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헤이룽장성 통신원) 헤이룽장성 다칭시 파룬궁수련자 런위훙은 ‘진선인(眞·善·忍)’을 믿고 좋은 사람이 되려 한다는 이유로 2019년부터 사법 절차를 통한 모함을 받아 신체적, 정신적 상처를 입었다. 이후 중국공산당(중공) 법원으로부터 4년형을 부당하게 선고받고 헤이룽장성 여자감옥에서 온갖 신체적, 정신적 고문을 당해 뼈만 앙상하게 남았으며, 신체가 심각하게 손상돼 2026년 6월 19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향년 58세였다.
‘진선인’ 신앙으로 도덕성이 고상한 사람이 되다
런위훙은 다칭시 랑후루구 밍위안 주거단지에 살았으며, 생전 다칭 유전실업공사 둥하오 회사의 은퇴한 직원이었다. 1996년, 그녀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고, ‘진선인’ 기준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면서 진실하고 선량해졌으며, 성격이 온화하고 남을 잘 이해하며, 무슨 일이든 남을 위해 배려할 줄 알게 됐다.
예를 들면 런위훙이 운전을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한번은 그녀가 여성 동료의 소형 승합차를 몰고 동료와 함께 도로에서 정상적으로 직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회전하던 초보운전 승용차에 부딪혔다. 승합차 뒷부분이 찌그러지고 길게 칠이 벗겨졌으며, 초보운전자의 승용차도 작은 크기로 칠이 벗겨졌는데 책임은 초보운전자의 신호 위반에 있었다.
차에 타고 있던 동료는 두 여성에게 500위안 이상을 배상하라고 고집스럽게 요구했으나, 그들은 동의하지 않았다. 런위훙은 동료에게 “그들도 일부러 부딪힌 건 아니잖아요. 승용차도 칠이 벗겨졌으니 저 사람들 돈은 받지 않는 게 좋겠어요. 차는 내가 운전했으니 내가 수리비를 낼게요. 7~8백 위안이면 될 거예요”라고 선하게 권유했다. 동료는 “네가 돈을 낼 필요는 없어. 원래 저 사람들이 위반했으니 돈을 물어내야지”라고 말했다. 결국 동료는 양보해 두 여성에게 200위안만 받기로 하면서 교착 상태가 풀렸다.
중공 박해 초기, 강등과 세뇌 등 박해를 받다
중공 악당이 파룬궁을 박해한 27년 동안, 런위훙은 파룬따파를 수련한다는 이유로 부당한 강등, 강제 이혼, 납치, 가택수색, 감금, 세뇌, 4년형, 괴롭힘, 퇴직금 지급 정지 등의 박해를 당했다.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전, 런위훙은 원래 직장 매니저 사무실에서 간부 직급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녀는 맡은 일을 묵묵히 해내어 직장에서 평판이 아주 좋았다. 박해 초기, 그녀는 파룬궁 수련을 고수한다는 이유로 불공정한 대우를 받아 직장의 가장 말단인 수발실(收發室)로 좌천돼 일하게 됐다. 그녀의 남편 또한 중공의 횡포와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런위훙과 이혼했는데, 당시 런위훙은 31세였다. 원래 따뜻하고 화목했던 그들의 가정은 이렇게 산산조각이 났다. 런위훙은 줄곧 홀로 아이를 키우며 힘겹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2000년 12월, 런위훙은 베이징으로 가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실증하려다 베이징 경찰에게 납치됐고, 쇠우리에 강제로 갇히고 맨발로 밖의 눈밭에 서서 추위에 떠는 고문을 당했다.
2003년 4월 21일, 런위훙이 직장에 출근했을 때, 경찰과 직장 보위과 직원들에게 강제로 납치돼 ‘법제교육학교’, ‘관애(關愛)’라는 명목을 내건 다칭시 랑후루 훙웨이싱 세뇌반으로 끌려가 박해를 받았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들은 돌봐줄 사람이 없게 됐다. 동시에 경찰은 런위훙의 집에서 노트북과 레이저 프린터 등 총 8000위안이 넘는 사유재산을 부당하게 수색해 빼앗아 갔다. 런위훙은 세뇌반에서 강제 전향과 신앙 포기를 강요받으며 인격 모욕, 체벌, 구타 및 폭언, 수면 박탈 등의 박해를 당했다. 이후에도 그녀는 경찰과 주민센터 직원들에게 자주 괴롭힘을 당했다.
