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헤이룽장성 통신원) 하얼빈시 다오와이(道外)구 파룬궁수련자 가오커(高科)는 2023년 6월 경찰에게 납치돼 이후 법원에서 부당하게 4년 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치치하얼(齊齊哈爾) 타이라이(泰來) 감옥으로 끌려간 뒤 장기간 고문을 당해 심각한 정신 이상에 이르렀고 건강 상태가 급격히 악화돼 타이라이 감옥 병원으로 이송돼 응급 처치를 받았다. 최근 소식에 따르면 가오커는 2026년 4월 20일 전후로 박해로 사망했으며 향년 약 72세다.
현재 가오커가 타이라이 감옥에서 박해로 사망한 구체적인 과정은 여전히 은폐돼 있다. 타이라이 감옥의 박해 세부 사항과 박해에 가담한 경찰, 검찰관, 법관 등 책임자들을 폭로할 정보 제공자들이 나서주기를 호소한다.
가오커는 하얼빈시 다오와이구 위민(育民) 초등학교 퇴직 교사로 1996년 말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그는 이전에 담석증, 신장결석, 허리디스크, 방광염, 담낭염, 류머티즘, 고혈압, 고지혈증 및 경증 관상동맥 질환 등 다양한 질병을 앓고 있었으나 수련 후 치료하지 않고도 완치됐다. 그는 ‘진선인(眞·善·忍)’을 기준으로 마음을 닦고 선을 향했으며 성실하게 일하고 정직해 상사, 동료, 학생들로부터 깊은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중공)의 파룬궁 박해 속에서 가오커는 16차례 부당하게 감금됐고 5차례 부당하게 강제노동 처분을 받았으며 1차례 부당하게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감금된 기간 그는 극도로 잔혹한 고문을 당했고 여러 차례 생사의 갈림길에 섰으며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1. 첫 번째 창린쯔 노동수용소 수감: 위장관을 기관지에 삽입해 목숨을 잃을 뻔하다
1999년 7월 20일 가오커는 베이징에 가서 파룬궁의 억울함을 청원하다 베이징 경찰에게 납치돼 구타당했으며 화이러우(懷柔)현 구치소, 하얼빈 주베이징 판사처, 하얼빈시 다오와이 제1 구치소에 잇따라 감금됐다. 2001년 3월 그는 1년 부당하게 강제노동 처분을 받았다.
창린쯔(長林子) 노동수용소에서 그는 50여 일 동안 매일 18시간씩 서 있는 벌을 강요당했고 6일 밤낮 동안 독방에 갇혀 두 손이 들보에 수갑으로 채워진 채 서지도 앉지도 못하게 됐으며 10여 차례 쇠의자에 앉기를 강요당했다. 그는 83일 동안 단식하며 박해에 반대하다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 고문을 당했는데 주입된 것은 진한 소금물과 소량의 옥수수 가루였다. 음식물 주입 고문 과정에서 노동수용소의 한 의사가 여러 차례 고의로 관을 기관지에 삽입해 가오커는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 2001년 9월 30일 그는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다.
두 번째 창린쯔 노동수용소 박해: 긴 의자로 등을 가격당해 혼절함
2002년 2월 7일 밤 10시 20명이 넘는 경찰이 가오커의 집에 침입해 그를 납치하고 구타했다. 같은 해 3월 21일 그는 3년 부당하게 강제노동 처분을 받았다.
창린쯔 노동수용소에서 그가 당한 고문은 독방 감금, 전기충격기 충격, 크게 공중 매달기(上大掛), 몽둥이 구타, 진한 소금물 주입, 수면 박탈, 등 뒤로 날아오는 칼 맞기, 고환 쥐어뜯기, 목에 타고 내리찍기, 찬물 끼얹기, 발바닥에 이쑤시개 찌르기, 눈과 코에 담배 연기 뿜기, 아침부터 밤까지 쪼그려 앉아 움직이지 못하게 하기 등이다. 그는 긴 의자로 등을 가격당해 그 자리에서 혼절한 적이 있다. 2004년 9월 18일 그는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다.
