 3월 18일 새벽 2시에 ‘통제도우미’ (경찰들이 지시하여 파룬궁 수련생을 감시하는 범인)가 말하기를 스잉춘이 앉아 있었는데 가슴이 답답하다고 말했다고 했다. 그리고 2시 30분에 스잉춘이 이상한 것을 발견하고 당직대장한테 보고했다. 당직대장은 범인 3명을 불러 스잉춘을 들어 감옥진료실에 가서 응급치료를 하였다. 왕 감옥의는 강심제(強心劑) 2대를 놔주고 혈압이 올라가도록 시도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감옥에서는 120에 전화를 걸어 스잉춘을 739 병원에 이송하여 응급치료 하였으나 반시간 후에 사망선고를 받았다.
가족들이 스잉춘의 사망 원인을 묻자 왕 의사는 대답하기를 “스잉춘이 올 때 얼굴이 창백하고 의식이 똑똑하지 못했는데, 사망한 원인은 누구도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가족들이 경찰 양씨에게 스잉춘을 체벌했느냐고 물었다. 양씨는 없었다고 말했다. 스잉춘은 몸이 계속 좋지 않았으며, 얼굴색도 좋지 않았고, 혈압이 높았으며, 죄를 인정하지 않고, 시키면 불복했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또 물었다. “그녀가 몸이 좋지 않을 때 왜 제때에 가족에게 알려주지 않았나?” 한 경찰이 “가족과 연락이 안됐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2월 8일에 그녀를 보러 왔을 때에 그녀는 몸이 아주 좋다고 말하며, 밥도 많이 먹고, 날마다 일한다고 말했는데, 어떻게 한달이 지나 사람이 죽었다고 말할 수 있나? 그리고 2월 8일에 내가 집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당시 그녀(양양대장)는 기록했다.” 가족들의 질문에 사람들은 벙어리처럼 말을 못했다.
그녀의 남편은 도저히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한 달 전에 그녀를 만났을 때에는 건강했는데, 갑자기 들려 온 비보에 몸을 지탱하지 못하며 통곡하였다. 시체를 보자고 요구 했으나,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내일 보자고 하며 거절했다. 사실 그 당시에 그들은 준비를 못했고, 마음이 켕기고 두려워했다.
19일, 선양에는 함박눈이 내렸다. 오전 10시 전후, 스잉춘 가족은 장례식장에 도착 했다. 감옥에서는 이미 150명의 경찰들을 배치하여 이곳을 지키게 했다. 감옥에서는 두려워서 가족들을 강제로 두 팀으로 나누어서 들여보냈다. 전반 과정에 가족 주위에는 경찰들이 있었으며, 가족들은 많은 경찰들이 엄밀히 감시하는 가운데서 스잉춘의 시체를 보았다. 스잉춘의 시체는 분명히 처리되었고 수의도 입혀 있었다. 가족들이 그녀의 사체를 검사할 때 그녀의 두 귀는 선명하게 부었고, 둔부에는 작은 상처가 세 군데 있었다. 바지위에는 혈흔이 두 방울 있었고, 어깨에는 이빨자국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가족들이 묻자, 경찰은 사체를 부검할 때 조심하지 않아 부딪쳤다고 말했다. (시체가 부딪치면 출혈할 수 있나?)
초대소에 돌아와 경찰 순강이 가족들과 스잉춘의 시체를 화장하는 문제를 상의할 때 가족들을 협박했다. “만일 3일 내에 서명을 안 하면 강제로 화장하겠다. 일체 비용은 가족들이 부담해야 한다. 만약 동의하고 서명하면 일부 보상을 해 주겠다. 가족들이 다시 사체부검을 요구하자 감옥 측에서는 된다고 말하면서, 비용은 가족들이 부담하라고 했다. 가족들은 망설여졌다. 스잉춘의 가족들에게는 낼 수 있는 돈이 없다. 십 여 년 동안 일가족 세 식구는 엄중한 박해를 받았다. 감옥측은 가족들을 겁주고, 속이고, 감시하는, 비열한 수단으로 위협하여 황급히 시체를 화장했다.
또 한 명의 충직하고, 온후하며, 선량한 사람이 중공당국이 파룬궁을 잔혹하게 박해하는 중에 목숨을 잃었다. 가족들은 그녀의 진정한 사망 원인을 알 수 없는데, 이러한 비극은 무수히 발생해왔다. 십 년의 박해로 무수한 남편들이 아내를 잃고, 자식들은 부모를 잃었으며, 노인들은 자녀를 잃었다. 무수한 가정들이 뿔뿔이 흩어졌고, 집도 잃고 가족도 잃었다. 원인은 그들이 단지 “쩐, 싼, 런(眞,善,忍)”을 수련했기 때문이다.
선량한 사람들이여! 잔혹하게 고통 받고 있는 중국의 파룬궁 수련생들을 긴급히 구원하고, 하루속히 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잔인무도한 박해를 저지하여, 이러한 가정 비극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게 하자.
문장발표: 2010년 4월 22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