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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무쓰 파룬궁수련생 캉아이펀이 박해로 사망

[밍후이왕](밍후이왕 통신원 헤이룽장 보도) 자무쓰(佳木斯)시 64세 파룬궁수련생 캉아이펀(康愛芬)이 2021년 6월 17일에 집에서 첸진(前進) 공안분국 국보(국내안전보위국) 경찰에게 납치 및 불법적인 가택 수색을 당했고, 강제로 자무쓰시 구치소로 보내져 구금됐다. 그녀는 박해로 심장에 심각한 병증이 나타나고 전신이 부어 두 다리로 걸을 수 없었다. 두 눈은 거의 실명에 이르렀으며, 호흡하기가 어려워 생명이 위태로웠다. 8월 17일에 풀려나 집으로 돌아와 ‘거주지 감시’를 당했다.

공검법(공안, 검찰, 법원) 사람들은 서로 공모해 이른바 ‘사건’을 강제로 추진해 늘 집으로 찾아와 소란을 피우며 박해했다. 한 번은 또 캉아이펀을 법원으로 납치하기도 했다. 캉아이펀은 박해를 감당하기 어려워 집으로 돌아와 3개월 후인 2021년 11월 18일 아침에 억울하게 사망했다. 그녀가 사망하기 사흘 전인 11월 15일, 샹양(向陽)구 검찰원의 1남1녀와 첸진 공안분국의 자오신(趙鑫)은 그녀 집으로 가서 괴롭히고, 이른바 ‘범죄 혐의자의 소송권리 의무 통지서’를 보내 그녀에게 서명하게 했다.

'康爱芬近年照片'
캉아이펀(康愛芬)의 최근 사진
'康爱芬被迫害得全身浮肿,双腿不能站立行走。'
캉아이펀이 박해로 전신 부종 상태가 나타나 걸을 수 없게 되다.

1958년 2월 17일생인 캉아이펀은 헤이룽장성 자무쓰시 첸진구 잔첸난샤오(站前南校)구에 살았고, 호적지는 자무쓰시 첸진구 린하이(林海)다. 캉아이펀은 심한 소아마비를 앓았다. 수련 전에 또 요독증, 폐결핵 환자이며 각종 질병을 앓았는데 여러 해 의사를 찾았지만 치료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소변을 가리지 못해 바지가 늘 오줌에 젖었다. 1996년 4월에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한 후 모든 병증이 완쾌됐다.

캉아이펀은 20년 이상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했으며 더 이상 주사와 약이 필요하지 않았다. 성격이 거칠고 급하던 캉아이펀은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 또 자상하게 변해 현모양처에 효녀, 효부가 됐다. 캉아이펀의 부모 자매들도 파룬따파의 기적을 목격하고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1999년 7월 20일, 중공(중국공산당) 장쩌민 집단이 파룬궁을 광적으로 박해한 후 캉아이펀은 반복적으로 박해를 받았다. 최소 7번 납치됐다. 한 번은 불법 노동교양 처분을 받았으며 한 번은 세뇌반으로 보내졌다. 늘 괴로움을 당하고 극심한 경제적 손실을 당했는데 일가족의 심신은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감당했다.

1.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가 납치, 갈취당하다

2000년 2월 1일, 캉아이펀과 수련생 뉴위환(牛玉環), 류리잉(劉麗影), 치수칭(齊淑淸), 저우구이샹(周桂香) 등 5명은 함께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가서 파룬궁을 위해 공정한 말을 했다가 자무쓰로 납치돼 돌아왔다. 악독한 경찰 쉬융리(徐永利)는 직접 5명을 지휘해 강제로 자무쓰 구치소로 보내 불법 구금했다.

캉아이펀은 구치소에 50일 이상 불법 구금됐다. 자무쓰시 구치소는 환경이 매우 열악했고 매일 경찰이 파룬궁수련생들을 꾸짖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 작은 방에 30명이 넘는 사람들이 갇혀 있었는데 그들은 매일 돼지 사료로 만든 옥수수떡을 먹었다. 저녁에는 누워 잘 곳이 없어서 앉아서 자는 수밖에 없었다.