세 번째 창린쯔 노동수용소 박해: 쇠의자에 10일 밤낮으로 묶이다
2007년 9월 가오커는 민중에게 진상을 알리다가 퉁장(通江) 파출소 보조경찰에게 납치돼 하얼빈시 구류소에 20일간 감금된 후 창린쯔 노동수용소로 끌려가 이전의 강제노동 처분을 이어받았다.
그가 사법 부문에 노동수용소의 박해 만행을 폭로한 적이 있었기에 소장 스잉바이(史英白)의 원한을 샀다. 부소장 리진화(李金華)는 명령을 받고 그를 10일 밤낮으로 쇠의자에 묶어뒀으며 이로 인해 두 다리가 심하게 붓고 물집이 온통 퍼졌으며 발이 찐빵처럼 붓고 전신이 붓고 나서야 비로소 내려졌다.
네 번째 창린쯔 노동수용소 박해: 16일 밤낮으로 바닥 고리에 묶이고 약물 박해를 받아 위독해져
2009년 6월 가오커는 다오와이 스얼다오(十二道) 거리에서 진상을 알리다가 타이구(太古)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돼 하얼빈시 구류소에 감금됐다. 그는 며칠간 단식한 후 풀려났다. 6월 말 경찰이 다시 집에 침입해 그를 납치했다.
그는 2년 부당하게 강제노동 처분을 받고 완자(萬家) 훈련대(集訓隊)로 끌려간 직후 집단 구타를 당했으며 이후 창린쯔 노동수용소로 이송됐다. 경찰 창성궈(强盛國)는 그를 독방에 가두고 16일 밤낮으로 바닥 고리에 묶어뒀으며 “그가 제자리에서 먹고 제자리에서 싸게 하라”며 욕설을 퍼부었다.
가오커는 단식으로 항의했다. 창성궈는 결박 끈으로 그를 묶고 폭력적으로 음식물을 주입했는데 주입된 음식물에 정체불명의 약물이 섞여 있었다. 가오커는 혈압이 지속해서 상승하고 심장에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16일째 하얼빈시 제2 병원으로 이송돼 검사를 받은 결과 2도 심부전으로 진단됐고 혈압은 200을 넘었다. 노동수용소는 여전히 석방을 거부하고 그에게 강제로 약물을 링거로 투여했으며 투여할수록 심장이 더 아팠다. 그는 약물에 독이 있다고 의심해 협조를 거부했다. 경찰 장빈(張斌)은 그의 손발을 대(大)자로 침대에 수갑 채워 강제로 링거를 투여했고 한 번 묶으면 10여 시간 동안 계속됐다.
그는 21일간 박해를 받은 후에야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고 이후 집을 떠나 떠돌게 됐다.
하얼빈 제2 구치소: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으로 위가 파열돼 출혈
2002년 2월 7일 밤 가오커는 하얼빈시 공안국 1처, 다오와이 분국 내부보위과, 징위(靖宇) 파출소 경찰에게 자택에서 납치돼 하얼빈시 제2 구치소에 부당하게 감금돼 박해받았다. 가오커는 단식으로 항의하다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을 당해 위가 파열돼 출혈이 발생했다. 16일째 하얼빈시 공안국 1처 경찰이 가족에게 보석금 3천 위안을 갈취한 뒤 그를 보석으로 풀어줬다.
하얼빈시 제1 구치소 박해: 악덕 의사가 고의로 음식물 주입 고무관을 기관지에 장시간 삽입
2006년 2월 말 가오커가 하얼빈시 다오와이구 얼스다오(二十道) 거리에서 진상을 알릴 때 하얼빈시 공안국 다오와이 분국 둥위안(東源)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고 당일 밤 하얼빈시 다오와이구 제1 구치소로 끌려가 감금됐다. 가오커는 단식으로 항의하다 5일 뒤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 고문을 당했다. 두 손이 쇠의자 뒤로 수갑 채워진 채 머리와 몸을 죄수들에게 짓눌렸다. 고용된 의사 왕(王) 씨는 고의로 굵은 관을 기관지에 삽입해 장시간 뽑지 않아 그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그 후 왕 씨는 가오커에게 “나는 외과 의사이고 음식물을 주입할 줄 안다. 나는 그때 고의로 당신 기관지에 꽂았다”라고 말했다.
2006년 4월 초 가오커는 2년 부당하게 강제노동 처분을 받았으나 신체검사 불합격으로 완자 노동수용소가 수감을 거부해 다시 구치소로 끌려갔다.
