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오지위안 사망 1주기, 생전 감옥에서 겪은 학대 사실 추가 폭로

[명혜망](랴오닝성 통신원) 랴오닝성 선양(瀋陽)시 파룬궁수련자 자오지위안(趙吉元)은 ‘진선인(眞·善·忍)’에 대한 신앙을 견지하다 2019년에 납치돼 다둥(大東)구 공안, 검찰, 법원으로부터 7년 반을 부당하게 선고받았다. 랴오닝성 진저우(錦州) 감옥에서 그는 온갖 학대와 혹형 고문을 받아 위독해졌다. 2025년 7월 4일, 그는 감옥에서 박해로 사망했으며 향년 72세다. 1년이 지나, 자오지위안이 생전에 겪은 더 많은 박해 사실이 폭로됐다.

赵吉元

자오지위안

중국공산당(중공)이 파룬궁(法輪功)을 잔혹하게 박해한 20여 년 동안, 자오지위안은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수차례 납치와 가택수색을 당했고, 1999년 10월부터 2000년 10월까지 1년간 부당하게 강제노동을 당했다. 2001년 2월부터 2008년 2월까지 그는 7년형을 부당하게 선고받고 선양시 제2감옥에서 박해받았다. 2019년 7월, 그는 또다시 7년 반 형을 부당하게 선고받아 선양 감옥 입감대(入監隊)에 한 달여간 감금된 이후 진저우 감옥에 갇혀 박해받았다. 자오지위안은 노동수용소를 포함해 누적 근 14년간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다가 진저우 감옥에서 박해로 사망했다.

1. 파룬궁 창시자 설법 녹음을 듣고 위암 말기가 하룻밤 새 완치되다

1953년에 태어난 남성 자오지위안은 선양시 제4건축공정공사의 직원이었다. 1998년 7월, 당시 45세였던 자오지위안은 위암 말기 진단을 받았는데, 식사가 매우 어려웠고 물을 마시기만 해도 구토를 일으켰으며, 몸이 40여kg으로 말라 병이 골수에 사무쳤다. 연말이 되자 그는 9일 연속으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해 피골이 상접해졌고, 눈으로 보기에도 곧 죽을 것 같았다.

1998년 12월 31일 바로 이날, 자오지위안은 다행히 파룬궁 창시자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설법 녹음테이프를 듣게 됐다. 이후 기적이 일어나 그가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됐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그는 마당을 쓸 수 있었고 정상적으로 출근할 수 있게 됐다. 곧 생의 끝자락에 다다랐던 자오지위안은 하룻밤 사이에 암이 사라졌고 건강을 회복했다.

새 삶을 얻은 그는 내심 비할 데 없는 감격과 기쁨을 느꼈고, 만나는 사람마다 “대법이 내 목숨을 구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자오지위안의 가족도 종종 “그가 만약 대법을 얻지 못했다면 진작에 세상을 떠났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자오지위안은 수련하기 전에 담배를 피우고 마작을 하는 취미가 있었는데, 온종일 마작을 하느라 집에 붙어있지 않아 가정에 대한 책임감이 부족했다.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 그는 자발적으로 모든 나쁜 취미를 끊었고 시간이 나면 책을 보며 법공부를 했으며, ‘진선인’의 기준으로 자신을 요구하며 도덕성을 향상했다. 그는 선량하고 이타적으로 변해 남 돕기를 즐겼다. 평소 말수가 적었으나 늘 묵묵히 헌신했고, 누구든 일이 생기면 기꺼이 도왔다. 친척, 친구, 이웃들은 자오지위안을 이구동성으로 칭찬했다. 자오지위안의 심신에 일어난 거대한 변화는 원래 화목하지 못했던 가정을 화기애애하고 행복하게 만들었다.

자오지위안이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 그에게 여러 차례 신의 기적이 나타났다. 그는 두 번의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모두 무사히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중 한 번은 그가 운전할 때 차가 미끄러져 8m 깊이의 큰 도랑에 빠졌을 때다. 그는 머리를 아래로 한 채 한 그루 나무에 걸려 도랑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아 목숨을 건졌다. 크레인이 구조하러 와서 그를 지상으로 구출했을 때 그의 차는 이미 폐차됐으나 그는 머리카락 한 올 다치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한번은 자오지위안이 뜻밖에 다쳐 손가락 한 마디가 잘렸는데, 7일 후 다시 자라났다. 그와 가족은 모두 파룬따파의 초월성과 신기함을 목격했다.

