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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趙明)은 UN 비정부조직회의에서 발표, 박해 폭로와 도움을 호소하다

[명혜망] UN 제58차 인권회의기간에, 대사면조직, 국제인권연맹 등 UN 비정부조직에서 연합으로 “아시아의 국가공포주의” 특별회의를 2002년 4월 3일 오후 UN 제네바 사무처 21호 회의실에서 진행하였다. UN과 유관 국가 관원, 비정부조직과 일부 법륜공수련생들이 회의에 출석하였다.

UN 유관부문, 아일랜드 정부와 각계 인사의 도움하에 최근 아일랜드로 돌아온 법륜공수련생 조명(趙明)은 요청에 응하여 특별회의에서, 개인이 불법으로 22개월 동안 감금되어 괴롭힘을 당한 직접적 경험으로 장쩌민이 실행하고 있는 “국가공포주의”가 법륜공수련생에 대한 정신 및 신체상의 잔혹한 박해임을 폭로하였다. 그의 발표는 회의 참석자의 보편적인 주목과 호평을 받았다. 이하는 조명의 발표문이다. (번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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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 숙녀 여러분 !

여러분들께서 저에게 이 기회를 주어 북경 노동개조소에서의 제 경험을 보고할 있도록 해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아일랜드 삼성학원(三聖學院) 컴퓨터학과 석사과정생이며 또 법륜공수련자입니다. 법륜공은 “진·선·인(眞·善·忍)” 원칙기초에 건립된 전통적인 중국의 수련법입니다. 그는 아주 느린 5개조 공법이 있으며 또 전세계 내에 수 천만 명의 사람들에게 심신건강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저는 1999년 3월 삼성학원에서 공부하게 되었으며 그해 연말 저는 중국에 돌아가서 성탄절을 보냈습니다. 국내에 머물던 기간에 저는 북경의 신방국에 가서 법륜공을 위하여 호소하였습니다. 제가 법륜공을 위하여 호소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경찰들은 신방국에서 저를 체포하였고 저와 기타 일부 구류자들을 저의 고향인 장춘시(長春市) 공안국으로 압송하였습니다. 비록 그들은 후에 저의 가족에게 저를 집으로 돌려보내게 하였지만, 그들은 저의 여권을 몰수하여 이리하여 저는 바로 아일랜드로 돌아와 저의 학습을 계속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제가 해전(海澱) 구류소에 있던 기간에 단식을 함으로써 불법구류에 항의하였는데 저는 어떠한 불법적인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단식기간, 감옥에 있던 사람들이 저에게 강제로 유질(流質)을 주입하였습니다. 그 당시 몇 사람이 저를 바닥에 꼼짝 못하게 누르고 저의 코를 잡아서 저는 할 수 없이 입을 벌리고 호흡을 했는데 그들은 상관하거나 배려하지도 않고 저의 입 속으로 유질를 주입하였습니다. 저의 입속은 유질로 가득하여 어떠한 호흡 통로가 없었기 때문에 최후에 이 유질들은 저의 식도와 기도에 들어갔습니다. 그 당시 숨이 막혀 저의 폐는 아주 아팠는데, 이런 음식주입법은 아주 위험합니다. 매옥란(梅玉蘭 / 음역) 여사는 제가 노동개조소에서 알게 된 한 동수의 아내인데, 바로 북경구류소에서 이런 강제 음식주입법으로 인하여 사망하였습니다.

단하(團河) 노동개조소에서 제가 겪은 것들은 사람으로 하여금 상상하기가 아주 어렵게 할 것입니다. 경찰은 법륜공수련생에게 자신의 신앙을 비방할 것을 무리하게 요구합니다. 이런 무리한 요구를 거절한 우리 이 수련자들은 모두 아주 잔혹한 박해를 겪으며 매일 모두 사람들이 강제로 우리에게 법륜공을 모함하는 책을 보게 하고 비디오테이프를 보게 하며 녹음테이프를 듣게 합니다. 그런데 이런 선전품들은 인위적으로 조작하여 악의적인 선전으로 꽉차 있었으며, 우리는 항상 잠을 자도록 허락해 주지도 않았습니다.

그 노동개조소에서의 첫번째 달 어느 날 저는 10여 명의 재소자들에게 혹독하게 매를 맞았습니다. 그들이 나중에 저에게 알려주기를, 경찰이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렇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주먹과 발, 무릎으로 맹렬하게 저의 신체를 공격하였으며 저의 허벅지는 매를 맞아 온통 검은 자주색이었고 2주일 동안 길을 걷지 못하였습니다.