경찰은 또한 캉아이펀이 강제 노동교양소에 가게 될 것이라고 캉아이펀의 가족을 위협했다. 가족은 어찌할 방도가 없어서 식사초대를 하고 인맥을 찾느라 1천 위안(약 18만 원)이 넘게 썼다. 그리고 악독한 경찰이 7000위안(약 130만 원)을 갈취하고 나서야 그들이 석방해주려 했지만 캉아이펀은 이미 심신에 모두 매우 큰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2. 진상 자료를 배포해 두 번째로 납치, 갈취당하다

2001년 2월 13일, 캉아이펀은 진상자료를 배포하던 중 자무쓰시 융훙(永紅) 공안분국의 악독한 경찰에 납치됐다. 경찰은 구치소로 보내겠다고 위협하고 캉아이펀의 가족들로부터 3000위안을 갈취한 후 별다른 절차 없이 풀어줬다. 자무쓰시 샹양 공안분국은 캉아이펀의 가족이 경제 상황이 좋다는 소식을 듣고, 재산을 갈취하기 위해 늘 집에 가서 사람들을 이유 없이 납치했다. 결국 캉아이펀의 정상적인 생활이 보장될 수 없어 그녀는 유랑생활을 했다.

3. 세 번째로 납치돼 고문 및 갈취당하다

2002년 4월, 자무쓰시 110 순찰경찰들이 캉아이펀의 집을 대규모로 둘러쌌다. 입구에 초소를 세워 잠복 감시를 진행하며 물과 전기를 다 끊어버리고 6일 밤낮을 포위했다. 캉아이펀과 남편은 집에서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고 ,그들의 아이들은 감히 친척 집에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사악한 경찰의 악행은 극악무도했다. 그 후 경찰이 철수하자 캉아이펀은 핍박에 못 이겨 유랑생활을 하며 큰 언니와 셋째 여동생 세 사람이 함께 임대주택에서 살았다.

경찰은 아직 파룬궁 수련을 하지 않은 캉아이펀의 남편을 추적해 거주지를 찾았다. 5월 15일 저녁 8시쯤, 경찰 10여 명이 야만적으로 문을 부수고 주택에 침입해 캉아이펀 세 자매를 강제로 납치하고 집을 불법적으로 강탈했다. 자무쓰시 공안국 110 순찰경찰지대 사무실에서 캉아이펀과 두 언니는 호랑이 의자 위에 꼬박 하루 동안 묶여 있었다. 이 경찰들은 태도가 아주 나빴다. 그들은 욕설을 퍼붓고 대법 사부님과 대법을 모함하고 모욕하며 대법 사부님 법상을 땅에 놓고 두 경찰이 캉아이펀의 발을 들어 강제로 밟게 했다. 캉아이펀과 그녀의 큰 언니는 경찰에게 큰 소리로 “당신들이 이렇게 하면 무생지문(無生之門)에 떨어질 것입니다! 업보를 당할 것입니다. 당신들은 목숨을 잃는 것이 두렵지 않지만 아이들을 생각하지 않습니까?”라고 질책했다. 경찰은 그제야 손을 멈췄다. 다음날 캉아이펀 세 자매는 자무쓰시 구치소로 보내졌다.