2. 7년 6개월 형을 부당하게 선고받고 진저우 감옥에서 박해로 사망

1) 납치, 구타, 악의적 모함 당해

2019년 7월 10일, 선양시 정법위, ‘610사무실’(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 및 시 공안국은 중공 정권 수립 ‘70주년 경축’ 체제 유지 명목으로 일제히 체포 작전을 배치해 여러 명의 경찰을 출동시켜 시 전역에서 20여 명의 파룬궁수련자를 납치했다.

당일 저녁 6시경, 선양시 공안국 허핑(和平) 분국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경찰이 구역을 넘어 자오지위안, 리슈제(李秀傑) 부부의 집에 난입해 납치를 실행했다. 경찰은 컴퓨터, 프린터, 파룬궁 서적 및 1만 위안의 현금 등 개인 재산을 수색해 빼앗아 갔다.

리슈제는 선양시 구치소에 감금됐다가 8월 2일에야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다. 자오지위안은 선양시 허핑구 구치소에 감금된 기간에 경찰에게 심하게 구타당했다. 이후 공안기관은 ‘모함 자료’를 허핑구 검찰원에 넘겼다. 같은 해 8월 1일, 자오지위안은 부당하게 체포 승인이 났고, 10월 25일에 부당하게 기소됐다.

2) ‘유죄 인정’ 거부해 7년 반 형 부당하게 선고받아

2019년 12월 10일 오전 9시 반, 선양시 허핑구 법원은 자오지위안을 상대로 부당한 재판을 열었다. 법정에서 자오지위안은 유죄를 인정하지 않았고 서명하지 않았다. 재판이 끝난 후, 판사 정치(鄭琦)는 자오지위안의 아들에게 아버지에게 유죄 인정을 권하라고 하며 “유죄를 인정하면 3년, 인정하지 않으면 7년에서 10년형을 선고하겠다”라고 위협했다. 자오지위안은 신앙은 무죄라고 견지했다. 2019년 12월 20일, 허핑구 법원은 그에게 7년 6개월 형을 부당하게 선고하고 5만 위안의 벌금을 갈취했다.

자오지위안이 법에 따라 항소를 제기한 후, 선양시 중급법원은 2020년 3월 23일에 원심을 유지하는 부당한 판결을 내렸다.

3) 감옥에서 학대와 고문을 받다가 억울하게 세상 떠나

2020년 7월 16일, 자오지위안은 선양 감옥 입감대로 보내졌고, 8월 20일에 다시 랴오닝성 진저우 감옥으로 납치돼 박해받았다. 진저우 감옥 제20감구에 감금된 기간, 자오지위안은 파룬따파 수련을 견지하고 이른바 ‘전향(수련 포기)’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감옥에서 잔혹한 박해를 받았다. 그는 가족 면회권이 박탈됐고 매월 100위안가량의 기본 생필품 구매만 허락됐으며, 가족이 감옥 계좌에 입금한 돈을 더 사용해 다른 물품을 구매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2022년 12월, 자오지위안은 진저우 감옥의 박해로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 2025년 6월 초, 자오지위안은 또다시 박해로 숨이 끊어질 듯 위독해졌고, 결국 7월 4일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으며 향년 72세다.

가족이 자오지위안의 시신을 확인했을 때 그의 발목에 족쇄로 인한 상흔이 있고, 몸이 뚜렷하게 야위었으며 허벅지 부위에 여러 군데 멍이 있고, 그중 한쪽 콧구멍이 뚜렷하게 커진 것을 발견했다(코를 통한 음식물 주입 때문인 것으로 의심됨). 가족이 자오지위안의 등을 보려 했을 때 현장의 한 법의관이 제지했다. “몸을 뒤집지 마, 사람도 죽었는데 함부로 뒤집지 마.” 또한 그는 “등에 욕창이 두 군데 있어”라고 말했다. 가족이 “엄청 고생했네요”라고 하자 법의관은 “그렇지”라고 대답했다.

