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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잔혹한 시달림을 받은 중수쥐안, 박해로 사망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랴오닝 보도) 다롄 파룬궁(法輪功) 수련생 중수쥐안(仲淑娟)은 2021년 12월 24일 오후 5시 랴오닝성 여자 감옥에서 박해로 사망했고 향년 66세다. 유해는 중국공산당(중공)의 공안, 검찰, 법원의 현장 감시하에 화장했다. 감옥에 불법적으로 수감된 파룬궁 수련생은 “그녀는 사악의 모든 요구와 명령에 협조하지 않아 많은 박해를 당했다. 그러나 그녀는 모두 웃어넘겼다.”라고 말했다.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22년간 중수쥐안은 7번 납치당했고 12년간 불법적으로 수감당했으며 온갖 잔인무도한 박해를 당했다. 그녀의 딸 리슈리(李秀麗)는 둥베이(東北) 재정경제 대학 부속 중등 전문대학에서 공부할 때 각 과목의 성적은 모두 반 1등, 전교 3등이었다. 그녀는 박해의 폭력적인 공포 속에서 정신 이상이 생겼다.

2016년 6월 28일 아침 7시쯤, 중수쥐안이 외출하려고 할 때 그녀의 집 밖에서 기다리던 춘하이(春海) 파출소 경찰이 한꺼번에 밀려 들어와 집을 수색했다. 그녀 집에서 수십 권의 대법 서적과 일부 개인물품을 강탈했고 중수쥐안 일가 세 식구를 춘하이 파출소로 납치해갔다. 그날 밤 10시 반쯤 중수쥐안의 남편 리콴(李寬), 실성한 딸 리슈리는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고 거주지를 감시당했다. 중수쥐안은 불법적으로 수감되었고 모함으로 간징쯔(甘井子)구 법원에 의해 무고한 징역형 7년 6개월을 선고받고 2018년 8월 28일 랴오닝성 여자 감옥에 수감되었다. 약 3년 6개월 동안 중수쥐안은 박해받아 유방암에 걸렸다. 2021년 연초 가족이 서면으로 보석 치료를 신청했지만 감옥 측은 거절했다.

중수쥐안은 다롄시 간징쯔구 화난(華南) 중학교 부근에서 살았으며 다롄 이공대 상점에서 20여 년을 근무하다가 1994년 연말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했다. 그녀를 심하게 괴롭혔던 류머티즘 관절염 등 고질병도 다 나았고 조급하던 성질도 좋아졌으며 남을 열정적으로 도와 동료들의 호평을 받았다. 파룬궁을 수련하기 전 그녀는 늘 병가를 내고 쉬었다. 파룬궁을 수련한 후 건강해진 그녀는 일찍 연이어 4개월간 혼자서 두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했으며 하루도 쉬지 않았다.

파룬따파에서 심신의 이익을 얻은 선량한 부녀자가 파룬따파 진선인(真·善·忍) 믿음을 견지한 이유로, 1999년 7월 20일 중공 악의 우두머리 장쩌민이 일으킨 파룬궁에 대한 잔혹한 박해에서 7차례 불법적으로 수감되었다. 다롄 구치소에 불법적으로 18일 수감되었으며, 마약 중독자 재활 센터에 불법적으로 28일 수감되었고, 다롄 노동교양원에 불법적으로 2년 40일 수감되었다. 처음으로 마싼자(馬三家) 교도소에 2년 4개월 동안 불법 수감되었고, 두 번째로 마싼자 교도소에 2년 16일 불법 수감되었으며, 2009년 7월 푸순(撫順) 뤄타이(羅台) 산장의 이른바 ‘법제학교’(실제로는 중공이 파룬궁 수련생에게 강제로 믿음을 포기하게 하려고 한 사설 감옥으로 세뇌반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다)에 21일간 불법 수감되었다. 2016년 3월 10일 병원에 15일 수감되었고, 2016년 6월 28일부터 2021년 12월 24일까지 박해를 받고 사망했다. 그녀는 모두 12년간 불법 수감되었고 비인간적인 괴롭힘을 받을 대로 받았다.

1. 구치소, 마약 중독자 재활 센터, 세뇌반에 약 2개월 불법 수감

2000년 12월 중수쥐안과 딸은 다시 베이징에 청원하러 가다가 버스터미널에서 붙잡혀 신분증을 압수당했다. 경찰은 대법 사부님을 욕하라고 했으며 욕하지 않으면 납치하겠다고 협박했다. 모녀가 단호히 거절하자 경찰은 먼저 몸을 수색하고 후에 다롄 마약중독재활센터로 납치했다. 경찰은 또 중수쥐안의 남편을 다그쳐 3천 위안(약 56만 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딸이 마약중독재활센터에 10여 일 불법 수감된 후, 경찰은 딸에게 수련하면 구치소에 보내고 수련하지 않으면 집으로 보낸다고 위협했다. 그녀의 딸이 “수련한다.”라고 말하자 구치소에 또 18일 수감되었다. 중수쥐안의 남편은 또 강요에 못 이겨 1천여 위안(약 19만 원)을 냈다. 중수쥐안이 붙잡힐 때마다 그녀의 남편은 사람을 풀어달라고 했지만, 매번 파출소에 수백 위안을 갈취당했다.