구치소에서 캉아이펀은 단호하게 협력하지 않았고 사부님께 이곳은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니므로 악마의 소굴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을 청했다. 박해로 인해 캉아이펀의 몸은 심장병, 고혈압 등 증상을 보였다. 캉아이펀은 다시 단식해 불법 구금에 항의했고 무조건 석방을 요구했다. 결국 캉아이펀이 피를 토하자 구치소 측은 책임지기 두려워 그녀를 224병원으로 보내 검사를 받게 했다. 검사 결과가 매우 심각한 것을 보고는 병보석 명목으로 캉아이펀의 남편에게 보증금을 내도록 핍박해 재물을 갈취했다. 악독한 경찰은 캉아이펀의 남편에게 “파룬궁(수련생)은 죽어도 헛되게 죽습니다.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까? 처음 며칠 동안에 한 사람이 죽지 않았습니까!”라고 말했다. 캉아이펀의 남편은 그의 아내가 매우 허약한 것을 보고 인명 사고가 날까 두려워 핍박에 못 이겨 5000위안의 보증금을 주고 아내를 마중해 집으로 돌아왔다. 캉아이펀의 큰 언니는 불법적으로 2년 노동교양 처분을 받고 각종 고문 박해를 받았다.

4. 네 번째로 납치돼 불법 노동교양 처분을 받다

2002년 10월 28일, 캉아이펀은 파룬궁 진상자료를 배포하던 중 잠복 감시를 진행하던 자무쓰시 첸진 공안분국의 악독한 경찰에게 납치됐다. 악독한 경찰은 불법적으로 심문을 진행했는데 캉아이펀은 협력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밤중 12시에 자무쓰시 구치소로 보내져 불법 구금됐고 1개월 후 불법적으로 노동교양 처분을 받았다. 자무쓰시 노동교양소로 보내졌을 때 신체검사에서 불합격돼 노동교양소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사악한 경찰 왕화민(王化民)은 온갖 수단을 써 강제로 노동교양소에서 받아들이게 했다.

캉아이펀은 단호하게 협력하지 않고 사부님께서 빌며 온종일 발정념을 해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했다. 악독한 경찰과 파룬궁 수련을 하다가 배신한 자들이 온종일 캉아이펀을 에워싸고 세뇌작업을 했는데 위협과 공갈 협박을 했다. 박해로 인해 캉아이펀의 몸은 심각한 심장병, 고혈압 및 기타 증상, 구토 증상이 나타나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20여 일 후, 캉아이펀은 병원으로 보내져 검사를 받았고 그 후 석방돼 집으로 돌아갔다. 캉아이펀은 집에 도착한 후에야 가족이 또 악독한 경찰 왕화민 등에 의해 5000위안을 갈취당했는데, 식사 초대 비용 1000여 위안을 보태면 총 6000여 위안임을 알게 됐다.

5. 다섯 번째로 납치돼 강제로 세뇌반에 보내지다

2012년 하반기에 관할구역 파출소의 위법 경찰과 지역사회 직원이 캉아이펀의 집으로 가서 괴롭히고, 그녀를 납치하고 강제로 이춘(伊春) 세뇌반으로 보내 박해했다. 캉아이펀의 가족은 매일 지역사회로 가서 석방을 요구했다. 열흘이 더 지난 후 주택단지 담당자는 다시는 캉아이펀을 붙잡지 않겠다고 말했고, 또 캉아이펀이 B형 간염에 걸렸다는 핑계로 그녀를 집으로 보내줬다.

6. 여섯 번째 납치, 외지에서 집으로 보내진 후 괴롭힘을 당하다

‘젠싼장(建三江) 사건(현지 파룬궁수련생 7명과 변호사 4명이 납치된 사건: 역주)’ 이후, 헤이룽장성 농지 개간 젠싼장 법원은 2014년 12월 17일 ‘젠싼장 사건’에 대한 공개재판을 열 예정이라는 메시지를 사이트에 게시했다. 장소는 젠싼장 관리국 첸진 농장의 첸진 법정이었다.