자오지위안의 상처투성이 시신에서 알 수 있듯 그는 감옥에서 심각한 학대와 고문을 받아 심신에 극심한 상해를 입었는데, 세상을 떠나기 전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겠는가? 자오지위안의 죽음은 가족들이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고, 너무나 고통스러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3. 자오지위안 박해 사망 사건의 더 많은 학대 정황 폭로

1) 고문 박해 덮으려 감옥이 면회권 박탈

2020년 8월 20일, 자오지위안이 선양 감옥에서 진저우 감옥으로 이감됐을 때 바른 믿음을 견지하고 ‘진선인’에 대한 신앙을 포기하지 않으며 전향을 거부하자 진저우 감옥은 그를 ‘엄관급(嚴管級, 엄격 관리급)’으로 지정해 가중 박해했다. 동시에 박해를 은폐하기 위해 진저우 감옥 관계자들은 장기간 그와 가족의 면회권을 박탈했고, 통화, 쇼핑 등 많은 합법적 권익이 모두 박탈당했다.

자오지위안이 진저우 감옥에 감금된 근 5년 동안, 그가 가족과 면회한 횟수는 불과 대여섯 번이었다. 입소 초기에 한 번 면회했고 이후 감옥은 전염병을 핑계로 그와 가족의 면회권을 3년 동안 박탈했다. 3년 동안 그는 가족과 두 번 통화했을 뿐이고 매번 짧게 몇 분뿐이었다. 한 번은 가족이 전화로 그에게 “누가 당신을 때리지 않았어요?”라고 묻자 자오지위안은 “내 목이 아파요”라고 말했다. 가족은 감옥경찰에게 면회하려면 미리 전화로 예약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지만, 가족이 예약 전화를 할 때마다 자주 통화가 안 됐고 가끔 보름이 지나야 한 번 통화될 때도 있었다. 2024년에서 2025년 사이 연간 면회는 불과 두 번뿐이었다.

진저우 감옥은 면회를 박탈하는 방식으로 자오지위안을 외부와 격리했는데 3년 반 동안 자오지위안이 감옥 안에서 어떤 박해를 받았고 어떤 혹형 고문과 학대를 당했는지 현재는 알 수가 없다. 내막을 아는 사람들이 관련 정보를 제공하기 바란다.

한번은 면회했을 때 자오지위안은 명찰을 가리키며 가족에게 자신이 엄관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렸다. 게다가 그는 가족의 안전을 매우 걱정해 감히 가족에게 말을 많이 하지 못하게 했다. 한번은 가족이 그에게 “또 1000위안을 입금했으니 뭐 좀 사 먹어요”라고 말하자 자오지위안은 그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입금하지 마요, 소용없어요”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감옥이 장기간 자오지위안의 정상적인 구매 권리를 박탈해 최대 150위안까지만 쓸 수 있게 허락했기에 생필품만 조금 살 수 있을 뿐 먹을 것은 살 수 없었고 사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 여러 차례 생명 위협 있었으나 감옥 측은 실정 은폐하고 책임 떠넘겨

자오지위안은 진저우 감옥에 있는 동안 여러 차례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 감옥 측은 자오지위안과 가족의 매월 합법적인 면회권을 박탈했을 뿐만 아니라, 자오지위안이 여러 차례 심각한 증상과 생명의 위협이 나타났을 때조차 가족의 면회를 거부했고 자오지위안의 실제 상황을 은폐하고 책임을 전가해 가족이 그의 실제 병세를 알 수 없게 만들었다.

(1) 박해로 고혈압이 오자 감옥경찰이 책임 떠넘기며 가족에게 서명 요구

2024년 6월, 제20감구 주관 감옥경찰 가오(高) 대장이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자오지위안이 고혈압에 걸렸다고 말했다. 가족이 면회하러 갔을 때 감옥경찰이 엄밀히 감시했고 가족이 미리 써 온 물어보고 싶은 내용을 꺼내자 채 보기도 전에 감옥경찰에게 빼앗겼다. 가족이 “뭘 먹고 지내요?”라고 묻자 자오지위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혈압이 그렇게 높은데 괜찮아요? 몸 상태가 어때요?”라고 묻자 자오지위안은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면회가 끝난 후 가족은 가오 대장에게 불려 갔다. 그는 종이 몇 장을 가져왔는데 그 위에는 온통 자오지위안의 혈압 기록(220~280, 240~280, 220~260…)뿐이었다. 가오는 자오지위안이 약을 먹지 않는다며 문제가 생기면 자신을 원망하지 말고 자오지위안 스스로 책임지라며 가족에게 서명을 강요했다. 가족은 서명을 거절하며 질문했다. “고혈압이 어떻게 생겼습니까? 당신들이 고문한 것 아닙니까?” 감옥경찰이 변명했다. “그를 누가 감히 엄관하겠어?! 아무 말도 안 하고 말도 안 하는데.” 가족이 지적했다. “그는 집을 그리워하는데 당신들은 그를 면회하게 해주지도 않잖아요.” 당시 자오지위안은 4층 노약자팀에 있었고 이미 8개월 동안 층을 내려오지 못했다.