다롄 마약중독재활센터에서 경찰이 중수쥐안에게 규정을 외우라고 강요했지만, 그녀는 외우지 않았다. 경찰은 그녀에게 수갑을 채우고 벽을 등지고 서게 하고 공갈했으며 새벽까지 체벌한 후에야 자게 했다. 경찰 쑨융파(孫永發)는 그녀의 딸 리슈리의 뺨을 20대 때리고 이튿날 5시에 일어나게 한 후 온종일 허리를 구부리는 체벌을 서게 했다. 며칠 지난 후 그녀와 이전에 수감된 파룬궁 수련생은 위층으로 옮겨가게 되면서 중수쥐안과 딸은 헤어졌다. 20여 일 후 중수쥐안은 다롄 마약 중독자 재활 센터에서 다롄 구치소로 납치되었고 그녀의 딸도 후에 다롄 구치소로 옮겨졌다.

그 후 얼마 안 되어 중수쥐안을 다롄 노동 교양원에 보내 2년 동안 박해했다.

2. 다롄 교양원의 비인간적인 괴롭힘과 성 학대

다롄 노동 교양원에서 가오(高) 대대장이 중수쥐안에게 아직도 파룬궁을 수련하겠는지 묻자 그녀는 수련하겠다고 말했다. 가오 대대장은 그녀의 뺨을 때리고 체벌했다. 90도로 허리를 굽히고 두 손으로 뒤통수를 움켜쥐고 머리를 아래로 수그리고 양다리 사이에 박아야 했다. 간혹 조금만 흔들려도 구타했다. 이런 정황을 보고 파룬궁 수련생들이 단체 단식으로 반(反)박해를 하자, 교양원의 한 작은 클럽에 보내졌으며 침대도 없이 바닥의 짚방석 위에서 잤다.

이튿날 식당은 재판이 열릴 것처럼 살벌했다.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 두 남자 경찰이 밖으로 끌고 나갔다. 끌고 나간 후 마싼자 노동교양소로 보낸다고 말했다. 짐과 식기를 수감자가 마당에 늘어놓았고 정말 보내는 것 같았다. 다음 버스로 그들과 짐을 싣고 교양원을 두 바퀴 돌고 다롄 교양원의 산수루(山水樓)라는 건물에 내려놓았으며 건물은 더럽고 추웠다. 사실은 공갈과 기만이었다.

酷刑演示:野蛮灌食(绘画)
고문 시연: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그림)

중수쥐안은 다롄 교양원에서 비인간적인 괴롭힘을 당할대로 당했다. 잠을 자지 못하게 하고 체벌하고 작은 방에서 세 차례 박해했다. 단식하자 음식물을 주입했다. 악인은 다른 사람에게 음식물을 주입한 후 죽, 흙먼지, 머리카락이 묻은 호스를 소독하지 않고 꽂고 빼고 꽂고 빼고 했다. 그녀는 단지 “아! 아!”하고 형언할 수 없는 아픔에 비명을 질렀다.

酷刑演示:背铐
고문 시연: 등 뒤로 수갑 채우기

또 한번은 노동교양소 명찰를 달지 않았다고 그녀를 작은 방에 보내 박해했다. 작은 방에 들어가 먼저 신을 벗고 몸을 수색했다. 다음 신을 신고 옷을 벗게 한 후 작은 방에 있는 철봉에 묶어 매달고 큰 집게로 더러운 앞치마를 입안에 밀어 넣었다. 두 팔을 일자로 펴게 한 후 왼발을 위쪽으로 향해 묶고 오른쪽 다리는 묶지 않고 앞뒤 좌우로 막 옮기니 통증은 참기 어려웠다. 작은 가위로 발바닥을 찌르고 의자보다 높은 부위에 하반신 회음부를 맞추고 의자를 흔들었다. 또 구두를 신은 발로 음부를 걷어찼다. 뾰족한 밀걸레 자루로 음부를 찧어 음부 부위가 손상입고 짓무르고 만두만큼 부어오르며 피가 많이 났다. 당시 의자를 흔들 때 중수쥐안은 아파서 “아!”하는 소리와 함께 입에 넣었던 앞치마가 뿜어져 나왔다. 또 몸부림치면서 몸을 묶었던 밧줄이 끊어졌다. 다음 교도관은 또 큰 콜라병에 물을 가득 채우고 입에 주입했다. 중수쥐안이 입을 열지 않자 그들은 물을 가득 담은 병으로 입을 때려 입이 크게 부었다. 다음 종이와 펜을 꺼내 전향서를 쓰라고 중수쥐안에게 강요했고 쓰지 않자 계속 괴롭혔다.

