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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의 은혜 보답할 길 없네

글/광주 대법제자 평안

【명혜망 2006년 8월 27일】1994년 7월 19일부터 27일까지 사부님께서 광주에 오셔서 설법을 하셨다. 나는 인연이 닿아 자비하시고 위대하신 은사님께서 광주에서 하시는 제4기 학습반에 참석했다. 나는 진선인 우주 대법이 사부님의 일언일행에서 체현됨을 직접 목격했다. 정말로 너무나 위대하시고 너무 신기했으며 사람의 언어로 사부님의 신기한 위덕을 표현할 길이 없다.

대법을 배우기 전 나는 허다한 기공을 배웠고, 집에는 호선(狐仙)의 패위를 모시고 있으면서 하루종일 그것에게 통제 당한채 얼떨떨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 보니 정신과 육체 모두 고통스러웠다. 사부님께서 나를 구원해 주시지 않으셨다면 나의 미래는 상상할 수가 없다.

사부님의 설법반에 참석한 지 3일째 되던 날, 강연이 끝날무렵 모두가 강연대 아래에서 사부님을 에워싸고 있었고, 사부님께서는 미소를 지으신채 말씀을 나누고 계셨다. 나도 다가가서 사부님을 자세히 뵙고 싶었고 사부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듣고 싶었다. 내가 사부님과 십여 미터의 거리에 있었을 때 사부님께서는 비록 나를 보고 계시지 않으셨어도 사부님의 왼쪽 눈가에서 한가닥 금빛이 나오면서 나의 몸을 때렸다. 그 당시 나는 그 곳에 서서 꼼짝도 못했고 사부님을 가까이에서 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지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계속 울었는데 또 왜 우는지는 나도 몰랐다. 나는 마음 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사부님께서 저의 고통을 제거해 주신다면 저는 당신을 사부님으로 모시겠습니다.”(허다한 공법에 참가했기 때문에 사부님을 모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9일간의 학습반이 결속된 후 사부님의 박대 정심한 법리는 나의 심령 깊은 곳까지 깊숙히 울렸다. 나의 인생관, 세계관은 모두 철저한 개변이 발생했고 나는 마음 속으로 사부님께 말씀 드렸다. “당신은 바로 저의 사부님입니다. 저는 반드시 다시 당신을 만날 것입니다.”

나는 단호하게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행하면서 나자신을 끊임없이 개변해 나가자 신체도 갈수록 좋아졌다. 또 명랑하고 유머스러워졌으며 인생에서 진정한 추구를 하게 되었다. 생명 속에서 자비하시고 위대하신 사부님을 찾았고 사부님께서는 부체를 제거해 주시고 신체를 정화해 주셨다. 몇 해 동안의 ‘불임증’도 없어져 꼬마제자 한 명이 태어났다.

1994년 12월 21일부터 29일까지, 광주 제5기 설법반이 광주체육관에서 열리게 되었다. 국내외 수련생 5천여 명이 참석했는데 실내에 사람이 가득차게 되어 회의장을 나누어서 했다. 나는 자리를 먼 곳에서 온 수련생에게 양보했다. 보도참 사람이 나에게 공작 인원이란 팻말을 가슴에 달아주어 나는 바닥에 앉을 수 있었으며, 또 걸어 다니면서 회의장 질서를 유지하기도 했다.