하얼빈시 구류소 박해: 구타 및 폭력적인 음식물 주입을 당해 생명이 위독해져
2009년 2월 가오커가 하얼빈시 다오와이구 얼스다오 거리에서 진상을 알릴 때 하얼빈시 공안국 다오와이 분국 충젠(崇儉)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돼 하얼빈시 구류소에 부당하게 감금돼 박해받았다. 가오커는 단식으로 항의하다 폭력적인 음식물 주입 고문을 당하고 쇠의자에 앉혀졌으며 며칠 뒤 풀려났다.
2010년 2월 20일 가오커가 하얼빈시 다오와이구 난마(南馬)로 8구(八區) 체육장 인근에서 진상을 알릴 때 난마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돼 가택수색을 당했고 당일 하얼빈시 구류소에 부당하게 감금됐다. 구류소 부소장 류이(劉義)가 죄수 쑨쉰(孫遜)을 사주해 가오커를 구타하게 했으며 주먹으로 오른쪽 눈을 맞아 며칠간 실명 상태였고 눈 주위는 자흑색으로 변했다. 가오커는 단식으로 9일간 항의하다 생명이 위독해졌다. 가족이 하얼빈시 공안국 다오와이 분국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대대에 가서 석방을 요구하자 국보는 그제야 사람을 풀어줬다.
쑤이화 노동수용소 박해: 독주사, 크게 공중 매달기, 담배 연기 질식 고문으로 숨이 끊어질 뻔해
2012년 10월 22일 가오커가 하얼빈시 난강(南崗)구 시다즈(西大直) 거리에서 진상을 알릴 때 하얼빈시 공안국 난강 분국 치정(七政)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돼 쇠의자에 앉는 박해를 받았고 다음 날 하얼빈시 구류소로 끌려가 감금돼 박해받았다. 가오커는 단식으로 항의하다 폭력적인 음식물 주입 박해를 당했고 5일 후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다.
2012년 11월 14일 하얼빈시 공안국 난강 분국 국보 대대, 치정 파출소 및 다오와이 분국 국보 대대, 징위제(靖宇街) 파출소 등 10여 명의 경찰이 가오커의 집에 침입해 가오커를 건물 아래로 들고 가 하얼빈시 구류소로 끌고 갔다. 1시간여 후 가오커는 헤이룽장성 쑤이화(綏化) 노동수용소로 끌려갔다.
2012년 11월 17일 오후 가오커는 감옥경찰에 의해 수갑과 족쇄로 나무 침대에 몇 시간 동안 묶여 있다가 또 경찰에게 노동수용소 병원으로 끌려가 손발이 병상에 묶여 고정된 채 강제로 정맥에 약물 링거를 맞았으며 연이어 2일 밤낮 동안 20여 병을 맞아 심장에 극심한 통증이 발생했고 손발은 다시 침대에 고정돼 묶인 채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11월 18일 아침 이미 의식이 불분명한 가오커는 스젠(石劍) 등 몇몇 경찰에게 강제로 죄수복이 입혀져 감방으로 돌려보내졌다. 가오커는 정신을 차린 후 죄수복을 벗고 감옥경찰 대대장 판쥐잉(潘巨英)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나는 무죄이므로 죄수복을 입지 않겠다”라고 알렸다.
2012년 11월 19일 아침 감옥경찰 판샤오둥(范曉冬) 등은 가오커를 3층에 감시 카메라가 없는 작은 방에 가뒀고 6~7명의 경찰이 그에게 고문을 시작했으며 경찰 판샤오둥은 “그를 죽여버리고 자살했다고 치자”라고 큰소리로 외쳤다. 몇몇 경찰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가오커에게 크게 공중 매달기 고문을 가했는데 두 팔을 등 뒤로 꺾고 침대보를 꼬아 밧줄을 만들어 두 손을 묶고 2층 침대의 위층에 묶어 두 발이 땅에서 떨어지게 했다. 경찰 스젠이 발로 가오커의 엉덩이를 밀어 몸이 침대에 닿지 못하게 하자 가오커는 머리가 앞으로 향한 채 허공에 매달렸다. 가오커는 계속해서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나는 무죄이므로 죄수복을 입지 않겠다”라고 외쳤다. 경찰 판샤오둥은 담배를 피워 가오커의 코를 그을리고 담배 연기를 빨아들여 그의 얼굴에 뿜어 숨을 막히게 했다. 가오커의 심장에 극심한 통증이 발생하자 경찰 판샤오둥은 구심환을 그의 입에 쑤셔 넣었다. 가오커가 30분 동안 매달려 사람의 목숨이 위험해질 것 같아 보이자 경찰은 그제야 그를 내려놓았다. 가오커는 이러한 크게 공중 매달기를 연이어 4차례나 당했다.