오후 1시부터 저녁 8시가 넘도록 반복적으로 학대했다. 달아맨 형구를 풀자 그녀는 땅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다리가 상하고 손도 상했고 바지 안이 온통 피와 변이었다. 이날 당직은 대대장 완야린(萬雅琳), 중대장 위안링웨(苑齡月)이며 작은 방을 담당한 이는 황 대장이었다. 또 그녀에게 “노동 교양증을 달지 않은 것은 잘못이다.”라고 쓰라고 강요한 뒤 두 사람은 그녀를 데리고 엄관실(嚴管室)로 끌고 가 사인침대(死人床)에 묶어놓고 사지에 수갑을 채웠다. 침대는 판자 몇 개였는데 피를 많이 흘려 판자가 모두 붉게 물들었고 사람이 그 위에 있는 것만도 매우 힘든데, 머리에 형구 모자를 쓰고 정말 그녀가 어떻게 지냈는지 모르겠다. 그 후 하루에 두 번 화장실에 갔으며 손은 검은 만두처럼 부어올랐다. 화장실에 가고 식사할 때 수갑을 한 손만 풀었는데 당시 주먹을 쥐지 못했다. 손이 손상되었다가 후에 조금씩 감각이 돌아왔다.

이렇게 8일이 지난 후 중수쥐안의 몸에 욕창이 생겨 위층으로 올라오라고 해서 형구 모자를 벗었더니 머리 위에 2cm 크기의 혹이 생겼고 머리카락이 없고 유난히 아팠으며 귀는 빨갛게 부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엄정 관리가 끝났다.

중수쥐안은 위층에 올라온 후 저녁에 온몸이 아파 잠을 잘 수 없었다. 이렇게 상처가 난 몸을 끌고 강요로 일해야 했는데 계단을 짚고 아래층에 내려가 일했다. 그들은 폭로되는 것이 두려워 샤워하지 못하게 했고 기한이 되자 40일을 더 늘렸다. 현지 파출소에서 데리러 오자 그녀 장부의 2천여 위안(약 37만 원)의 돈을 결산하지 못하게 했다. 집으로 돌아온 후 그녀의 남편은 우여곡절 끝에 겨우 받아왔다. 다롄 교양원에서는 명절을 보내거나 벽보를 만드는 것을 모두 수련생에게서 돈을 받는다. 자주 몸을 수색하고 감방을 뒤졌다. 대장 위안링웨는 그녀에게서 파룬궁 사부님의 경문이 나오자 벌금 200위안(약 4만 원)을 내게 했고 또 자발적이라고 강제로 서명하게 했다.

3. 처음 마싼자 노동교양소에서 당한 고통

2003년 3월 중수쥐안은 다롄 교양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지 1개월이 좀 넘은 후 화난(華南) 월마트에서 파룬궁을 위해 몇 마디 공정한 말을 했다. 후에 화둥(華東)로 파출소는 중수쥐안을 속여 붙잡은 후 간징쯔 지국에 보낸 뒤 또 구치소에 보냈다. 결국 불법 노동교양 2년 형을 선고받고 마싼자 노동 교양소에서 박해당했다. 당일 새벽 2시에 도착한 후 새벽 4시에 일어나라고 한 후 경찰은 유다를 불러 전향하게 했다.(믿음을 포기하게 강요하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고 밤 11시, 때로는 12시가 되어야 휴식할 수 있었다. 3개월 후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고문하고 고문한 후 때리고 욕하고 잠을 자지 못하게 하고 옷 말리는 장소에서 몸이 얼게 했다.

