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산둥성 통신원) 허베이성 창저우시 둥광현의 60대 파룬궁수련자 청구이쥔(程桂君)은 2024년 6월 19일 산둥성 더저우시 닝진현 공안국 경찰에게 성(省)을 넘어 납치돼 더저우시 구치소에 감금돼 박해당했다. 닝진현 법원은 이후 그녀에게 불법적으로 3년형을 선고했다. 2026년 2월 5일, 그녀는 산둥성 여자감옥으로 납치돼 계속해서 박해를 받고 있다.
창저우시 둥광현 청관진 베이제에 거주하는 청구이쥔은 1998년 인연이 닿아 ‘전법륜(轉法輪)’을 읽게 됐다. 책 속의 심오한 법리는 그녀의 마음을 활짝 열어주었고, 진선인(眞善忍-진실·선량·인내) 원칙은 그녀 삶의 길잡이가 됐다. 이때부터 그녀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의 길에 들어섰다.
그녀는 파룬따파를 통해 심신에 큰 혜택을 얻었다. 수련 전 그녀는 일 년 내내 감기를 달고 살았으며, 찬 음식을 조금만 먹어도 설사를 했고 다리 통증과 허리 통증 등 질병에 시달렸다. 수련 후 이러한 병증이 모두 사라지고 건강해졌으며 가정은 더욱 화목해졌다. 청구이쥔은 “이 모든 것은 제 생명을 다 바쳐도 리훙쯔(李洪志) 사부님께 다 감사드릴 수 없으며, 어떤 언어로도 파룬따파의 위대함을 묘사하기 어렵습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1999년 7월 중국공산당(중공)이 파룬궁 박해를 시작한 후, 청구이쥔은 신앙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납치, 불법 감금됐고, 두 차례 불법적인 강제노동 처분과 한 차례 불법 징역형을 받았다.
◎ 베이징 평화 청원, 수차례 불법 감금돼
1999년 10월 15일, 청구이쥔은 베이징에 가서 평화 청원을 하다가 신방국(信訪局) 마당에서 하룻밤 불법 감금됐다. 다음 날, 그녀는 둥광현 공안국 정치위원 왕시제(王希傑) 등에게 납치돼 둥광현 구치소에 45일간 불법 감금됐고, 가족이 8천 위안(약 160만 원)을 갈취당한 후에야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구치소에서 그녀는 구타와 폭언, 벌서기, 달리기 체벌, 잠 안 재우기 등 고문을 당했다. 그녀가 단식으로 항의하자 큰 철제 의자에 묶인 채 콧구멍으로 관을 꽂아 강제 음식물 주입을 당했다.
2000년 2월 14일, 그녀는 다시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가 천안문 성루에서 경찰에게 납치돼 베이징시 둥청구 공안분국으로 끌려가 벌서기, 뺨 맞기, 경찰봉으로 머리 맞기 등 고문을 당했고 몸에 지니고 있던 현금 2백 위안도 빼앗겼다. 다음 날 그녀는 둥광현 구치소로 납치돼 30일간 불법 감금됐으며, 가족이 4백여 위안을 갈취당한 후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그 기간에 악질 경찰 리궈잉(李國英)은 그녀의 몸에서 대법서적을 찾아내고는 그녀를 온돌방에 눕혀놓고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찼다. 이후 그녀는 보터우 구치소로 이감돼 매일 17시간씩 노예노동을 강요당했다.
2000년 7월, 둥광진 정부 부진장 장전성(張振升)은 왕루쥔(王路軍) 등 4명을 사주해 그녀를 취좡 양로원(세뇌반)으로 납치해 감금했다. 그녀는 5일간 단식한 후에야 풀려났다.
2001년 새해 첫날, 그녀는 천안문 광장에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펼치다가 악질 경찰에 의해 바닥에 쓰러져 10여 미터를 끌려간 후 강제로 경찰차에 압송됐다. 그녀는 베이징 충원구에 불법 감금됐고, 다음 날 또 왕시제에게 납치돼 둥광현 구치소로 돌아와 매일 성냥갑 붙이는 일을 강요당했다.
어느 날 동이 트기 전 새벽, 악질 경찰 추궈장(秋國章, 음역)은 그녀와 쉬수청(徐樹成), 류싱룽(劉杏榮), 쉬원리(徐文麗) 등 여성 수련자들을 감방에서 불러내 신발을 벗기고 마당 눈밭에 서게 한 뒤, 두 손을 ‘일(一)’자 모양으로 평평하게 들게 했으며 따르지 않으면 채찍으로 때렸다. 그녀들은 눈밭에서 3시간 넘게 얼어붙어 있었다.
