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랴오닝성 통신원) 랴오닝성 차오양(朝陽)시의 73세 파룬궁 수련생 장수이인(張樹印)은 2025년 12월 4일 차오양시 솽타(雙塔) 공안분국 경찰에게 자택에서 납치됐다. 그 후 차오양시 구치소에 불법 감금돼 지금까지 3개월이 지났다. 구치소에서 그는 몸이 극도로 마르는 등 상황이 매우 우려된다.
2025년 11월 24일, 차오양시 첸진(前進) 파출소 경찰이 장수이인의 집에 찾아왔다. 그들은 그가 중앙시장에서 스티커를 붙이는 모습이 감시카메라에 찍혔다며 강제로 파출소로 끌고 갔고, 3시간 넘게 불법 심문을 한 뒤에야 집으로 돌려보냈다.
열흘 뒤인 12월 4일, 솽타 공안분국 경찰이 다시 장수이인의 집에 들이닥쳐 불법 가택수색을 했다. 그들은 위성방송 수신기와 대법 진상 자료를 강탈하고 그를 강제로 납치해 곧바로 차오양시 구치소로 끌고 갔으며, 지금까지 감금하고 박해하고 있다.
장수이인은 원래 건강했는데 구치소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급격히 살이 빠져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선량한 그는 사람들에게 평안을 지키는 좋은 방법을 알려주었을 뿐, 그 어떤 법률도 어기지 않았다. 관계 당국은 즉시 장수이인을 무죄 석방해 집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1. 대법을 수련하며 매사에 남을 배려하는 좋은 사람
장수이인은 1953년 6월생으로 전 차오양시 노동교양원 직원이다. 1996년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해 법공부와 연공을 통해 심장병, 불면증, 건망증, 관절염 등이 모두 완쾌됐다. 장수이인은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 노력했다. 그는 이사를 여러 번 다녔는데, 가는 곳마다 자발적으로 청소하고 보도블록을 깔고 길을 보수했으며, 무료로 자전거를 수리해주고 눈을 치우거나 공용 공기 주입기를 비치하기도 했다. 직장에서는 여가 시간을 이용해 폐품을 수리하고 재활용해 매년 수만 위안의 수리비를 절감해 주었다.
한번은 섣달그믐날 보일러에서 물이 새 난방이 안 되는 일이 있었다. 수리 회사는 이미 휴무라 난방을 못 하면 설비가 동파돼 막대한 손실을 볼 상황이었다. 장수이인은 위험을 무릅쓰고 작은 구멍을 통해 뜨거운 화덕 안으로 기어 들어가 용접 작업을 했다. 배관이 터져 뜨거운 물이 뿜어져 나오면 피할 곳도 없는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다. 결국 장수이인은 수리에 성공해 난방을 재개시켰고, 급한 불을 껐을 뿐만 아니라 수천 위안의 수리비도 아꼈다. 누군가는 그를 바보라고 했지만, 장수이인은 자신이 파룬따파 수련자이기에 매사에 남을 먼저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중공(중국공산당)이 1999년 7월 파룬궁을 광적으로 박해하기 시작한 후, 장수이인은 진선인 신앙을 지킨다는 이유로 중공 요원들에게 여러 차례 납치, 감금당했고 가족까지 연루돼 아내와 이혼해야 했다. 다음은 장수이인이 중공에게 당한 박해 사실 일부다.
2. 불법 감금과 강제노동, 그리고 해고
2000년 4월 30일, 장수이인은 베이징 공안부 지도자를 찾아가 자신이 수련하는 파룬궁의 아름다움을 설명했다. 그 지도자는 한참 생각하더니 긴 한숨을 내쉬며 “좋으면 집에서나 연마하시오. 계란으로 바위 치기 아니오!”라고 했다. 이후 장수이인은 베이징에 억류됐고, 직장인 차오양시 교양원 직원들과 차오양시 공안국 룽청(龍城) 분국 경찰 쑨쉰(孫遜), 황뎬샹(黃殿相)에 의해 압송돼 차오양시 제2 구치소에 보름간 불법 감금됐으며, 벌금 1천 위안을 내고 직장마저 잃었다.