캉아이펀과 수련생들은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눈보라를 무릅쓰고 급히 갔다. 기차에서 내린 후 간이식당에서 식사하고 나와서 법정을 찾는 과정 중 우체국에서 현지 경찰에게 납치됐다가 몇 시간 후에 강제 송환됐다. 자무쓰로 돌아온 후 지역사회와 파출소 사람들이 집에 찾아와 그녀를 괴롭히려 했다. 캉아이펀은 당시 집에 없었다. 돌아온 후에 그녀는 문에 있는 모든 대련(對聯)이 찢어진 것을 발견했다. ‘젠싼장 사건’의 2차 불법 재판을 앞두고 캉아이펀은 친구 집으로 갔다가 미행, 감시를 당했다. 어느 날 캉아이펀은 밖에 나가려고 하다가 문이 밖에서 잠겨 있는 것을 발견했다.

7. 장쩌민을 고소해 집으로 찾아온 경찰에게 괴롭힘을 당하다

2015년, 캉아이펀은 실명으로 법에 의거해 장쩌민을 고소했다.

'法轮功学员康爱芬早期照片'
파룬궁수련생 캉아이펀이 이른 시기에 찍은 사진

2015년 7월 31일 오전 6시 15분, 자무쓰시 첸진 공안분국 중산(中山)파출소 경찰 4명이 캉아이펀의 집을 찾아가 그녀를 괴롭혔다.

8. 파출소 경찰이 문을 두드리며 소란을 피우다

2017년 9월, 자무쓰시 첸진 공안분국 중산파출소 경찰이 캉아이펀의 집으로 가서 문을 두드려 소란을 피웠지만 그녀는 응답하지 않았다.

9. 경찰이 집으로 찾아가 소란을 피우고 가택수색을 해 유랑생활을 하다

2019년 7월 25일부터 자무쓰시 불법 경찰은 ‘범죄와 폭력을 척결한다’는 명목으로 수련생들을 대규모 괴롭히고 납치했으며, 불법적으로 집에 들이닥쳐 가택수색을 진행해 수련생들의 개인 재산을 강탈했다.

2019년 7월 29일, 첸진구 공안분국 중산파출소 경찰 약 8~9명이 캉아이펀의 집으로 가서 집에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제멋대로 문을 열고 가택수색을 진행했다. 이전에 경찰이 문을 두드리고 캉아이펀을 납치하려 한 적이 있어서, 캉아이펀은 어쩔 수 없이 일시적으로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경찰이 강탈한 물건은 파룬따파(法輪大法) 사부님 법상, 대법서적 약 50여 권, ‘공산주의의 최종 목적’ 30여 권이 있었다. 그리고 벽 위에 붙인 진상 세화(歲畵), 작은 음향 기기도 뜯어갔다. 그리고 데스크톱 컴퓨터 세트, 프린터 2대, 크고 작은 절단기 1대, 인쇄지 6상자, 핸드폰 5대, 크고 작은 스테이플러 5대, 그리고 약간의 책 만들기 도구, 약 1만8천 위안의 현금이 있었다. 신분증, 모뎀과 라우터가 약탈당했고, 방 문에서 밖을 내다보게 만든 작은 구멍에도 무언가를 붙여놨다. 캉아이펀의 남편이 외지에서 돌아왔는데 열쇠로 문을 열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문 잠금장치를 부수고 들어갔는데 집은 엉망이 됐다. 캉아이펀은 집이 있어도 돌아갈 수 없었다. 게다가 위법 공안 요원에 의해 인터넷에서 지명 수배를 받았다.

10. 일곱 번째로 납치돼 박해로 사망하다

2021년 6월 17일 이른 아침, 자무쓰시 첸진 공안국 국보 경찰은 첸진구 첸난 주택단지에 캉아이펀 거주지로 가서 납치했다.

아침 8시, 캉아이펀의 남편은 손자를 학교에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2층 문을 열자 사복 차림의 남자 6~7명이 갑자기 3층에서 뛰어 내려오더니 첸진 공안 분국 경찰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또 증명서를 꺼내 캉아이펀의 남편에게 보여줬다. 그중 한 경찰은 자오신(趙鑫)이라고 불렀다.