지속적인 사법적 모함으로 4년형을 부당하게 선고받다
2018년 11월 9일, 다칭시에서 파룬궁수련자 61명이 단체로 납치되는 악성 사건이 발생했다. 당일 아침, 출근하려던(곧 퇴직할 예정이었던 런위훙은 일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동료들이 쉬라고 권유했음에도 마지막 날까지 근무하겠다고 했다) 런위훙은 집 아래층에서 랑후루 룽난 분국 관할 구역 경찰인 취안허쥔(權赫俊, 형사수사대 부대장) 등 5~6명의 신분증조차 제시하지 않은 사복 경찰들에게 납치됐다. 그들은 그녀의 가방에서 집 열쇠를 빼앗고 부당하게 가택수색을 벌였는데, 집 안을 엉망으로 뒤져놓고 대법서적, 컴퓨터, 프린터 등을 압수해 갔다. 이후 런위훙은 다칭 구치소에 부당하게 감금됐다.
당시 헤이룽장성 공안청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처장 양보(楊波)와 정법위 부처장 및 ‘610사무실’(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 책임자인 구쑹하이(顧松海)는 도덕성이 극히 타락하고 비열했는데, 구치소에 불법 세뇌반을 차려놓고 차마 귀로 들을 수 없을 정도로 파룬궁과 파룬궁 창시자를 욕하고 비방했다. 그들은 위협과 공갈로 런위훙에게 전향과 신앙 포기를 강요했으며, 그녀에게 정신적 고문과 인격 모욕을 가하며 파룬궁을 모독하는 영상과 궤변을 강제로 보고 듣게 했다. 런위훙은 듣지도 보지도 않았다. 그러자 이 두 악인은 대법 사부님의 법상(法像)을 가져와 그녀에게 깔고 앉으라고 했으나 그녀는 앉지 않았다. 양보와 구쑹하이는 입에 담기 힘든 더러운 욕설과 추잡한 말로 그녀를 모욕했고, 구치소 직원들에게 런위훙 등 파룬궁수련자들을 학대하라고 지시해 생활필수품을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화장실에 갈 때 쓸 휴지조차 주지 않았다. 20일 정도 지난 후 런위훙은 랑후루구 검찰원으로부터 부당하게 체포 승인을 받았다.
원래 몸이 건강했던 런위훙은 구치소에 부당하게 감금된 지 3개월 남짓 됐을 때 고문을 당해 중증 고혈압을 앓게 됐고 신체 상태가 극도로 악화돼, 2019년 2월 26일 취보후심(取保候審, 보석 상태에서 수사·재판을 받는 조치)으로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녀를 모함하는 절차는 이미 랑후루구 검찰원으로 넘어간 상태였다.
2019년 3월 27일, 랑후루 검찰원 공소인 펑광(封光)은 일자리를 잃게 만들겠다며 런위훙의 가족을 위협하고 공갈해, 런위훙을 랑후루 법원으로 끌고 와서 원래의 심문 녹음이 녹음되지 않았다며 심문 녹음(모함용 기록)을 다시 녹음하게 했다. 런위훙은 자신의 합법적인 권익을 지키기 위해 녹음에 협조하지 않았다. 법원은 펑광을 불러들여 런위훙을 협박했다. 런위훙은 펑광에게 “압박 속에서 억지로 쓴 보증서는 무효입니다”라고 성명했다. 펑광은 “반항하는 건가? 그럼 법정에서 보자고”라고 위협했다. 그 후 런위훙은 갑자기 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혼수상태에 빠져 의자에서 바닥으로 쓰러졌다. 펑광은 전혀 동정심을 보이지 않으며 그녀가 꾀병을 부린다고 말했다.
그들은 120 구급차를 불러 런위훙을 다칭 룽난 병원으로 이송해 검사를 받게 했다. 의사는 입원하라며 “고혈압으로 생명이 위험합니다”라고 말했다. 펑광은 포기하지 않고 런위훙을 다칭 유전 총병원으로 끌고 가 종합 검사를 받게 했지만, 검사 결과는 룽난 병원과 같았다. 런위훙은 다시 이른바 병보석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런위훙의 건강 상태가 극도로 나빴음에도 불구하고, 2019년 3월 29일 펑광은 그녀를 랑후루구 법원에 부당하게 기소했다.
2019년 5월 30일, 런위훙의 가족은 랑후루 법원으로부터 6월 3일에 런위훙에 대한 부당한 재판을 연다는 통지를 받았다. 런위훙은 자신의 신앙이 무죄이며 자신의 건강 상태를 고려해 부당한 재판에 협조하지 않았다. 하지만 공안국, 검찰원, 법원 직원들은 생명을 외면한 채 런위훙을 범죄자로 취급해 인터넷에 수배령을 내렸고 잠복, 감시 등 불법 수단을 동원해 곳곳에서 그녀를 찾아다녔는데, 마치 그녀를 죽음으로 내몰지 않으면 포기하지 않을 기세였다. 런위훙은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나야만 했다.