가오 대장이 발뺌하며 말했다. “이 상황은 빈혈인데 먹는 게 시원치 않아서 그래.” 가족이 자오지위안에게 보양식을 좀 사주고 싶다고 하자 가오 대장은 오히려 “누구든 먹고 싶다고 먹는 게 아니야. 위에서 비준을 받아야 하고 의사가 먹으라는 것만 먹어야 해”라고 말했다. 가오 대장은 또 “그가 약을 안 먹으니 병원에서 우리더러 억지로 먹이라고 하잖아. 그러다 사고 나도 책임 안 져”라고 말했다. 이것이 감옥경찰이 가족에게 서명해 책임을 지게 하려는 이유가 됐다. 가족은 협조하지 않았다.

가오 대장이 또 말했다. “영감(자오지위안을 지칭)은 확실히 좋은 사람이야, 진짜 좋은 사람인데 어쩔 수 없잖아, 이 단계는 반드시 거쳐야 해. 유죄를 인정 안 하면 절대 안 되지.” 가족이 따져 물었다. “그가 무슨 죄가 있나요? 훔치지도 빼앗지도 않았는데요.” 가오 대장이 놀랍게도 말했다. “훔치고 빼앗은 건 오히려 괜찮아.”

(2) 박해로 뇌졸중이 오자 다시 면회권 박탈

2024년 6월, 가족이 면회한 뒤 4~5일도 지나지 않아 다시 통보를 받았다. 자오지위안이 뇌졸중에 걸려 갑자기 쓰러졌는데 응급처치와 주사를 맞고 다음 날 바로 퇴원했으며 후유증은 없다는 것이었다.

2024년 7월, 가족이 면회하러 갔을 때 자오지위안은 다리가 불편하다고 했다. 가족이 무슨 병이냐고 묻자 자오지위안은 모른다고 했다. 면회가 끝날 때 가족이 그저 창살 유리창을 한 번 쳤고 자오지위안도 이에 응답해 한 번 쳤다. 그저 이런 가족 간의 작은 교감 행동을 핑계로 감옥 측은 뜻밖에도 다시 자오지위안과 가족의 면회권을 박탈했다. 연말이 되어서야 자오지위안과 가족은 겨우 몇 번 전화를 했고 매번 통화 시간은 불과 2~3분이었는데, 전화 소리가 아주 작게 설정돼 쌍방이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똑똑히 듣기 어려웠다.

2025년 설 전, 가족은 진저우 감옥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자오지위안의 면회를 신청했다. 가족이 “설이 다가오는데 아직도 못 보게 하나요? 그렇게 나이도 많은데 날씨도 추워졌으니 솜바지라도 사게 해줘요”라고 말하자 가오 대장은 대답했다. “그를 만나고 싶어? 난 이제 그를 상관하지 않아.” 2~3일 후, 가족은 다시 전화를 걸어 면회를 신청하며 “자오지위안은 지금 어때요? 몸은 좋아졌나요?”라고 물었다. 가오 대장이 말했다. “그를 만나고 싶어? 기다려.” 섣달그믐날 아침이 되어서야 자오지위안은 마침내 가족과 전화를 통화했다. 가족이 그를 위로하며 말했다. “초읽기에 들어갔어요, 이제 날짜를 셀 수 있어요. 집안은 다 정리해 놨으니 당신이 집에 돌아오기만 기다릴게요.”

(3) 5년간 부자가 단 한 번 만나자 감옥경찰이 말을 가로채다

2025년 3월 초, 자오지위안의 아들이 감옥에 전화로 면회를 신청했을 때 자오지위안이 17감구로 이감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감옥 직원이 가족에게 물었다. “그럼 너희 아버지 전향했어?” 그의 아들이 “전향했는지 모릅니다”라고 대답했다. 감옥 직원이 또 물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못 만났지?” 자오지위안의 아들이 “5년간 뵙지 못했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전화 저편에서 그제야 면회를 허락했다.