둥광현 구치소에서 4개월 넘게 박해당한 후, 그녀는 1년의 불법 강제노동 처분을 받았다.
◎ 첫 번째 불법 강제노동: 탕산 카이핑 노동수용소, 바오딩 가오양 노동수용소
2001년 4월 11일, 청구이쥔은 14명의 파룬궁수련자와 함께 탕산 카이핑 노동수용소 여자대대로 납치됐다. 대대에 들어가자마자 수색, 벌서기, 수면 박탈, 독방 감금, 세면 제한, 화장실 사용 금지, 말하기 금지 등을 당했고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고 감시받았다.
2001년 6월, 그녀들은 다시 바오딩 가오양 노동수용소로 이감됐다. 대대에 들어가자마자 옷이 벗겨진 채 수색을 당했다. 다음 날 저녁, 경찰은 그녀를 한 방으로 불러 신발과 양말을 벗기고 지묘(地錨, 바닥에 고정된 링)에 눌러 수갑을 채웠다. 여성 악질 경찰 류야민(劉婭敏)과 남성 악질 경찰 리(李) 씨는 전기봉으로 그녀의 발바닥, 발등, 발가락을 전기 충격하고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며 “전향(수련 포기)하지 않으면 내일 계속하겠다”라고 협박했다. 그녀는 심야까지 고문당한 후에야 감방으로 끌려갔다.
7월 초, 그녀는 전향을 거부하는 10여 명의 수련자와 함께 축축하고 어두운 세뇌반에 3개월간 감금됐다. 매일 새벽 5시부터 심야까지 작은 목제 의자에 앉아 대법을 모독하는 비디오를 보도록 강요받았으며, 조금만 움직여도 구타당했다.
2001년 8월 야간에 경찰 대대장 왕야제(王亞傑)가 7~8명의 경찰을 데리고 여러 개의 전기봉으로 그녀의 발바닥, 발등, 발가락을 전기 충격하고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며 뺨을 때려 그녀가 기절할 때까지 괴롭혔다.
세뇌반이 끝난 후, 그녀들은 또다시 장기간 과도한 노예노동을 강요당했다.
2002년 새해 첫날, 그녀는 가오양 노동수용소를 걸어 나왔다.
◎ 둥광현 교통경찰대대, 창저우 방폭대에서 잔혹한 고문당해
2002년 11월 1일, 청구이쥔, 둥젠민(董建敏), 판쭝신(范宗新) 등 3명은 둥광현 공안국의 궁징원(宮敬溫), 궈루이(郭銳) 등에게 납치돼 둥광현 교통경찰대대로 끌려갔다. 청구이쥔은 몸에 지니고 있던 1만 1800위안의 현금을 빼앗겼다. 세 사람은 각각 큰 철제 의자에 묶여 양손이 양옆으로 수갑 채워진 채 5일 낮 4일 밤 연속으로 잠을 자지 못했고, 눈을 조금만 감아도 구타당했다.
11월 5일, 그녀들은 둥광현 구치소로 이감됐다. 15일 후, 궁징원과 궈루이는 청구이쥔을 다시 교통경찰대대로 납치해 창저우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대대 처리(車力), 자모(賈某), 왕이신(王義新) 등 4명의 악질 경찰과 결탁해 계속 고문했다. 그녀는 다시 큰 철제 의자에 수갑으로 채워진 채 수면이 금지됐다. 왕이신은 라이터로 그녀의 손가락을 지지고, 얼굴에 물을 뿌렸으며, 열쇠로 갈비뼈를 찔렀다.
5일 밤낮이 지난 후, 그녀는 다시 창저우 방폭대로 납치돼 하룻밤 고문을 당하고 나서야 둥광현 구치소로 돌려보내졌다.
◎ 두 번째 불법 강제노동: 탕산 카이핑 노동수용소
2002년 12월, 그녀는 2년의 불법 강제노동 처분을 받고 다시 탕산 카이핑 노동수용소로 납치됐다. 악질 경찰은 파룬궁수련자들에게 심한 구타, 체벌, 잠 안 재우기,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 전기 충격, 밧줄 묶기(上繩) 등 고문을 가했다.
그녀가 단식으로 항의하자 악질 경찰은 머리채를 잡고 목덜미를 쥐어 침대에서 바닥으로 내동댕이쳤으며, 뺨을 때리고 끌고 가서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했다. 팔다리가 의자에 묶인 채 대변을 볼 때도 화장실에 가지 못하게 했으며 매일 두 번씩 음식물을 주입했다. 비위관을 반복적으로 꽂았다 뺐다 하여 입과 코에는 늘 피가 뚝뚝 떨어졌다.