가오커가 4번째 크게 공중 매달기를 당해 숨이 끊어질 뻔했을 때 한 감옥경찰이 “그의 사부님 법상을 찢어서 바지가랑이에 쑤셔 넣어라!”라고 소리쳤다. 여러 감옥경찰이 즉각 동조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감옥경찰은 판샤오둥, 롄싱(廉興), 스젠, 판쥐잉, 쉬난성(徐男生) 등이었다.
가오커는 22일간 고문당해 생명이 위독해졌고 2012년 12월 5일 가족이 그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타이라이 감옥의 고문으로 정신 이상에 이르고 끝내 사망
2022년 9월 14일 가오커는 진상 달력을 배포하다 경찰에게 하얼빈 다오와이구 징위 파출소로 납치됐고 신체검사에서 혈압이 높게 나와 소위 취보후심(取保候審, 보석 상태에서 수사·재판을 받는 조치)으로 풀려났다.
2023년 2월 9일 가오커는 징위 파출소 경찰에게 집에서 하얼빈 다오와이구 검찰원으로 끌려갔으며 추가적인 박해를 받을 뻔했다. 가오커는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나 떠돌게 됐다.
2023년 6월 16일 가오커는 빈(賓)현에서 시장에 채소를 사러 갔다가 빈현에 사는 다오와이구 공안분국 경찰에게 납치돼 하얼빈 야쯔취안(鴨子圈) 구치소에 부당하게 감금됐다. 이 기간에 가오커는 단식으로 박해를 거부하다 독타와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 고문을 당했고 한때 의식을 잃을 정도로 고문당해 120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가 응급 처치를 받았으나 4일 후 또 구치소로 끌려가 계속 박해를 받았다.
2024년 2월 명혜망 소식에 따르면 가오커는 이미 하얼빈 다오와이구 공안분국, 검찰원, 법원의 공모로 4년 6개월형을 부당하게 선고받고 후란(呼蘭) 감옥 훈련대로 끌려가 박해받았으며 몇 달 후 치치하얼 타이라이 감옥으로 이감돼 박해받았다.
2025년 10월 23일 명혜망 소식에 따르면 가오커는 치치하얼 타이라이 감옥에서 박해받아 정신 이상에 이르러 자주 혼잣말을 하고 울고 웃는 것이 정상적이지 않았다.
며칠 전 가오커가 박해로 생명이 위독해져 타이라이 감옥 병원으로 이송돼 응급 처치를 받았다는 소식을 접했다. 머지않아 가오커가 2026년 4월 20일 전후로 박해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가오커는 평생 선량하고 정직했으나 중공의 파룬궁 박해 운동 속에서 무수한 고문을 당하고 끝내 박해로 사망했다. 정보 제공자들이 용감하게 나서서 타이라이 감옥의 만행을 폭로하고 진상을 기록해 증거를 남기기를 바란다.
(가오커가 중공에 잔혹하게 박해당한 더 자세한 내용은 명혜망 보도 ‘13차례 납치, 5차례 강제노동 하얼빈 교사의 구사일생’, ‘하얼빈시 퇴직 교사 가오커 다시 부당하게 감금돼 모함당해’, ‘10여 차례 부당하게 감금된 하얼빈 퇴직 교사 가오커, 부당하게 4년 6개월형 선고받아’, ‘거듭된 박해로 구사일생 하얼빈 71세 가오커 여전히 감옥에 갇혀’, ‘하얼빈 70대 퇴직 교사 가오커, 감옥 박해로 정신 이상에 이르러’를 참조 바람)
원문발표: 2026년 5월 9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5/9/509738.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5/9/509738.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