2025년 3월 5일, 자오지위안의 아들이 그를 면회했을 때 아버지가 몹시 마른 것을 보고 배불리 못 드시는지, 아니면 아프신지, 아니면 맞으셨는지 여쭤봤다. 자오지위안이 대답하기도 전에 옆에 있던 감옥경찰이 즉각 말을 가로채 말했다. “(자오지위안이) 저렇게 나이가 많은데 누가 감히 때리겠어? 때리지 않아도 휘청거리는데(제대로 서지 못함을 가리킴).” 감옥경찰은 고의로 자오지위안에게 “안 그래, 라오자오(老趙)?”라고 묻기도 했다. 자오지위안은 여전히 다리가 불편하다고 했다. 당일 면회에서 부자는 모두 울었다.

(4) 중환자실 ‘응급처치’, 가족 면회 거부

2025년 4월 16일, 가족이 면회하러 갔을 때 자오지위안이 슬리퍼를 신고 안에 두꺼운 바지를 입지 않은 듯 홑바지 하나만 입고 걸음걸이가 매우 느린 것을 보았다. 뇌졸중 환자는 추위를 타는데 자오지위안이 이렇게 얇게 입은 것을 보고 가족은 몹시 걱정했다. 면회할 때 자오지위안은 말수가 적고 마음이 무거운 듯 몇 마디 하지 않았다. 누구도 이번이 뜻밖에 그와 가족의 마지막 만남이 될 줄은 생각지 못했다.

2025년 4월 21일 새벽 2시, 가족은 감옥경찰의 전화를 받고 자오지위안이 병에 걸려 입원했는데 매우 위험하고 숨을 쉬지 못해 지금 수술이 필요하며 ICU(긴급 응급처치실)에 들어갔다는 말을 들었다. 감옥경찰은 또 경보를 듣고 보니 라오자오라서 즉시 120(구급차)을 부르고 가장 먼저 응급처치했다고 말했다. 가족이 구체적인 병세를 묻자 상대방은 뇌졸중 후유증이라며 피 속에 벌레가 있다는 검사 결과가 나왔고 백혈병이라고 했다. 가족이 가겠다고 강력히 요구했지만 감옥경찰은 거절하며 말했다. “와도 만나게 할 수 없어, ICU 안은 아무도 만날 수 없어, 신청해야 해.”

(5) 다시 중환자실 ‘응급처치’, ‘코로나 양성’을 이유로 가족 면회 박탈

2025년 4월 30일, 가족은 전화로 다시 통보를 받았는데 자오지위안이 지금 뇌졸중이 아니라 이미 (코로나) ‘양성’이 됐고 폐렴이 생겨 격리됐으며 중환자실에 들어가 응급처치를 받았다고 했다. 의사가 방호복을 입었고 병실이 모두 격리돼 면회할 수 없고 누가 와도 만나게 할 수 없다고 했다.

2025년 5월 1일이 지난 후, 가족이 절박하게 병세를 묻자 뉴(牛) 대장이 말했다. “(자오지위안은 중환자실에서) 나왔어, 중증(감호실)에 있어.” 가족이 가서 먹을 것을 좀 사주겠다고 했으나 여전히 거절당했다. 가족이 “그분이 의식이 있나요?”라고 묻자 뉴 대장이 말했다. “의식은 있어. 병원에서 먹으라는 대로 먹어야지, 당신이 마음대로 먹이면 안 돼. 우선 보지 마. 방금 ‘양성’에서 풀려났는데 만나게 할 수도 없고, 전염되면 좋지 않잖아.”

(6) 중환자실 ‘응급처치’를 반복, 시종 가족 면회를 박탈

2025년 5월 말, 가족은 뉴 대장의 전화를 받았다. “너에게 전화하기 싫어, 전화하면 좋은 일이 없거든. (자오지위안이) 심각해, 뇌졸중에 혈전도 있어.” 가족이 가서 자오지위안을 보고 그를 간호하고 싶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뉴 대장은 말했다. “다 병원에서 파견한 사람이 간호해. 병원에서 먹으라는 대로 먹이지, 다른 사람이 말하는 건 소용없어.” 가족이 자오지위안의 몸이 도대체 어떤지 묻자 뉴 대장이 말했다. “생각은 있는데 눈도 안 뜨고 말도 안 해. 왼쪽 다리는 확실히 병이 생겨 못 쓰게 됐어. 꼬집어도 감각이 없고 오른쪽 다리는 감각이 있어.” 가족이 거듭 간청했다. “(자오지위안이) 저런데 아직도 못 보게 하나요?” 뉴 대장은 고집스럽게 말했다. “오지 마. 이틀만 더 기다려봐. 상황을 좀 보고 내가 연구해 볼게. 이건 내가 결정할 수 없어.”