2004년 11월 1일, 그녀는 2년간의 강제노동 박해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 닝진현 법원에서 3년 징역형 부당하게 선고받아
2024년 6월 19일, 청구이쥔은 둥광현 수련자 쑹구이펀(宋桂芬), 장원핑(張文萍)과 함께 산둥성 닝진현 시장에서 진상을 알리다가 납치됐다. 당일, 닝진현 국보 대대는 성을 넘어 허베이성 둥광현으로 가서 현지 파출소와 결탁해 가택수색을 했다. 동시에 먼빙청(門丙城), 위융리(於永利), 리전잉(李珍英)도 납치되고 가택수색을 당했다. 국보 경찰들은 “그들의 일상 활동을 손바닥 보듯 환히 알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6명의 수련자는 더저우시 구치소에 감금됐다. 7월 29일 닝진현 검찰원에 의해 불법 체포가 승인됐다. 검찰원은 서류를 반려해 ‘수사’를 보완하도록 했고, 9월 24일 사건 기록이 다시 제출됐다.
2024년 10월 초순, 사건이 닝진현 법원에서 기소됐다.
2025년 4월 18일, 법원은 불법 재판을 열었다. 재판 3일 전, 법원은 ‘증인 배제’를 핑계로 가족에게 방청객 정보를 제출하라고 요구했으며, 각 가정당 단 2명으로 제한했다. 재판 당일, 법원은 또 임시로 ‘변호사 1명, 가족 변호인 1명’만 입장을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나머지 가족들은 문전박대를 당했다.
재판의 위법 정황은 심각했다. 가족과 변호사가 항의하고 경찰에 신고하며 이의를 제기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위법을 저지하기 위해 가족은 어쩔 수 없이 법정에서 변호사를 해임했고, 재판은 오후에 휴정을 선언했다.
2025년 8월 12일부터 13일까지 법원은 다시 불법 재판을 열었다. 5명의 수련자는 무죄를 스스로 변론했고, 가족 변호인과 5명의 변호사도 모두 무죄 변론을 하며 검찰 측의 혐의를 전면 반박했으며, 수사 직원들의 여러 위법 행위를 지적하자 공소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2025년 11월 14일 알려진 바에 따르면, 청구이쥔은 불법적으로 3년형을 선고받았고, 리전잉 4년형, 위융리 3년형, 장원핑 2년형, 먼빙청 1년 6개월형, 쑹구이펀 1년형을 선고받았으며 3천에서 1만 위안의 벌금을 갈취당했다.
2026년 2월 5일, 청구이쥔, 리전잉, 장원핑은 산둥성 여자감옥으로 납치됐고, 2월 10일 위융리는 산둥성 지난 감옥으로 납치됐다.
관련 정보:
산둥성 여자감옥(정보가 변경될 수 있음)
주소: 산둥성 지난시 가오신구 쑨춘 판사처 822사서함 111분함
전화: 531-85838300, 0531-85688158, 0531-85838316, 0531-85838310, 0531-85838066
감옥장 리옌췬(李延群) 18053710002
부감옥장 왕징(王靜) 18053105129
부정치위원 한춘첸(韓春茜) 18053105150
교육개조과(전향 박해 담당):
과장 장옌(張燕), 왕창정(王長征) 18053105018, 왕하이옌(王海燕) 18053105112, 정레이(鄭磊) 18053105206, 자이리즈(翟麗質) 18053105102, 리커(李科) 18053121213, 펑웨이지(彭維芝) 18053105196, 왕샤오리(王曉莉) 18053105244, 쑤페이페이(蘇菲菲) 18053105315, 펑위(彭瑜) 18053105348, 천샤오메이(陳曉梅) 18053105451
제11감구: 0531-85838310(파룬궁수련자를 전문적으로 감금하고 박해하는 감구)
부감구장 쑨리(孫莉) 18053105274, 추궈화(褚國華) 18053105209, 쉬위메이(徐玉美) 18053105152, 위젠화(於建華) 18053105188, 자오리윈(趙麗雲) 18053105292, 양양(楊揚) 18053105232, 장난(張楠) 18053105260, 류루이쉐(劉瑞雪) 18053105204, 장헝샤오(張恆曉) 15806691782, 천난(陳楠) 18053105308, 장옌메이(姜燕美) 18053105445, 가오링(高玲) 13698638757, 양쑤(楊蘇) 18765896596, 화레이(花蕾) 13165445537, 무충보(穆瓊博) 18053105406, 인리(尹力) 18053105433
원문발표: 2026년 3월 11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3/11/50769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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