당시 마싼자는 해마다 두 차례 소위 ‘공방’전을 했는데 연말에 한다고 말했지만, 매번 사전에 했다. 10월 중순 옥수수 껍질을 벗긴 후 확고히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파룬궁 수련생에 대해 반년에 한 번씩 실시하는 ‘공방’전을 했는데 각종 고문으로 강제로 전향시켰다. 가을에 옥수수 껍질을 벗기자 그녀의 손목은 부어 커다란 혹이 생겨 아파서 바늘도 들 수 없었다. 양샤오펑(楊小豐) 여경 대장은 그녀에게 일하라고 강요했다. 그녀가 가지 않자 식당에서 그녀를 끌고 위층 방에 가서 억지로 마늘을 까게 했다. 옥수수 껍질을 다 벗긴 후 ‘전향’을 했다. ‘전향’하지 않으면 각종 고문으로 괴롭히고 잠을 자지 못하게 했으며 1개월간 세 번이나 잠을 자지 못하게 했다. 처음에는 6일 동안 24시간 잠을 자지 못하게 하고 24시간 체벌했으며 졸리면 서서 잠을 잤다. 하룻밤에 9명의 유다가 괴롭혔다. 코, 얼굴, 목에 종이를 가득 붙이고 높은 종이 모자를 씌우고 종이 허리띠를 차게 하고 위에 대법을 공격하는 더러운 말을 가득 썼다. 옷을 다 벗기고 색연필로 몸과 옷에 더러운 말을 썼다. 몇몇 유다는 온 창고를 다니며 조리돌리며 가면서 때렸다. 벽에는 사악한 표어가 가득 걸려 있고 벽에 큰 판자를 걸고 ‘삼서(三書)’를 쓰게 하며 손을 내리눌러 살갗이 다 찢어지고 여기저기 퍼렇게 멍이 들었다. 다리를 함께 묶고 손으로 쓰게 하고 머리를 나무 테이블에 내리누르고 손으로 쓰게 했다. 대대장 장슈룽(張秀榮)은 그녀에게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라고 욕했다. 양샤오펑 대장은 한밤중에 이를 갈며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꼬집으며 울면서 “당신이 전향하지 않으면 내가 죽겠다!”라고 말했다. 양샤오펑과 유다는 중수쥐안을 서로 밀치고 당기며 꼬집고 때렸다. 이렇게 오랜 시간, 석 달 가까이 유다는 온종일 때리고 욕했다.

후에 성(省) 공안청에서 두 차례 심문하며 중수쥐안에게 어떤 고문을 받았는지 물었다. 한 남자 경찰이 기록하며 그녀에게 죄를 지은 것을 아는지 물었다. 그녀는 “나는 죄를 짓지 않았어요. 대법 수련은 국가, 집단, 개인에 대해 백 가지 이로운 점이 있고 한 가지 해로운 점도 없어요. 국가에서도 여러 번 이 방면에 대해 보도한 적이 있고 파룬궁 수련 1만 2천여 사례를 조사했어요. 팔순 노인에서 두 살 아이까지 국가 평균 건강률 97%를 초과했어요. 대법은 성명쌍수 공법이며 수련자는 모두 이익을 얻었어요. 나는 이전에 몸이 허약하고 병이 많아 늘 병가를 냈어요. 그러나 대법을 수련한 후 지금까지 약 한 알 먹지 않았어요. 대법은 성명쌍수 공법이며 사람의 도덕을 승화하고 건강해지며 국가, 단체, 개인은 백 가지 이로움이 있고 한 가지 해로움도 없어요.”라고 말했다. 다른 한 남자 경찰이 그녀에게 당신은 우리가 누구인지 아느냐고 묻자 그녀는 알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공방전 기간에 엄정관리(嚴管) 중에 있던 파룬궁 수련생이 먹은 것은 옥수숫가루로 쪄낸 떡인데 겉의 한 층은 익고 안은 전부 생 옥수수 가루이며 풀줄기를 섞은 짠지였다. 하루 세끼가 이러했다. 2005년 12월 30일 그녀는 작은 방에서 지냈고 초나흘에 나왔다. 30일 저녁 먹은 것은 풀 줄기가 섞여 있는 셀러리 짠지였고 옥수숫가루로 찐 떡을 한 입 깨물면 흰 그루터기가 섞여 있었다. 엄정관리에 들어가면 6개월간 이 밥을 먹는다. 이 찐 떡은 마싼자에서 특수 제작한 것인데 검은색에 곰팡이 냄새가 나고 모래가 섞였다. 겉의 얇은 한 층은 익고 속은 전부 익지 않았으며 한 입 떼어먹으면 생 가루가 우수수 떨어진다. 때로는 찐 떡에 신경계를 손상하는 약을 넣기도 한다. 믿음을 버리지 않으면 공방전을 벌리며 1층의 둥강(東港)에 보내 한 창고에 수감하고 바오자(包夾) 두 명이 24시간 감시했다. 후에 또 엄정관리 했는데 연공 때문에 경찰차로 1대대 수감자를 수감한 곳에 이송했다. 수감자가 24시간 감시하고 기한을 4개월 늘렸다. 2006년 7월에야 중수쥐안은 집으로 돌아왔다.

4. 제2차 마싼자 노동교양소에서 당한 고문과 심한 구타

2007년 3월 중수쥐안은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가 진상을 모르는 사람의 모함으로 또 화둥로 파출소에 납치당하고 불법 노동 교양 2년을 선고받고 다시 마싼자 노동교양소에서 박해를 받았다. 3대대는 전문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는 대대다. 3대대에서 10여 일 박해받고 1대대에 옮겨가 수감자와 함께 강제 노역했다. 매일 혼자 3, 4명의 업무량을 했으며 새벽 5시에 일어나 밤 12시까지 일했다. 매달 서명하고 심사하는데 서명하지 않으면 때리고 전기 몽둥이로 전기충격을 한다.