3~4일이 지나 가족은 전화로 통보를 받았다. “자오지위안이 또 중환자실에 들어갔어, 10일간 응급처치하고 나와서 병실에 2~3일 있다가 안 돼서 또 들어갔어.” 이렇게 자오지위안은 중환자실을 들락거리며 한 달 동안 반복적으로 시달렸다. 그러나 가족은 감옥의 거부로 시종 방문 면회를 하지 못했기에 실제 병세는 알 수 없었다.

(7) 임종 전 가족과 만나지 못하게 했고 감옥은 끝내 진실을 감추다

2025년 7월 4일 아침 7시, 가족은 뉴 대장의 전화를 받았다. “나 어제 당직이었는데 라오자오가 아주 심해, 가망이 없어.” 가족이 애타게 “사람이 어느 병원에 있나요?”라고 묻자 상대방은 뜻밖에도 계속 감췄다. 가족이 따져 물었다. “가망이 없다는데 아직도 못 보게 하나요?” 가족은 그 자리에서 기차를 타고 가겠다고 했지만 상대방은 끝내 자오지위안이 어느 병원에 있는지 알려주지 않고 전화로 시간을 끌었다. 뉴 대장이 또 말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표를 사서 한번 와봐, 내가 연구해 볼게.” 하지만 여전히 자오지위안이 어느 병원에 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당일 7시 반, 가족이 막 외출하려 아직 층을 내려오지 않았을 때 감옥에서 또 전화가 왔는데 뉴 대장이 재촉하며 말했다. “표 사서 서둘러서 빨리 와.” 그리고 가족에게 9시 전에 도착할 수 있냐고 물었다. 가족이 “10시 기차표를 샀으니 절대 못 도착해요”라고 말하자 상대방이 말했다. “최대한 11시까지 늦춰볼게. 이쪽에서는 (시신을) 두지 못하게 해.” 이어서 그가 또 말했다. “이제 보내야 해. 장례식장으로 보낼 거야. 서두르지 말고 바로 장례식장으로 와.”

오후 2시, 가족은 마침내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현장에는 감옥경찰, 감옥의사, 검찰원, 법원, 부검인력, 감옥 측 등 여러 사람이 있었다. 아직 자오지위안의 시신을 보지 못했는데 가족은 서명을 요구받았다. 가족이 “아직 사람도 못 봤는데 무슨 서명이에요?”라고 말했다. 자오지위안의 시신을 보았을 때, 가족은 그가 눈을 반쯤 뜨고 있고 왼쪽 콧구멍이 특히 크고 발목에 상처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가족이 “어쩌다 이렇게 됐어요?”라고 묻자 감옥경찰은 형구를 채워서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이 슬픔을 억누르며 말했다. “이건 너무 잔인하잖아요! 사람이 이렇게 됐는데도 형구를 채워요?” 가족이 뒷모습을 보려 했을 때 현장에 있던 한 의사가 막았는데, 그는 가족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며 “몸을 뒤집지 마, 사람도 죽었는데 함부로 뒤집지 마”라고 말했다. 그는 또 “뒤쪽 엉덩이에 욕창이 두 군데 있어”라고 말했다. 가족이 이 말을 듣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욕창이 생겼으면 끝난 것 아니에요? 벌써 몇 달이 됐는데 몸도 안 뒤집어주고 가족도 못 보게 하다니,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렇게 대할 수 있어요?” 이후 가족은 서명을 재촉받았다. 자오지위안의 시신은 당일 화장됐다.

3) 가족이 여러 차례 병보석을 신청했으나 번번이 감옥의 무리한 거절을 당해

자오지위안의 가족은 2024년에 감옥경찰 가오 대장에게 병보석을 신청하겠다고 제기한 적이 있었다. 가족이 아주 간곡하게 명확히 표시했다. “우리 집에서 돈을 내고 집을 저당 잡혀도 좋아요. 병을 다 치료하면 돌려보낼게요.” 감옥경찰 가오 대장은 오히려 말했다. “이건 당신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야. 당신이 진저우 시내에 있으면 괜찮지만 외지인이잖아. 성을 넘어가면 18가지 수속이 필요해. 지금 여기서 진행하는 게 몇 건 있는데 1년 반, 2년이 지나도 못 나가고 있어. 게다가 우리가 처리해 준다고 해도 너희 쪽에서 받을지 안 받을지는 또 다른 문제야, 우리가 사람을 내보내도 (외지에서) 받지 않는다고. 내가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해?” 그는 심지어 이렇게 말했다. “도둑질하거나 강도질한 (사람)건 처리하기 쉬워, 당장 병보석을 처리해 줄 수 있는데 이것(파룬궁 신앙인)만은 안 돼.” 가족은 여러 차례 신청했지만 거듭 거절당했다.

