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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춘 대법제자 (梁柏生), 차오양거우(朝阳沟) 강제노동교양소에서 박해로 치사

글/ 지린(吉林)성 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4월 1일] 지린성 창춘시 대법제자 량버성은 대법”眞,善,忍”을 견지하며 수련했으며 두번이나 강제노동교양 박해를 받았다. 차오양거우(朝阳沟)노동교양소에서 여러가지 혹형과 괴롭힘을 당해 숨이 매우 미약하였다. 엄중한 폐결핵병으로 2006년 3월 20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전 최소 5명 대법제자가 차오양거우 강제노동교양소에서 괴롭힘을 당하여 엄중한 폐결핵이 나타난 후 사망하였다.

량버성(梁柏生), 48세, 창춘시 징웨탄경제개발 관광지역 대법제자이다. 1999년 9월 베이징에청원하러 갔다 오는 중에 악경에게 납치되어 위탄진 파출소 악경 및 그들이 고용한 사악분자들에게 여러차례 나무 막대기로 구타를 당하여 쓰러졌는데 온 몸에 상처를 입었다. 99년 9월 20일 불법으로 2년 노동교양 받았고 기일이 만기되자 또 불법으로 2개월 기일을 넘겨 박해를 가해서야 2001년 11월 20일 풀려나왔다.

2002년 3월 량버성은 다시 한번 위탄진파출소에 납치 당해 창춘시 공안국으로 보내져 구타 당하고 호랑이 의자에 앉게하는 등등 형벌을 받았다. 그후 창춘시 차오영거우 강제노동교양소에 납치 당해서 2년 노동교양을 받았으며 몸과 마음은 사당악경들의 엄중한 괴롭힘과 박해를 당했다.

강제노동교양기간에 불법인원들은 강제로 그를 “보증서”를 쓰게하였다. 량버성은 확고하게 대법을 수련하고 마음이 움직이지 앉자 악경은 범인을 이용하여 나무 막대기로 심하게 그를 구타 하였고 그리고 나서 또 그의 옷을 벗겨버리고 화장실에 밀어넣고 바닥에 넘어지게하여 고압 수도 꼭지로 그에게 물을 끼얹었고 뼈를 깎는 차가운 물로 그가 얼어서 생명을 잃을 정도까지 진행하였다. 량버성이 깨어난 후 악인은 또 강제로 그를 시멘트 바닥에 앉게하고 저녁에는 잠을 못자게 하여 량버성의 몸은 끊임없이 고열이 났다. 그리고 낮에는 또 강제로 작업장에 가서 일을 하게 였다.

일주일 이내 량버성은 이러한 잔혹한 형벌을 5번이나 당했다. 그후 부터는 온 종일 고열이 나고 음식을 먹을 수 없었으며 사지가 힘이 없었고 기침, 가래를 뱉고 피를 토하는 것이 멈추지 않았다.

량버성이 괴롭힘을 당해 숨이 미약하여 끊어지려 할때까지 노동교양소 악당 불법인원들은 또 가족들을 면접 못하게하고 사악한 죄행을 속였다. 후에 정말로 안될 경우에서야 가족들에게 알려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게 했는데 결과는 폐결핵 말기라고 하였다. 그러나 노동교양소는 풀어주는 것을 거절하고 오히려 량버성 및 기타 폐결핵에 걸린 대법제자들을 3대대에 감금시켜 계속 박해를 가했다.

피를 토하며 걸음을 걸을 수 없고 사람이 거의 가망이 없어서야 노동교양소 악당 인원들은 전화로 량버성 가족들에게 알려서 2003년 10월 30일 저녁에 데려갔다. 량버성 가족들은 전화한 바로 다음날 낮에 가려고 했는데 그렇게는 안된다고 하였다.

량버성은 2003년 10월 30일 가족들은 데리고 가서 진료를 하였다. 가족들은 근 2만원(인민폐)를 써서야 위험에서 벗어났으나 계속 회복이 되지 않아 몸은 계속 허약해져 2006년 3월 20일 세상을 떠났다.

불완전한 통계에 의하면 창춘시 차오영거우 노동교양소는 몇년이래 이러한 악독한 방식으로 최소 5명 대법제자를 박해해 치사하였다. 창춘시 대법제자 쩡융광은 박해로인해 폐결핵이 나타나 집으로 돌아가서 일년 후 세상을 떠났다. 바이산(白山)시 대법제자 쩡융광은 박해로 인해 폐결핵이 나타나 집으로 돌아가서 20여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메이허커우(梅河口)시 훙메이진(红梅镇) 대법제자 리추안원(李传文)은 박해로 폐결핵이 나타나 집으로 돌아가서 9일 후 세상을 떠났다. 유수(榆树)시 대법제자 정푸상(郑福祥)은 박해로 폐결핵이 나타나 집으로 돌아가서 1일만에 세상을 떠났다.

문장완성: 2006년 3월 31일

문장발표: 2006년 4월 1일
문장갱신: 2006년 4월 1일 12: 24: 25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http://minghui.ca/mh/articles/2006/4/1/12414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