中共酷刑示意图:背铐、电击、棒打、踩踢
중공 고문 설명도: 등 뒤로 수갑 채우기, 전기충격, 몽둥이로 때리기, 발로 밟고 차기

월말 2분대 대장 자오궈룽(趙國榮)은 수감자 자오웨이(趙薇), 양단(楊丹)을 지시해 중수쥐안에게 서명하라고 했다. 서명하지 않자 때리고, 넘어뜨린 후 땅바닥에서 마구 구타했다. 중수쥐안의 손목시계 끈이 끊어지고 옷이 다 찢기고 어깨가 드러났으며 몸은 온통 퍼렇게 멍이 들었다. 손에서 피가 나고 머리는 철 궤에 부딪쳐 큰 혹이 생겼다. 병원에 가서 검사하겠다고 하자 자기 부담이라며 가지 못하게 했다.

8월 말 사무실에서 자오궈룽은 자오웨이, 양단에게 지시해 강제로 중수쥐안의 손을 잡고 서명하게 했다. 장춘광(張春光) 부대대장은 전기봉으로 전기충격을 가했다. 중수쥐안이 거절하고 반항하자 장춘광은 단번에 그녀의 오른손을 세차게 등 뒤로 비틀어 그녀를 탁자 위에 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양단, 자오웨이에게 손을 잡고 서명하게 했다. 9월에는 인솔자(경찰을 도와 수감자를 관리하고 일하는 이)에게 강제 서명하게 했다.

10월 또 중수쥐안을 불러 서명하라고 했다. (매달 서명하라고 하며 서명하지 않으면 폭력을 쓰고 박해한다) 중수쥐안이 가지 않자 바오궈룽은 때리면서 방 안에서 밖으로까지 끌고 나갔다. 옷이 다 찢어지고 신발도 벗겨졌다. 중수쥐안은 “정법을 수련하는 것은 무죄다. 박해를 중단하라!”라고 외쳤다. 그녀는 사무실에 끌려갔다. 그녀는 대대장에게 진상을 알렸고 리밍위(李明玉)는 듣지 않았다. 자오(趙) 간사는 중수쥐안의 양쪽 뺨을 마구 때렸다. 잠시 후 자오궈룽이 또 들어와서 때렸다. 직경 5, 6인치의 둥근 물건에 천을 감싸고, 무엇인지 모르지만, 탄력이 있는 물건으로 그녀를 때렸다. 그녀는 눈앞이 캄캄하고 불꽃이 튕기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코에서 피가 났으며 ‘탁, 탁, 탁’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매우 빨리 때리고, 한참을 때렸다. 다음 펑타오(彭濤)라고 부르는 사람에게 슬리퍼를 왕옌핑(王延萍)에게 주라고 했다. 왕옌핑은 슬리퍼로 때렸다. 이때 중수쥐안의 옷, 얼굴, 바닥이 온통 피투성이였다. 휴지 한 두루마리를 거의 다 써버렸다. 땅에 피가 가득 흘렀고 그녀의 얼굴은 온통 보라색이며 코는 비뚤어졌고 흰 눈동자가 모두 빨갛게 되었다. 리밍위는 또 의사를 불러 소위 ‘페이궁(廢功) 1호’, ‘페이궁 2호’를 가져와 혈압을 재게 했다. 혈압을 다 잰 후 큰 괴에 올리고, 늘리는 고문을 했다. 일종 특별한 고문인데 사람은 몇 분 고문 받아도 매우 괴로워한다. 머리를 이 층 철제 침대에 밀어 넣고 두 손을 이 층 침대 양쪽에 수갑 채우고 다리를 삼각철 막대로 고정해 1층 철제 침대에 묶는다. 허리가 휘어 서 있을 수 없고 힘들고 아프다. 그녀들은 중수쥐안이 마비되어 무감각해 고문의 효과가 없을까 봐 또 와서 손목을 움직이게 해 중수쥐안은 더욱더 아파서 견딜 수 없었다. 이렇게 이틀 밤낮 고문에 그녀의 전신 근육이 위축되었다.