2025년 3월 5일, 자오지위안이 1층 제17감구로 이감된 후 가족이 다시 병보석을 신청하자 감옥경찰 뉴 대장이 말했다.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야…”

4. 자오지위안의 합법적 재산 양로금을 부당하게 박탈당하다

1999년부터 자오지위안은 직장에서 강제 퇴직당해 실업자가 됐고, 이후 모두 그 개인이 양로 보험금을 냈다. 2019년에 자오지위안은 7년 반을 부당하게 선고받고 감옥에 수감됐는데 양로금은 불과 2년(2019년부터 2021년) 동안만 정상적으로 수령했고, 이후 그의 양로금 계좌는 사회보장국에 의해 불법 동결됐다.

자오지위안이 박해로 사망한 후 가족이 장례비 수속을 밟을 때 해당 기관은 피고인이 감옥 복역 인원이므로 2019년부터 2021년 사이에 소위 ‘초과 수령’한 양로금 5만1천 위안을 공제해야 장례비(약 4만 위안)를 수령할 수 있다고 했다. 가족은 억지로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5. 중공 박해 초기 선양 제2감옥에서 혹형 고문을 받은 7년

1999년 7월, 중공은 파룬궁에 대해 하늘을 뒤덮고 땅을 가리는 듯한 박해를 시작했다. 자오지위안은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으로 파룬따파는 좋다는 것을 실증했다. 그는 선후 3차례 베이징에 가서 청원하며 파룬궁의 억울함을 호소했으나 번번이 납치, 감금됐고, 선양시의 여러 구치소, 장스(張士) 세뇌반, 룽산(龍山) 노동수용소 세뇌반 등에 부당하게 구금돼 박해받았다.

1999년 10월, 자오지위안은 ‘진선인’에 대한 신앙을 견지하고 법에 따라 베이징에 가서 청원했다는 이유로 현지 공안과 정법위에 의해 소위 ‘사회 치안 교란’을 구실로 1년의 강제노동을 부당하게 처분받았다. 1999년 12월, 그는 선양시 룽산 수용소에 감금돼 신앙을 포기하도록 강요받았고 2000년 6월 집으로 돌아왔다.

2001년 1월, 중공 장쩌민(江澤民) 정치 깡패집단이 ‘천안문 분신자살’ 날조극을 조작해 파룬궁에 죄를 뒤집어씌우고 세상 사람들을 세뇌했다. 2001년 2월 27일, 몇 명의 파룬궁수련자가 진상을 알리다가 체포됐고, 자오지위안도 뒤이어 납치됐다. 현지 법원은 처음에 자오지위안에게 5년형을 부당하게 선고했는데 악독한 판사가 자오지위안에게 항소할 것인지 물었고 자오지위안은 “항소하겠다”라고 대답했다. 악독한 판사는 뜻밖에도 마음대로 “항소하면 2년을 추가한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자오지위안은 악당의 ‘법 집행 인원’에게 황당하게 7년형을 부당하게 선고받고 선양시 제2감옥에 감금됐다.

자오지위안은 처음에 이 감옥 12감구에 부당하게 감금됐다. 2003년 10월, 선양 제2감옥이 이전하면서 12감구는 20감구로 이름이 변경됐다. 파룬궁수련자 박해를 책임진 악질 경찰 대장은 리젠궈(李建國), 부대장은 멍칭강(孟慶剛)이었다.

2002년 3월, 연공(수련이 아님)을 했다는 이유로 23일 동안 독방에 갇혀 엄관당했다. 2002년 8월 24일부터 9월 21일까지 자오지위안은 연공을 했다는 이유로 다시 독방에 갇혀 수갑을 10일, 족쇄를 7일 찼고 죄수들에게 구타당했다. 독방은 4㎡도 안 되고 온종일 햇빛을 볼 수 없었다. 자오지위안은 맨바닥에서 자야 했고 밥은 손으로 집어 먹었는데 매일 두 끼에 끼니마다 옥수수 빵 하나, 옥수수죽 한 숟가락, 짠지 몇 가닥뿐이었다. 양치, 세수, 손 씻기, 목욕, 옷 갈아입기가 금지됐고, 매일 다리를 쭉 펴고 연속 16시간 동안 바닥에 앉아있어야 했다. 만약 따르지 않으면 감옥경찰, 잡역(수감된 형사범)의 구타와 욕설, 전기봉 전격, 형구 채우기(매달기, 사지를 쇠사슬로 당기기) 등을 당했다.