2001년, 차오양시 룽청구 국보(국내안전보위대) 과장은 장수이인이 제지공장에 취직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내를 찾아가 장수이인이 있는 곳을 대라며 협박했다. 결국 납치된 장수이인은 룽청구 국보과에서 고문과 심문을 당했다. 그는 차오양시 제2 구치소에 3개월 넘게 불법 감금됐는데, 경찰은 보름마다 ‘사회질서 교란’ 죄명을 씌운 구류장을 보냈다. 장수이인이 “이렇게 오랫동안 갇혀 있는데 어떻게 사회질서를 교란할 수 있느냐”고 따지자, 할 말이 없어진 경찰은 죄명을 ‘문제 불고지(문제가 되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국에 고지하지 않은 죄)’로 바꿨다. 그야말로 죄를 씌우려니 구실이 없지 않은 격이었다. 차오양시 제2 구치소 감금 기간, 장수이인은 단식으로 박해에 저항하다 폭력적인 음식물 주입을 당했다. 무장경찰 10여 명이 머리와 다리를 누르고 코로 관을 꽂을 때 그는 질식해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이후 그는 불법 강제노동 처분을 받았다. 노동수용소는 그를 ‘전향’시키기 위해 두 달 넘게 작은 플라스틱 의자에만 앉아 있게 강요했다.
2007년 5월 13일 저녁, 장수이인은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 잠복 중이던 첸진 공안분국 경찰에게 납치됐다. 스자허타오(十家河套) 구치소에 15일간 감금된 뒤 2년 강제노동 처분을 받았으나, 가족에게 돈을 갈취한 후 감외집행(집행유예 성격)으로 변경됐다.
2021년 6월 11일, 장수이인은 차오양시 광밍(光明) 분국 경찰에게 납치돼 차오양시 구류소에 며칠간 불법 구류됐다.
2024년 5월 11일 오전, 장수이인은 자택에서 베이타(北塔) 공안분국 경찰에게 납치됐다가 귀가했다.
2025년 12월 4일, 73세 장수이인은 차오양시 솽타 공안분국 경찰에게 납치됐고, 차오양시 구치소로 끌려가 지금까지 박해받고 있다.
3. 연좌제 박해로 가족 뿔뿔이 흩어져
2001년 장수이인이 차오양시 제2 구치소에 장기 불법 감금됐을 때, 아내는 차오양시 싼타(三塔) 신용협동조합에서 출납 업무를 보고 있었다. 남편이 장기 감금되고 경찰이 수시로 괴롭히는 데다 직장 상사와 동료들의 눈총까지 받으니 견디기 힘들었다. 게다가 집에는 80세 시어머니와 어린 남매를 돌봐야 했고, 창구에서 매일 수천만 위안의 현금을 다루느라 실수할까 봐 불안했다. 중공의 정치 운동에 친척들도 두려워했고, 결국 한계에 다다른 아내는 구류소에 이혼 합의서를 던져놓고 이혼을 요구했다.
당시 라디오방송국 아나운서였던 딸은 부모의 이혼 충격에 이어 약혼자에게 파혼 통보를 받았다. 무장경찰이었던 약혼자는 부대에서 진급하려면 반드시 약혼녀와 헤어져야 한다는 압박을 받았다. 딸에게는 엎친 데 덮친 격의 아픔이었다.
학교에 다니던 아들은 아빠의 수난과 가정 파탄, 학교 선생님과 친구들의 차별을 겪으며, 활달했던 아이가 종일 말 한마디 없는 아이로 변해버렸다.
2001년 장수이인이 차오양시 제2 구치소에 장기 감금됐을 때, 경찰은 그를 ‘전향’시키기 위해 머나먼 산골에 사는 80세 노모를 속이고 위협해 구류소로 데려왔다. 400리 길을 덜컹거리며 온 노모는 구류소에 도착하자마자 아들 앞에 주저앉았다. 백발이 성성한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장수이인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급히 어머니를 부축하려 했으나 노인은 무릎을 꿇은 채 일어나지 않았고, 주변 친척들은 눈을 부라리며 “어머니냐, 파룬궁이냐?”고 다그쳤다. 장수이인은 “어머니는 저를 낳아 길러주신 은혜가 있고, 파룬궁은 제 몸을 가볍게 하고 사람 되는 도리를 가르쳐 주신 재조지은(再造之恩)이 있으니 둘 다 버릴 수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설득이 통하지 않자 동생이 달려들어 장수이인의 뺨을 몇 차례 때린 뒤 탈진한 어머니를 부축해 분노하며 떠났다. 아내 역시 이때 이혼 서류를 남기고 떠나버렸다.
솽타 공안분국:
주소: 랴오닝성 차오양시 솽타구 위룽 대가 261A호
국장 장더바오(張德寶) 13842133680
첸진 파출소:
주소: 랴오닝성 차오양시 솽타구 중산 대가 2호
당직 전화: 0421-3805270
종합 서비스실: 0421-3713178
원문발표: 2026년 3월 5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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