马三家酷刑:上大挂
마싼자 고문: 대괘(上大掛, 두 다리를 모아 꽁꽁 묶어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하고 허리를 굽힌 채 두 팔을 2층 침대 난간에 쭉 늘려서 묶어놓는 고문)

중수쥐안의 신체는 이미 매우 허약해졌다. 그러나 11월 30일 솜을 트는 작업장에서 여경 자오궈룽은 또 그녀에게 심사에 서명하라고 했다. 서명하지 않자 뺨을 때리고 당겨 넘어뜨렸고 구둣발로 전신을 세게 찼다. 중수쥐안은 피를 두 번 토했다. 입도 맞아 터졌고 얼굴도 맞아 부었으며 전신이 멍들어 퍼렇고 자색이 났다. 자오궈룽은 또 중수쥐안에게 마스크를 쓰게 해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게 했다. 중수쥐안은 커다란 고통에 숨을 쉬고 말하는 것도 아파서 참기 힘들었다. 넘어지고 일어나는 것도 매우 어려웠다. 10여 일 식사를 얼마 못하고 짐도 수련생이 방법을 대 도와주었다. 그러고도 강제로 일해야 했으며 허리도 구부리지 못하고 손도 못 쓰게 되었고 다리도 절뚝거렸으며 계단을 오르내릴 때도 손잡이를 짚어야 했고 일을 수련생과 수감자가 도와주었다.

박해를 당한 중수쥐안은 공황장애가 왔다. 잠이 들 때 바오자 혹은 대장이 방을 검사하며 그녀를 건드리기만 하면 그녀는 공포에 질려 “아아! 사람 때려요! 사람 때려요!”라고 소리를 질렀다. 노동 교양소는 이렇게 정상적인 사람을 이 정도로 핍박했다.

5. 무고한 7년 6개월 형 선고받고 박해로 사망하다

(1) 요추 골절 회복 중 또 납치

2016년 3월 11일 중수쥐안은 파룬궁이 박해받은 진상을 알리다가 중화(中華)로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당해 파출소 2층에 불법적으로 수감되었다. 중수쥐안은 자신이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한 것은 잘못이 없으며 파출소 경찰이 잘못된 명령을 집행해 법률책임을 지지 않고, 경찰이 자신을 죄인으로 간주해 감금해 진일보 박해해 죄를 범하게 하고 싶지 않아 파출소 2층에서 뛰어내려 몸이 상했다. 파출소 경찰은 그녀를 다롄 제3병원에 데려갔다. 중수쥐안은 입원한 지 15일 후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견지했다.

다롄 제3인민병원은 CT 검사 결과 요추 2번이 파열 골절되었다고 기록했다. MRI 검사 결과 요추 2, 4번이 압박 골절, 마디의 추관이 약간 협착이 생겼고 요추 탈피, 디스크가 변성, 팽창, 돌출됐다. 의사 지시: 1. 계속 치료 권고 2. 골절은 아물기 전에 누워 휴식을 취해야 한다. 3. 의사의 지시에 따라 기능을 단련하여 와상 합병증을 예방한다. 4. 병세 변화를 수시로 진찰한다.

중수쥐안은 집으로 돌아온 후 법공부, 연공을 거쳐 앉을 수 있게 되었고 걷고 집안일을 할 수 있었다. 한창 건강을 회복할 때 2016년 6월 28일 아침 7시가 넘어 또 다롄 춘하이 파출소 경찰이 야오자(姚家) 구치소에 납치해갔다.

다롄 구치소에서 몸이 이미 극도로 허약한 상태에서 불법적으로 7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중수쥐안은 구치소에 불법적으로 2년 넘게 수감되었고 후에 랴오닝성 여자 감옥에 들어갔다.

(2) 랴오닝 여자 감옥 12감구, 파룬궁 수련생 기본 생존권 박탈

법률은 수형자에게 상고할 권리가 있다고 규정했다. 즉 법원의 판결에 불복할 수 있고 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 이 때문에 파룬궁 수련생에게 억지로 죄를 인정하게 하는 것은 인권침해 행위다. 랴오닝성 여자 감옥 12감구(監區)에서 경찰은 바오자에게 지시해 파룬궁 수련생에게 죄를 인정하라고 강요하고 파룬궁 수련생에게 소위 ‘5서(五書)’을 쓰라고 강요했으며 아주 비열한 수단을 썼는데 파룬궁 수련생에게 화장지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어떤 수련생은 6개월간 화장지를 써보지 못했다. 예를 들면 다롄의 중수쥐안, 저우하이옌(周海燕)(1-6소대), 천야저우(陳亞洲)(1-4소대) 등이다. 그들이 감옥에 가져온 물건을 전부 봉하고 주지 않았다. 중수쥐안은 ‘전향’하지 않아 6개월간 휴지 한 장도 주지 않았다. 생리 기간에도 휴지와 생리대를 주지 않았고 평소 대소변을 봐도 휴지를 주지 않았다. 이런 인간성 상실은 국제사회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며 ‘여성 아동 보호법’을 심각하게 위반했다. 그들은 또 악하게 “소변은 말리고 대변은 물로 씻어라.”라고 말했다. 그러나 병, 대야도 주지 않고 어떻게 씻으라는 것인가? 12감구는 이런 비열한 수단으로 파룬궁 수련생에게 전향을 강요하고 죄를 인정하라고 한다.