2003년 7월 1일부터 9월 1일까지, 자오지위안은 경찰에게 압수당한 대법 경문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62일 동안 독방에 갇혀 엄관 박해를 받았다.

2006년 6월 16일 오후 2시, 자오지위안은 죄수복 착용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대장 리젠궈에게 ‘엄관 독방(2.5㎡도 안 되는 습하고 어두운 작은 방으로 여름에도 솜옷을 입어야 함)’에 보내졌다. 경찰은 3명의 죄수를 시켜 자오지위안을 짓누르고 강제로 죄수복을 입히게 했으나 자오지위안이 협조하지 않자 경찰은 전기봉으로 그의 오른쪽 무릎을 지졌다. 왼쪽 무릎을 지지려 할 때 전기봉이 반대로 방전돼 경찰이 자기 자신을 감전시켜 아우성을 치고 나서야 전기봉을 내던지고 도망갔다. 자오지위안은 이번에 1주일간 독방에 갇혀 박해받았다.

이 기간에 중공의 이른바 ‘참관 점검’ 인원이 5차례 감옥에 왔는데 자오지위안은 매번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쳤다. 참관 점검자는 문 앞에서 머물렀으나 아무도 감옥이 파룬궁수련자를 박해하는 사실을 묻지 않았다.

2006년 7월, 자오지위안과 감옥 내 파룬궁수련자들은 단체 단식하며 박해를 반대해 감옥 측에 의해 제1감구로 이감돼 부당하게 감금됐다(이 팀은 고무 제품 노예 노동을 하는 곳으로 ‘고무팀’이라고도 불림). 가족의 면회가 금지됐다.

2007년 1월 1일부터 1월 15일까지, 그리고 같은 해 1월 25일부터 2월 8일까지, 자오지위안은 연공을 했다는 이유로 또다시 각각 15일씩 총 30일 동안 독방에 갇혀 엄관당했다.

나중에 가족의 ‘접견’ 때 알게 됐는데, 경찰이 “이 사람(자오지위안)은 15일 동안 ‘크게 매달기’를 당했는데도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자오지위안이 감옥에서 겪은 혹형 고문이 얼마나 참혹했는지 알 수 있다.

2008년 2월 26일은 자오지위안이 7년 억울한 옥살이를 끝내는 날로 가족은 아침 일찍 자오지위안을 데리러 감옥에 왔다. 그러나 선양시 다둥구 얼타이쯔(二台子) 가도판사처(주민센터)의 남성 3명과 여성 1명이 610의 지시를 받고 무슨 수속을 밟는다는 구실로 가족이 그를 데려가는 것을 가로막고 자오지위안을 파출소로 강제로 데려가 박해하려 해 가족의 강렬한 질책과 저지를 받았다. 쌍방이 10여 분간 대치한 끝에 가족은 성공적으로 자오지위안을 차에 태웠고 뒤차에 아주 먼 곳까지 미행당한 끝에 마침내 안전하게 귀가했다. 자오지위안이 귀가한 후에도 현지 중공 인원들에게 장기간 미행, 감시 및 괴롭힘을 당했다.

6. 맺음말

자오지위안은 파룬궁을 수련해 새 삶을 얻었으나 바른 믿음을 견지했다는 이유로 중공의 갖은 박해를 참혹하게 겪었다. 10여 년의 억울한 옥살이 중, 가장 괴롭고 가장 어두운 감옥도 파룬따파에 대한 자오지위안의 바른 믿음을 바꾸지 못했다. 혹형 고문도 ‘진선인’에 대한 자오지위안의 신앙을 동요시키지 못했다. 그는 시종 바른 믿음을 견지하며 자신의 생명으로 파룬따파가 정법임을 실증했다. 지금, 자오지위안이 중공 감옥의 박해로 사망한 지 1년이 지났다. 그를 박해하는 데 가담한 관계자들은 미래에 법치가 바로설 때 결국 법망을 피하기 어렵고 천리의 징벌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원문발표: 2026년 7월 30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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