2019년 7월 10일 오후, 런위훙이 어머니 집에 도착한 지 10분 남짓 됐을 때, 미행하고 잠복해 있던 사복 경찰이 속임수로 문을 열게 한 뒤 런위훙을 끌고 가려 했다. 회복되지 않은 런위훙의 몸은 끌려가는 실랑이 속에서 다시 혼수 증상을 보였으나, 경찰은 그녀를 놔주지 않고 강제로 룽난 병원에 납치해 입원 치료 명목으로 사실상 감금했다. 런위훙은 침대에 수갑으로 묶였고 의사는 강제로 주사를 놨는데, 런위훙은 어떤 약을 맞는지조차 알지 못했으며, 매일 3~4명의 경찰이 병원에서 그녀를 감시하고 지켰다. 랑후루 공안국, 검찰원, 법원은 그녀를 치료하려는 것이 아니라 상태를 완화시킨 뒤 계속해서 박해를 가하려는 것이었다.
2019년 7월 20일경, 랑후루 법원 재판장 장하이옌(張海燕), 재판원 자오위화(趙玉華) 및 검찰원 공소인 펑광, 류차오(劉超) 등은 룽난 병원에서 런위훙에게 대충 부당한 재판을 열고, 그 자리에서 4년형을 부당하게 선고하고 벌금 2만 위안을 갈취한다고 선포해 런위훙의 합법적인 항소권을 직접적으로 박탈했다. 며칠 후, 그들은 서둘러 런위훙을 헤이룽장성 여자감옥으로 보내 박해를 가했으며, 동시에 그녀의 퇴직금 지급을 중단했다.
헤이룽장성 여자감옥에서 온갖 신체적, 정신적 고문을 당하다
헤이룽장성 여자감옥에서, 그녀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상황임에도 런위훙은 인격 모욕과 학대를 당했다. 그녀는 강제로 작은 의자에 앉혀지고 구타와 폭언을 당했으며, 전향과 신앙 포기를 강요받아 신체와 정신이 극도로 짓밟혔고, 박해로 인해 자궁근종까지 생겼다.
2019년 12월, 감옥 측은 런위훙의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가족이 감옥으로 런위훙을 면회하러 왔을 때 감옥 병원에서 수술을 해야 한다며 치료비 명목으로 의료비 3만 위안을 갈취했다. 그러고는 런위훙이 가족을 보고 혈압이 올라 당일 수술을 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가족은 근심 속에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런위훙은 감옥에서 수술을 받은 후 몸이 매우 허약해져 온몸에 힘이 없고 숨이 차며 자주 혼수상태에 빠졌다. 그녀는 생전에 “몇 번이나 혼수상태에 빠졌고 하마터면 그 안에서 죽을 뻔했습니다”라고 말했다. 한번은 런위훙이 물을 마시려고 손에 물컵을 든 채로 기절하고 말았다. 그녀가 깨어났을 때, 누군가 “컵에 있던 물이 다 침대에 쏟아졌어”라고 알려줬다. 그녀는 침대가 축축하게 젖은 것을 보았으나 어쩔 수 없이 그대로 견뎌야 했다. 잔혹한 박해 속에서 런위훙은 고통에 시달리며 살아서 출소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2022년, 온갖 신체적, 정신적 고문으로 몸이 허약해지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런위훙은 4년간의 억울한 옥살이를 마치고 인간 지옥인 헤이룽장성 여자감옥을 떠났다. 가족들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가슴이 아파 눈물을 흘렸다.
박해를 견디지 못하고 억울하게 세상을 떠나다
런위훙은 억울한 옥살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신체와 정신을 조리한 후에야 몸 상태가 어느 정도 호전됐다. 하지만 그녀는 진정한 자유를 얻지 못했고 집에서도 여전히 괴롭힘을 당했다.
2023년 초, 중공 악당의 양회 개최를 이유로 헤이룽장성 공안청은 다칭시 경찰과 결탁해 파룬궁수련자들을 통제하고 감시했다(당시 다칭시 공안국 국장은 쑹훙위안(宋鴻源)이었다). 그해 5월 18일, 다칭시의 수십 명의 파룬궁수련자가 같은 날 다칭시 경찰에게 납치, 가택수색, 괴롭힘을 당했다. 런위훙은 집에서 4명의 사복 경찰에게 연금돼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반나절 넘게 감시를 당했다.
퇴직금은 본래 공민의 합법적인 재산이다. 2023년, 런위훙은 사회보장국으로부터 부당하게 연금 반환을 요구받아 강제로 2만여 위안을 내야 했다. 그녀는 돈을 내지 않으면 퇴직금을 소급 지급하지 않겠다는 위협을 받았다. 2024년이 돼서야 인력자원사회보장국은 런위훙에게 퇴직금을 소급 지급했다.
‘진선인’ 신앙을 견지했다는 이유로 런위훙은 20여 년 동안 중공의 박해를 받으며 겪지 말아야 할 박해를 감내해야 했고, 신체적, 정신적으로 극심한 상처와 유린을 당했다. 그녀는 당뇨병 합병증 진단을 받았으나 치료 효과가 없었다. 결국 런위훙은 말을 하지 못한 채 한 달간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2026년 6월 19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원문발표: 2026년 7월 29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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