중수쥐안은 감옥에서 박해로 유방암에 걸렸다. 우(吳) 과장은 혼자 슬그머니 중수쥐안의 집에 가 보았는데 집이 형편없고 생활도 매우 어려웠다. 그는 돌아와 중수쥐안을 찾아 그녀에게 병원에 가서 수술하고 치료하라고 했다. 중수쥐안은 겉으로 우호적이고 잘 대하는 그들의 간계를 식별했다. 중수쥐안은 “만약 당신의 조건이 여전히 당신들이 원하는 것을 쓰라고 한다면 나는 쓰지 않겠으며 치료도 하지 않겠어요.”라고 말했다.

중수쥐안은 병에 걸린 기간 보석 치료를 허락받지 못했다. 혹독한 박해 과정에서 중수쥐안이 이 3년 6개월의 비인간적인 시달림을 어떻게 참고 견디었는지 어떻게 해도 상상할 수 없다.

랴오닝성 여자 감옥은 중공의 장쩌민 집단이 파룬궁에 대한 ‘명예를 실추시키고 경제를 파탄하며 육체를 소멸하라’는 정책을 줄곧 시행했고 고문으로 파룬궁 수련생에게 믿음을 포기하라고 강요했다. 예를 들면 끓는 물을 몸에 끼얹고 독 주사를 놓고, 전기충격을 가하고 고춧물을 주입하며 고추 껍질을 질에 밀어 넣고, 수갑을 찬 채로 매달고 옷을 벗겨 찬물을 끼얹으며, 초강력 노역 등등이다. 그 박해 수단은 끔찍할 정도로 잔인하고 비열했다. 불완전한 통계에 따르면 적어도 37명의 파룬궁 수련생이 박해로 사망하고 많은 파룬궁 수련생이 고문, 박해로 미치고 불구가 되었다. 선양(瀋陽)시 파룬궁 수련생 리구이룽(李桂榮)은 옛 선양시 다둥(大東)구 허쭤(合作)가 초등학교 교장으로 ‘구(區) 10대 우수 교장’으로 불렸다. 2015년 2월 다시 납치되어 불법적으로 5년 형을 선고받았다. 랴오닝 여자감옥 노잔대(老殘隊) 5소대에서 교도관이 감방 우두머리와 바오자에게 구타를 지시했고 2020년 1월 중순 박해로 사망했다.

6. 가족이 당한 박해

딸 리슈리는 학교와 집에서 공인하는 훌륭한 아이다. 그녀는 얌전하고 총명하며 집에서 늘 어머니를 도와 밥을 하고 빨래를 하며 집을 정리했다. 학교에서도 늘 진선인 표준으로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고 묵묵히 좋은 일을 했다. 학교에서 궂은일, 고된 일을 앞다투어 했다. 다롄 둥베이 재정경제대학 부속 중등전문대학에서 공부할 때 각 과목의 성적은 모두 반 1등, 학년 3등이었다. 99년 졸업 후 아버지가 지인에게 일자리를 부탁해서 다 준비되었지만, 그녀는 실력에 의지해야 하며 남에게 부탁하여 일자리를 구하지 말아야 할 것 같아 스스로 직업을 구했다. 그해 그녀는 20세였다.

중수쥐안의 남편 리콴은 이전에 다롄 소프트웨어원(園) 인근의 한 주둔군 간부였다. 후에 다롄 석유 화학 공사로 전역했다가 명예퇴직했다.

(1) 딸이 박해로 정신 이상이 되다

화둥로 파출소에서 처음으로 중수쥐안 집을 수색할 때는 2003년이었다. 당시 24세인 딸이 그들이 수색하는 것을 가로막았다. 경찰은 그녀를 4층에서 아래층까지 끌고 내려갔고 또 파출소까지 끌고 가 그녀는 매우 두려워했다. 그 후 우울증(당시 이웃 사람들이 나와서 경찰을 문책했다)을 앓았다. 2007년 화둥로 파출소는 중수쥐안 몸에서 열쇠를 찾아내 두 번째로 가택 수색할 때 집에 딸만 있었다. 경찰의 무지막지한 행동에 딸은 매우 두려워하고 공포에 질렸다. 그 후 그녀는 정신이 이상해졌고 걸핏하면 밖으로 뛰쳐나가, 중수쥐안의 남편은 도처로 찾아다녔는데, 조급해하고 화병이 나서 이가 다 빠졌다.

박해로 중수쥐안의 남편과 딸은 중수쥐안이 불법 수감된 후 40여 일 외출하지 않고 집에서 반찬도 만들어 먹지 않고 40여 일 죽만 먹었다. 두려움 때문에 이웃들이 문을 두드려도 열어주지 않았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후에 직장에서 부녀가 집에서 죽은 줄 알고 리프트로 집에 들어와서야 그들이 살아있는 것을 알았다.