이 사복경찰 집단은 캉아이펀 남편의 제지를 무시하고 강제로 집안에 침입해 불법적으로 가택수색을 진행했다. 그중 두 명의 경찰은 캉아이펀을 짓눌러 그녀를 움직이지 못 하게 했다. 나머지 몇 명은 집을 뒤져 물품을 찾기 시작했다. 사복경찰은 40여 권의 대법서적과 대법 관련 물품, 진상지폐는 약 2000위안, 그리고 핸드폰 등 개인 재산을 강탈했다. 한 사복경찰은 “당신이 모자를 쓰고 외출한다고 해도 우리는 당신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캉아이펀의 남편은 이들에게 납치하는 이유를 묻자 경찰은 ‘칠일(七一)절(공산당 창당 기념일)’이 되어 상부에서 요청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사복경찰은 캉아이펀을 데려가려 했지만 캉아이펀은 협조하지 않고 극력 저항했다. 결국 사복경찰에게 납치돼 자무쓰시 공안국 국가보안대대에 갔다. 그녀는 불법 심문을 당한 후 자무쓰시 중앙병원으로 이송돼 신체검사를 받았다. 병원에서 하루 동안 들볶였는데 혈압이 220에 달했고, 두 다리는 경찰에게 이리저리 끌려가 박해를 당해 걷기가 매우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첸진 공안분국 경찰은 캉아이펀을 자무쓰시 구치소로 강제 이송했다. 이 증상을 본 구치소는 수용을 거부했다. 이 경찰들은 수단을 동원해 캉아이펀을 강제로 구치소에 밀어 넣어 불법 구금했는데, 이미 그날 밤 9시가 넘었다. 주택단지 주민들이 제공한 정보에 따르면 이 낯선 청년들(사복경찰)은 며칠간 주택단지 정자에서 쪼그려 앉아 있었다고 한다.

구치소에서 그날 저녁에 캉아이펀은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구치소 측은 음식을 먹지 않아 생긴 일이라고 생각하고 강제로 그녀에게 음식물 주입 박해를 진행했다. 혼수상태에 빠진 캉아이펀은 강제로 음식물 주입을 당해 갑작스러운 심장 불편을 겪었고 눈도 갑자기 실명 상태가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이 5~6일 지속된 후 구치소는 캉아이펀에게 강제로 한 방울씩 링거 주사를 놨는데, 알 수 없는 약물을 주사했다. 줄곧 7일 밤낮 계속 주사했고 증상은 갈수록 심해졌다. 캉아이펀은 구치소 의사들과 감옥경찰들에게 자신이 앓았던 그렇게 심각한 병이 수련한 후 모두 완쾌돼 이 몇 년간 약을 한 번도 먹지 않았다고 말했다. 구치소 의사 중 한 사람은 장(張) 씨이고 다른 한 사람은 왕(王) 씨인데, 두 사람은 아무 말도 듣지 않고 “여기 오면 과학을 믿어야 하고 이곳의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나중에 캉아이펀의 두 팔이 너무 부어서 더 이상 약물을 주사할 수 없게 되자 곧 그녀에게 강제로 내복약을 먹게 했다. 그녀는 입에 머금고 있다가 다른 사람이 방비하지 않는 틈을 타서 뱉어냈다. 결국 캉아이펀은 여전히 독극물에 중독되어 전신이 붓고 질식할 것처럼 숨이 가빠져 잠들지 못했다. 눈은 여전히 ​​앞을 보지 못해 실명 상태에 처했다. 몸은 무언가에 등을 기대고 누울 수밖에 없었고 두 달간 혈압이 매일 220까지 치솟았다.

캉아이펀의 생명이 위태로워져, 2021년 8월 17일에 자무쓰시 첸진 공안국은 부득이 ‘거주지 감시’ 박해 형식으로 그녀를 집으로 돌려보내야 했다.

2021년 10월 14일, 자무쓰시 첸진 공안분국은 캉아이펀을 모함한 사건을 첸진구 검찰원에 이송했다.