제가 노동개조소에 불법 감금된지 일년이 되었을 때 또 2주 동안이나 괴롭혔으며 저는 온종일 의자에 채워져 있었습니다. 낮에는 몇 명의 재소자들이 저에게 크게 고함을 지르면서 저의 머리를 때리고 저의 다리를 걷어찼는데, 그 당시 저의 다리는 계속 아래로 피가 흘러내렸습니다. 처음 2일 동안 그들은 저에게 일분간도 눈을 감지 못하게 하였으며 그들은 일부 재소자에게 명령하여 저녁에 윤번으로 저를 감시하게 하였습니다. 저의 눈이 감길 때면 그들은 곧바로 저를 흔들어 깨웠는데, 나중에 그들은 단지 저에게 매일 밤마다 작고 작은 쪽걸상에 앉아 한 시간에서 두 시간 동안 휴식할 수 있도록만 허락하였습니다. 그들은 강제적으로 소위 말하는 “군인식 엎드려뻗쳐”와 “비행기타기”(머리를 아래로 향하고 등과 손등은 벽을 향하여 올림)를 하게 하였습니다. 매일마다 긴긴 10시간 동안으로 이런 체벌의 결과 지금도 저의 종아리는 감각이 없습니다. 만약 제가 서 있거나 혹은 조금 오랫동안 길을 걸으면 저의 발은 아주 통증이 심합니다. 나중에 제가 노동개조 기간이 끝나기 2일 전 그들은 한 막의 극을 연출하여 저의 노동개조 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그들은 소위 세뇌반을 조직하였고 매 사람마다 모두 법륜공을 반대하는 책을 읽게 하였습니다. 저의 차례가 되었을 때 저는 거절하였는데 이튿날 저의 노동개조 기간이 10개 월간 연장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노동개조 규정”과 “불량한 사상 전파”를 위반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법륜공을 이야기하였다고 가리킴)

올해 석방되기 2주 전에, 5명의 경찰은 저를 한 나무침대 위에 묶어 놓고 6개의 전기충격기로 동시에 제게 전기충격을 가했습니다. 전압이 몇만 볼트로 높았는데, 저의 모든 신체는 격렬하게 떨렸고 저의 한쪽 다리는 경련이 일어났습니다. 노동개조소의 경험은 저로 하여금 몸과 마음 방면에서 극대한 상처를 받게 하였습니다.

저만이 유일하게 박해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 곳에서 신앙을 포기하지 않는 모든 법류공수련자들이 처한 상황은 모두 아주 간고합니다. 저의 윗 층의 한 수련자는 맞아서 중풍()에 걸렸습니다. 불법으로 노동개조 당하는 수많은 법륜공수련자들은 모두 양호한 교육을 받은 이로서 일부는 석사 혹은 박사이고 또 일부는 대학교수입니다. 저의 가정 역시 아주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제가 불법으로 노동개조 당하는 기간 매일 밤마다 모두 주무시기 힘들어하였습니다. 아주 많은 법륜공수련자들의 자녀는 홀로 집에 있는데 돌봐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들이 감금되었기 때문에 아주 많은 가정이 파탄되어 그중 많은 사람의 가족들은 생활비가 없게 되었는데 사실상 수 천만 명의 수련자보다 더욱 큰 범위의 사람들이 이 때문에 상처를 받습니다.

신앙, 언론, 결사의 자유는 기본적인 인권입니다. 그러나 중국의 노동개조소에서는 매일마다 모두 강제적인 세뇌와 박해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에서 노동개조소의 상황에 주목을 하기 시작했을 때, 박해의 사실은 덮어 감추어지고 노동개조소는 외관상의 장식은 고쳤지만 진정으로 인권상황을 개선하지는 않았는데, 참관자와 매스컴은 모두 사실 진상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저에게 전기충격을 가하던 경찰 중 3명은 단하 노동개조소의 과장들로서 또 그들은 스스로 하고 있는 짓이 위법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상은 제가 북경노동개조소에서 있었던 대체적인 상황이며, 저는 그것이 중국노동개조소의 정황에 사람들이 더욱 주의를 줄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매일 혹형의 박해를 받는 수만 명의 법륜공수련자들을 도와주기를 바랍니다.

인권은 신념·정신의 문제로서 인류의 존엄이며, 한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자유의 보호함에 관한 것입니다. 그 외에, 저는 모든 선량한 사람과 국제사회에서 계속 호소함으로써 중국 법륜공수련자에 대한 폭행을 제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아일랜드 삼성학원 조명

발표시간 : 2002년 4월 5일

문장분류 / 講淸眞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