후에 딸은 정신병원에 들어갔다. 한동안 치료받은 후 어머니가 생각나서 보려고 했다. 중수쥐안의 남편은 딸을 데리고 마싼자 노동 교양소에 갔지만 만나지 못했다. 딸은 리밍위에게 무릎 꿇고 어머니를 만나게 해달라고했지만 대대장 리밍위는 만나지 못하게 했다. 딸은 실망해 울면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간 후 초조하고 불안해했으며 정신 이상이 더 심각해져 늘 혼자 집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도망갔다. 이 기간에 중수쥐안의 딸은 얼마나 도망쳤는지 모른다. 그녀의 남편은 혼자서 얼마나 다니며 찾았는지 모르며 정말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이 심했다.

중수쥐안의 딸은 어머니가 한 번 또 한 번 납치당하자 두렵고 놀라 병세가 더 심해졌다.

2017년 여름, 1년 넘게 어머니를 만나지 못하자 어머니를 찾느라고 울고 소란을 피웠다. 리콴은 방법이 없어 딸을 데리고 구치소에 가서 중수쥐안에게 옷과 돈을 저금했다. 자녀가 어머니를 생각하고 만나고 싶어 콧물, 눈물 흘리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함께 눈물을 흘렸다. 구치소 사람도 동정하며 위로해주었다.

(2) 리콴, 3년 6개월 형의 억울한 집행 유예 선고받고 6개월 수감

중수쥐안은 2016년 6월 28일에 납치당하고 2017년 4월 10일 재판했지만, 줄곧 판결이 나오지 않았다. 수개월 후 남편 리콴이 법원에 찾아가 아내의 사정을 물어봤지만, 판사가 ‘3서’ 서명을 요구하자 거절해 아내의 사정도 알 수 없었다.

2018년 새해 전 진화(金華) 판사가 또 리콴을 찾아 ‘3서’에 서명하라고 요구했으며 리콴은 거절했다.

2018년 3월 7일 (전국 인민 대표 대회와 정치 협상 회의 기간) 오전 리콴은 진화 법관의 전화를 받았다. 리콴은 아내의 소식이 있는 줄로 알았다. 정신 이상인 딸을 돌볼 사람이 없자 오후에 이웃에 부탁해 집에서 돌보게 했다. 그는 법원에 갔지만 결국 속아서 납치당했고 3월 8일에도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 기간에 가도 주민 위원회 직원이 그의 집에 와 통지받고 보러 왔다고 말했다. 집안을 뒤지다가 쌀과 밀가루를 보고 이웃에게 집에 쌀과 밀가루가 있으니 아이에게 만들어 먹이라고 말하고 갔다.

법원에 필요한 이른바 ‘보증’에 리콴이 서명하지 않자 리콴을 억류해 집에 가지 못하게 했다. 또 그의 딸 리슈리가 집에서 울부짖으며 아빠를 찾고 실성한 영상을 보여주자 리콴은 막무가내로 서명했다. 이때 리콴은 자신이 억울한 징역 3년 6개월 집행 유예를 선고받은 것을 알았다. 보름 동안 수감된 후 리콴은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다. 또 강요로 전자 위치 추적기를 달았고 선양에 면회 가는 것을 금지당했다.

리슈리는 집에서 온종일 어머니를 그리워하다가 후에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고 의지하며 살아가던 아버지도 보이지 않고 또 매일 알지 못하는 낯선 사람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고 건강이 더욱 나빠졌다. 지금 아버지가 돌아와도 놀라 두려워하고 불안해했다. 이날부터 리콴의 딸은 제정신이 아니었고 온종일 잠을 자지 못했다.

중수쥐안은 갔다. 좋은 사람이 이렇게 박해로 세상을 떠났다. 박해에 참여한 춘하이 파출소 경찰, 간징쯔구 검찰원, 법원의 그 검사, 판사는 책임이 없는가? 하늘이 중공 악당의 죄악을 청산할 때 이 공안, 검찰, 법원 부문의 사람은 중공 악당을 대신해 피맺힌 빚을 책임지는 것이 아닌가? 대법제자는 선한 마음으로 진상을 똑똑히 알리고 사람들에게 불법(佛法)에 죄를 짓지 말고 대법제자에 대해 죄를 짓지 말아야 미래가 있고 희망이 있다고 알려 주었다. 중국 사람들이 진상을 알고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하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중수쥐안이 박해당한 더욱더 많은 상황에 관해 밍후이 문장 ‘다섯 차례 불법 수감, 6년 6개월 잔혹한 시달림을 당하다’, ‘어머니가 받은 참혹한 박해에 다롄의 리슈리 정신이상’, ‘다롄 중수쥐안 불법 수감된 지 1년 6개월 넘다’, ‘다롄 중수쥐안 불법적으로 7년 6개월 형 선고, 남편 3년 6개월 집행 유예 선고’ 등을 참고하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1년 1월 4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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