학습 2일째 되던 날, 나는 또 가까운 거리에서 사부님을 뵙고 싶다는 집착이 생겨 방석을 들고 회의장 문앞에 앉았다. 마음 속으로 사부님께서 오시면 일어나서 환영할 것이고 가까운 거리에서 사부님을 뵈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곳에 앉은 지 일분도 안 되어 뚱뚱한 한 여자가 나를 내쫓았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누가 당신더러 이 곳에 앉게 하였습니까? 문앞을 막고 있다니, 무슨 체통이십니까? 공작인원이라는 명찰을 어디에서 가져왔습니까?” 나는 그녀의 말에 부끄러워 어쩔 줄 몰랐지만 변론한 길이 없었다. 눈물을 흘리며 한 구석으로 가서 앉았다. 두 다리를 틀어올리고 마음 속으로 “나는 법을 들으러 온 것인데 기어이 가까이에서 사부님을 뵈어서 무엇 하겠는가? ” 바로 이렇게 생각하자 눈물도 멎었고 마음도 평온해졌다. 단번에 40여 분간 결가부좌한채 법도 특별히 진지하게 들을 수 있었다. 마음 속으로는 일종 희열의 감수가 있었고 정말로 아주 행복했다. 사부님의 자비가 각 방면에서 체현되었는데 제자가 집착심을 제거하기만 하면 당신의 작고 작은 소원이라도 사부님께서는 모두 실현시켜 주셨다.

학습 3일 째 되던 날, 자전거를 잠그고 있는데 한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사부님께서 오셨습니다!” 내가 고개를 들어서 보니 사부님께서 몇몇 수련생과 함께 걸어오시고 계셨다. 나는 마치 아이처럼 폴짝폴짝 뛰어 달려가 두 손으로 사부님의 왼손을 잡고 두 번이나 뛰면서 큰 소리로 “사부님 안녕하십니까!”라고 하였다. 크고 높고 위엄있는 신체를 가지신 사부님께서 자상하게 나를 바라보고 계셨고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사부님께서는 회의장을 향해 걸어가셨고 나는 비로소 자전거가 생각났다.

그날 저녁 두 시간동안 설법을 들으면서 나의 오른쪽 팔, 목, 어깨는 두 시간동안 내내 뜨거웠고 그후로 나의 ‘경추병’은 사라졌다. 사부님께서 >에서 말씀하셨던, 불가는 사람을 제도함에 있어 조건을 말하지 않고 보수를 따지지 않으며 이름을 기록하지 않는다는 법리를 직접 목격했다. 사부님의 언행은 모두 그렇게 진(眞)이고 그렇게 선(善)이며 그렇게 자비하셨다. 많은 돈을 써도 치료하기 힘든 고질병을 사부님께서는 자비롭게 무언 속에서 치료해 주셨다. 무량한 큰 은덕을 어떻게 보답하랴.

학습반이 결속될 때 전체 공작인원들은 함께 식사를 했다. 그 당시 사람들이 아주 많아서 테이블을 세 개로 나누어서 앉았다. 나는 처음으로 이런 곳에 참여했기에 사부님과 가까운 위치는 자격있는 노수련생들에게 주었다. 우리 몇몇 신참 일꾼들은 사부님과 가장 멀리 떨어진 세 번째 테이블에 앉았다. 모두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멀리서 사부님을 바라보았다. 사부님께서는 마치 매 개인의 마음을 헤아리신듯 특별히 세 번째 테이블로 걸어오셨는데 모두들 기뻐서 박수를 치면서 환영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 더러 앉으라고 하셨지만 우리는 모두 감히 앉지 못했는데 사부님께서 서 계셨기 때문이었다.

광주의 12월은 날씨가 매우 춥지는 않아도 니트 한 벌은 입어야 했다. 나는 사부님의 왼쪽에 서 있었는데 사부님께서 말씀하실 때 내보내신 에너지는 너무나 컸다. 그 열기는 나의 정수리로 내려와 전신을 통과하여 감격의 눈물이 끊임없이 나의 두 눈에서 흘러나왔다. 사부님께서는 아주 적게 음식을 드셨는데 거의 음식을 드시지 않으셨으며 계속 미소를 지으며 수련생들과 말씀을 나누셨다. 식사가 끝난 후 테이블에 야채, 두부가 남아있자 사부님께서는 포장하여 가져가라고 하시면서 음식을 낭비하지 말라고 하셨다. 사부님의 이 행동은 나의 마음을 진감시켰는데 그 후부터 나는 더 이상 남은 밥과 반찬을 버리지 못했다.

사부님의 가르침은 영원히 나의 마음 속에 새겨져 있다.

문장완성:2006년 08월 26일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6/8/27/136504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