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랴오닝성 칭위안현 저우위링, 음식물 주입 박해로 사망

[밍후이왕](밍후이왕 통신원 랴오닝 보도) 푸순(撫順)시 칭위안(清原)현 파룬궁수련생 저우위링(周玉玲)은 2002년 8월 30일에 파룬궁 진상 자료를 붙인 이유로 다사거우(大沙溝) 구치소에 납치됐다. 9월 20일에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 박해’로 사망했는데 시신은 강제로 화장당했고 경찰은 저우위링이 심장병으로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그의 가족에게 사망 원인을 자세히 조사할 수 없다고 위협했다.

저우위링(周玉玲)

저우위링은 원래 푸순시 칭위안현 잉어먼(英額門)향 사람으로 이후에 칭위안현 훙터우산(紅透山) 광산으로 이사했다. 2002년 8월 30일 아침, 그녀는 남편과 그녀 조카딸과 함께 훙터우산 아침 시장에 장사하러 가는 도중, 대법 진상 자료 여러 장을 벽에 붙였다가 훙터우산의 진상을 모르는 사람에게 신고당했다. 그들 몇 사람은 아침 시장에 도착하자마자 훙터우산 파출소장 량다밍(梁大明)이 거느린 몇몇 경찰에게 파출소로 납치됐다. 그녀 남편에게 파룬궁을 수련했느냐고 묻자 남편은 연마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다음 그녀 남편에게 대법을 모독하는 말을 써서 파룬궁수련생이 아님을 증명하게 했다. 그 후 그녀 남편은 풀려나 집으로 돌아갔고 그런 다음 저우위링은 불법적인 심문, 가택수색을 당해 집안의 금반지와 저축 통장을 강탈당했다.

저우위링은 량다밍과 사악한 그의 부하 경찰들에게 전기봉으로 전기충격을 당하고 뺨을 맞았으며, 반성문과 보증서를 작성하도록 강요받았으나 경찰들은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그날 오후에 저우위링은 불법적으로 칭위안 다사거우 구치소에 보내져 구금됐다. 그녀의 남편이 파출소장을 찾아 물건을 돌려달라고 하자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또 그녀 남편의 목을 조였다. 그 후 우여곡절 끝에 저축 통장을 되돌려 받았다.

저우위링은 9월 1일부터 단식으로 불법적 구금과 박해를 저지했다. 나흘 후 구치소에서는 그녀에 대해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과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했는데 매일 밤 저우위링의 고통스러운 신음이 들렸다.

酷刑演示:野蛮灌食
고문 재연: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

소장 인창장(尹長江)은 저우위링에게 강제로 음식물 주입을 진행하라고 부하들에게 지시했고 많은 사람이 그녀를 붙잡아 음식물을 주입하는 동안 그녀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했다. 당시 감방 안에는 다른 파룬궁수련생들이 단식하고 있었는데 음식물 주입을 당할 때 그들이 주입한 음식물에 ‘잠복기’가 있다고 인창장과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주입 당한 사람은 주입한 것이 좋은 음식이 아닌 것을 알고 손으로 후벼서 토해냈다. 하지만 유독 저우위링만이 토하지 않았다. 결국, 저우위링은 배가 아파 저녁에 줄곧 소리를 질렀는데 감방 사람들은 아무도 묻지 않았다.

9월 20일 아침, 저우위링은 감방 사람들에게 끓인 물을 요청했지만, 감방 사람들은 날이 아직 밝지도 않았다고 거부했고 감히 경찰도 부르지 못했다. 방에 있던 사람들이 발견했을 때는 저우위링은 이미 화장실에서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고 신발마저 변이 묻어있었다. 방에 있던 사람들이 경찰에 전화를 걸어 그녀를 침대로 들어 올렸으나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나중에 감방 사람이 이불속에도 변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현 병원으로 옮겨졌을 때는 이미 호흡이 멈춰 있었다. 그때 한 어린 경찰이 의사에게 확인 요청했는데 의사는 “이미 죽었는데 무슨 확인을 한다는 말입니까?”라고 말했다.

바로 이렇게 49세에 불과한 저우위링은 박해로 사망했다.

2002년 9월 20일 오전, 가족들은 저우위링의 중병 통지서를 받았지만, 가족들이 병원에서 본 것은 저우위링의 시신이었다. 두 귀는 청색을 띠고 두 눈은 둥그렇게 뜬 채로 감지 않았다. 남편이 사인을 묻자 한 무리 경찰이 그를 둘러싸고 곧바로 현 병원으로 끌고 가서 묻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뒤이어 저우위링의 시신은 장례식장으로 강제 이송됐다. 가족이 장례식장에 도착한 후 그녀 남편과 친척들은 사인에 관해 물었는데 경찰은 ‘급성 심장마비(저우위링은 심장마비를 겪은 적이 없음)’라고 말했지만, 진단서를 내놓지 않았다. 유족들은 부검을 요청했으나 경찰은 반드시 그들이 법의학 의사를 불러야 하고 가족들의 선임은 불허한다고 했다.

오후 3시경, 공안국장 쑹이(宋義)는 병원에서 보충해 발급한 가짜 사망 증명서를 꺼냈다. 그것은 칭위안현 병원의 허진펑(何金鳳)이 발급한 것이다. 가족들은 저우위링이 심장병을 앓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더욱이 보충 증명서는 시댁과 친정집에서 각각 한 명씩 두 사람만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경찰은 들고 가까이 다가가 보지 못하도록 일정한 거리를 두었는데 내용조차 똑똑히 알아보기 어려웠다.

저우위링의 아들이 어머니가 왜 그렇게 며칠 만에 죽었는지 물으려 하자 경찰은 즉시 아이를 위협하고 협박하며 묻지 말라며, 그렇지 않으면 아이 미래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저우위링의 형부가 사람이 구치소에서 죽었다고 말하자 경찰 측은 두려워 즉시 형부 직장에 전화를 걸어 압력을 가해 책임을 추궁하지 못하도록 했다. 친척이 사인을 물어도 마찬가지로 공갈·협박과 위협당했다.

2002년 9월 20일 오후, 칭위안현 610 사무실과 공안부는 급히 저우위링의 시신을 화장하려 했다. 가족이 동의하지 않자 그들은 가족에게 화장에 동의하지 않으면 저녁에 110(공안 신고번호)에 전화를 걸어서라도 화장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가족은 핍박에 못 이겨 서명했다.

저우위링은 매우 현숙하고 선량한 좋은 사람이다. 특히 대법을 수련한 후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으로 되어, 심신이 건강하고 가정이 화목하며 시어머니에게 매우 효도했다. 이웃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전형적인 좋은 아내이자 어머니다. 그런 좋은 사람이 칭위안 다사거우 구치소에 구금돼 겨우 20일 만에 박해로 사망했다.

 

원문발표: 2021년 11월 5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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