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헤이룽장성 통신원) 헤이룽장성 허강(鶴崗)시 파룬궁수련자 쉬즈청(徐志成 또는 徐志誠)은 2005년 9월 23일 난산(南山) 공안분국 6호 파출소 악랄한 경찰에게 자택에서 납치돼 난산 톄시(鐵西) 파출소로 끌려가 4일 밤낮으로 음식과 물을 금지당한 채 박해받았다. 26일 허강시 공안국 제2 구치소로 이송된 그는 단식으로 항의하다 악랄한 경찰에게 박해받았는데, 지곤(支棍·두 다리 사이를 벌려 고정하는 철봉) 고문을 당하는 등 심신에 처참한 유린을 당한 끝에 10월 3일 박해로 사망했다.
쉬즈청(44세 남성)은 전문학교를 졸업한 허강시 광무국 난산 탄광 엔지니어였다. 1996년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1999년 중공 악당이 파룬궁 박해를 시작하자마자 쉬즈청은 직장 내 불법 인원에 의해 일반 노동직으로 좌천됐다. 2002년 4월 20일 쉬즈청은 허강시 공안국 난산 분국에 의해 집에서 불법 납치돼 3년간 불법 강제노동 처분을 받았다.
최근 한 소식통이 쉬즈청이 2005년 9월 26일 허강시 제2 구치소로 납치된 후 겪은 고문에 대해 증언했다.
쉬즈청은 3번 감방에 수감됐으며 담당 감옥경찰 성은 황(黃)씨였다. 당시 그 감방에는 약 20명의 용의자가 수감돼 있었는데, 그중에는 허강에서 유명한 조폭 두목 왕진산(王金山)과 치치하얼(齊齊哈爾)의 조폭 두목 장즈신(張植新·별명 대지주)이 타지역 이송 수감 상태로 있었다. 그 둘은 3번 감방의 당번(실질적인 방장으로 문제가 생기면 담당 감옥경찰에게 보고하는 역할)이었다.
쉬즈청은 3번 감방에 갇힌 뒤 곧바로 ‘단식’을 시작했다. 그러자 참혹한 고문이 실시됐다. 수갑을 채우고 ‘지곤’을 채웠다. 쉬즈청이 ‘단식’한 지 3일이 지나자 구치소 측은 야만적인 음식물 강제주입을 시작했다. 코에 호스를 삽입해 매일 한 차례씩 강제로 음식을 넣었는데, 지름 약 20cm의 철 대야에 소금을 친 옥수수 죽을 담아 부어 넣었다. 강제주입 때마다 4~5명이 박해에 가담했다. 그중에는 50대 전후에 키가 180 정도인 장(張)씨 성의 의사와 여의사 한 명이 있었는데 두 사람이 교대로 근무했다. 제2 구치소에는 강제노동을 하러 나가는 수감자들도 있었는데 구치소 사람들은 그들을 ‘노동호(勞動號)’라고 불렀다.
약 네 번째 강제주입 때 호스 삽입 실수나 다른 원인으로 주입된 음식물이 전부 역류해 바닥에 쏟아졌고 혈흔까지 섞여 있었다. 강제주입은 매일 오전 10시경에 이뤄졌으며 그 과정에서 수련자들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날 저녁 8시경 강제로 바닥에 앉아 있던 한 파룬궁수련자가 쉬즈청의 상태가 평소와 달리 고개가 축 늘어진 것을 발견했다. 다가가 그의 이름을 불렀으나 그는 무언가 말하려는 듯했지만 소리를 내지 못했다. 이에 그 수련자는 당번 수감자에게 “쉬즈청이 위독해요”라고 알렸다. 당번 수감자가 왕진산과 장즈신에게 보고하자 그들은 당번 수감자에게 벽에 있는 벨(대화용 버튼)을 누르게 했다. 당번 수감자가 상황을 설명했으나 대화기 너머에서는 “아무 일 없으니 상관하지 마라”라는 소리만 들려오고 끊겼다.
그 후 약 3시간이 더 흐른 밤 11시경 그 수련자가 다시 다가가 쉬즈청의 턱을 손으로 들어 올렸으나 손을 떼자마자 머리가 다시 툭 떨어졌다. 수련자가 “사람이 죽어가요!”라고 외치자 당번 수감자는 “함부로 말하지 마”라고 했다. 수련자가 다시 “이리 와서 좀 보세요”라고 요구하자 당번 수감자 두 명이 다가와 상태를 확인하고는 상황이 심각함을 깨달았다. 그들은 왕진산과 장즈신을 깨웠고 다시 버튼을 눌러 감옥경찰에게 실제 상황을 보고했다. 약 15분이 지나서야 당직 경찰들이 들어왔다.
당시 당직은 제2 구치소 소장 리수린(李樹林)과 장 의사였다. 들어와서 상태가 위중함을 확인하고 맥을 짚어본 리수린은 120 응급 전화를 걸었다. 그제야 바닥 철 고리의 자물쇠를 풀고 노동호 수감자들을 불러 쉬즈청을 메고 나가게 했다. 망치와 도구를 가져와 발에 채워진 ‘지곤’을 때려 부수는 데만 최소 5분이 걸렸다. 밤 11시 40분경이 돼서야 120 구급차가 쉬즈청을 실어갔으나, 허강시 인민병원에서 이른바 ‘응급처치’를 받았음에도 소용없이 사망했다. 참으로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는 처사였다! 기백이 넘치던 한 생명이 이렇게 중공 악당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며칠 후 구치소 앞 사무동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쉬즈청 가족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소리였을 것이다. 사람이 죽었기에 구치소 주재 검찰관이 3번 감방의 모든 사람을 조사하려 했다. 하지만 주재 검찰관이 조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제2 구치소 측은 진실을 말해 자신들에게 불리할 것 같은 파룬궁수련자와 다른 수감자 몇 명을 이미 다른 감방으로 이송시킨 상태였다. 보름 정도 지난 뒤 수감자들 사이에서는 사건 은폐를 위해 수사 기관(난산 공안분국)이 가족에게 8만 위안을 주고 사건을 매듭지었다는 이야기가 은밀히 돌았다.
원문발표: 2026년 2월 8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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