2021년 10월 22일, 자무쓰시 검찰원 및 자무쓰시 중급법원이 관할을 지정한 후 캉아이펀을 모함한 사건은 첸진구 검찰원에서 샹양구 검찰원으로 이송됐다.

캉아이펀이 집에 돌아왔을 때 그녀의 몸은 완화되지 않고 더 나빠졌다. 음식을 보면 속이 메스꺼워지며 구토했고, 토할 때마다 큰 사발에 검은 것을 토했다. 캉이이펀은 다리가 불편할 정도로 부어 옷을 갈아입는 것조차 어려웠다. 그녀는 억지로 음식을 더 먹었지만 작은 그릇으로 반 그릇에 불과한 묽은 죽일 뿐이었다. 캉아이펀은 온몸이 부어 매우 괴로웠는데 잠깐이라도 편한 적이 없이 시종 그 상태였다.

캉아이펀이 집으로 돌아온 후 공안분국 국보 경찰 자오신, 양(楊)모 씨 등, 그리고 또 지역사회의 한 여성 요원이 7~8일에 한 번씩 와서 괴롭혔다. 적을 때는 7~8명이고 많을 때는 10여 명이었다. 매번 교란은 모두 캉아이펀의 심신에 극심한 상처를 조성했다.

2021년 10월 28일 아침, 첸진 공안분국의 국보 경찰 3명이 다시 캉아이펀의 집에 가서 그녀를 아래층으로 납치해 샹양구 법원으로 끌고 갔다. 캉아이펀은 뭘 하려고 그녀를 데려가는지 몰랐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도 그녀는 첸진 공안분국 경찰이 법원 경찰이 법원에 무엇을 요청했는지 몰랐다. 법원이 협조하지 않자 첸진 공안분국 경찰은 곧 법원과 다투기 시작했고 서로 크게 다퉜다. 경찰은 마지못해 캉아이펀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11월 8일, 샹양구 검찰원의 직원 3명(남 2명, 여성 1명)이 캉아이펀의 집에서 소란을 피우고 10월 28일 장훙웨이(張宏偉) 검사가 서명한 ‘기소장’을 송달했다.

11월 10일, 첸진 공안국 국가보안대대의 류(劉)모 씨(핸드폰: 13846154777), 경찰 장훙량(張紅亮)(핸드폰: 13115355575), 자오신(운전기사, 핸드폰: 13603694645), 지역사회 여성 직원이 캉아이펀의 집으로 가서 소란 및 박해를 진행했다. 그리고 또 의사를 데리고 가서 캉아이펀에게 병원에 가자고 권했다.

11월 15일 오전, 샹양구 검찰원 직원 2명(남녀)과 첸진 공안분국 자오신(운전기사)이 캉아이펀의 자택에 찾아가 ‘범죄 혐의자의 소송권 의무 통지서’를 송달해 캉아이펀에게 서명하도록 했다. 캉아이펀이 서명하지 않자 남편에게 서명하게 했다. 캉아이펀의 남편도 협력하지 않자 세 명의 가해자는 문 앞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집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이번에는 괴롭힘과 박해로 인해 캉아이펀은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2021년 11월 17일, 점차 시력을 회복했던 캉아이펀은 다시 실명하게 됐다.

'康爱芬含冤离世'
캉아이펀이 억울하게 사망하다

2021년 11월 18일 오전 5시 40분에 캉아이펀은 64세 나이로 억울하게 사망했다.

책임 기관 및 책임자에 대한 관련 정보는 아직 수집 및 정리 중이다. 사정을 아는 분께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주시길 바란다. 동시에 모든 박해자들에게 엄중히 경고한다. 파룬궁수련생 박해를 즉시 중단하고 공을 세워 속죄하라. 삼퇴(三退)하면 목숨을 유지할 수 있다.

 

원문발표: 2021년 12월 5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망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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